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우연치 않은 동행 (2) >
올리버는 윌레스에게 열차로 가는 동안만 동행을 제안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기서 윌레스를 만난 게 반가웠고, 가죽 가면을 뒤집어썼다곤 하나 위험을 감수하며 홀로 홀랜드로 가는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윌레스는 올리버의 제안을 썩 반기지는 않았지만, 고민 끝에 수락했고, 올리버는 그와 같이 앉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라고 해봐야 윌레스의 가짜 이름과 홀랜드에 가는 이유를 묻는 정도였지만.
‘내 이름은 윌이고, 해결사야..…. 홀랜드에는 의뢰받은 일이 있어 가는 중이지.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너는?’
‘마탑 일 때문에 홀랜드에 방문하는 중입니다. 저도 자세한 건 이야기할 수 없지만요.’
그렇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숨긴 채 올리버와 윌레스는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눴고, 별다른 문제 없이 홀랜드에 도착해 헤어졌다.
"만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나도. 일이 잘 풀리길 빌지."***
“음, 생각보다 일이 안 풀리네…..."
올리버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홀랜드에 도착하고 윌레스와 헤어진 후 올리버는 에반 대위의 조언대로 여관에 들러 씻고 새 옷을 구매해 갈아입었다.
전투로 인해 온몸에 피칠갑을 해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기에.
실제로 여관까지 가는 도중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경찰들이 와 검문했다.
마탑 신분 보증서와 에반 대위의 손편지로 경찰서에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옷을 갈아입은 후, 하룻밤 여관에 묵은 다음 올리버는 곧바로 홀 랜드의 유지(有志)인 홀 가문을 찾아가 봤다.
연구 지역이 있는 마운틴 페이스는 나름 오지라, 그쪽으로 가는 교통편을 얻기 위해서는 홀 가문의 도움을 받는 편 것이 수월했기에.
아웃포스트 지부에서 소개장도 써줘 그들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지금은 어려울 것 같소. 일이 너무 많아..…. 좀 기다리시오.’
그들은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올리버에게 붙여줄 차편이 없다고 했다.
올리버가 정 안 되면 그쪽으로 갈 운전수라도 소개해 달라 했지만, 그 역시 핑계를 대며 거부했다. 운전수들 역시 바빠 그럴 사람이 없다고 말이다.
명백한 거짓이었다.
아웃포스트 지부 사람들에게 들은 것과 내용이 달랐고, 뭣보다 그들의 감정 상태도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곳은 홀 가문의 가주 상태였다.
분명 아웃포스트에서 듣기론 가주는 아프다고 하였는데, 그는 건강했다. 올리버를 직접 만나 볼 정도로 말이다.
질 좋은 흑마법 약물을 먹었는지, 몸에 흑마법의 기운이 서려 있었으며, 그뿐 아니라 올리버에게 과하게 관심을 가졌다.
어디서 지내냐는 둥, 기다리는 동안 자기네 집안에서 묵어도 좋다는 둥..…. 뭐랄까, 란다 특유의 음모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당장 올리버의 일이 아니었기에 올리버는 정중히 거절하며 그곳을 나와 지금 카페에 앉았다.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말이다.
걸어가야 하나 싶었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차를 타도 길이 험해 2, 3일은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걸어간다면 몇 배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뭣보다 그냥 갔다 온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그곳의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
함부로 시간과 힘을 낭비할 수 없었다. 차가 필요했다.
‘뭣보다 길이 익숙지 않아, 길을 헤맬 수도 있어….. 음, 마법이나 흑마법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구나. 신기하네?’
올리버는 문득 마법과 흑마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다시 깨달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왜냐면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은 교통수단을 어찌 확보해야 할지 몰라 이리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하고 즐거웠다.
"커피 한 잔 더 드릴까?”
두꺼운 안경에 수염을 대충 기른 노인이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팔뚝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그의 손에는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거 쇼트브레드 쿠키? 도 한 접시 부탁드립니다.”
"쿠키는 돈을 받겠소.”
"커피도 돈을 내겠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그냥 마실 수는 없으니까요.”
올리버가 알이나, 천사의 집 아가씨들에게 배운 대로 칭찬을 했다. 실제로 커피 맛이 나쁘지도 않았고.
다행히 칭찬이 통했는지, 노인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왕국 사람 치고 말을 예쁘게 하는구먼.”
