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출장 복귀 (2) >
케빈이 먼저 요구한 것은 픽션이었다.
당장 마탑에 보고해야 할 내용이 중요하였기 때문.
올리버는 케빈의 제안에 따라 윌레스와 짜 맞춘 내용부터 이야기했다.
목적지인 마운틴 페이스로 가기 전 어떻게 ‘해결사 윌’을 만났는지, 어떻게 마운틴 페이스로 올라갔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조사했는지, 가장 중요한 키메라 연구소의 일까지 전부 말이다.
대부분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색한 부분 없이 자연스러웠고, 케빈 역시 별문제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바토리라고?”
설명을 듣다 말고 케빈이 물었다.
"예, 아십니까?”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름은 들어봤지. 종군마법사 시절에.”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종군마법사는 이름 그대로 군에 소속된 마법사. 관련 분야는 전쟁, 전투일 줄만 알았는데.
케빈이 그 생각을 읽었는지 설명하듯 덧붙였다.
"종군마법사는 때때로 일반 경찰력만으로 감당이 안 되는 범죄자를 잡는데도 동원되거든. 가령, 고위험등급 범죄자와 같은.”
고위험등급 범죄자. 전 세계에서 악으로 규정하는 최악의 범죄자들을 의미했다.
영생의 퍼핏. 인육 요리사, 영원한 아이 팬, 피리 부는 사나이가 대표적 예였고.
그들을 떠올리자 올리버는 곧바로 납득했다. 일반 경찰력만으로는 잡기 힘든 존재들이었으니, 종군마법사가 동원돼도 충분히 말이 됐다.
"그럼, 바토리 님도 고위험등급 범죄자셨습니까?”
"내가 봤을 때 기준으로는 그 아래 등급인 위험등급 범죄자였지.”
"위험등급요……. 기준이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글쎄, 그런 걸 나누는 건 내 일이 아니라서 몰라. 뭣보다 바토리와 그녀의 패밀리는 대륙 중앙에서 활동하니 유심히 안 살펴봤고 말하고 나니까 이상하네. 왜 갑자기 대륙에서 활동하는 흑마법사가 바다 건너, 그것도 마운틴 페이스로 온 거지?”
케빈이 대답을 요구하듯 올리버를 봤다.
"그건 픽션으로 이야기해 드릴까요? 아니면, 논픽션으로 해 드릴까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케빈이 입을 열었다.
"논픽션으로 부탁하지.”
케빈의 요구에 올리버는 키메라 연구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해줬다.
생명학파와 바토리 패밀리의 야합, 그리고 습격하게 된 이유를 말이다.
설명을 다 들은 케빈은 놀라면서도 납득했다.
"왜 생명학파에서 그 난리를 떨었는지 알겠군. 흑마법사에게 연구소가 털려 자존심 상한 것 이상이구만.”
올리버가 마탑으로 오자마자 자신을 찾으러 온 생명학파 마법사와 자길 보며 웅성이는 학생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교수님. 저도 질문드리고 싶은데, 제가 일을 다녀온 사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생명학파 마법사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뭔가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요.”
케빈이 올리버의 질문을 듣고는 다소 어이없다는 감정을 빛냈다.
"글쎄……. 네가 일을 끝마치고 복귀하는 사이 각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자기네 학파에 송신했거든. 나도 그걸로 들었고."
"그렇군요. 그런데요?”
“..…구두(口頭)로 보낸 거라 조금씩 이야기가 달랐지만. 큰 줄기는 같았어. 웬 흑마법사가 생명학파 연구소를 습격하고 한 달 가까이 숨어 위장했고, 너랑 네가 고용한 해결사가 단둘이서 해결했다고 말이야.”
"예, 사실이네요…..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뭔 그래서야.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건데."
케빈이 정색하며 말했다.
"제아무리 악명이 높다 해도 마탑은 기본적으로 흑마법사를 우습게 보는 성향이 있어. 그런데, 그런 흑마법사가 생명학파 산하의 연구소를 습격해 점령한 것도 모자라, 한 달 가까이 위장해 있었지. 생명학파와 마탑도 그걸 한 달 가까이 몰랐고 말이야.”
“생가죽을 뒤집어써 지문까지 구현하고, 피로 기억을 읽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게 대단하지 않다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바토리 님은 충분히 대단하죠.”
"맞아, 대단했지. 그리고 넌 그 대단한 흑마법사를 마탑의 도움 없이 해결사하고만 해결했고. 이건 큰 공이야. 여차했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마탑의 명예가 실추됐을지도 모르고.”
“아, 네. 그렇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케빈은 무덤덤한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며 관찰했다.
참으로 기묘한 녀석이었다.
