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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40화 (240/633)

< 240. 마더 바토리 (1) >

탐화(貪火).

올리버가 영창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이윽고 검은색 화염이 피어오르더니, 화염은 올리버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변에서 날아오는 얼음 마법을 집어삼켰다.

"바보 같은! 상극인 얼음 마법을 먹어치우겠다고?!”

여성 흑마법사가 소리쳤으며,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실력이 충분하다는 전제하에서 화염 마법은 타인의 마법조차 불살라 자신의 연료로 쓸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얼음 마법만큼은 그게 불가능했다.

이유는 마법의 속성에 따른 것으로, 모든 걸 불태우던 윌레스의 화염조차 여성 흑마법사들의 얼음 마법에 번번이 막힌 게 그 증거라 할 수 있었다.

마법의 위력이나 술사의 능력 그 위에 있는 마법의 규칙.

그러나 감정과 마력을 뒤섞은 탐화(貪火)는 그 규칙을 가볍게 무시하였다.

"......!!"

"??!!"

“말도 안…..”

얼음 마법을 집어삼킨 탐화(貪火)는 단숨에 몸집을 키워 해당 공간을 뒤덮어 버렸다.

사나운 짐승이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콰화화화화화하하하하하항항————!!!!

공기를 불태우는 특유의 굉음과 함께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성 흑마법사들의 비명소리가.

꺄하하하하하하하핫一!!!

끼야아아아아악!!!!

커억.…! 커어억!!!

불이…불이 안 꺼...!!

피웅덩이를 통한 기습적인 이동과 탐화(貪火)를 이용한 선제공격은 놀라운 시너지를 발휘해 상대의 수적 우위를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오히려 탐욕스러운 불에 모조리 죽지 않게 신경 써야 할 정도였다.

‘연구 샘플과 재료용 시체도 필요하고.’

탐화가 마력을 흡수하며 키운 몸집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자, 올리버는 야생마에 재갈을 물리듯 통제력을 발휘했다.

일정한 방향 없이 악의를 가진 채 사방으로 날뛰던 탐화는 우뚝 멈췄고, 이형(異形)의 눈 같은 걸 십수 개 만들어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방해하지 말라고 항의하듯.

그러나 올리버는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손을 꽉 쥐어 화염을 억눌렀다.

전부 죽으면 곤란하기에 말이다.

마리를 상대할 때처럼 화염은 괴로운 듯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명을 온몸에서 지르며 그 기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타이밍에 반격의 기회를 엿볼 수 있었겠지만, 이미 탐화가 마음껏 휘저은 상태라 반격할 수 있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

수많은 좀비는 물론, 스무 명이 넘던 여성 흑마법사조차 대부분 재가 되었다. 단 몇 초 만에 말이다.

역시 강력하지만 그만큼 통제하기 힘든 기술이었다.

“끄 끄억..…. 뭐, 뭐야.....??”

다행히 전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성 흑마법사가 하나 남은 팔로 기어 도망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올리버는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숨이 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혼란, 공포, 의문, 두려움, 슬픔, 당혹과 같은 온갖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한테서 멀어지기 위해 애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그녀의 곁에 다가갔고, 감정을 추출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세대티브(Sedative)’를 주입해 그녀의 당혹과 공포를 약화시켰다.

덕분에 여성 흑마법사는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흐, 흑마법? ..…너 정체가 뭐야?”

그녀는 진정하자마자 의구심을 빛내며 올리버에게 물었다.

“마탑의 직원인 제논 브라이트라 합니다. 일단은요.”

수수께끼 같은 대답에 여성 흑마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 설마. 그년처럼 마탑에 잠입한 흑마법사냐?”

"그년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보다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어머니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여기 있는 것 같은데 위치를 몰라서요.”

"어머니를……? 왜, 만나려는 거지?”

올리버는 살짝 감탄했다.

올리버가 흑마법을 써 그녀를 진정시켰다곤 하나, 그럼에도 어느 정도 두려움이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그녀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드러냈다.

“음.…. 왜 이곳 연구실을 습격하셨는지 물어보려고요? 일단, 제가 일 때문에 나온 거라서…..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도 몇 개 있고요.”

참으로 성의 없는 대답이었지만,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왠지 사건을 깊이 파고들려면 만나야 할 거 같기도 했고.

그러나 여성 흑마법사는 올리버가 자신의 어머니를 무시했다고 판단했는지 화를 냈다.

"웃기는 놈!! 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네놈 따위가 우리 어머니께 질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올리버는 오해를 풀기 위해 진정시켰다.

"아, 죄송합니다. 어머니란 분을 무시한 게 아니고,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뭐가 궁금한지 모르지만 포기해! 어머니께서 곧 네 동료를 해치우고, 이곳으로 와 네놈도 해치워 줄 테니.”

"동료요?”

올리버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윌레스였다.

"네놈이 이 정도 실력자인 줄 알았으면, 너부터 어머니께 보내는 건데….. 하지만 상관없어. 어머니께서 복수해 줄 테니. 나와 내 자매들의 복수를 말이야!”

"음.…. 윌레스, 아니, 윌 씨는 꽤 강하신 분이라 괜찮으실 거 같은데요?”

"프흐흐흐흣…! 그래 봤자지. 저항할 수야 있겠지만, 어머니께서 결국 이기실 거야. 그놈은 결코 어머니의 상대가 되지 못해.”

여성 흑마법사의 말은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솔직히 윌레스가 진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확고한 믿음에 찬 여성 흑마법사의 말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올리버는 질문했다.