"참고로 전 란다에서 왔습니다.”
"란다나 왕국이나 우리에겐 똑같소.”
노인이 뜨거운 커피를 쪼르륵 따라주곤 쇼트브레드 쿠키를 가져왔다.
"근데, 란다 사람이 이런 촌구석에는 어쩐 일이오. 보아하니, 이런 곳에 올법한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노인이 올리버의 차림과 행동거지를 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소.”
"일이 있어 방문했습니다. 혹시, 마운틴 페이스로 갈 수 있는 운전기사 알고 계십니까?”
“마운틴 페이스는 왜?”
카페 주인이 반대로 질문했다.
"관광으로 갈만한 곳이 아닌데?”
올리버는 카페 주인의 감정을 봤고, 명확한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걸 깨달았다.
"자세한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마탑 일 때문입니다.”
올리버가 임무의 비밀을 지키되, 노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절충해서 말했다. 이 정도는 말해도 별문제 없을 터였다.
도움을 받으려면 그만한 이유는 이야기하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올리버는 카페 노인이 더 캐물으면 어떻게 정중히 거절할지 고민하였는데, 노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혹시, 실종자 때문인가?”
***
실종자. 노인이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대상은 달랐다. 노인이 말한 실종자란, 란다의 연구 기관이 밀집한 마운틴 페이스에서 사는 노스인 주민들이었다.
마운틴 페이스에는 노스인들은 각기 십여 구의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하는데, 문제는 한 달 전부터 주기적으로 실종자가 발생해, 현재 그곳 마을 중 실종자가 없는 마을이 없다고 했다.
‘근데도 여기 경찰들이나, 왕국군은 관심도 없지. 그들이 이 땅에 원하는 건 광물뿐이니.’
그래서인지 카페 노인은 올리버에게 차량을 얻어 탈만 한 곳을 알려주었다. 올리버가 방문한 자세한 이유가 뭐건 잘하면 겸사겸사 마운틴 페이스의 마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막히나 싶었건만,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풀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일이 막혔다.
"아, 못 간다니까. 돈이 문제가 아녀.”
"아, 딴 사람 알아보쇼. 딴 사람…..”
"영덩이에 종기가 나서 운전 못 혀. 못 한다고.”
카페 주인이 알려준 운송조합으로 간 올리버는 마운틴 페이스로 데려다줄 운전기사를 찾아봤지만, 반응은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그냥 싫다는 사람, 아파서 못한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등 이유는 다 달랐지만, 감정을 보는 올리버는 누군가에게 압박을 받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올리버는 그게 누군지 알 거 같았다.
거칠어 보이는 운전수들에게 압박을 가할 자라면 이 도시의 유지(有志)밖에 없을 테니.
홀 가문의 가주 말이다.
벌써, 거절당한 게 다섯 명째. 앞뒤 전황도 파악한 올리버는 이곳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운전기사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마탑의 연구 지역인 마운틴 페이스로 데려다줄 수 없을지 계속 물어보고 다녔다.
예의 바르게 부탁하고, 사비까지 털어 적잖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반응은 하나같이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식으로 거절당한 사람이 두 자리 숫자가 되자, 기사들이 모여 쉬는 술집 겸 조합 사무실에 이야기가 퍼졌고, 그때 올리버는 남들과 다른 감정 상태를 지닌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올리버의 제안을 듣자 다른 이들처럼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마치, 도둑이 다른 도둑과 마주친 듯 말이다.
그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고, 올리버가 바로 다가가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다른 기사들처럼 못 간다고 했지만, 올리버는 그에게서 어떠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가령......
"아, 진짜 귀찮게 하는구만. 이래서 왕국 놈들은!”
큰 덩치의 트럭 운전기사가 올리버를 붙잡고는 진심으로 성가시다는 듯 소리쳤다.
올리버는 이에 대해 항변했다.
“전 엄밀히 말하면 란다 사람에 더 가까울 겁니다.”
진심이었다. 포레스트나, 머피, 알, 제인, 코코 등 남녀신분에 가리지 않고 란다에 생활하는 사람들을 자신을 란다 사람이라고 칭했다. 자부심을 간직한 채.
그러니 올리버도 그들과 같이 말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그게 딱히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씨발, 왕국 놈들 잘난 척은.”
