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해결사 데이브 (1) >
“째깍째깍 종말론에 대해 아십니까?”
올리버가 자신이 가장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애당초 이 질문을 하기 위해 마탑으로 복귀한 거였으니.
그런데, 올리버는 이상한 걸 목격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평정을 잃지 않던 멀린의 두 눈이 아주 찰나 흔들린 것.
책방 노인으로 위장했을 때도, 마텔 연구원들과 마주했을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의 두 눈이 말이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 올리버는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 제대로 본 것임을 직감했다.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은 멀린이 입을 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차 하면 아까 전 눈이 흔들린 것도 잊을 정도였다.
"째깍째깍 종말론……. 심판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건가?”
이완 브렘너의 이야기를 떠올린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길 시계가 움직인다는 것은 세상이 악으로 가득해 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모두 종말 시킨다는 거였기에. 그러니 심판도 맞는 말일 수 있었다.
"정식 명칭이 심판의 종말론입니까?”
멀린이 고개를 저었다.
"정식 명칭 따위는 존재하지 않네. 아니,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몰라.”
올리버가 놀라며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멀린의 감정은 마력으로 둘러싼 벽에 가로막혀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째 많이 놀란 눈치군. 내가 정확히 모르는 게 신기한가?”
올리버는 순간 이완에게서 들은 아카이브에 대해 입 밖에 낼 뻔했다.
천 년이 넘는 지식과 힘을 계승 받은 위대한 마법사.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지식을 전수받은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혀에 감돌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거기까지 말한다면 이완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으니……. 그럼,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았다.
“데이브?”
“아, 죄송합니다. 어르신.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신기하긴 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왠지 아실 줄 알았거든요.”
"어찌해 그리 생각하나?”
"어르신께서는 강하고, 마탑에서 위치가 높으며 공부도 아주 많이 하셨을 테니까요. 그래서 웬만한 건 다 아실 줄 알았습니다.”
"나도 한때 내가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아는 게 좀 많아지니, 깨닫게 되는 건 내 어리석음과 무능뿐이더군.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왠지 감정이 실린 대답.
올리버는 대답을 듣지 못한 것과 별개로 멀린의 반응에 흥미를 느꼈다.
"다만, 내가 아는 것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듣겠나?”
"말해주신다면 기꺼이요.”
"음….…. 일단, 자네가 물어본 심판의 종말론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야. 그 뿌리가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수백 년도 더 됐다고 하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지. 시간은 그저 비유일 뿐이야.”
"꽤나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초대 아카이브 때부터 있었던 이야기라서…. 일종의 신화나 옛날이야기, 괴담, 동화 같은 거라 할 수 있지. 때문에 사이비 종교나, 종말론자 등 여기저기서 각색해 쓰기도 하지. 그래서 원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질도 심하고.”
"그렇습니까?”
"그래, 심지어 몇몇 흑마법사와 파테르교의 한 종파에서도 이 이야기를 가져다 쓰고 있어.”
“그건……. 놀랍네요.”
올리버가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정반대라 할 수 있는 둘이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꽤 흥미로웠다.
"원래 싸구려들은 오래된 권위를 훔쳐 와 분수에 맞지 않게 몸에 두르려고 하는 법이거든.”
비웃음이 담긴 멀린의 말.
뭔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지만, 멀린의 감정을 볼 수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괜찮으시다면, 흑마법사와 파테르교에서 어떻게 쓰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멀린이 올리버를 빤히 봤다. 왜 묻는지 물어보려나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흔쾌히 대답해줬다.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찼을 때, 악마의 왕자가 지옥의 문을 열고 지상의 위선자들에게 벌을 내리며 새로운 시대를 연다고 해석하지.”
올리버의 머리에 퍼펫이 지나갔다.
“파테르교에서는 어떻죠?”
"그 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거룩한 천사의 아들이 스스로를 희생해 악으로부터 인간들을 구한다고 주장하지.”
아까 전에도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한층 더 기묘했다.
정반대의 존재라 할 수 있는 흑마법사와 파테르교가 같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모자라 이토록 합이 잘 맞는다는 게.
