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바토리 패밀리 (3) >
“왜냐면 우리와 협력했거든.”
여성 흑마법사의 말에 올리버가 다시 물었다.
"생명학파 산하 연구소가 바토리 패밀리.…. 그러니까. 흑마법사와 협력했다고요?"
여성 흑마법사는 비웃듯 까르륵 웃었다.
그와 함께 피웅덩이에서 나온 다른 여성 흑마법사들이 올리버를 천천히 포위했다.
“왜? 충격이야?”
올리버는 여성 흑마법사들의 감정 상태를 살폈다.
작전대로 흘러갔다는 쾌감과 승리감에 도취해 한껏 방심한 상태였다.
올리버는 대화를 이어갔다.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약간 신기하긴 하네요. 마법사와 흑마법사가 협력한다는 게요. 서로 싫어하는 관계 아닌가요?”
"범인(凡人)들 시각에서나 그렇지. 서로 주고받을 게 있다면 협력 못 할 것도 아니야.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결국 위대해지기 위한 탐구자들이니.”
올리버는 쇠창살 안에 있는 사람. 개량인간-C03을 봤다.
"이분도 위대해지기 위한 것인가요?”
"어느 정도는.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쓸만한 일꾼들이 있어야 하거든.”
일꾼이라..…. 올리버는 아까 전 개량인간-C03에 관해 설명을 다시 떠올렸다.
더 훌륭한 일꾼이라고 했다. 더 강하고, 튼튼하며, 순종적인.….
“혹시, 인간을 대체할 노동력을 위해 만드신 겁니까?”
"어머, 똑똑한데? 생명학파 녀석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런 걸 꿈꿔왔거든. 체계화된 사회를.”
‘체계화된 사회?’
"각 용도에 맞게 설계된 인간으로 구성된 완벽한 사회 말이야. 우리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얻을 것도 있었기에 대가를 받고 도와줬지."
"무엇을 대가로 받았지요?”
"이것저것? 인체실험 데이터나, 신체 조작을 통한 마법 능력 강화 시술 같은 거..…. 생명학파가 역사는 짧지만 그런 쪽으로 상당한 데이터가 쌓였거든. 융통성도 있고.”
“음.…. 그럼, 여러분은 키메라 연구만 협력하셨습니까?”
"아니, 그 외에도 여러 연구를 같이했지. 회춘이나, 영생 같은 거. 뭐, 그렇다 할 성과는 아직 얻지 못했지만.”
진심. 여태까지 한 이야기는 전부 진심이었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마지막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제게 이렇게 설명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여성 흑마법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에 마력이 모이더니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얼음 메스가 생겨났다.
"미리 값을 치르는 거야.”
또각. 또각. 천천히 다가오는 여성 흑마법사.
올리버는 합을 맞추듯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무슨 값이죠?”
"이제부터 널 유용하게 만들 생각이거든. 우선, 가죽을 산 채로 벗겨 마탑 놈들이 대거 이곳에 오게끔 유인할 미끼로 쓸 거야. 교수 대리로 온 네가 난리를 피우면 올 수밖에 없겠지.”
"죄송하지만, 가죽 가면으로 만들어 쓴다고 그게 가능할 거 같지 않은데요. 보고 체계라던가 있어서요.”
“프흐흐흐.…. 귀여워라, 별걱정을 다하네? 우리가 이곳 실험실을 점령한 게 한 달이 훨씬 넘는데, 어떻게 안 들켰을 거라 생각해?”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올리버가 들은 보안 시스템만 해도 꽤 까다로웠다.
각 학파별로 정해진 암호라던가, 마력 흐름 인증이라던가.
그런 것은 단순히 가죽 가면이나, 인두겁을 뒤집어쓴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보를 알아낼 능력이..…
"아, 혹시 피를 흡혈하면 대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나요?”
“딩동댕. 똑똑한데? 우린 피를 통해 그 사람의 정보로 알아낼 수 있지. 그의 인생과 지식, 정보를 말이야.”
“헤….. 조금 부럽네요. 저도 배울 수 있나요?”
"미안, 우리 어머니는 남자를 싫어하셔서. 대신 앞서 말한 대로 널 유용하게 사용해줄게. 피와 가죽은 물론 나머지 부산물도. 아까 전에 본 개량 인간처럼 실험재료로 써줄게. 넌 재밌으니까. 어쩌면 이번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성공하면 우리 애완동물로 길러줄게. 고맙지?”
탁. 올리버의 등에 벽이 닿았다.
“절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긴 하지만, 전 아직 죽기 싫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원래 죽음이란 게 싫은 타이밍에 찾아오는 거야.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실험이 성공하면 우리 애완동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으니.”
