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35화 (235/633)

< 235. 초대받은 연구소 (1) >

“이런, 진짜로 직원을 대리로 보낼 줄이야….. 빌어먹을, 이곳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군.”

두건을 뒤집어쓴 심술궂은 사내가 불만을 품으며 말했다.

주름이 슬슬 자리 잡은 그는 마운틴 페이스에 있는 약초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적잖은 나이였지만 계급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 바쁘신 관계로 일단 저를 보내셨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리버가 정중히 양해를 구했으나, 그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올리버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있었지만, 원래 성격부터가 화가 많은 것 같았다.

윌레스처럼 이성적인 분노가 아닌, 감정적인 분노가.

그가 콧방귀를 뀌며 구시렁댔다.

“하-! 바빠 봤자 얼마나 바쁘다고....."

그의 감정에서는 질투와 짜증이 빛났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생명력이 흐릿할 정도로 쌓인 피로와 거친 손, 작업복에 묻은 흙과 관련 있는 듯했다.

올리버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 연구소 안쪽에서 한 여인이 나타났다.

“말조심해야지요. 헤이든 책임 연구원. 케빈 교수는 마탑의 마스터, 신분상 당신보다 위라고요.”

갑자기 나타난 여성은 30대였으며, 남자와 똑같은 작업복을 입었다.

차이가 있다면 훨씬 활기와 자존감이 넘친다는 거였다.

그녀가 다가오자 두건을 뒤집어쓴 사내가 쩔쩔맸다.

"예? 예, 소장님.”

"들어가 봐요. 헤이든.”

여성의 부드러운 명령에 헤이든이란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구실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남자가 완전히 사라지자 여성은 올리버에게 흙 묻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곳 약초연구소의 소장 소피라고 해요. 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호의를 가진 예의 바른 인사에 올리버 역시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원소학파의 케빈 던바 교수님에게 고용된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라고 합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소피 소장님.”

예의를 한껏 갖춘 올리버의 인사에 소피가 깔깔깔 웃었다.

"아, 죄송. 케빈이 고용했다고 해서 누군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재밌는 분이네요. 아까 전 헤이든이 투덜댄 건 이해해줘요. 계속 이곳에 처박혀 화가 많이 쌓인 사람이거든요.”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케빈 교수님을 아십니까?”

“그럼요. 동문(同門)이거든요….. 잠시 들어오시겠어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소피가 갑자기 손바닥을 보이며 올리버를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저분은 누구시죠?”

소피가 가리킨 사람은 가죽 가면을 쓴 윌레스.

올리버는 미리 약속한 대로 윌레스를 고용한 해결사라고 소개했다.

“해결사요?”

“예, 이곳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흐음….. 외부인은 출입이 곤란한데. 마법사에겐 연구와 지식이 생명이라 보안에 관해서는 보수적이거든요.”

"교칙상 신원 보증을 해주면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피의 눈이 살짝 커졌다.

“호오….. 설마, [마탑 교칙]을 다 읽었어요? 그 두꺼운걸요?”

"마탑에서 일하기로 했으니까요?”

“성실하시네요.…. 요즘 그런 이유로 그 지루하고 두꺼운 책을 읽는 사람은 없는데, 별수 없죠. 들어오세요.”

소피가 윌레스의 방문을 허락해줬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이건 케빈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 기억해두세요.”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래요? 까탈스러운 친구인데?”

“본인 대신 절 보내셨으니 이 정도 재량권은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 재밌을 뿐 아니라 배짱까지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만큼 도움이 돼주시리라 믿을게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여기 상황에 대해 아시나요?”

“예, 마운틴 페이스에 있는 연구소 직원분들이 소수 행방불명이고, 이를 조사하러 온 마법사분들도 갑자기 소식이 끊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해요. 저희 쪽 연구소도 세 명 사라졌죠.”

소피가 파이프 담배를 꺼내며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그런 뒤 작업복 앞주머니에서 말린 약초를 꺼내 파이프 담배에 쑤셔 넣은 다음 마력으로 불을 붙였다.

뻑. 뻑.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 담배 냄새였지만, 약간 더 달큰했다.

“미안해요. 방금까지 일하느라 참았거든요.”

“전 괜찮습니다. 혹시, 연구소 총인원이 어떻게 되고, 실종된 세 명은 누군지 여쭤볼 수 있나요?”

"자잘한 일꾼까지 다 합치면 연구소 인원은 오십사 명이고, 실종된 인원은 수습생 둘과 그들을 관리하는 일반 연구원 한 명이요.”

"어떻게 실종됐죠?”