마치, 하나의 조각이 둘로 나뉜 느낌이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짜 맞춘 것처럼.
올리버가 이러한 생각을 이야기하자 멀린은 웃을 뿐이었다.
"원래 세상사 자체가 기묘하지. 그래서 더 재밌는 거고.”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혹시 그 종말론의 원본은 아십니까?”
멀린이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종말론의 진짜 이름을 모르니 원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애당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다만,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종말론에서 파생된 다른 이야기를 기록해둔 게 몇 개 있지, 관심 있나?”
"아, 물론 관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선대 아카이브 중에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몇몇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물려받았지. 원한다면 찾아봐 주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네.”
멀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조건을 내밀었다. 올리버는 무엇인지 물었다.
"혹시, 자네도 이에 관해 알게 되는 이야기가 있으면 나와 공유해줄 수 있겠나? 선대 아카이브의 연구를 계승하는 게 내 일이기도 해서."
“예, 괜찮을 거 같습니다. 저도 어르신께 도움을 요청할 거 같으니까요.”
올리버가 동의하자마자 멀린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정식으로 약속하지. 새끼손가락 걸고."
***
올리버는 멀린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자신에게도 이익이었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말이다.
멀린은 약속을 하자마자 천천히 찾아보겠다고 말하더니, 왔던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뭐 나쁘진 않았다.
멀린이 사라지고 얼마 안 돼 수업을 마친 케빈이 왔으니 말이다.
케빈은 오자마자 올리버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더니, 멀린처럼 별문제가 없다며 만족한 다음, 올리버의 이야기를 마저 들은 후, 혹시 모를 마탑이나, 타 학파의 질문 혹은 추궁에 대비했다.
일하고 다녀온 사람에게 이러는 게 좀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올리버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그냥 열심히 하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날 때까지 말이다.
덕분에 고생은 했지만, 올리버는 해당 문제를 빨리 마무리 지었을 뿐 아니라, 짧은 휴가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 큰일을 했으면 회복 차원에서 휴가를 가지는 것도 이상하진 않겠지. 오히려 멀쩡하게 다시 나오는 게 눈에 띄어….. 한 며칠 쉬고 와. 난 그사이 이 일 정리해 보도록 할 테니.’
케빈의 말은 진심이었고, 올리버는 그 제안을 기꺼이 따랐다.
멀린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도 했으니, 한동안 마탑에 볼일은 없었고, 올리버도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래서 올리버는 키메라 학파에서 획득한 증거(저장 기기)를 케빈에게 넘긴 다음 정식으로 휴가를 낸 뒤, 집으로 돌아와 하루 푹 쉬며 체력을 회복한 다음 그동안 밀린 일을 마무리했다.
가령, 재료(시체) 손질 같은 거 말이다.
“..…후우, 힘드네요.”
란다 중상층 거주지. 그중에서도 꽤 괜찮은 L구역의 한 주택.
그곳 지하실에서 올리버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동안 모아 놓기만 하고 가공처리 하지 않은 시체 이십여 구와 근래 확보한 여성 흑마법사 시체 여덟 구, 바토리의 시체 등. 서른 구가 넘는 시체를 한꺼번에 가공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꽤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주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차일드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여러분은 괜찮나요?”
“꺄흐흥……. 힘들다!”
“푸쉭-! 푸쉭-!”
방부액에서 시체를 3번 담갔다가 빼고, 살을 갈라 뼈에 코팅액을 바르는 등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을 맡은 ‘송장인형-도우미1’과 ‘도우미2 파커’가 제각기 대답했다.
뒤이어 가공처리 된 시체를 갈고리에 걸어 천장에 설치된 레일에 따라 정리하던 ‘넝마’와 정리된 시체에 도장을 찍고, 재료 품목을 작성하던 ‘던칸’도 대답했다.
"따다닥-! 따다닥-!”
"......."
이 둘은 전투가 전문이었지만, 일손이 아쉬운 관계로 물건을 옮기고, 재료에 도장을 찍는 등, 단순 업무를 맡겨봤다.
다행히 생각 이상으로 일을 잘해줬다.