"어..…. 말씀드리는 게 늦었는데, 이 연구소에 세계수가 있으니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넷 내비게이터(Net Navigator)가 이 모습을 포착할 수 있잖습니까?”
“?....꺄하하하핳!! 기껏 살기 위한 수단이 그거야? 여긴 그 ‘생명학파’ 연구소의 비밀 실험장이야. 세계수가 볼 수 없게끔 이미 마감 작업까지 마친 곳이라고. 설사, 찍혔다 해도 상관없어 해당 부분을 없애면 되니까.”
“오….. 그럴 수도 있나요?”
“아, 정말 모르겠다….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여성 흑마법사가 그리 말하며 올리버를 향해 얼음 마법을 쏘려고 했다.
일단 몸을 얼음으로 굳혀 포획부터 할 생각.
"아주 아프겠지만, 너무 걱정..…. 너 손에 그거 뭐야.”
올리버가 여성 흑마법사가 가리킨 손을 보며 대답했다. 얇디얇은 실이 쥐어져 있었다. 실은 올리버의 손에서부터 여성 흑마법사의 발밑까지 길게 축 늘어졌다.
"마력실입니다.”
대답과 함께 올리버는 축 늘어진 마력실에 마력과 의지를 불어넣었고, 길게 늘어진 마력실은 재빠르게 움직여 여성 흑마법사들의 몸에 엉겨 붙었다.
"흥! 이따위 장난질.…!”
여성 흑마법사들은 냉정하게 대응하려 했다. 아까 전처럼 올리버와 합을 맞출 상대가 없었으니까.
한 여성 흑마법사가 이점을 지적했다.
"이 정도 장난질로 네 목숨을 구제할 수 있을 거 같나?! 널 도와줄 놈도 없는데!!”
"아, 걱정하지 마시죠. 그건 제가 하면 되니까요.”
“뭐?”
멈칫하며 되묻는 여성 흑마법사. 올리버는 마력실에 추가로 술식을 부여해 대답을 대신했다.
바로, 묠니르 소학파의 전격 마법 술식을 말이다.
케빈이 가르쳐준 ‘술식을 토대로 한 마법 성질 변화’로, 올리버의 의지에 따라 마력실은 순식간에 전기로 변해 여성 흑마법사들을 감전시켰다.
"끄억.…!”
"?!"
"꺅.....!!"
"......!!!"
전기로 인해 근육이 경직되며 비명도 지르지 못한 여성 흑마법사들.
올리버는 그 타이밍에 정확히 거리를 좁혀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톤파를 휘둘렀다. 마력을 꾹꾹 담아서 말이다.
쩗-!!!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쪼개진 머리.
올리버는 확인차 발로 머리를 밟아 토마토처럼 으깬 다음 다른 여성 흑마법사의 머리를 같은 방식으로 쪼갰다.
쩗-!!!
쩗-!!!
쩗-!!!
그렇게 세 명 정도 더 처리했을 때, 어느 정도 피해를 회복한 여성 흑마법사가 올리버에게 접근했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이….!”
올리버를 향해 내지르는 얼음 칼.
올리버는 윌레스를 흉내 내 도끼처럼 쥔 톤파로 공격을 흘린 다음 톤파를 고쳐 잡아 그대로 여성 흑마법사의 뱃속에 톤파를 푹 찔러 넣었다.
"끄윽…! 고작, 이 정도로 우릴 죽일 수 있을 거 같나?!”
"아뇨. 그래서 더 준비했습니다.”
여성 흑마법사는 무슨 뜻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뱃속이 뜨뜻해지며 연기가 피어올랐기에.
뱃속에 박힌 톤파를 매개로 올리버가 화염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너.…! 너….”
퐈화하하하-!
톤파가 박힌 배의 구멍을 시작으로 여성 흑마법사의 입과 코, 눈에서 피와 연기, 기름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시뻘건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카산드라.…!”
“......!!!"
“꺄아악!! 안 돼-!”
그 모습이 상당히 흉악했는지 여성 흑마법사들은 일순간 공포와 혼란에 파지며 자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렇다 할 느낌을 받지 못한 채 여성 흑마법사를 번쩍 들어 다른 여성 흑마법사들에게 던졌다.
그녀들은 반사적으로 자매를 받았고, 그때, 올리버가 연동시킨 마력을 통해 마법을 하나 발동시켰다.
[파이어 크래커(Firecracker)]
영창과 함께 몸 안에 고여 있던 화염과 열기가 반응하며, 그대로 폭발했다.
화염은 폭죽처럼 허공에서 빛났고, 살점과 내장은 불이 붙은 채 동료 흑마법사에게 옮겨붙으며 서서히 커졌다.
“꺄아아아아악!!! 불이! 불이..…!!”
