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33화 (233/633)

< 233. 협력 (1)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이리 와주셔서 기쁩니다.”

연구 지역에 물자를 나르는 트럭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첫 번째 마을.

그곳의 촌장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윌레스를 반겼다.

물론 촌장이 처음부터 반긴 것은 아니었다.

외부와 비교적 교류가 잦은 마을이라 시골치고는 배타성이 적었으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럼에도 이리 친절하게 맞이한 것은 윌레스가 꺼낸 표식 때문이었다.

표식을 건네자마자 트럭에 연료를 채우고, 자잘한 고장을 수리해주던 마을 정비기사가 화들짝 놀라며, 구원군이라도 본 듯 반갑게 촌장을 불렀다.

덕분에 올리버는 지금 윌레스의 곁다리로 나름대로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저분은......"

마을 촌장은 못내 궁금했는지 마을 회관 구석에서 조용히 콩 수프를 떠먹는 올리버를 보며 윌레스에게 물었다.

윌레스가 올리버를 보더니 적당히 둘러대 줬다. 열차 때와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었다.

“오는 길에 만난 일행.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데리고 왔소.”

"무슨 도움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음, 그보다 그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보시오. 시간이 마냥 넉넉하지 않으니.”

윌레스는 특유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말투에, 촌장이 쩔쩔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리 먼 길 와주셨는데….."

"여기 온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리 신경 쓰지 마시오. 같은 켈 족이지 않소.”

"네네, 감사합니다….. 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일단, 아시겠지만, 저희 마을을 비롯해 이곳 인근의 모든 마을에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주로, 아이나 젊은 여자, 청년들로요. 꽤 심각합니다.”

노인은 진심이었으며, 동시에 절박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작은 생활 공동체에서 젊은이의 노동력은 실로 귀중한 것이었으니.

실종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촌장 곁에 서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러나 윌레스는 공감하며 같이 슬퍼해 주는 대신 감정을 배제한 채 질문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더 강한 거였다.

"수색은 해 봤소?”

"당연히 해 봤습니다. 해보고 말고요!”

촌장이 소리쳤다.

“저를 비롯해 이 마을 사람들 모두 여기서 자고 났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근방은 모두 저희 뒷마당이나 다름없죠.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흔적도 없이….!”

"귀신이 한 짓이에요. 귀신요!”

한 뚱뚱한 중년 여성이 소리쳤다. 실종자의 가족인지 슬픈 감정을 빛내며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촌장은 끼어든 여성에게 소리치며 성냈다.

"어허! 괜한 헛소리하지 말라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서 혼란을 왜 줘?!”

“하, 하지만….”

싸우는 마을 사람들. 이들을 중재한 것은 다름 아닌 윌레스였다.

윌레스는 같은 켈족이란 점만 제외하면 타지 사람일 터인데, 마치 영주민을 다스리는 영주처럼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조금만 진정하시오…. 귀신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하는 말은 아닐 텐데.”

촌장에 의해 혼났던 중년 여성은 머뭇거렸지만, 윌레스가 괜찮으니 말해보라 달래자 이내 입을 열었다.

“밤마다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요.”

"짐승 울음소리 아니오? 이곳에 짐승이 많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소?”

"그렇지만, 이건 달라요. 진짜 기괴하거든요. 정상적인 소리가 아니에요. 거기다 이 근방에 사는 짐승들은 대충 알고 있어요. 늑대, 곰, 사슴…근데 그 짐승은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요. 동물보다는 괴물에 가까워요.”

"마, 맞습니다! 저도 우연히 봤습죠. 저 먼발치에서..... 그건 보통 짐승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소름이 끼쳤지요.”

"거기다 우릴 감시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흙냄새를 풍기는 약초꾼과 털가죽을 뒤집어쓴 사냥꾼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덕분에 마을 회관은 다시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워졌고, 촌장이 언성을 높이고 나서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찾아오자 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지만, 거의 다 사실입니다. 특히, 저희 마을만 이런 게 아니라, 저희와 자주 교류하는 다른 마을 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이 근방 모두가 저주라도 걸린 것 같습니다.”

“멍청한 질문일 수 있긴 하지만, 경찰이나, 군에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까? 조금 멀긴 하지만, 산 아래 홀랜드에 경찰과 군 병력이 있던데요.”

올리버가 나설 상황이 아님을 앎에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 질문했다.

카페 주인에게서 경찰과 군이 가난한 마을을 돕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혹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대한 상황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거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속 편한 소리 함부로 하지 마쇼. 우리가 바보라 경찰에 도움을 안 한 줄 아시오? 그놈들은 우리가 어찌 되건 상관 안 하는 족속이요.”

"암, 특히 이 근방에 멋대로 마탑 놈들이 들어오고 나서는 아예 없는 마을 취급이지….. 빌어먹을, 이게 말이 돼? 여긴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이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사는 건 조금 나아졌잖아? 우리 물건을 괜찮은 값에 사주고. 겸사겸사 운송 트럭에 우리 물건도 조금 실어서 받을 수 있잖아?”

"난 차라리 옛날이 나아. 그 재수 없는 놈들 때문에 내 친척은 저 아래 도시로 내려갔다고.…! 거기다 늘 재수 없게 지껄이잖아? 마치 제가 주인인 것처럼, 원래 이곳의 주인은 우린데!”

"에이, 그래도-”

놀랍게도 마탑 연구 시설에 관한 생각은 같은 마을 사람들 간에도 차이가 나는지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말싸움으로 번지려고 할 때쯤 윌레스가 탁자를 톡- 톡- 두들겨 부드럽게 사람들의 싸움을 말렸다.

섬세하면서도 위엄있는 행동.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마을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이야기해보시오. 내가 책임지고 알아볼 테니.”