덩치 하나가 더 와 둘이서 올리버의 양 겨드랑이에 팔뚝을 끼워 들어 올렸다.
공중에 붕 뜬 다리와 함께 올리버는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던져서 쫓아내는 게 아니라, 바닥에 내려주는 최소한의 배려는 해줬다는 점이었다.
"거, 한 번만 더 귀찮게 했다간 엉덩이를 걷어차 줄줄 알아!”
주먹에 자신 있어 보이는 덩치가 올리버에게 소리치며 경고했고, 원하는 것을 얻은 올리버는 정중히 사과하며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원하는 것은 다 얻었기에.
***
쫓겨난 올리버는 주차장이 달린 운송조합 사무실을 떠나는 척하다 다시 돌아와 저 멀리서 사무실 지켜봤다.
그리고는 말없이 기다렸다. 하늘이 오렌지색 노을로 물들고, 군청색으로 변하며, 시커먼 밤하늘이 될 때까지 말이다.
하늘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주변의 건물들도 하나둘 불이 꺼졌으며, 그건 운송조합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자정이 지나자 마지막까지 먹고 마시던 이들도 불을 끄고 문을 닫으며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운송조합 사무실의 인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일반적인 눈으로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흑마법사의 눈을 가진 올리버에겐 아니었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고, 조용히 숨어 있는 사람을 하나…. 아니 둘 볼 수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한 명은 익숙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쫙 펴 굳은 뼈를 풀고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였다.
목표물은 기척을 숨긴 채 움직이는 두 감정.
그들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어두운데 괜찮겠나?”
“걱정하지 마시죠. 이곳에 지낸 지가 몇 년째인데….. 이곳 지리라면 이미 손바닥 안입니다.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습죠.”
그 말과 함께 자동차의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차가 움직이려는 것.
"혹시, 저도 같이 탈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도둑고양이처럼 조심히 두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전 올리버의 제안에 흠칫 놀란 트럭 운전수와 가죽 가면을 뒤집어쓴 윌레스와 다시 마주쳤다.
***
부르릉. 부르릉. 부르크크킁.
낡은 소형 트럭이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산길을 삐걱삐걱 올라갔다.
목적지는 마운틴 페이스로 승객은 짐칸 트럭에 탄 올리버와 윌레스였다.
"의뢰 받은 일이라는 게 이거였습니까?”
"그래."
신기하게도 윌레스가 부탁받은 일이란 올리버와 같은 실종자 수색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올리버는 마탑 연구소 직원이 대상인 데 반해, 윌레스는 연구 지역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이라는 거였다.
"원래는 혼자서 갈 생각이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하지 마. 좋아서 도운 게 아니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올리버가 만약 자신을 데려가지 않으면 시끄럽게 하겠다고 정중히 협박했기에 별수 없이 올리버를 태운 것에 불과했다.
"별것도 아닌 녀석이었으면 바로 멱을 땄을 텐데. 아쉬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윌레스가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알고 기다린 건지?"
"아까 낮에 운전기사님들에게 마운틴 페이스로 데려다주실 분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여기 기사님 반응이 이상해 혹시 몰라 기다려 봤습니다.”
"아직도 마탑에 이런 미친놈이 있는 줄 몰랐군.”
윌레스가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올리버가 물었다.
"마탑에 대해 잘 아십니까?”
그 말에 윌레스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긴, 켈 자유해방군의 윌레스라는 걸 숨기는 지금으로서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일 테니….. 그래서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마운틴 페이스의 실종자 임무를 맡으신 겁니까?”
“뭐?”
"제가 듣기로는 연구 지역에 있는 동네는 모두 가난한 시골이라고 해서요. 그럼, 돈도 제대로 받기 힘들 텐데….. 해결사치고는 드물지 않습니까?”
올리버는 자신의 상식 한에서 말했다. 해결사에게 있어 폭력이란 위험을 감수한 상품. 그렇기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 때만 그 폭력을 사용했다. 포레스트도 그게 맞다고 했고.
하지만 윌레스는 그런 관점으로 일을 수락한 게 아니었다.
뭐, 애당초 그는 해결사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유가 궁금해 물어봤다.
그가 입을 열었다.
"란다 사람인 넌 말해줘도 모를 거야.”
"네?”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무슨 뜻인지 되물으려는 찰나, 앞의 운전석 눈구멍이 열리며 운전기사가 말했다.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쉬었다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