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34화 (234/633)

< 234. 협력 (2) >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윌레스와 협력 관계를 맺기로 했다.

솔직히 썩 나쁜 제안 같지는 않았다.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났지만, 올리버나 윌레스나 궁극적으로 마운틴 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게 목표였으니 서로 돕는다면 이득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올리버가 더 이득일지도…..

자랑할 건 아니지만, 문제를 파헤치고 추측해 숨겨진 내막을 알아내는 것은 올리버의 특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올리버는 윌레스와 트럭 운전수와 함께 마을에서 제공하는 감자 수프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곤 바로 움직였다.

될 수 있는 한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았으니 말이다.

‘또, 개인적으로 서두르는 게 좋을 거 같고. 홀랜드의 홀 가문이 비협조적인 게 마음에 걸려.’

올리버는 구체적인 설명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 힘든 찝찝한 마음을 품은 채 트럭 위에 올라탔다.

연료를 채우고 부품 사이에 기름을 칠한 덕분인지 트럭은 처음 올라왔을 때보다 힘차게 산길을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는 도중 올리버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으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런데 신기하네요.”

"뭐가?”

"이곳 나름 깊은 산골인데, 험하게나마 차가 다닐 길이 있다는 게요.”

맞는 말이었다.

비록 작은 트럭 하나가 간신히 오갈 도로긴 했지만, 사람이 드문 깊숙한 산골치고 도로가 있다는 건 꽤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공사 비용 역시 상당하기에….. 최소한 이 근방에 있는 마을에서 부담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이곳 행정부에서 건설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케빈이나, 마탑 지부 사람들이 말하길 노스랜드-왕국행정부는 광산과 관련된 인프라가 아니면 돈을 쓰지 않는다 했으니.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혹시, 마탑에서 건설한 건가요?”

올리버가 운전석을 향해 본능적으로 물었고, 눈구멍을 열어둔 운전석 기사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예, 연구소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재밌네요.”

“뭐가 재밌지?”

올리버의 말을 듣던 윌레스가 물었고, 올리버는 기쁘게 대답했다. 대화란 언제나 즐거운 거였으니. 특히, 의견을 나누는 대화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됐다.

"마탑에서 들은 이야기를 직접 보게 돼서 재밌다고 했습니다.”

"마탑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가 맞춰볼까? 마법사의 연구, 실험 등은 결과적 과정적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니 자부심을 가지며, 어떠한 비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말라는 거지?”

오…. 정확히 일치했다.

업무가 많지 않은 날 올리버는 멀린과 케빈의 조언에 따라 다른 수업을 청강했고, 수업에서는 무수한 마법 이론 외에도 방금 전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법사는 현재 인류의 황금기를 이끈 중추적 존재이니,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 비난과 조롱에도 굽히지 말고 자신의 가는 길을 믿으며, 계속해 도전하라는 정신론(精神論)을 말이다.

그 말은 올리버에게도 꽤 인상 깊은 것인지라 기억에 남았다. 물론, 약간 뒤틀린 것도 있었지만 어쨌건.

"예,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요즘은 길바닥으로 나오는 마법사들도 많아서, 그놈들에게서 들었지. 전부 자기 자랑하려고 안달 난 녀석들이라.”

"아, 그렇습니까?”

"직원인 주제에 마탑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봐? 요즘은 그쪽도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길바닥으로 계속해 흘러나오는데.”

"죄송합니다. 전 올해 마탑에 고용돼서요.”

"아하….. 올해?”

윌레스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예."

"음, 어떻게 취직했지?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 듯한데.”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가…..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사람마다 저마다 비밀이 있는 법이니….. 그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아까 전에 마탑 덕분에 이곳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했던가?”

“음….. 살기 좋아진 것은 모르지만, 교통편에서는 도움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윌레스의 감정에서 이를 부정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올리버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신호.

그러나 예상을 깨고 윌레스는 올리버의 말을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더 나아가 일부분은 동의했다.

"그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마탑 연구소가 들어온 덕분에 여기 도로가 들어왔고, 교통이 편해진 건 사실이니까.”

"동의하시는 겁니까?”

“교통 한 부분만 보면 말이지.”

“다른 부분은 어떻죠?”

윌레스는 잠시 생각했다.

"음.…. 솔직히,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득보다 실을 많이 줬다는 게 내 생각이야.”

진심.

