< 254. 파티 초대 (2) >
올리버는 차일드가 송장인형-바토리에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도와준다고 해봐야 움직일 수 있게 몸을 부축하거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눠 개선점을 찾는 게 전부였지만.
그렇다고 그게 의미 없는 것이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재밌는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됐으니.
그건 다름 아닌 송장인형의 질에 따라 차일드가 컨트롤하는데, 시간 차이가 생긴다는 거였다.
가령, 이렇다 할 능력이나, 특기, 특성이 없는 송장인형의 경우 차일드가 들어가자마자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데 반해, 능력과 특기, 특성이 다양하고 그 깊이가 깊은 송장인형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전에도 약간 느끼긴 했지만, 바토리는 그 정도가 남달랐기에 이로써 확실해졌다.
송장인형을 사용하는데 꽤나 중요한 정보.
올리버는 해당 사실을 노트에 기록하며 그 이유를 추정해봤다.
‘역시 시체의 정보량이 많고, 어려워서겠지? 차일드가 소화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올리버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제 와 새삼 말하기 그랬지만, 차일드는 송장인형의 특기, 움직임, 기술을 때때로 원주인 이상 사용할 때가 있었다.
송장인형 간의 협력으로 원래 능력을 두세 배 증폭시킨 것이 그 예시.
차일드는 송장인형을 매개로 기술을 사용한다기보다는, 송장인형의 능력을 학습 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 둘은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거였고 후자의 경우라면 차일드는 더 무궁한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다.
더 많은 송장인형을 이용할수록 차일드는 그에 비례해 다양한 기술과 능력을 습득, 축적할 수 있는 거였으니.
그러자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차일드가 송장인형을 매개로 스스로 수련해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와 같은 의문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송장인형의 질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됐다.
올리버는 재빨리 해당 정보를 기록해 가설을 세우고, 구체적인 연구방법을 작성해봤다. 차후 바로 시도해 볼 수 있게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문제를 파고들고 싶었지만. 할 일이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여성 흑마법사들을 송장인형으로 마저 만들거나, 마탑에 다시 출근하는 등의 일 때문에 말이다.
"정말 그 해결사 윌은 그때 처음 만난 건가?”
마탑 내 생명 학파 타워.
그곳에서 올리버가 세 명의 마법사와 마주 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대화보다는 신문에 더 가까웠지만.
“예, 아웃포스트(Outpost)에서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지?”
"동행해 줄 해결사분들을 찾는 와중에 우연히요.”
"우연히?”
"예."
올리버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정식절차를 걸쳐 올리버를 빌린 생명학파 마법사 셋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렇다고 입 밖에 낼 정도는 아닌 의심을 빛내며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근데, 교수 대리인 주제 어떻게 해결사를 고용할 생각을 한 거지? 혹시, 케빈이 시켰나?”
"아뇨, 그건 제 판단이었습니다. 아웃포스트에서 홀랜드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케빈 교수님과 아웃포스트 지부에서 도와주신 마법사 님 모두가 그러더군요. 교칙 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올리버가 질문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탑 교칙]에 이에 관한 내용이 명백히 적혀 있었다.
교수 대리는 교수의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 당연히 재량권을 발휘해 외부에서 인력을 빌려 써도 무방했다. 문제가 생길 시 책임만 진다면 말이다.
마법사 셋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혹시, 윌이란 해결사의 신분을 확인할 방법이 있나?”
"그에 관한 내용은 보고서에-”
“-보고서라면 우리도 읽었어. 우린 자네 입에서 듣고 싶은 거야.”
초조와 경계심이 뒤섞인 대답. 올리버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노스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니 그곳에서 확인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노스인 커뮤니티는 안 돼. 거기 엄청 폐쇄적인 곳인 데다, 있는 거라곤 피해망상에 찌든 게으름뱅이뿐이라서. 거짓말만 일삼는 존재들이지.”
"죄송하지만,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다른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왜 알지도 못하면서 해결사를 고용한 거야. 마탑의 진귀한 지식을 노리는 도둑들이 얼마나 많은데? .….. 아웃포스트 지부에 해결사를 구해달라고 요청했어도 됐잖아?”
