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파티 초대 (1) >
에디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제인의 얼굴에서 분노와 증오, 배신감, 경멸,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 존재했고, 아직 에디스와 그녀의 감정의 골이 가라앉지 않은 명백한 증거였다.
"헤에……. 약간 의외네요?”
재빠르게 표정과 감정을 가다듬은 제인.
시스터후드의 훈련 덕분인지 표정은 썩 괜찮아 보였으나, 그 내면의 감정은 통제하기 쉽지 않은 듯 들썩들썩 요동쳤다.
마치, 뱀이 요동치는 것과 비슷하였는데, 아무래도 올리버가 그녀의 아픈 부분을 후벼 판 것 같았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시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니. 대답을 들어야 했다.
"포레스트 님에게 듣지 못했나요?”
"예……. 만나봐서 직접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러셨는지 알 거 같네요.”
올리버가 불쾌함과 분노 등으로 얼룩진 제인의 감정을 보며 대답했다. 근데, 아무래도 실수인 듯했다.
“어떤 이유인 것 같은데요?”
"그건, 제인 아가씨가 몹시도……. 제가 지금 입을 다물 타이밍인가요?”
분노한 미소를 머금은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숙여 사과한 다음 진짜 입을 다물고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꽤 난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커피 맛이 좋다는 것 정도?
어색하게 침묵하며 커피를 마시길 한참. 감정을 추스른 제인이 힘 빠진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한 잔 더 마실래요?”
"......."
“기분 풀렸으니까. 이제 입 열어도 돼요.”
"그럼, 한 잔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심히 대답하는 올리버. 그 모습에 제인이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바(Bar)로 가 커피를 한잔 더 따라왔다.
“……죄송해요. 감정이 앞서 손님에게 신경질을 부렸네요.”
제인이 올리버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야말로……. 갑작스러운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유를 물어볼 수 있나요?”
제인이 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그녀의 감정은 머뭇거림과 분노, 호기심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러니까……. 에디스랑 만나려는 이유요. 혹시, 사업 이야긴가요? 아니면 의뢰?”
“둘 다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호기심요? 무슨……?”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대답하려 했으나, 말이 목구멍 바로 위에서 막혔다.
아직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음……. 아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요?”
"예."
담담하지만 단호한 대답에 제인은 바로 마음을 접었다.
올리버가 물렁물렁해 보여도 어떤 경우에는 그 누구보다 심지가 굳다는 걸 알았기에.
"반대로 말하면 나중에는 대답해 줄 수 있다는 거네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으흠……. 좋아요. 참을게요. 하지만 때가 되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말씀드릴 수 있게 된다면 반드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족까지는 아니지만, 타협할 수 있는 대답을 들은 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런데 그 사람이 순순히 협조해 줄까요?”
꽤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에디스는 올리버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 중에서도 꽤나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올리버가 질문한다고 대답을 순순히 들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과거 복합문화시설인 <사파이어>에서 그와 대화하였음에도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이 그 증거.
‘물론, 그때와 달라진 게 있지만…….'
"쉽지 않겠지만, 거래할 만한 게 있습니다.”
"거래할만한 거요?”
“예.”
“자신감 있는 태도가 아주 멋있네요. 그것 역시 대답해주기 힘들 테죠?”
"예,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서요.”
"하아……. 근데, 왜 절 찾아온 거예요. 전 그 사람이랑 엮이기 싫은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랐는지, 제인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 마른세수했다.
피로와 짜증, 올리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빛냈는데,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과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릴 사람이 아가씨뿐이라서요.”
"지금 데이브면 저 말고도 도움을 청할 곳이 많았을걸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올리버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면 아마 포레스트가 방법이 찾아줬을 터였다.
시간과 노력 등이 더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현재, 그게 해결사 데이브의 위치였으니.
올리버도 이 점을 어렴풋이 알았다. 다만, 그러지 않은 건 제인이란 선택지가 있었고, 또, 다른 사람에게 괜한 빛을 만들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어찌 보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이유. 올리버도 그 사실을 자각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멋대로였네요. 그래도 제인 아가씨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제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참 비겁하고 못된 말이네요.”
"제가 무슨 실례라도?”
"그런 점이요. 정말……."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제인. 그러나 그녀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았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뭐 좋아요. 솔직히 저도 데이브의 도움이 필요한 입장이니까. 계속 투정 부릴 순 없죠.”
“전 상관 안 합니다.”
“……그런 말 너무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우리 참 바보 같네요……. 제가 드릴 부탁은 데이브가 한 파티에 나와 얼굴을 비춰주시는 거예요. 제 초대를 받은 정식 손님으로요.”
“파…티요?”
"예, 이번 달 말에 란다의 여러 자산가가 모일 예정이거든요. 저를 포함한 저희 그룹원들도 모두 참석할 텐데, 데이브 씨도 와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해요. 제 손님으로요.”
"뭐, 상관없긴 하지만 제가 그런데 가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오히려 데이브를 보고 싶어 할 사람들이 많을걸요? 참고로 이 자리에 에디스도 나올 거예요……. 말하고 나니까 기묘하네요. 데이브와 제가 마치 서로 도우라는 무슨 계시 같아서요. 어쩌시겠어요? 나와 주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제인이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올리버에게 물었다.
***
[그래서 자넨 뭐라고 답했나?]
"가겠다고 했습니다.”
