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사후처리 (1) >
“꾸루루루루룩..…. 꾸투루루룩. 꾸룩."
빅마우스는 이빨 지퍼가 달린 입으로 마더 바토리를 한 조각씩 삼켰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 두 번째는 오른쪽 다리. 그다음은 양팔을 삼켰다.
마치, 두꺼비가 커다란 먹이를 삼키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여기 머리요.”
“구룩."
올리버가 바토리의 머리를 넘겼고, 빅마우스는 그대로 사탕을 먹듯 호록 삼켰다.
"자, 이제 몸통만..…응?”
올리버와의 바토리의 몸통을 들자 넝마가 된 드레스 사이에서 뭔가 흘러 떨어진 것을 포착했다.
빨간색 수첩으로, 보호 마법이 걸려 있었다.
“빅마우스. 이것 좀 삼켜주시겠어요?”
올리버가 빨간 수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토리의 몸통을 빅마우스에게 넘겼다.
빅마우스는 돋아난 팔로 사지와 머리가 없는 몸통을 거위처럼 꾸역꾸역 삼켰고, 그사이 올리버는 수첩에 손을 가져다 댔다.
파직一!
손끝이 닿지도 않았건만 가까워지니 수첩에 심어진 핏빛 마력이 반응하며 올리버의 손을 튕겨냈다.
"흠......"
올리버가 손을 흔들어 통증을 털어낸 다음 몸에 저장된 마력을 끌어올려 수첩의 방어 마법을 잠식하려 했다.
꽤나 완성도 높은 방어 마법은 거부반응과 함께 스파크를 일으키며 수첩을 보호했으나, 계속해 잠식하자 올리버는 이내 술식의 구조와 패턴을 파악했다.
자물쇠처럼 풀리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방어 마법.
올리 버는 수첩을 들어 안을 살펴봤다.
파라라랑一
수첩 안에는 붉은색 잉크로 왕국어를 포함한 온갖 외국어가 뒤섞여 있었다.
올리버는 얼마 가지 않아 이것이 어떠한 명단임을 알아차렸다.
사람의 이름과 두 가지의 날짜로 조합된 명단 말이다.
[조세핀 텟벗 • 22/2/21 • 22/12/1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무슨 명단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방어 마법 등을 통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직감한 올리버는 계속해 고객명단을 살펴봤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부분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 이분이 아직도 살아 계시네?”
***
올리버는 피웅덩이를 이용해 키메라 연구소 가장 아래층에서 다시 위로 올라왔다.
선홍빛 고기 해머와 빅마우스는 차분히 정리해 마법 가방에 넣은 상태라, 올라올 땐 혼자 올라왔다.
"그럼, 이제 슬슬-”
“-슬슬 뭘 할 거지?”
올리버가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는 초췌해진 얼굴의 윌레스가 장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서 있었다.
올리버가 그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일어나셨군요.”
"덕분에.”
윌레스가 포션으로 다급히 봉합한 몸통의 상처와 빈 포션 병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올리버가 윌레스를 포털로 던질 때 같이 챙겨준 것으로 다행히 스스로 응급처치한 것 같았다.
“포션은 효과가 있었습니까?”
“어, 네가 뿌렸을 때랑 다르게, 상처의 고통이 사라진 후 다시 뿌리자 회복됐어.”
올리버가 뿌렸을 때라면 바토리를 처음 만났을 때일 거고, 고통이 사라진 후라면 바토리가 죽은 후일 것이다.
"그때 깨어계셨습니까?”
"아주 약간은. 그래서 대층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아.....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윌레스가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극히 옳은 말이었다.
뭐가 됐건, 올리버 덕분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으니.
만약, 올리버가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거나, 보온 마법, 포털, 포션 등 하나만 하지 않았더라고 윌레스는 기력이 쇠해 죽거나, 전투에 휘말려 죽었을 게 뻔했다.
윌레스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고. 그래서 할 말이 많음에도 이렇게 일어나 올리버에게 감사 인사부터 한 것이었다.
"오, 기쁘네요. 윌레스 씨가 제게 감사 인사를 해주시다니요.”
“내 성격이 좋지 않은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은혜까지 모르는 놈은 아니야….. 잠시 좀 앉아도 될까?”
