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화해하고 싶다. (1) >
파강一!!
손가락을 까딱이며 날린 피의 칼날은 올리버의 톤파를 단숨에 잘라버렸다.
꽤 놀라웠다. 마력을 꽉꽉 집어넣어 강도를 최대로 높인 물건이었는데.
"....폴스(던칸)가 실망하겠군.”
올리버가 망가진 톤파를 바토리에게 던지며, 곧바로 품 안에서 쿼터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축소마법으로 작아진 쿼터스태프는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돌아오며 올리버는 평소의 전투 태세를 갖췄다.
"호......"
올리버의 빠른 무기 교체에 바토리가 관심을 보이며 다시 한번 피의 칼날을 날렸다.
이번엔 사람을 반 토막 낼 정도로 거대하게.
올리버는 쿼터스태프에 블랙 슈트를 두른 다음 그대로 피의 칼날을 쳐냈다.
칼날이 아닌 상대적으로 취약한 옆면을 노려서.
촤악一!
다행히 올리버의 판단은 통했다.
옆면을 때리자 칼날이 유리처럼 깨진 것이었다.
올리버는 그 기세를 몰아 몸이 아닌 블랙 슈트를 직접 조종해 아크로바틱하게 움직여 피의 칼날을 부수는 동시에 바토리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접근만 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인데,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건 어떨까?”
바토리의 의지에 따라 쿼터스태프에 부서진 칼날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순식간에 칼날 파편은 물방울로, 물방울은 다시 바늘로 변해 올리버를 향해 날아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후퇴하며, 그림자 촉수로 피 바늘을 막아냈지만, 다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블랙 슈트 덕분에 유효타가 들어오진 않았다는 정도.
‘그것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올리버가 손상된 블랙 슈트를 보며 생각했다.
그나마 피의 양이 적고, 블랙 슈트가 세 겹이나 되니까 막은 거였지, 조건이 조금만 안 맞았어도 뚫릴 게 확실했다.
‘그럼….’
"피를 조종할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거야. 내 피를 섞은 거라 사실상 내 몸이나 다름없거든.”
“.…생각을 읽으시는 겁니까?”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어. 흑마법에 재능 있는 녀석은 대개 내 흉내를 내려고 하거든. 건방지게 말이야.”
"아하….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할 것은 아니란다. 오만은 천재들의 권리이기도 하니. 그리고 난 그런 천재들이 싫어하지 않아. 내가 잘 이용하면 되는 거니.”
바토리는 여유롭게 말하며 다시 피로 칼날을 만들어 올리버를 공격했다.
이번엔 칼날의 크기를 줄이고 개수를 늘려, 더욱 피하기 어렵게 했다.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회피는 사실상 불가능.
그래서 올리버는 피하는 대신 반격하기로 했다.
[탐화(貪火)]
마리나, 여성 흑마법사들 등 까다로운 상대를 단 한 번에 쓰러뜨린 검은 화염이 다시 한번 피어올랐다. 바토리의 반격에 곧바로 막혔지만.
“이건 좀 실망인데? 이미 파훼된 방법을 또 써먹다니. 설마 재주가 이것뿐이니?”
바토리는 손가락을 튕겨 피의 칼날로 탐화(貪火)를 다시 한번 갈가리 찢어버렸다.
"내가 뜨거운 건 질색이라서.”
"그럼, 차가운 건요?”
올리버가 쿼터스태프에 마력과 감정을 뒤섞은 다음 바닥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바닥을 쾅 찍자마자 쿼터스태프 끝에 맺힌 술식이 발동하며, 검은빛 눈 폭풍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
이건 예상 밖이었는지 바토리가 감탄하며 허공에 뜬 피를 모아 자신을 보호했다.
집착의 감정이 더해진 눈 폭풍은 놀랍게도 바토리의 피를 얼려버렸다.
"대단한데?! 냉기와 집착을 뒤섞다니, 피가 액체인 점도 고려했고 말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과거 요리사의 흉내를 내 지면을 발로 차 순식간에 바토리에게 접근하며 대답했다.
얼어버린 피를 돌아 접근하였는데, 바토리는 눈이 따라가지 못한 것인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너......"
[아이시클(Icicle)]
올리버가 근거리에서 고드름을 쏴 바토리를 꿰뚫어 그 상태로 벽에 처박았다.
쾅一! 쾅一!!
성녀처럼 벽에 박힌 바토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피를 흘렸으나, 그 와중에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했다.
“..…꽤 아픈데?”