통신장치 너머로 들리는 포레스트의 목소리에 올리버가 대답했다. 포레스트가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걸 그냥 그렇게 쉽게 수락했다고?]
"예……. 저도 부탁하는 입장이라 까탈스럽게 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실수한 걸까요?”
[..…솔직히 실수한 것은 아니야. 자네도 슬슬 그런 자리 한번 나가봐 얼굴도장 박을 때도 됐으니. 그저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더 좋겠다는 거야.]
통신기기 너머였지만,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걱정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갑작스러운지라……. 그런데, 그 파티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제인 아가씨가 설명해주셨기는 한데,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요.”
[일종의 투자 모임 같은 걸세.]
놀랍게도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해줬다.
올리버가 이런 질문을 할지 예상한 게 아니면, 굵직한 행사를 다 꿰뚫고 있다는 거였다.
전자도 말이 안 됐지만, 후자 역시 상당히 말이 안 됐다.
란다는 도시 국가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도시였고, 그 크기만큼 많은 사람과 행사, 파티가 있었다.
그중 굵직한 것만 꿰뚫고 있다 해도 가히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투자 모임요?”
[그래, 란다는 돈이 넘치다 못해 요동치는 곳이라,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투자에 관심을 가지거든. 채권, 외환, 주식 같은 거..…. 혹시 뭔지 아나?]
“채권은 정부나 기업 등이 자금 조달을 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고, 외환은 외국과 거래할 때 쓰는 환어음, 주식은 투자한 금액만큼의 기업 소유 증명서 아닙니까?”
[얼추 맞군. 대단한데?]
"책에서 읽었습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도 거기서 배웠죠. 잘못된 말인 거 같지만요.”
[애당초 주식이란 게 정답이 없는 거거든. 합리적인 숫자로 이뤄진 거 같지만, 그 밑에는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얽혀서.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
“아, 주식 해보셨습니까?”
[묻지 말게 가슴 아프니……. 어쨌건, 제인 아가씨가 말한 그 파티는 투자 정보를 공유하거나, 혹은 유치하기 위한 파티일 거야. 이 도시에는 그런 정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아는 게 맞다면 단순히 돈 많은 사람뿐 아니라, 마법사나 귀족도 참가할 거야.]
"마법사랑 귀족요?”
올리버가 정말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올리버가 알기로 마법사와 자본가들은 서로 견제하는 관계였고, 귀족이라는 것도 들어만 봤지 란다에서는 본 적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파티에 참석한다니. 실감 나지 않았다.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야. 마법사나 귀족도 결국 돈이 필요한 존재니. 돈이란 게 어찌 보면 사람을 하나로 엮어 주는 아주 평등한 물건이라 할 수 있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전 왜 초대한 걸까요?”
[전에 말했다시피, 자넨 지금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자, 크라임 펌의 동맹으로 알려져 있거든. 이 도시에서는 무력은 매력인 동시에 경쟁력이고……. 딱히 이상한 건 아니야.]
"파이터 크루 분들과 크라임 펌에서는 별말씀 안 하시나요? 불쾌하실 텐데.”
[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걸세.]
"예?”
올리버가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하던 이야기부터 마저 하지……. 중요한 건 자네가 참석해도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거야. 해결사를 잘 고용하지 않는 사람도 뛰어난 해결사는 주시하고 있거든. 언제 어디서 필요할지 모르니.]
“아, 예……."
[제인 아가씨가 자넬 초대한 이유는 자네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서일 거야……. 듣기로 자네와 친분이 있어 시스터후드 그룹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거든. 파티에 나가 적당히 어울리다 돌아오게. 단, 구체적인 관계는 언급하지 말고.]
"구체적인 관계요?”
[무슨 비밀을 나눈 사이라던가, 연인 관계라던가 그런 거. 그곳은 허세와 허상이 절반은 차지하는 공간이라 구체적인 관계를 보이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아……. 설마, 제인 아가씨와 사귀는 건 아니지?]
"예, 아닌데요. 왜 다들 그런 걸 물어보는 거죠?”
[아니면 됐어. 이 도시에서는 온갖 소문이 나도니 신경 쓰지 말게.]
"예, 알겠습니다……. 혹시, 포레스트 님은 참석할 생각 없나요?”
[없네. 내가 낄 자리가 아니거든.]
“그거 아쉽군요.”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슬프기 그지없구만…….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시간이 좀 있으니 잘 갔다 올 수 있도록 준비하게. 거기 사람들 얼굴 한번 보는 것도 나름 중요한 재산이 될 수 있으니. 몸값이 커지면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전체적인 판을 볼 줄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만 이용당하지 않고 무사히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죠.”
[기억해주다니 기쁘구만. 이만, 통신 끊도록 하지. 파티 가기 전 한 번 들려줘.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으니.]
“예, 여건이 되는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가 그렇게 인사하고는 통신장치를 껐다.
통화가 끝나자 L구역의 한 주택 지하실에 적막이 빠르게 감돌았다.
방음 장치가 잘된다는 증거.
올리버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와 송장인형-바토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차일드. 어때요? 사용할 수 있겠나요?”
“꺄으으으으……응!”
차일드가 새로운 송장인형-바토리에 적응하며 비틀비틀 두 다리를 디디고 일어섰다.
"다행이네요. 여성 송장인형은 처음이라 못 다루나 싶었는데. 그럼, 바로 적응 훈련 들어가도록 할까요? 이것저것 실험해 볼 게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