"필요한 약초를 캐오는 와중 사라졌죠. 원래라면 인근 마을 주민에게 맡겼겠지만, 마력을 쓸 줄 알아야 제대로 채집 가능한 물건이라 그 친구들에게 맡겼죠….. 지금에서 생각하면 실수였지만요.”

소피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안타까운 감정이 빛났다.

"그래도…. 오십사 명 중 세 명이면 그리 많지는 않네요.”

"실종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연구소 인원 모두의 외부출입을 제한했거든요. 대응이 늦은 연구소는 여기보다 피해가 조금 더 크답니다.”

"많이 심각하나요?”

"마탑 관점으로 보면 그렇지 않아요. 아직은 괜찮은 수준이죠. 마탑은 이런 문제로 소란을 만들기 원치 않거든요. 이곳이 좀 한직인 것도 한몫하고요.”

뼈가 있는 소피의 말. 올리버가 그 속뜻을 헤아릴 때, 뒤에선 윌레스가 끼어들었다.

"혹시, 소문이나 이야긴 없습니까?”

소피는 윌레스를 빤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소문요?”

"예, 소문. 실종사건이 일어나면 괴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라서요. 괴물이나, 유령 같은 거요.”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랑 똑같네요. 혹시, 들렀다가 오셨나요?”

올리버에게 묻는 소피. 올리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 마을에서 다른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

"음…. 나쁘지 않은 접근이네요. 여기 마을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일단, 대답하자면 저희는 못 봤어요.”

"그렇습니까?”

“예. 일단 외부출입을 제한해서요. 마탑에서 먼저 파견된 마법사들이 수색해봤지만, 그들 역시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요….. 그럼 이야기는 둘 중 하나네요.”

"뭐죠?”

"헛소문이던가, 아니면 마법사의 탐색도 피할 만큼 유령이 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죠.”

올리버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올리버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연구소에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실종 건이랑 관계있나요?”

"약간은요. 제가 궁금하기도 해서요.”

소피가 살짝 웃었다.

"케빈이 정말 재밌는 친구를 뽑았네요….. 이름 그대로 약초를 연구하는 곳이에요. 아실지 모르지만 뛰어난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초가 필수니까요. 연금술 학파에서 그 비중이 높진 않지만, 아주 중요한 연구죠.”

“그럼, 그 연구를 탐내는 사람도 있나요?”

올리버가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물었고, 핵심을 파악한 소피는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있지요. 마법사의 연구는 제법 돈이 되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연구소 자료를 훔치려는 인간이 보기 드물답니다. 최소한 마탑 외부인은요.”

"그렇습니까?”

“마법사는 연구를 빼앗기는 위험에 자주 노출돼 그에 대비하는 법도 알거든요. 이곳을 비롯한 각 연구소에는 나름대로 보안시스템과 경비가 배치되어 있어 습격이 쉽지 않고, 습격을 받아도 대응할 수 있는 보안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보안체계요?”

"예. 매일 각 학파에 정기 보고를 올릴 때 자신들만의 암호를 보내죠. 무슨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게. 또, 습격받을 시 주변 연구소와 마탑에 이를 알리는 비상연락망도 설치되어 있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를 수가 없답니다.”

올리버는 ‘아..…' 하고 소리 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실종 건이 연구소를 습격하기 위한 일종의 전진(前震)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소피의 말대로면 확실히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

해가 저물 무렵, 올리버는 약초연구소에를 떠나 윌레스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딱히 건진 것은 없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만 나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죄송합니다. 뭔가를 건질 줄 알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딱히? 괜찮아. 어차피 한 번에 정답을 얻을 기대는 안 했어. 오히려 쓸만한 정보를 얻었으니 만족이야.”

"쓸만한 정보요?”

“그래, 마탑에서 지원 나온 마법사들도 흔적을 못 찾았다고 했잖아? 그럼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지.”

윌레스가 말한 상대란 이번 실종과 관련된 범인으로, 올리버도 이에 동의하는 바였다.

이건 보통의 실종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사람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실종자 중 마법사도 있었으니, 범인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쉬이 유추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올리버는 연구소를 습격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한 거였다.

‘너무 흑마법사의 관점으로 봤나? 하긴, 마법사는 흑마법사에 비해 규모도 크고 체계화된 데다, 법의 보호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니, 습격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겠지.’

심지어 이곳 연구소의 보안체계를 들어보니 습격을 한다 해도 그 뒷감당이 문제였다.

일개 연구원과 일꾼이 사라지는 것과 연구소가 습격 받는 건 하늘과 땅 차이.

그렇게 된다면 마탑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곧장 이곳으로 마법사를 대거 파견할 거였다.

그럼 연구를 빼내려는 쪽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었고.