"그 부분 역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도 제게 가르쳐주지 않으셔서 알아서 고용해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이 말 역시 사실이었다.
포털 마법을 통해 아웃포스트로 가 교통에 대해선 자세히 들을 수 있었지만, 안전에 관한 것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케빈에게 도움을 요청한 생명학파 역시도.
결국, 마법사들은 다시 한번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늘어봤자 피차 민망해질 뿐이었으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예."
생명학파 마법사 셋은 올리버에게 마운틴 페이스로 가는 도중 한 일과 연구소에 있었던 일에 관해 세세히 물어봤다.
마치, 조작된 내용이 있는지 살피려는 것처럼.
다행히 케빈과 수차례 연습한 올리버는 보고서 내용에 맞춰 대답했고, 함정 성격이 짙은 질문도 전부 피해갔다.
덕분에 올리버에 대한 생명학파 마법사들의 의심은 점차 옅어져 갔다.
“……이게 끝입니다.”
올리버가 연구소에 있었던 일 설명을 끝마쳤다. 역시나 트집 잡을 만한 것은 없었다.
"정말 화염마법으로 벽을 부수고 바닥을 내려 앉혔다고?”
"예."
“음……. 보통 실력자가 아니군. 혹시, 연구소에서 뭐 이상한 건 보지 못했나? 혹은 그 해결사가 세계수를 만진다거나?”
"중간에 잠시 헤어져서 전부는 모르지만, 저와 함께 있을 때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거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생명학파 마법사들은 곧바로 질문을 철회하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별문제 없다고 결론 내리는 듯했다.
“이야기 잘 들었다. 궁금한 건 다 물어봤으니 이만 돌아가 봐.”
“예, 감사합니다.”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올리버. 케빈의 말대로 큰 문제는 없이 끝났다. 이제 원소학파 타워로 돌아가 다시 일-
"-잠깐만.”
"예?”
유독 깐깐하고, 짙은 의심을 품고 있던 생명학파 마법사가 올리버를 불러 세웠다.
그는 마지막까지 의심의 빛을 거두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하지.”
"어떤 것인지요?”
"듣자 하니 자네가 탄 열차가 노스인 강도들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하던데, 맞나?”
“……예.”
“그리고 거기서 활약했다고?”
“아…….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현상금이 3천만이나 걸린 범죄자가 대단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알아보니까 강도단 상당수가 뛰어난 마력사용자라 군에서도 애를 먹었다 하던데……. 자네 누구에게 훈련받았지?”
"죄송하지만 이게 일과 관련된 질문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대답하는 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지 않겠나?”
“오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올리버의 질문했고, 생명학파 마법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너무 억지였으니.
올리버는 뭐가 됐건 나름대로 마탑에서 공을 세운 공훈자였고, 생명학파는 도움을 받은 구제자였다.
그런 관계인데, 이토록 과하게 추궁하면 오히려 생명학파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시선을 받을지도 몰랐다.
마탑 내에서도 생명학파를 견제하는 세력들이 있었으니.
불법 인체 실험이야 드러나도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만약, 흑마법사와의 야합(野合)이 드러난다면 그건 꽤 난감할 터였다.
그건 마법사들에게 지탄 받을 행위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파테르교와도…….'
올리버가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질문에 대답 드리기 힘들 거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일 외적인 것에는 대답하지 말라고 하셔서……. 만약, 케빈 교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때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난감해하던 생명학파 마법사들은 올리버가 먼저 케빈 핑계를 대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줬다.
올리버는 그들에게 다시 인사하고 취조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올리버를 맞이한 것은 과할 정도로 깨꿋하고 넓은 복도와 그 복도 위를 걷고 있는 생명학파 학생들로, 그들은 호기심, 불쾌함, 의심, 거슬림과 같은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를 흘겨봤다.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과 배타성이 다른 학파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오래 있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올리버는 서둘러 생명학파 타워 밖으로 나갔다.
조사를 받던 곳은 타워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아 올리버는 길을 헤매지 않고 바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째 계속 기묘하게 엮이는 거 같네……."
밖으로 나온 올리버가 뒤를 돌아 하부층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기형적인 원뿔 모양의 타워를 보며 중얼거렸다.