"저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하며 바토리의 감정과 마력을 뽑아냈다.
일반적인 흑마법사와 차원이 다른 ‘추출’에 바토리의 감정과 마력이 뭉텅뭉텅 넘어갔으며, 바토리가 이에 저항하려 하자 올리버는 추출을 멈춘 다음 마력을 몸에 저장, 감정은 시험관에 보관한 뒤, 아까 전 사용한 눈 폭풍을 바토리에게 다시 펼쳤다.
[포한(拘寒)]
냉기와 함께 무수한 눈과 얼음이 집착의 감정으로 얼룩져 바토리를 향해 쏘아졌다.
대상을 집요하고 또 끈질기게 껴안는 냉기에 의해 바토리의 몸은 천천히 굳어갔으며, 이내 바토리의 피부에는 새하얀 눈 결정이 맺혀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누가 봐도 이긴 상황.
그러나 바토리의 여유로운 감정과 수많은 전투를 통해 쌓은 올리버의 감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쾅一!!
올리버는 얼어붙은 바토리의 복부를 쿼터스태프로 후려쳐 눈사람처럼 부순 다음, 그대로 발로 밟아 얼어붙은 그녀의 육신을 말 그대로 다진 고기로 만들었다.
“오, 이런.”
바토리의 시체를 완전히 으깬 후 올리버가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냉기로 얼어붙은 바토리의 피가 침묵하긴커녕 내부에 머금은 마력을 끌어올려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올리버가 만든 얼음을 웃돌 정도로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구 밖 복도 쪽에 고여있던 피들도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그 모습에 올리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술식을 발동, 포털을 열었다.
입구에 들어온 대량의 피가 용암처럼 끓으며 올리버 쪽으로 달려왔으며, 올리버는 아슬아슬하게 포털에 들어간 다음 그대로 문을 닫았다.
***
"좋아, 정했다. 도망쳐야지.”
포털을 통해 키메라 연구실 안전지대로 대피한 올리버가 마음을 정한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만반을 준비한 이곳 연구실 안에서는 말이다.
육체를 얼리고, 산산이 부쉈음에도 바토리는 피를 대량으로 조종해 싸웠다.
심지어 피에 깃들어진 감정과 마력을 올려 의표를 찌른 냉기 공격에도 대응했고 말이다.
계속해 공격해 데미지를 쌓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올리버는 그전에 자신이 먼저 당하게 될 것을 확신했다.
‘필거렛을 사용하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귀하디귀한 필거렛을 소모하면서까지 바토리와 싸울 이유는 없었다.
애당초 필거렛은 전투용 각성제도 아니었고.
‘일단, 윌레스 씨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겠어.’
올리버는 마음을 굳히며 품 안에 있는 종이를 매만졌다.
멀린이 사용을 자제하라곤 했지만, 지금처럼 수세에 몰릴 때를 대비해 늘 품에 포털 마법을 저장한 종이를 몇 장씩 가지고 다녔는데,
특히, 올리버의 거주지와 연결된 종이는 반드시 한 장 이상은 품고 다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떨어뜨리지 말고 한 곳에 배치할 것 그랬네.”
올리버가 방 밖으로 나와 윌레스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혹시 몰라 종이를 한곳이 아닌 따로따로 멀리 놔뒀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어리석은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이상하네. 달걀을 한곳에 보관하지 말라고 해서 흩어놓은 거였는데, 더 불편하잖아?”
“주식도 하나 봐?”
지나온 길목에서 바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롸롸롸롸롸——촥!!
올리버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림자 칼날을 이용해 등 뒤의 바토리를 베어버렸다.
사선으로 내지른 그림자 칼날은 응축된 감정에 걸맞게 바토리의 몸을 간단히 몇 토막 냈으나,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주변의 고인 피가 곧바로 바토리의 몸을 받쳐주며, 회복시켜 줬기에.
‘퍼펫 님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회복하는 바토리를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퍼펫의 송장인형 역시 사람을 먹음으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바토리의 경우 그 수준이 한 단계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육체가 파괴돼도 피만 있으면 쉽게 회복할 뿐 아니라 반격까지 했으니.
정말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올리버의 생각을 읽은 바토리가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말렴. 이 연구실 전체가 내 뱃속이나 다름없으니, 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야.”
바토리는 피로 베인 단면도를 접합하며 말했다. 허세가 아닌 순수한 진심이었다.
"지금 심정이 어떻니?”
“어.…. 바토리 님과 화해하고 싶습니다.”
"화해할 거면 뒤로 마법을 준비하면 안 되지 않을까?”