'역시 뭔가를 추리하는 건 쉽지가 않네.’

“네 추측도 나쁘지 않았어.”

윌레스가 올리버에게 대중 말했다.

"난 마을 사람들을 위주로 생각해서 인신매매범이나, 인체실험을 하려는 흑마법사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마운틴 페이스라면 차라리 연구소가 목적일 수도 있겠어.”

"아,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야. 마탑 관계자들은 그런 생각은 잘 못 하는데 말이야.”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마탑은 의외로 그런 생각을 못 해. 멍청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

"합리적인 자신요?”

“그래, 마탑은 그 세가 아주 커서, 자신들이 먼저 공격받는다는 생각을 이젠 잘 못 하거든. 똑똑한 마법사들이야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겠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그러지 못해. 왜냐면 자신들은 강하니까. 그래서 네 의견은 꽤 흥미로웠어.”

날카롭게 눈을 뜨며 묻는 윌레스. 그와 함께 그는 의심의 감정을 빛냈다.

"전에 말한 적 있지만, 마탑에 들어온 건 올해가 처음이라서요.”

"그럼, 그전에는 뭘 했지?"

"예?”

“마탑에 들어가기 전에는 뭘 했냐고? 레스토랑 종업원? 벨보이? 공장 노동자? 아니면 해결사?"

그냥 묻는 것이 아닌 어떠한 확신이 있는 질문.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저 멀리서 무엇인가 다가왔다.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으로, 윌레스는 몸에서 주기적으로 퍼트리는 감지 마법으로 알아차렸다.

이야기는 중단되며, 올리버와 윌레스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나타나 존재에 대비했다.

이윽고 누군가 수풀 사이를 헤치고 나타났다. 야외 활동복을 입고 복장에 어울리지 않은 비싼 목걸이를 찬 여성이었다.

“하아. 하아….. 안녕하세요! 생명학파 산하 키메라 연구소에서 나온 일반 연구원 레나라고 해요. 약초연구소의 연락을 듣고 왔는데, 혹시, 케빈 던바 교수님 대리로 오신 제논 브라이트 씨 맞으신가요?”

***

"늦어도 곧 도착할 거예요. 이리 차까지 얻어 탈 줄은 몰랐는데, 고마워요.”

생명학파 산하 키메라 연구소의 일반 연구원 레나가 올리버와 윌레스와 함께 트럭 짐칸에 탄 채 말했다.

그녀가 말하길 생명학파 산하의 키메라 연구소는 마운틴 페이스에 널린 짐승들을 이용해 키메라 연구를 하는 곳으로,

운이 좋게도 키메라 연구소가 올리버가 온 사실을 약초 연구소에게 듣고, 때마침 나와 있는 자신에게 올리버를 찾아오게 시켰다고 했다.

"정말 운이 좋았죠. 때마침 인근에 있었으니까. 이리 쉽게 만나 너무 기쁘네요.”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교수 대리일 뿐인데 이리 반겨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하네요.”

예의는 바르지만, 비굴하지는 않았던 올리버의 다른 모습에 윌레스가 살짝 눈을 빛냈다.

키메라 연구소의 레나는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아뇨! 아뇨! 일단, 저희는 마탑에서 지원이 온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거든요. 저희 말이라도 전해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말이요?”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 뭔가 흔적을 찾았거든요.”

“흔적 말씀입니까?”

"예! 실종사건의 흔적요! 자세한 건 지금 알려줄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알아냈거든요.”

"그거 대단하군요.”

"별말씀을요. 우리 연구소가 이쪽에서 규모도 좀 있는 편이고, 실종자도 많은 편이라서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잖아요?”

"약초연구소에서 들었습니다. 피해가 심한 연구소 중 하나라고요….. 그럼 밖에 있던 것도 실종사건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인가요?”

“아, 그건 아니에요. 실험을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어요. 관찰을 위해 표식을 붙인 짐승 상태를 보려고요. 어수선해도, 연구는 멈출 수는 없거든요. 빨리 성과를 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실지는 모르지만요.”

"그것도 아까 전에 조금 들었습니다. 마운틴 페이스가 마탑 전체적으로 한직이라고요.”

"예, 맞아요. 하는 일이 제법 되지만, 알아주는 자리는 아니라. 그래서 대부분 여기서 성과를 내 마탑으로 복귀하는 게 목표거든요….. 이런 외부 사람은 오랜만이라 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네요.”

레나는 그리 말하곤 웃었다. 말에는 감정이 있어 약간의 진심이 있었다. 마치, 정말 본인이 그런 상황인 것처럼.

올리버는 그러한 모습을 흥미롭게 보며 트럭이 키메라 연구소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 질문했다.