생명학파의 타워로, 디자인이 원소학파만큼 특이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잘 모르겠네.”
올리버가 생명학파 타워에서 눈을 떼고 시계를 봤다.
이미 늦긴 했지만, 빨리 가면 뒷정리는 할 수 있을 듯했다. 올리버는 자기 일을 하기 위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원소학파 타워 마법 전투 훈련실 복도에서 올리버는 막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과 마주쳤다.
케빈의 여느 수업처럼 [마법 전투 기초] 수업 역시 꽤 빡빡한 편이었기에 학생 중 적잖은 수가 땀과 그을림으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개중에 타박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그에 반해 아무것도 안 한 듯 깨끗한 사람도 꽤 있었다.
‘저분들은 이번에도 제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나?’
올리버가 학생 무리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대부분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한 학생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제논 씨.”
선두에 선 야렐리가 마치 대표처럼 올리버의 인사를 받아줬다. 그녀의 훈련복이 여느 때와 같이 너덜너덜했다.
올리버는 인사를 받아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옆으로 비켜섰고, 몇몇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올리버에게 인사하며 지나갔다.
물론, 데릭처럼 여전히 올리버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운틴 페이스 이후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나 꽤 만족스러웠다.
학생들이 다 지나간 후 올리버가 마법 전투 훈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훈련실 내부에는 마력을 이용해 실내를 정리 중인 케빈이 있었다.
"이야기는 잘 마치고 왔나?”
케빈이 올리버를 보지도 않고 물어봤다. 온몸에서 내뿜는 섬세하고 방대한 마력으로 올리버의 존재를 눈치챈 것.
‘윌레스 씨도 저 기술을 애용하던데, 나도 좀 익힐까? 눈에만 의지하는 것도 나중에 문제가 될지 모르니. 마력 소모가 좀 문제겠지만......."
올리버가 케빈과 윌레스의 기교를 떠올리며 고민했다.
"제논?”
"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생명학파와는 별문제 없이 끝난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의심을 완전히 지우진 않았지만, 많이 옅어졌습니다.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군……. 알겠어.”
케빈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올리버의 보고를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할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
“예?”
"생명학파 타워에 갔다 온 후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랬잖아?”
"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주 금요일 일찍 퇴근할 수 있을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한 오후 2시나 3시쯤에요.”
"이번 주 금요일?”
"예,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요.”
“재밌네. 금요일에는 나도 일이 있어서 그때쯤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마음대로 해."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배려한 거 아니야. 어차피 나도 그날은 일이 있는 거라.”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라서요. 이제부터 뒷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이미 거의 다 끝냈으니까……. 대신 내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나?"
"질문요? 예, 말씀하십시오.”
"아까전 나가면서 학생들이랑 마주쳤지?”
"예, 이번에도 열심히 가르치신 것 같더군요.”
올리버가 엉망이 된 데릭과 야렐리의 훈련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내게 뭔가 궁금하거나, 할 말 없나?”
"제가 그런 걸 이야기해도 됩니까?”
“내가 부탁하면.”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교수님의 수업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미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리버가 상대적으로 깨끗한 학생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열성적인 만큼 자기 기준이 철저한 케빈은 야렐리나 데릭 등 실력이 뛰어나거나, 의지가 대단한 학생은 아주 열심히 가르쳤지만, 반대로 실력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부족한 학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물론, 올리버가 감히 그걸 비난할 생각은 아니었다. 올리버도 조셉 패밀리 사람들을 가르칠 때 실력이 더 뛰어나고, 의지가 강한 사람들을 좀 더 집중해 가르쳤으니까.
케빈도 이 사실을 인지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봤어. 슬슬 수업 중반이 되는데, 내가 학생들을 일일이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더군.”
"학생 수가 수십 명이나 되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합니다.”
"동감이야. 더욱이 학생들 수준 차이도 심하게 나지. 그래서 전부 신경 쓰는 게 어려워. 그렇다고 우수한 학생들을 뒷전으로 미루는 건 더 말이 안 되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가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제가요?”
"그래, 네가 날 도와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맡아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거야.”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허락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