바토리가 몸 안의 마력을 끌어올려 올리버를 향해 전격 마법을 쐈다.
본인의 말대로 피가 아니면 감정과 마력을 섞지 못하는지 순수한 마법이었는데, 올리버는 한 손에 만들었던 얼음 마법으로 임시 방벽을 만들어 전격마법을 막아냈다.
비록, 한번 버틴 것이 끝이었지만 올리버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블랙 미스트(Black Mist)]
감정을 이용해 만든 검은 안개를 바토리에게 쏴 그녀의 시단을 차단했다.
감정으로 만든 안개라, 흑마법사의 눈조차 차단하였다. 이것으로-
"-거기야?”
올리버가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주변에 고인 피가 창날처럼 날아왔다.
가까스로 반응해 스치는 선에서 끝났지만, 스친 곳의 블랙 슈트 세 겹이 단숨에 찢기는 서늘한 기분을 맛봤다.
정말 위험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리버를 지켜주던 블랙 슈트가 공격에 그대로 찢어발겨 졌으니.
사실상 올리버의 최대 방어 수단인 블랙 슈트가 바토리에게 의미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올리버는 다시 냉기 마법으로 주변을 얼게 하려고 했다.
그때, 바닥의 피가 촤르르르록 올리버 주변을 모여들었다.
부글부글 끓으며 말이다.
[혈화(血火)]
바토리의 영창과 함께 피가 기름처럼 끓더니 그대로 불꽃이 점화, 점성을 가진 시뻘건 화염이 일어났다.
“끄윽..…."
어찌나 강력한지 케빈의 화염조차 한 수 접을 정도. 심지어 피처럼 몸에 달라붙어 더 집요하게 대상을 태웠다.
덕분에 올리버가 준비한 얼음 마법은 발동도 하지 못하고 화염에 불타버렸으며, 블랙 슈트는 마치 기름먹인 헝겊처럼 혈화에 잡아먹힌 듯했다.
열기가 블랙 슈트를 뚫고 들어왔다.
[엑티시스(Ecdysis)]
피부를 들끓는 혈화(血火)에 올리버는 과감히 블랙슈트를 포기하고 외부로 폭발시켜 주변의 화염을 억지로 밀어냈다.
물론, 바토리의 의지와 힘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잠시 밀려난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폭발의 여파가 가라앉자 피를 연료로 삼는 시뻘건 화염은 다시 올리버를 덮치려 했다.
몸을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방어 장치도 없어 위급하기 그지없는 상황.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쿼터스태프에 마력을 응축해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폭발로 약해진 바닥은 쿼터스태프가 닿자마자 그대로 무너져 내렸으며, 올리버와 바토리는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이……!"
당황한 바토리. 그녀는 한순간 피를 통제하지 못했지만, 그것도 잠시.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허공에서 흩어진 혈화(血火)를 조종해 올리버를 공격하려 했다.
물론, 올리버도 놀지 않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그 갑옷(블랙 슈트)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을 텐데.”
바토리가 혈화(血火)로 올리버를 뒤덮었다.
“살짝 익은 피도 꽤 맛-”
—콰앙!!
바토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혈화(血火)가 커다란 충격파와 함께 찢어발겨졌다.
피를 매개로 증오와 마력을 뒤섞어 만든 화염은 바토리의 자랑이었기에, 그녀 역시 이 사태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놀란 바토리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며 허공에 흩어지는 혈화(血火)를 다시 응집시켰다.
[아웃 크라이(Out Cry)]
시뻘건 화염이 걷히며 나타난 검은 갑옷의 올리버.
올리버의 얼굴 부분에서 입이 쩌적 벌려지더니, 그대로 혈화에 흑마법 기운을 가득 머금은 고함을 질렀다.
물리력을 머금은 외침은 충격적이게도 혈화를 날려 버릴 뿐 아니라, 연구실 전체를 뒤흔들 굉음과 함께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남겼다.
마치, 용의 숨결처럼.
바토리는 근 수십 년 만에 진심으로 놀랐다.
“도대체 그건-”
“-실례하겠습니다.”
경악스럽게도 올리버는 온몸에 블랙 슈트를 뒤덮은 기괴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더 소름 끼치는 이질감을 자아냈다.
쩌적 벌려지는 입. 바토리가 반격하려 했다.
[혈-]
-[아웃 크라이(Out Cry)]
다시 한번 올리버가 충격파를 쐈고, 충격파는 바토리의 혈마법을 힘으로 찍어 누르며 그녀를 직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