키메라 연구소는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연구소 인원수나 실종 수, 기타 상황 등을 말이다.

레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약초 연구소에서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윽고 트럭이 멈췄다.

운전석 눈구멍 사이로 운전기사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는 레나와 윌레스, 올리버.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올리버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예?”

“제가 마을에 짐을 두고 온 게 있는데, 혹시 가져와 주실 수 있나요….. 피곤하시면 마을에서 한숨 주무시고, 내일 오셔도 되고요.”

느닷없는 올리버의 말에 운전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늦은 밤까지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쉬지도 못하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꼴이었으니.

그러나 운전기사는 윌레스를 돕는 사람답게 눈치가 빨랐고, 말없이 윌레스를 바라봤다.

윌레스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대답과 동시에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에 레나가 말했다.

"너무 늦었는데, 쉬시고 내일 내려가는 게 낫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중요한 물건이라서. 본인이 괜찮으시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하….”

레나는 그 이상 말하지 못했고, 운전기사는 방해 없이 아랫마을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아마,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는 올라오지 않을 터였다.

"그럼, 연구소로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따라오시죠.”

그녀는 올리버가 말을 걸자 퍼뜩 정신을 차리며 키메라 연구소로 안내했다.

규모가 좀 된다는 게 거짓이 아닌지 약초연구소보다 그 규모가 확실히 컸다.

약초연구소는 크긴 해도, 땅 위에 세워진 식물원 같은 모습이었다면,

키메라 연구소는 산면이 깎아내리지는 부분을 파고 들어간 비밀 요새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같은 마탑의 연구소라도 그 위압감이 엄청난 차이가 났다.

"저희 생명학파는 다른 연구소보다 보안에 더 철저한 신경을 쓰거든요. 따라오세요.”

레나가 앞장섰고, 올리버와 윌레스가 뒤따라갔다.

생명학파의 연구소는 두꺼운 철문으로, 손을 가져다 대니 철문의 마력이 반응하며 문이 그르르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탑 도서관에 있는 자동문과 비슷하군요.”

"오, 알아보시네요. 거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생명학파의 기술을 접목해 만든 보안시스템이랍니다.”

문을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연구소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 여덟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올리버 일행이 올 것을 예상한 것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안내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 올리버와 윌레스의 주변에 섰다.

호위하듯, 포위하듯.

문을 지나 복도에 들어서자, 생명학파 키메라 연구소의 문이 닫히며 바깥과 외부가 차단됐다.

빛이라고는 천장의 한 줄로 세워진 은은한 전구밖에 없어 실내는 베일을 씌운 듯 조금 어두웠다.

올리버가 천장의 전구를 보며 물었다.

"생명학파 기술은 어떤 식으로 접목했죠?”

“마탑에서 쓰이는 자동문은 세계수에 설정값을 잡아 정해진 마력을 입력하면 문이 열리는 방식인 건 아시나요?”

"예, 압니다.”

"저것도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해요. 통신을 위해 있는 세계수를 끌어와 생명학파 식으로 설정값을 부여해 정해진 사람만 들어오게 하는 거죠.”

"생명학파 식의 설정값요?”

올리버가 질문하자 흐릿한 전구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티디딕- 티딕- 틱-

"예, 사람마다 마력 흐름이 조금씩 다르거든요. 손끝의 난 지문처럼요.”

레나가 자기 손끝을 가리켰다.

"즉, 같은 마력 흐름과 같은 지문을 가지지 않은 이상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보안을 위해 이곳 연구원들은 매일 매일 한 명씩 문을 열고 들어온답니다.”

“오, 그러면 외부 침입이나 잠입은 전혀 걱정이 없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가죽 가면으로도 지문을 똑같이 복제할 수 있나요?”

우뚝.

모두가 발걸음을 멈췄다.

앞장서서 안내하던 레나와 윌레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경호원들 모두 말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마력 흐름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저도 봐서 알고 있기는 한데, 그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건가요? 섬세함을 요구해서 저도 약간 까다롭던데.”

“어머.…. 그래요?”

앞에 있던 레나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대답했다.

온화하고 활기차던 그녀의 얼굴은 마치 가면처럼 부자연스러워지며, 그뿐 아니라 흉악하게 변했다.

힘줄이 돋고, 근육이 도드라지며, 길쭉한 송곳니가 돋는 등.

"허세를 재밌게 부리는 분이네요. 뭐, 일단 천천히 확인하면 되죠.…. 물어.”

레나가 명에 올리버와 윌레스의 주변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짐승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그와 함께 희미하던 복도 전구가 팍-! 하고 꺼졌다.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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