***

나름 기가 세고 거칠어 보이던 마을 사람들은 윌레스의 요구에 놀랍도록 순종하며, 실종된 사람들에 관해 설명했다.

숫자, 시기, 장소 그 외 눈에 띄는 소문이나 소식 등등.

윌레스는 차분히 들은 정보를 메모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이야기를 충분히 주고받은 뒤 쉴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존경심을 빛내며 마을 회관 침대에 윌레스를 안내해줬으며, 올리버와 트럭 기사는 바닥에 깔고 누울 매트와 모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늦은 새벽, 잠들려는 찰나,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윌레스가 올리버 곁으로 다가왔다.

"잠자리는 편안한가? 불편하면 침대 양보해줄 수 있는데?”

"예? 아뇨. 괜찮습니다. 이미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어서요. 잠자리는 이 정도면 제겐 충분합니다.”

진심이었다. 생활 수준이 좋아졌지만, 고아원과 광산 시절을 잊은 것은 아니기에.

“마탑 출신치고는 씩씩하구만. 요새는 깃털 침대 아니면 잠도 못 잔다는 놈들이 많을 텐데.”

올리버는 마탑에 대해 잘 아신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다른 말을 했다.

"전 엄밀히 말하면 일개 직원인지라, 마탑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마탑에서는 직원조차 함부로 뽑지 않지. 그게 교수 개인 직원이면 더욱 그렇고. 뒷돈을 줄 만큼 있는 집 자제이거나, 혹은, 교수가 관심을 가질 만큼 재주가 좋아야 가능한데, 내가 볼 때 넌 후자일 거 같아….. 혹시, 나랑 만난 적 있나?”

"예.”

“그래?”

"예, 열차에서 만났지 않았습니까.”

"......."

"저기, 괜찮으시다면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지?”

“왜 이 의뢰를 받으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차에서 제게 말해줘도 모를 것이라 하셨는데, 그럼에도 이유를 듣고 싶어서요.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왜 듣고 싶지?”

"들어봐야 이해할 기회라도 생길 테니까요.”

그 말에 윌레스가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올리버의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켈 족은 왕국의 보호를 받기 어려워. 도시라면 모를까, 이런 외진 곳에선 치안을 기대하기 힘들지.”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치안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도시 이상으로 갖은 사건 사고가 무수히 발생하지. 도적, 흑마법사, 흉악범, 포악한 지주 등. 누구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도와주질 않는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 켈 족은 서로를 도와줄 커뮤니티를 만들어.”

“커뮤니티요?”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자주 교류하는 사람들끼리 안부를 주고받으며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는 거지. 나도 그거에 하나일 뿐이고."

커뮤니티라, 과거 딘클리지에게서 들었던 X구역 공동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의 부재로 서로 지키기 위해 뭉친 집단.

"그럼….. 커뮤니티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윌 씨는 그걸 받아들이신 거군요.”

"그래. 여기 출신인 놈이랑 건너 건너로 아는 사이거든. 거절할 수도 있지만,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지.”

진심.

“오…. 말씀하신 대로 잘은 이해되지 않지만, 뭔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윌 씨는 뛰어난 해결사 같은데 그런 것에 신경 쓰실 필요가 있습니까?”

실력이 뛰어나든 안 뛰어나든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법이야. 특히, 연합 왕국에서 켈 족은.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필요해.

란다 사람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마.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어쨌건, 난 이 일을 잘 해결하고 싶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마탑 연구소에서 일어난 수상쩍은 실종이 이 마을에서의 실종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테니.”

“예."

올리버는 부정하지 않았다. 연구 지역인 마운틴 페이스를 중심으로 마을과 마탑 연구소에 발생한 실종 건은 누가 보더라도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윌레스가 제안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서로 도와주는 게 어떨까?”

“도와준다고요?”

"그래, 난 이 근방의 모든 마을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데 반해 넌 그러기 힘들지. 이 근방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배타적이거든.”

"예."

"반대로 난 마탑 연구 시설에 들어가긴커녕 정보도 얻을 수 없지. 열차에서처럼 네가 내 고용인이라고 이야기한 뒤 나도 같이 데려가 정보를 공유해 주면 어떨까? 그럼, 어떠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수색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어 도움이 될 거야. 교수 대리로 온 거면 어떠한 사정이 있을 텐데, 일을 최대한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올리버가 케빈 대신 오긴 했지만, 이왕이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이야기긴 했다.

막말로, 올리버가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면 다시 케빈을 보낼지도 몰랐고.

올리버는 이왕이면 케빈을 돕고 싶었다. 일단, 자신이 그의 직원이었고,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케빈의 목표와 의지가 예쁜 빛을 뿜었기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윌레스의 말대로 가급적 해결하고 싶었다.

"혹시 내가 무슨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된다면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예, 그럼 같이 협력하죠.”

".....뭐라고?”

"같이 협력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윌 씨 말씀대로, 목표가 같고, 도울 부분도 있으니까요. 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선뜻 수락하는 올리버의 태도에 윌레스는 약간 놀란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수락해 놀란 눈치였다.

윌레스의 반응에 올리버는 덧붙여 말해야 했다.

“뭐, 윌 씨께서 다른 속셈이 없다고 약속했으니까요.”

“그렇게 믿어주니 고맙군.”

"윌 씨는 좋은 분 같아서요. 번거로워질 수도 있는데, 인질까지 구해주셨잖습니까?”

올리버가 열차 습격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승객들 틈바구니에 섞여 일부러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인질이 위험해지자 위험을 감수하고 나섰다.

윌레스는 마땅히 할 말이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올리버는 그런 그를 보며 대뜸 말했다.

"같이 협력하게 된 의미로 혹시 뭐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가는 동안 켈 족이나, 노스랜드에 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갑자기 관심이 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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