"그거 큰일이네요. 그분께도 여쭤볼 게 있어서 아직 죽으시면 안 되는데.….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말해 줄 것 같아? 차라리 죽여.”

여성 흑마법사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대답했다. 그만큼 자매를 잃었다는 슬픔과 올리버에 대한 원망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넌 나에게서 원하는 걸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어.”

각오를 다신 여성 흑마법사.

올리버는 그 모습에서 분노나 짜증 대신 대단함을 느끼며 동시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감정을 보는 올리버는 그녀가 웬만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음..…. 이빨을 뽑아야 하나?”

나지막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중얼거림에 여성 흑마법사가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빨을 뽑는 고문을 하겠다는 거니.

허나, 올리버가 특별한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빨을 뽑는 게 좋은 설득 방법 중 하나라 들었기에 그런 것뿐이었다. 군인으로 경험이 많은 아서의 주장이니 설득력 있지 않은가?

올리버가 이에 진지하게 고민하자, 여성 흑마법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와중에도 다시 각오를 다졌고,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건 안 되겠네요."

"......?"

"이빨 뽑을 기구도 없고, 아가씨도 그 정도로 설득될 분이 아닌 거 같고요..…. 대단하시네요.”

올리버기 진심으로 감탄했다.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습에 여성 흑마법사가 혼란스러워할 때, 올리버의 그림자가 그녀의 몸통과 얼굴을 그림자 촉수로 묶어 몸을 고정시켰다.

그 상태로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시야의 범위를 확장, 연구실 전체를 살펴봤다.

저 밑에서 다량의 마력이 머금어진 공간이 발견됐다.

올리버가 여성 흑마법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제가 의심되는 위치를 물어볼 테니, 그곳에 어머니가 있는지 사실대로, 혹은 거짓말이라도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제가 알아서 이해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여성 흑마법사의 입을 봉인한 그림자 촉수가 풀렸다.

여성 흑마법사는 다시 공포에 휩싸인 채 올리버를 바라봤다.

마치, 현실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를 보듯 말이다.

***

생명학파 산하 키메라 연구소. 그 가장 아래층에는 피가 여기저기 고여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곳이라 바닥에 고인 피는 그 어떠한 미동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한 피웅덩이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더니 이내 물기둥이 솟구치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올리버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를 쓸어내린 다음 주변을 살펴봤다.

주변은 불빛 하나 없어 몹시도 어두웠지만, 올리버가 온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친절하게 전등이 켜졌다.

티릭! 티리리..…틱!

처음 연구소에 왔을 때처럼 깜빡깜빡 켜지는 전구로, 올리버는 천천히 켜지는 전구를 표지판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 전체에 피가 고여있어 걸을 때마다 찰박찰박 소리가 울렸다.

찰박. 찰박. 찰박. 찰박.

어째 앞으로 나갈수록 점점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 같았는데, 목적지에 다다르자 그저 착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걷고 있던 올리버를 맞이한 문. 그 문 주변 수 미터가 고밀도의 얼음으로 메워져 있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음에 체온을 급격히 빼앗기자, 올리버는 과거 멀린을 흉내 내어 만든 보온 마법을 사용해 몸을 덮었다.

다소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었지만, 냉기의 수준으로 볼 때 적절한 조치였다.

그저 감이긴 하지만 이 냉기에 몇 분만 노출되어도 육체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

마력으로 몸을 뒤덮은 후 올리버는 얼음으로 가득한 방으로 들어갔다.

얼음. 문을 열고 들어온 방은 혈액이 군데군데 박힌 얼음으로 사방이 뒤덮여 있었다.

피 때문인지 얼음은 곳곳에 생명력을 머금고 있었고, 그로 인해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일종의 위장색 같은 건가?’

다만, 모든 위장색이 자세히 살펴보면 구별이 되듯 올리버는 눈에 익은 윌레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윌레스는 얼음벽 한쪽에 반쯤 파묻혀 있었으며, 몸통에는 제법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얼음 무기에..…. 당한 건 아니군.’

올리버가 몸에 난 상처 부위를 보고 판단 내린 다음 톤파를 도끼처럼 들어 얼음을 깨려고 했다.

얼음을 구성한 마력량과 술식, 생명력 덕분에 강도가 거의 바위 수준인지라, 올리버는 요령을 발휘해 톤파 손잡이 끝부분에 마력을 집중해 조심히 때렸다.

깡!! 깡!!! 깡!!

쇳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지며 얼음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둘이 친구니?”

윌레스를 꺼내는 올리버의 뒤로 한 여성이 나타나며 물었다.

그녀는 몸에 열이 많은지 얇은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얼음 위에 걸터앉아 태연하게 질문하였다.

"친구요?”

“보자마자 구하려고 해서….. 왜 아니야?"

“음….. 아마, 아닐 겁니다.”

얼음을 다 깬 후 올리버가 윌레스를 눕혔다. 상처 부위에 치료 포션을 부웠으나, 놀랍게도 상처 부위는 낫는가 싶더니 갑자기 거부 반응을 보이며 더 크게 벌어졌다.

“크윽.....!”

기절한 와중에도 아픈지 윌레스가 고통에 신음했고, 올리버는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혹시, 피를 매개로 한 흑마법으로 상처 입히신 겁니까?”

"정확히는 혈마법이란다.”

"혈마법요? ……아, 바토리 님은 흑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사입니까?”

올리버가 질문했고, 여성은 살짝 미소 지었다. 정답이란 뜻이었다.

“정답….. 만나서 반갑단다. 바토리 패밀리의 주인 마더 바토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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