덕분에 처음 해보는 두 자릿수 시체가공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왜 송장인형을 만들 때 인력을 확보하라는 건지 새삼 깨달았다. 있고 없고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빨리 끝났네요. 감사합니다.”
“꺄흐홍……. 끝났다!!”
“푸쉭-! 푸쉭-! 푸쉭-!”
"따닥-! 따닥-! 따다닥!!”
"........"
차일드들 역시 일이 끝난 게 기쁜지 제각기 대답했다.
올리버는 곧바로 약속한 보상을 주기로 했다.
거대 플라스크에 담긴 대량의 감정과 생명력을 한데 섞어 차일드에게 제공하는 것.
차일드가 기뻐하는 건 먹는 것밖에 없었으니.
'최소한 아직까지는…….'
올리버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감정과 생명력을 섞었고, 차일드는 배가 고팠는지 입을 쩌억 벌려 감정과 생명력을 뒤섞은 혼합물을 빠르게 빨아먹었다.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빠르게 줄어드는 감정과 생명력의 혼합물.
올리버는 그사이 가공을 마친 재료들을 살펴봤다.
다들 상태가 좋았으며, 도장도 맞게 찍혀 있었다.
특기나 특성이 없는 일반 시체는 C도장,
평범한 특기나 특성이 있는 시체는 B도장,
상당한 특기나 특성이 있는 시체는 A도장 이런 식으로 말이다.
현재, 올리버가 보유한 시체는 대부분 C였지만, 기쁘게도 마탑 출장 덕분에 좋은 시체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A급 시체인 여성 흑마법사들과 S급 시체인 바토리가 그런 경우였다.
올리버는 여성 흑마법사와 바토리의 시체를 특히 주의 깊게 봤다.
여성 흑마법사는 제압하는 과정 올리버가 전부 머리를 터트렸기에 하나 같이 목 윗부분이 없었고, 바토리의 시체는 사지와 모가지가 잘려져 있었다.
아마, 기능 저하는 피하기 힘들 터였다. 송장인형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시체의 상태와 손상 정도였으니.
‘아깝네..….'
올리버가 여성 흑마법사와 바토리의 시체를 보며 생각했다.
허나, 동시에 올리버는 최대한 기능을 살리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상태가 안 좋긴 했지만, 이만한 재료를 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최대한 방법을 강구해야 마땅했다.
‘특히, 한꺼번에 움직일 방법을 연구해봐야겠네……. 송장인형이 아무리 많아도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양이 한정되면 의미가 없으니까.'
올리버는 차일드를 더 늘려볼까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차일드의 유지비를 생각하면 함부로 늘리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관리하기도 어려웠고. 지금이 딱 좋았다.
그러자 올리버의 시선은 바토리의 시체에 고정됐다.
갈고리에 걸린 사지(四版)와 머리가 없는 몸뚱이를, 그리고 그 옆에 매달린 몸뚱이 없는 사지(四版)와 머리를.
‘역시, 바토리 님을 써야 하나. 조작계열에도 조예가 깊은 거 같으니. 잘하면 송장인형을 컨트롤해주는 송장인형이 될 수 있을지도......'
키메라 연구소에서 본 반송장 좀비와 그녀의 딸들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뭐, 그게 안 된다 해도 크게 아까울 건 아니지만.’
올리버가 품에서 빨간색 수첩을 꺼냈다.
바토리에게서 노획한 수첩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고객명단인 거 같았다.
혈마법을 바탕으로 만든 피의 영약 고객들 말이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다면 십중팔구 맞을 거야….. 근데 그걸 왜 자기가 들고 다니는 거지? 중요한 거 아닌가?’
잠시 생각했지만, 올리버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혈마법 약을 만들 수 있는 바토리의 시체와 고객명단이 자신에게 있다는 거였으니.
올리버는 자잘한 사실에는 신경 끄고 자신의 목적에만 관심 가지기로 했다.
올리버는 수첩을 품 안에 도로 넣으며, 먹보 주머니가 담긴 가죽 케이스를 챙겼다.
그런 다음 식사를 마친 차일드들을 돌아봤다.
"슬슬 외출 준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