뭐랄까. 남에겐 잘 관심을 가지고, 평가도 후한 것에 비해, 자기 자신에겐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했다.
자신의 재능과 공적에 무감각한 것이 그 일례였고.
마탑에서 튀어 보이려고 이렇게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놈들은 봤지만, 올리버는 그게 아닌 진짜였다. 그 어떠한 가식도 의도도 없는 진짜.
아마, 자신이 공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본인의 공적에 대해 끝까지 인지하지 못했을 터였다.
과연 저걸 단순히 성격이 이상하다는 선에서 설명할 수 있는 건지 케빈은 의문을 가졌다.
“....이게 혹시 문제가 될까요?”
"뭐?"
“마탑에서 제가 눈에 띄는 건 그렇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특히 저는요.”
"그렇긴 하지.”
"조용히 있거나, 휴가를 잠시 다녀오면 조용해질까요?”
"그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생명학파 쪽에서 계속 네게 시선을 보낼 거거든. 자기들 치부를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실제로 넌 지금 알기도 하고.”
"그럼, 어떡하면 좋죠?”
"그건 이제부터 찬찬히 생각해봐야지. 아마, 협조 공문을 써서 널 데려가 이것저것 심문할 텐데. 네가 쓸 보고서를 토대로 잘 준비해야지. 나랑 같이 준비하지.”
"아, 감사합니다. 친절하시군요.”
“어차피 내 일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바토리는 어떻게 됐지?”
끝부분을 못 들은 케빈이 질문했다.
"보고서에는 해결사분에게 상처를 입고 도주한 것으로 보고할 생각입니다. 피 웅덩이를 통해서요.”
"......논픽션은 어떻게 됐는데?”
"제가 죽였습니다.”
“……죽였다고?”
“예.”
“인육 요리사와 적대하는 위험등급 범죄자를?”
"예……. 지금 사지와 머리가 잘린 채 마법 가방 안에 있습니다. 보여드릴까요?”
혹시, 못 믿나 싶어 올리버가 배려 차원에서 말했다. 케빈은 손을 들어 거절했다.
"아냐, 됐어……. 근데, 어떻게 잡은 거지? 재생능력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감정으로 칼을 만들어서요? 베니까 죽으시더라고요?”
올리버의 짤막한 대답에 케빈의 미간은 더더욱 좁혀졌다.
설명을 들을수록 점점 현실과 동떨어져 이해하기 어려웠다.
케빈은 머리를 식힐 겸 물었다.
"다른 질문 하지. 별거 아니지만 꽤 중요한 건데, 네가 고용한 해결사는 정확히 어떤 사람이야? 생명학파가 아주 신경 쓰며 이에 대해 걸고 따질 수 있어. 그놈도 자기들 치부에 대해 알 수 있으니.”
“켈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해결사라고 합니다. 이름은 윌이고요.”
"그렇군……. 그럼, 진짜 정체는?”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 윌레스 씨입니다.”
“……뭐?”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 윌레스 씨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아, 안 말했구나.”
***
케빈의 교수 연구실 맞은편 직원실.
그곳에서 올리버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날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사건의 사안과 아직 케빈이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관계로 올리버는 퇴근하지 않고, 마운틴 페이스 실종 건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친절하게도 케빈이 수업에 들어가기 전 보고서 양식과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알려준 터라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써야 할 글자 수가 많아 시간이 좀 걸린다 뿐, 나머지는 쉬웠다.
그저 양식에 맞춰 윌레스와 짜 맞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됐으니 말이다.
“……이걸로, 끝.”
깔끔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글씨체로 보고서 작성을 끝마친 올리버가 말했다.
보고서는 총 두 가지.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한 요약 보고서와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상세 보고서로 나뉘었다.
두 보고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생명학파 산하 키메라 연구소. 즉, 바토리 패밀리를 조우한 내용의 차이로, 보고서의 두께를 나눈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상세 보고서에는 바토리 패밀리가 생명학파를 습격한 추정 사유와 어떻게 학파와 마탑을 속였는지.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 및 전투 양상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올리버는 케빈에게 보고서를 넘기기 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곧 수업에 돌아올 케빈에게 보고서 검사를 맡은 뒤, 이제 나머지 이야기만 이어서 하면 일단 급한 일은 끝나는 셈이었다.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 중 하나인 윌레스와 어찌 팀을 이루게 됐으며, 그를 어찌 믿을 수 있는지 말이다.
‘하긴, 윌레스 씨가 만약에 이번 일을 소문내면 마탑의 명예는 실추되고, 나는 물론, 날 대리로 보낸 케빈 교수님도 난감한 처지에 처할 테니…….'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분명 큰일이겠지만, 올리버는 왠지 그렇게 걱정되진 않았다.
