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44화 (244/633)

< 244. 화해하고 싶다. (3) >

바토리 패밀리의 주인, 마더 바토리.

그녀의 본명은 에르제베트 바토리였다.

현재는 혈마법을 기반으로 인육 요리사와 적대관계를 가질 만큼 강력한 흑마법사였지만, 원래 그녀는 흑마법사가 아니었다.

믿기 어렵지만 엄연한 사실.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원래 마법사였다.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닌 대륙 중앙의 나름대로 명맥을 가진 마법사 가문의 후계자 말이다.

비록, 대륙 중앙이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재앙적 존재 탓에 그녀의 가문은 유명하지 않았지만,

낮은 명성과 별개로 바토리 가문은 지금으로 봐도 꽤나 선구안을 가진 가문이라 할 수 있었다.

서로 별개로 치부해 같이 논하는 것조차 하지 않던 마법과 흑마법의 연결성을 인지하고, 이 연결성을 정복했을 때 얻을 막대한 성과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으니.

비록, 그 과정에서 흑마법 지식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등 가문의 이미지는 나빠졌지만, 그들의 연구는 분명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만약 그녀의 가문이 순조롭게 연구를 계속해 성과를 냈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지도 몰랐고, 또 어쩌면 ‘갈로스’ 혹은 ‘란다’로 이주해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육 요리사와 그런 인육 요리사를 사랑한 바토리 때문에 말이다.

인육 요리사가 어떻게 접근한 건지, 바토리가 어떻게 인육 요리사를 사랑하게 된 건지 이제 당사자 외에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토리는 인육 요리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속았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문마저 불명예스럽게 몰락했다는 거였다.

정작 당사자인 바토리는 살아남았지만.

그렇기에 바토리는 잊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때, 느꼈던 분노를.

그때, 느꼈던 굴욕을.

그때, 느꼈던 슬픔을.

그때, 느꼈던 배신감을

바토리는 간신히 지킨 가문의 지식 일부를 이용해 죽어가던 자신의 육신을 기적적으로 되살렸다.

그리고 오직 복수 하나만을 꿈꾸며 마법사란 신분마저 버리고 뒷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인간의 길을 버리고 악마와도 거래하면서까지 말이다.

몹시도 외롭고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바토리는 절대 겁내지 않았다. 복수를 결심한 이후부터는 두려운 것은 없었기에.

..…분명, 그랬다.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바토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뭔지 다시 떠올랐다

“다, 다가오지 마!!”

사지(四版)가 잘린 바토리가 벌레처럼 기어가며 소리쳤다.

보기 추했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팔다리를 다시 붙여보려 했지만, 역시나 붙지 않았다.

데이브가 휘두른 칼은 저주라도 건 듯 어떠한 재생도 회복도 허락하지 않았다.

원인을 분석하려 해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저 녀석이 살아있는 한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패닉에 빠진 바토리는 데이브를 올려봤다.

스무 살 남짓의, 이제야 갓 이름을 알린 애송이를 말이다.

“바토리 님. 사지를 자른 뒤.…. 뭐죠?”

바토리는 그 모습에서 공포를 느꼈으며, 뒤이어 크나큰 굴욕감을 맛봤다.

마치,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와 분노, 증오, 노력이 전부 부정당한 듯했기에.

그렇기에 바토리는 애써 공포를 누르며 눈앞의 존재를 죽이려 했다.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기 위해.

"크..…, 크아아앗!! 죽어라!!”

비록, 팔다리가 잘렸지만, 아직 피를 조종할 수 있었다.

바토리의 의지에 반응해 주변에 있던 혈액이 움직이며 하나의 거대한 칼날로 뭉쳐 데이브에게 날아갔고, 데이브는 이를 상대하기 위해 손에 쥔 검은빛 칼을 들어 올렸다.

그는 칼을 다뤄본 적이 없는지 그저 멀뚱히 서서 휘두를 뿐이었지만, 놀랍게도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피의 칼날을 가볍게 베어버렸다.

너무나도 가볍게 말이다.

"......."

힘없이 무너지는 피의 칼날.