"안 꺼져! .…안 꺼진다고!”
당연했다. 윌레스의 화염 마법을 흉내 낸 불이었으니.
동료들이 당한 모습에 다른 여성 흑마법사가 올리버를 향해 달려왔으나, 이번에도 역시 올리버가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프리즈(Freeze)]
올리버의 발을 중심으로 성에 같은 얼음이 바닥을 따라 방사형으로 퍼지며 주변 여성 흑마법사들의 발과 다리를 얼려버렸다.
“..…!! 너, 너 정체가 뭐야?!!”
여성 흑마법사 중 하나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순수마력 사용자인 줄 알았는데, 전격에 화염, 얼음까지 사용했으니 당연한 의문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마법의 성질을 초월해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수십 년을 수련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마탑 상위층에서도 보기 드문 경지.
올리버는 그녀에게 달려가 톤파를 치켜들며 대답했다.
"마탑의 직원일 뿐입니다."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생명학파 산하 키메라 연구소의 비밀 실험실.
그곳에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흑마법의 기운이 담긴 비명소리는 흡사 재난을 알리는 신호음과 같았고, 잠시 후, 벽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쾅! 콰르르르륵..…!!
무너져 내린 벽. 그 사이로 한 여성이 공포와 분노에 물든 채 개처럼 네발로 기어 도망쳤다.
보기 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다리가 얼음에 의해 부서져 정상적으로 달릴 수 없는 상태였으니.
"기다려라! 기다려..…! 내 자매들을 불러 복수를 해줄 테다! 피의 복수를!!”
여성은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빛내며 소리쳤고,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거짓말은 아니시네.”
올리버가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여성이 복수해주겠단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실제로 아까 전 비명을 시작으로 연구실 주변에 퍼져있던 여성 흑마법사들이 반응해 몇몇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구조 요청 신호인가? 흑마법 기운도 서려 있었으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꽤나 다급한 상황. 그러나 올리버는 차분히 안쪽 비밀 실험실을 살펴봤다.
폐허가 된 실험실에는 머리가 으깨지거나, 불타 죽은 여성 흑마법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쇠창살 안에는 개량인간-C03이 있었다.
소머리에 사람의 육체를 한 생명 학파의 새로운 인간이…..
흡사, 괴물 박물관을 연상케 했는데, 도대체 생명학파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보유한 기술을 통해 의료와 군사에 활동하는 이익 집단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영생이야 그렇다 쳐도, 이 새로운 인간이라는 것은 란다에 있는 수많은 탐욕과 그 궤를 달리했다. 사상이나 신념적으로 말이다.
"어쨌건 운이 좋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길을 가다 돈을 줍는 심정과 비슷했다.
원래는 케빈을 도와줄 의도로 이 일을 수락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의도가 무색하게 개인적 호기심이 동했다.
이번 일이 어떻게 끝날지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바토리 패밀리와는 어떻게 엮였는지 생명학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어머니라는 대장을 만나야겠네.’
올리버가 1차 목표를 세우며, 흑마법사의 눈을 떠 연구실 전체를 살펴봤다.
대장이 누군지 모르기에 곧바로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물어볼 사람은 찾을 수 있었다.
이 연구실을 점거한 바토리 패밀리의 여성 흑마법사들로, 그녀들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모이고 있었다.
죽은 자매들에 대한 복수심을 빛내며, 그들 외에도 연구소 곳곳의 좀비들까지 피웅덩이를 통해 결집하고 있었다.
“..…피웅덩이?”
실험실에 고인 피웅덩이…! 좋은 생각이 올리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처음 본 물건이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마음을 정한 올리버는 마력 보충 포션을 꺼내 모조리 들이킨 다음, 품에서 시험관을 집어 감정을 추출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피웅덩이 위에 올라섰고, 흑마법의 눈으로 현재 자신의 위치와 상대의 위치를 확인.
시야를 최대한 집중한 채, 흑마법과 마법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순간 피웅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올리버. 빠른 물살에 휩쓸리는가 싶더니, 부력 같은 힘에 떠밀리며 곧장 밖으로 나왔다.
촤학-!
올리버가 눈을 떴다.
스무 명이 넘는 여성 흑마법사와 생명학파의 직원들로 보이는 수많은 좀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적으로 이동한 모양.
당연히 여성 흑마법사들도 올리버를 봤다.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피웅덩이에서.….”
"고, 공격해!!”
예상치 못한 올리버의 등장에 여성 흑마법사들은 다급히 마법을 시전 했으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올리버가 더 빨랐다.
올리버는 감정과 마력이 머금어진 양손을 맞잡으며 영창 했다.
[탐화(貪火)]
그와 함께 검은색 화염이 작게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해당 공간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