“.…이유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원래 마운틴 페이스에는 지금 사는 것보다 2, 3배는 많은 마을이 있었어. 그런데, 이곳의 약초와 짐승 등 환경 때문에 마탑에서 연구소를 건설하려고 했지. 참고로 연구소가 세우기 좋은 곳에는 대부분 마을이 있었고….. 마탑에서 어떻게 했을 거 같나?”

"보상금을 주고 이주할 것을 제안하지 않았을까요?”

올리버가 란다에서 본모습을 바탕으로 대답했다. 재개발은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됐으니.

"맞아. 보상금을 제시하며 떠나 달라고 했지. 말도 안 되는 푼돈을 제시하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일방적으로 나가 달라고 말이야. 사람들은 거부했고….. 이후, 어땠을 거 같나?”

"음.… 돈을 더 제시하지 않았을까요?”

"요점을 잘못 파악했군. 돈이 문제가 아니야. 보상금이 적었던 건 맞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

"그게 뭐죠?”

"긍지, 자존심, 정체성 같은 거지.”

"음.… 죄송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뭐, 이해해. 도시 출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지. 허나,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꽤나 중요한 거야. 대대로 살아온 자신의 땅이라는 건. 단순히 사는 땅 이상이거든. 일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누군지와 같은.”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알아들을 수 있을 듯하면서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윌레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탑은 이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나가 달라 요구했지. 이곳에서 자신들이 할 연구가 얼마나 인류사에 도움이 될지 떠벌리며 말이야.”

"괜찮으시다면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도 괜찮겠습니까? 다소 기분 나쁘실 수는 있지만요.”

“말해봐.”

"제가 알기로 이곳에서 개발한 포션과 약 덕분에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약을 얻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빈민이나, 공사현장의 인부들이요. 사람들의 말이나 신문을 통해 봤거든요. 그럼, 어느 정도 맞는 게 아닐까요?”

"마탑이 이곳에 연구소를 세운 이유는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야. 약을 팔아 사람들을 도왔다지만, 그 과정에서 기술과 경제적 이득을 챙겼으니. 결코, 공짜가 아니야..…. 설사, 백번 양보해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해도, 이곳에 살던 소수 사람의 권리를 함부로 무시해도 되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물어보는 거야.”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윌레스는 이성으로 이를 통제하며 차분히 올리버에게 물었고, 올리버는 대답 대신 생각에 빠져들었다.

개인의 이익 창출을 제일 덕목으로 삼는 란다의 사고방식과 거리는 있었지만, 올리버에겐 이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여기라고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야. 여기도 돈 문제로 한 달에 몇 번씩 도끼와 칼로 서로 패싸움을 벌이는 곳이니까. 그렇다고 마탑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으음.…. 그럼, 마을은 어떻게 설득한 거죠? 지금 연구소가 있으니, 결국 합의했다는 거 아닙니까?”

"합의가 아니야. 마탑에서 소송을 걸어 빼앗았지.”

“소송요?”

"그래. 마탑에서 마운틴 페이스의 공익성을 부각하며, 멋대로 마을이 사는 건 옳지 못하다고 왕국 법원에 제소했거든. 이곳에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왕국 법원에서는 이를 수락했지.”

“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더군. 그리고 당연히 재판은 마탑이 승리로 끝났어. 애당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지.”

“이유가 뭐죠?”

"왕국과 마탑은 뭐가 됐건 같은 편인 데 반해, 이곳에 토착민인 켈족은 그냥 거슬리는 존재였으니까. 뭐, 마을 사람들이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던 것도 한몫했고…. 덕분에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연구소 용지와 겹쳐진 마을은 모두 강제 철거당해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나 다른 마을에 들어가거나, 저 아래 홀랜드로 가야만 했지.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은 일하는 곳으로.”

윌레스는 말을 끝마치며 물통에 든 물을 마셨다. 그는 겉으로 침착했으나, 속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분노가 감성적인 것이 아닌, 불합리함에서 오는 이성적인 분노라는 거였다.

물을 다 마신 다음 그가 질문했다.

“….혹시 질문 있나? 호기심이 많은 것 같은데.”

“예, 그럼 아까 전 들린 마을과 다른 마을은 왜 철거당하지 않았죠?”