그 모습을 보며 바토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었기에.

고작, 얼마 안 되는 감정 한 줌과 술사의 아주 미세한 ‘짜증’이 가미된 초라한 칼에 자신이 평생토록 연구한 혈마법이 무력화되다니….. 이건 옳지 못했다. 너무나도 부조리하기 짝이 없었다.

“바토리 님?”

데이브가 다시 자신을 불렀고, 바토리는 그를 올려다봤다.

공포 탓인지, 그의 형상이 일그러지며, 사람과 닮은 무언가로 보였다.

"사지를 자른 뒤….. 뭐죠?”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악!!!"

공포에 떠밀린 바토리는 괴성을 질렀고, 이에 피가 반응하며 구멍 난 천장과 벽틈을 통해 대령의 혈액이 쏟아져 데이브에게 공격을 가했다.

수십 개의 칼날과 창, 총알, 폭탄, 화염, 냉기, 전격, 독으로 변해서 말이다.

데이브는 그때마다 어깨, 팔꿈치, 손목만 이용해 칼을 가볍게 휘둘렀고, 그때마다 피로 만들어진 공격은 허무하게 무력화됐다.

칼날은 허물어지며, 창은 부러지고, 총알, 폭탄은 분해되며, 화염과 냉기, 전격, 독은 침묵하였다.

인정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고작, 천재라는, 그런 흔해 빠진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눈앞에 도래한 압도적인 불합리함에 바토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얼마 되지 않는 혈액을 이용해 '피풍선’을 소환했다.

대량의 피를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자신의 피조물을.

거대한 종기처럼 생긴 피풍선은 부르르르르르- 떨더니 팍! 하고 터졌고, 동시에 대량의 혈액을 쏟아냈다.

화악! 촤!!

바토리는 그 혈액을 매개로 다시 ‘피풍선’을 소환, 위와 같은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해당 공간이 가득 잠길 수준의 피를 소환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저 칼을 피해 유효타를 줄 수 있을지도……

“.....어?"

바토리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소리 냈다.

분명, 사방에서 창칼을 만들어 눈앞의 적을 꿰뚫어 죽이려고 하였는데, 피가 반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아냐……. 반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빼앗긴 거야!’

바토리가 잠잠한 피바다에서 데이브로 시선을 올렸다.

데이브의 손안에서 작은 핏방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거군요.”

작지만 섬세하게 움직이는 핏방울을 보고 바토리는 다시 말을 잃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나, 뇌가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예? 아….. 제 피도 섞였거든요.”

데이브가 자신의 상처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여줬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해봤는데.…. 되네요?”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이브. 바토리와 데이브 사이가 홍해(紅海)처럼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데이브….. 아니, 정체 모를 존재에 바토리가 멍하니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압도적인 공포감에 절대 잊지 않기로 맹세했던, 분노, 굴욕, 슬픔, 배신감은 점차 희미해지고, 눈앞의 존재에게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 욕구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화, 화해를一”

ㅡ촥.

데이브가 팔을 휘둘렀고, 바토리의 시선은 갑자기 옆으로 기우뚱 기울더니 옆으로 데구르르 굴렀다.

그와 함께 시선이 낮아지며, 바토리는 자신의 몸을 볼 수 있었다.

머리 없는 자신의 몸을 말이다.

***

“.........음."

바토리의 목을 베고 10초쯤 지났을 때쯤, 올리버는 자기 턱을 긁적이며 침음성을 냈다.

막상 베고 나니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많았는데 말이다.

혈마법이나, 인육 요리사나, 혹은, 생명학파나…..

"아니면 시계 종말론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고..…. 흐음…."

올리버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왜 이걸 생각하지 못한 건지….. 스스로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지막 공격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올리버는 후회를 잠시 미루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올리버는 우선 주변을 둘러봤다. 놓친 쿼터스태프를 찾기 위해.

다행히 쿼터스태프는 근처에 있었고,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회수하자마자 바닥에 고인 대량의 혈액에서 감정과 마력을 추출한 뒤 피웅덩이를 사용, 연구실 위쪽으로 올라갔다.