윌레스가 그 일은 끝까지 함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 마음이란 게 유동적이라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거긴 했지만, 왠지 윌레스라면 쉬이 약속을 어길 거 같진 않았다.
"뭐, 어기는 것도 재밌을 거 같지만.”
올리버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 작성한 보고서를 책상 한쪽으로 조심히 치우고, 자기 수첩을 꺼냈다.
수첩은 마탑에서 일할 때부터 챙긴 것으로, 교수 개인 직원이 해야 할 업무라던가, 케빈의 스케줄 등이 작성되어 있었다.
간혹, 올리버의 개인 일정을 뒤쪽에 쓰기도 했고. 바로, 지금처럼.
“음……. 해야 할 일이 많구나.”
올리버가 수첩에 서걱서걱 해야 할 일을 적으며 중얼거렸다.
[바토리에게서 노획한 수첩 정체 알아내기]
[생명학파의 개량인간 연구에 대해 알아보기]
[바토리의 혈액을 대량으로 흡수한 고기 해머. 원제작자 이완 브렘너에게 보여주기]
[바토리와 여성 흑마법사들 송장 인형 제작] 등등.
"그리고 째깍째깍 종말론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네......."
올리버가 수첩 가장 아랫부분에 [째깍째깍 종말론]이라고 적었다.
이완 브렘너에게 듣게 된 오래된 종말론.
원래 이것에 관해 묻기 위해 휴가를 끝내고 마탑에 복귀한 거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원래 목표하던 것에 비해 엄청 빙 돌아온 느낌. 뭐, 그렇다고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재밌는 걸 많이 알게 됐으니……. 케빈 교수님과 일 마무리한 후 어르신과 연락할 방법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네.”
올리버가 혼잣말한 다음 수첩을 그대로 고이 접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다 적으니 이제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케빈을 돕든가 다른 수업을 청강하러 갈 테지만, 케빈이 가급적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자제하라고 했기에 현재로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올리버는 합리적으로 직원실을 청소하기로 했다.
한 며칠 자리를 비우니 먼지가 이곳저곳에 쌓였기에.
올리버는 마법 가방에서 블랙마켓에서 산 시체청소용 청소도구를 꺼냈다. 그때 타이밍 좋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으로 문 너머를 봤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야렐리 씨?”
올리버가 문을 열며 그 앞에 서 있는 여성에게 인사했다.
은빛 곱슬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쓴 야렐리는 약간 불편한 감정을 지닌 채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논 씨.”
"예, 안녕하세요.”
"......."
"......."
올리버와 야렐리는 서로 침묵했고,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교수님을 찾아오신 거라면 지금 안 계시는데, 용무가 있으시면 말씀 남겨주시겠습니까? 그럼, 제가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올리버가 품 안에 수첩과 펜을 꺼냈다. 야렐리는 망설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볼 일은 교수님이 아니라 당신께 있어서 왔어요.”
“저요?”
“예,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사과라니요?”
"제가 저번에 잘도 모르면서 너무 막말한 것 같거든요.”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어……. 죄송하지만 무슨 막말을 하셨죠?”
“…도서관에서 일 똑바로 하라 한 거요. 젊어서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늙어서 몸 누일 공간조차 얻을 수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죠."
아……. 기억났다.
"아뇨, 맞는 말씀이신데요. 일을 제대로 해야지요.”
"아니요. 죄송해요. 제가 제논 씨를 오해한 것 같아요. 마운틴 페이스의 실종 건이 제법 심각했다고 했던데, 혼자서 해결하셨다고요?”
“정확히는 제가 고용한 해결사분께서 혼자 다 하신 겁니다.”
“그리고 열차 건도요.”
"열차요?”
"예, 열차를 습격하던 노상강도들을 제압해 사람들을 도와드렸다고 들었습니다. 아닌가요?”
올리버가 잠시 생각했다.
“음….. 아, 예. 어쩌다 보니 그랬네요.”
"대단하세요. 덕분에 마탑의 명예가 드높아졌어요. 마탑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감사드려요.”
야렐리는 사과와 감사 인사를 했고, 그게 전부였다. 정말 사과와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였다.
예상하지 못한 거라 올리버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 감사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한 거라서요……. 하실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요.”
"네. 이게 끝입니다.”
“네, 그렇군요……. 사실 사과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과해주셨으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 딱히 신경 쓰지 않으니 마음에 안 두셔도 됩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올리버는 잘 가라고 인사하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고, 야렐리 역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남녀 대화 중 가장 어색한 대화였네.”
문이 닫히자마자 올리버 외에는 누구도 없어야 할 직원실 내부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귀에 익은 목소리.
올리버가 고개를 돌리자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를 읽고 있는 멀린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