"연구소 용지와 겹치지 않았거든. 연구소도 자잘한 일을 대신해줄 일꾼들이 필요하니까. 가령, 실험용 짐승을 잡아줄 사냥꾼이나, 약초를 캐다 줄 약초꾼 같은….. 마을 사람들도 자기들은 화를 피할 수 있을 거 같으니 굴복했지.”

"음, 재밌네요.”

“그래?”

“아, 죄송합니다. 제 말은 그냥 이 현상 자체가 흥미롭다는 뜻이었습니다. 마탑 연구실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요….. 제겐 좀 흥미롭거든요. 질문 하나 더 해도 될까요?”

"뭐지?”

"그럼, 이 근방의 마을 사람들은 마탑 연구소에 썩 좋은 감정이 없을 듯한데, 그런 것치고 우호적인 분들도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왜 그렇죠?”

"시간이 지났고, 당장 연구소에서 주는 일로 먹고사니까.”

"....?"

"의외로 보기 흔한 일이야. 사람이 원한을 안 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곧잘 잊거든. 특히, 힘이 없으면. 그래서 다 빼앗겨도 일부분만 돌려받으면 헤실거리지..…. 그게 무서운 거야. 그러다 나중에는 잊고 말지. 이 땅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 자기 뿌리가 어딘지.”

윌레스가 마지막 부분에 감정을 실으며 말했다. 진심 어린 두려움과 우려의 감정을 빛내며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친절한 대답 감사합니다.”

올리버의 감사에 윌레스는 자신이 너무 많이 말했다는 걸 깨달으며 놀라 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말한 모양이었다.

“.…이건 좀 불공평하군.”

"무엇이 말씀입니까?”

"나만 이야기하는 게. 서로 필요한 것이 있어 돕는 건데, 나만 이야기하는 건 불공평하잖아? 너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음,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그럼, 농담이라도 해볼까요?”

“갑자기 농담을?”

“아주 재밌는 농담이거든요.”

“..…좋아, 들어나 보자. 말해봐.”

"흠, 흠…. 술집에서 세 남자가 포커를 쳤습니다. 한 명은 켈족, 한 명은 왕국인, 마지막 한 명은 란다인. 이 세 명은-”

“-다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앞 운전석에 있는 눈구멍 사이로 운전수가 소리치듯 말했다.

올리버는 운전수 방향으로 말없이 바라봤다.

***

올리버와 윌레스는 두 번째 마을에 도착하자 트럭에서 내렸다.

두 번째 마을은 첫 번째 마을보다 더 배타적인 마을이었지만, 윌레스가 표식을 꺼내자마자 그러한 태도는 한 꺼풀 벗겨졌다.

윌레스는 바로 마을의 촌장인 노파를 찾아갔고, 노파는 초췌해진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다급히 마을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곳 마을 역시 앞의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실종된 인원수가 더 많았으며, 대부분 어린아이로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었다.

"혹시, 이상한 건 없소?”

"많습죠..…. 이상한 짐승이 가끔씩 보입니다. 마을을 감시하듯이요. 솔직히 짐승보다는 괴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밤중에 웬 유령이 돌아다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령…?”

"예. 무슨 여자 유령 같다고 하던데…, 여하튼 해가 지면 다들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지경입니다.”

앞의 마을과 고작 하루 거리였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한층 더 심했다.

아이를 잃어버린 마을 주민들은 윌레스를 마지막 희망처럼 바라보며 제발 도와달라 간청했고, 윌레스는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며,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심으로 말이다.

"주변 마을을 더 살펴봐야겠어.”

마을 촌장과 이야기를 마친 윌레스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말했다.

"주변 마을도 살펴볼 생각인데, 너도 같이 움직이지.”

"예, 그런데 갈 수 있나요?”

"인근에 가까운 마을이 몇 개 있거든.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뛰어가면 그리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야.”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뛰어간다라….. 그 말에 올리버가 잠시 생각하다 품 안에서 약도를 꺼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마운틴 페이스에 있는 연구소가 대략적으로 표시된 것으로 올리버는 이곳 마을 위치를 확인한 다음 주변 연구소를 찾아봤다.

"괜찮으시면, 마을 대신 연구소를 방문하는 건 어떨까요?”

“연구소?”

"예, 다른 마을에 가도 딱히 얻는 정보가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연구소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나쁜 생각이 아닌지 윌레스는 반대하지 않았다.

“어디 갈 거지?”

"여기 약초연구소가 근방에 있네요. 여기부터 가보는 게 어떨까요?”

올리버가 약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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