올라간 곳은 처음 피웅덩이를 통해 갔던 비밀 실험장으로, 올리버는 허리춤에 찬 마법 가방을 열어 커다란 가죽 케이스를 꺼냈다.

빅마우스가 든 가죽 케이스로, 올리버는 접힌 채 보관되어 있던 빅마우스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빅마우스는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며, 여러 개의 눈을 뒤룩뒤룩 뜨고, 두꺼비와 같은 소리를 내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꾸룩? 꾸루루룩?"

"새집이 아니라, 잠시 출장 나온 겁니다. 시간이 없어 그러는데 바로 일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할 일이 많은 관계로 올리버는 지갑에서 10만 란다권를 꺼냈다.

이런 고액지폐는 좀처럼 볼일이 없는 빅마우스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만 란다권을 먹은 빅마우스는 올리버의 지시에 따라 비밀 실험장에 있는 시체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머리가 으깨진 바토리 패밀리의 여성 흑마법사와 소머리를 한 개량인간-C03, 그 외의 여러 실험체를 말이다.

그나마 쓸 수 있는 여성 흑마법사들은 열 구가 채 안 됐고, 생명학파의 실험체도 그 수가 십여 구밖에 되지 않아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마치, 쓸모가 없는 실험체만 버리고 놔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 챙겨야지.”

올리버가 유비무환이란 생각으로 물건을 계속해 챙겼다.

그렇게 한참을 챙겼을 때쯤 빅마우스가 멈춰 서며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꾸르르르..…. 꾸르륵. 꾸륵."

배가 가득 차 이제는 많이 못 삼킨다고 빅마우스가 말했다.

빅마우스가 배가 가득 찼다는 말에 올리버가 살짝 놀랐으나, 생각해보니 그리 이상한 것은 또 아니었다.

해결사 일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노획물이 생길 때마다 빅마우스에게 삼키게 했으니 누적된 양이 상당할 터.

제아무리 빅마우스가 크고, 크기 대비 삼킬 수 있는 용량이 크다 해도 무한은 아니었다.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다 질문했다.

“혹시, 이 정도 크기의 병 열 개랑 시체 한 구만 더 삼킬 수 있을까요?”

“꾸르르르르......"

힘들다는 듯 고민하는 빅마우스. 올리버가 설득했다.

“10만 란다권 한 장 더 드릴게요.”

"꾸륵!”

빅마우스가 흔쾌히 허락했다.

***

푸확!

올리버가 빅마우스를 데리고 피웅덩이를 사용해 키메라 연구소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은 뒤 올리버는 어깨에 들쳐 맨 짐보따리를 마력을 이용해 허공에 띄운 뒤,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바토리의 혈액을 채워 넣었다.

순식간에 가득 채워진 혈액.

빅마우스는 사전에 명령 들었던 대로 피를 가득 채운 둥근 플라스크들을 삼킨 후, 무엇인가를 토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붕대를 두른 거대한 해머로, 과거 인육 요리사의 제자들과 싸운 후 노획한 물건이었다.

올리버가 해머를 두른 붕대를 풀자, 하얀 뼈를 토대로 선홍빛 살점이 붙은 해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오자 기분이 좋은지 선홍빛 해머는 굼실거렸고,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지렁이 같은 입술이 돋아났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해머는 돋아난 입술을 벌려 게걸스럽게 피냄새를 들이마셨고, 이윽고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냈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해머를 쥔 손을 타고 느껴졌다.

"마시고 싶습니까?”

굼실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선홍빛 해머. 올리버는 속삭였다.

“드시게 해드릴 테니까. 나중에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있나요?”

기꺼이 동의하는 선홍빛 해머.

올리버는 그대로 해머를 피바다 위에 던졌고, 선홍빛 해머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방랑자처럼 정신없이 피를 들이켰다.

끝없이 말이다.

그렇게 바닥을 가득 메운 피의 바다는 느리지만 천천히 줄어들었고, 올리버 역시 사지(四版)와 머리가 분리된 바토리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분도 챙겨야지.”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빅마우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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