윌레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물었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은 윌레스.
그런 윌레스에게 다가가 올리버가 포션을 하나 내밀었다.
“....넌?"
윌레스가 자신 만큼은 아니지만 다친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제가 마실 것도 하나 있습니다.”
올리버가 품 안에서 새 회복 포션을 보이자 윌레스는 포션을 들이켰다.
부상과 피해가 심해 한 병 더 마셨음에도 기력이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상태는 되었다.
"후우..…"
윌레스가 한숨을 쉰 다음 주변을 살펴봤다. 포격이라도 맞은 듯 주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해치웠나?”
많은 단어가 생략된 질문. 그러나 방금까지 바토리와 싸운 올리버는 얼추 그 뜻을 이해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대단하군.”
담백하지만, 그만큼 진심을 담아 윌레스가 말했다.
바토리에게 당해봐서 그 여자가 얼마나 강한지 알았으니.
죽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각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도 모자라 그녀 고유의 혈마법은 윌레스가 평생토록 수련한 화염 마법조차 무력화시킬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싸움은 결과가 전부.
윌레스는 눈앞의 흑마법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인정했다.
참으로 신기한 자였다.
불과 몇 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큼 강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처음 봤을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는 태도 말이다.
적자생존을 미덕으로 삼은 이 미친 세상에서 힘이 강해지면 사람의 태도와 성격도 순식간에 변하는데 말이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
“예? 아,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도움받은 입장상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날 도와준 이유가 뭐지?”
윌레스가 물었다. 솔직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자신이 죽는 게 데이브 입장에서 더 나을 텐데 말이다.
자신은 데이브가 신분을 숨기고 마탑에서 일한다는 걸 아는 거의 유일할 사람. 없는 게 훨씬 안전했다.
물론, 아까 전에는 타이밍과 상황상 협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뻗었을 때 적극적으로 살린 것은 데이브 입장상에서는 다소 말이 되지 않았다.
조용히 죽게 내버려 뒀으면 자기 비밀을 지키기 훨씬 수월했을 텐데.
"왜 살렸냐니….. 일단 같이 일하는 관계니까요?”
올리버의 고개를 갸웃대며 대답했다. 마치, 밥을 왜 먹고, 잠을 왜 자냐는 당연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과 같았다.
"아, 그리고 여쭤볼 것도 있고요.”
"여쭤볼 거?”
"예..…. 물어봐도 되나요?”
윌레스의 상태를 보고 참으려고 했던 올리버가 다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후우..…. 혹시, 술이나 담배 있나?”
"둘 다 있습니다.”
올리버가 마법 가방에서 술과 컵, 종류별 담배를 한갑씩 꺼냈다.
윌레스가 그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봤다.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다른 교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술이나 담배 등 기호 식품을 들고 다니면 사회생활 하기 원만하다고 해서요….. 시가도 있는 데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윌레스가 눈앞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존재를 보며 물었다.
괴물처럼 강한 녀석이 행동하는 건 꼭 소시민이었다. 물론, 어떨 때는 힘 이상으로 과감하게 행동을 할 때도 있었지만.
‘종군마법사를 혼자 막겠다고 한 것처럼…..’
올리버는 친절하게 윌레스에게 담배를 물려 마력으로 불을 붙여주고, 술을 따라 한 잔 줬다.
윌레스는 기쁘게 담배를 피우고, 술이 들이켰다.
“하아….. 살겠군. 물어볼 게 뭐지?”
올리버가 자연스럽게 윌레스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올리버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걸 의미했다.
“윌레스 씨가 바토리 님과 싸울 때 전 여기 여성 흑마법사 분들과 싸웠습니다.”
“..…전부 죽었겠군.”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뭐 어쩌다 보니까….”
“그렇다고 치고, 근데?"
"그때, 윌레스 씨의 화염 마법도 흉내 내 사용해봤습니다.”
윌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식을 뒤틀어 마력을 흡수하게끔 만든 자신의 화염은 만들기도 어렵고, 다루는 건 세 배로 어려운 마법인데 말이다.
그런데 올리버의 모습에는 화상 따위 없었다.
즉석에서 흉내 내내었어도 무리 없이 다뤘다는 증거.
불합리할 정도의 재능이 었건만, 너무 압도적이니 화조차 나지 않았다.
“대단하군.”
"대단한 건 윌레스 씨입니다. 사용해보고 나니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 거 같거든요. 그 술식을 만들고, 자유롭게 다루는데 말입니다….. 실로, 대단하십니다.”
올리버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그 진심은 윌레스에게 전해졌다.
하고자 한다면 마탑의 마스터 직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윌레스는 놀랍게도 자신보다 어린 애송이의 칭찬에 약간의 뿌듯한 마저 느꼈다.
"칭찬 고맙군.”
"전 그저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다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만큼 노력하셨는데, 왜 켈 자유독립군에 투신하셨는지요.”
평소라면 화가 날 법한 질문이었지만, 윌레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말이란, 때때로 사람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이해가 안 되나?”
“솔직히 잘 안 됩니다. 윌레스 씨를 모욕할 생각은 아니지만, 전 마탑의 교수님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조금이나마 봤습니다….. 켈 자유독립군 보다 더 편할 길이 있는데 왜 그러신 거죠?”
올리버는 부와 힘을 추구하는 란다의 모습과 신분을 숨기면서까지 고생하는 윌레스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며 질문했다.
윌레스는 그 말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정도 흑마법사면 어디든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왜 정체를 숨기며 그렇게 살지? 교수들 담배와 술을 준비하면서?”
"그건-”
“-네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런 게 아닌 거겠지. 돈이나 명예, 쾌락 같은 거.”
올리버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그거랑 비슷해.…. 평소였다면 왕국의 부당한 점령과 통치, 켈족이 받는 탄압과 착취, 그로 인한 우리 켈 자유독립군의 정당성에 대해 실컷 떠들겠지만, 관두도록 하지…. 내가 널 가르칠 수준은 아니니 말이야.”
"모자란 걸 가르쳐주고, 가르침 받는 데 수준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사양하지. 시간도 없거든.”
윌레스가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슬슬 날이 밝을 때였다.
곧 트럭이 곧 돌아올 거고, 어쩌면 근처 다른 연구실에서 사람을 보낼지도 몰랐다.
바토리와 꽤 요란하게 싸웠으니.
"받아.”
윌레스가 올리버에게 단검을 내밀었다.
열차에서 인질을 구해줄 때 썼던 단검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칼날에 체크무늬와 같은 독특한 무늬가 있었다.
"이건 뭐죠?”
"술이랑 담배값….. 이걸 가지고 켈 커뮤니티에 가면 도움을 받거나, 날 만날 수 있을 거야.”
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올리버였지만, 단검을 받아들였다. 오래됐지만, 좋은 물건임을 직감했다.
“역사책을 읽어. 아니면, 노스랜드 지역신문이나.”
윌레스가 대뜸 말했다.
"뭐라고요?”
"역사책이나, 노스랜드 지역신문을 읽으라고, 내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면….. 원래 이런 건 누가 이야기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찾아야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법이거든. 만약, 그때도 궁금하면 내가 대답해줄게.”
그저 대답을 회피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후우, 말하니까 다시 상처가 쑤시는군….. 이제 뭘 할거지?”
"원래는 윌레스 씨를 치료할까 했는데, 괜찮으신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다른 일?”
"예, 세계수에 접속해서 제가 싸우는 모습이 찍혔는지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세계수에도 접촉할 수 있나?"
“어쩌다 보니까요?”
"이제 놀랍지도 않군.”
윌레스가 고개를 젓고는 담배를 비벼 끄곤, 주변을 다시 살펴봤다.
두 번 봐도 폭격을 맞은 듯 연구실 내부는 엉망이었다.
“.…세계수를 조작해도 현장이 이 꼴이니 추궁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음…..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볼까 합니다.”
"시간이 없지 않나?”
올리버는 입을 다물었다. 아까 전 시간을 확인했고, 윌레스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혹시, 좋은 생각 있으신가요?”
“좀 억지인 방법이 있긴 있지.”
“오, 뭐죠?”
"일단, 세계수부터 손보고, 나한테 이야기 좀 해줘.”
"무엇을요?”
"바토리. 그 흡혈귀가 어떻게 이곳을 장악했고, 어떻게 싸웠는지, 그리고 네가 어떻게 이겼는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