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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29화 (229/633)

< 229. 우연치 않은 만남 (1) >

마탑 행정부서.

이곳은 어느 학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종의 독립 부서로, 폐쇄적인 마법 학파가 마탑 본연의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초창기 설립된 곳이었다.

물론, 각 학파를 보조하기 위한 부서다 보니 그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역할과 권한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폐쇄성을 유지하려는 학파 간의 협력과 교류를 촉진하고, 과도한 경쟁과 다툼을 막기 위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집행할 권한을 가져, 이를 바탕으로 학파 간의 이견조율이나, 협력을 촉구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케빈을 찾아온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연금술학파와 생명학파를 비롯한 다른 분들께서 요청하신 겁니다.”

행정부서의 직원 휘트니가 케빈에게 말했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깔끔하고 빈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표정은 차가워 상대방을 절로 위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케빈에게는 별반 소용이 없었지만, 그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무적이고 딱딱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니까. 왜 하필 나냐고 묻는 거야. 학기가 시작한 마당에.…. 당장, 내일 수업은 어떻게 하란 거지?”

맞는 말이었다. 행정부서에서 요청한 일은 노스랜드에 있는 연구 지역을 방문해 살펴보는 것으로, 옆 구역을 다녀오는 것과 수준이 달랐다.

노스랜드는 셀랜드 북쪽에 위치한 사실상 란다의 반대편. 그곳을 갔다 오는 건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다.

그런 일은 현재 수업을 맡고 있는 교수에게 부탁하다니,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어려운 부탁인 거 압니다. 그래서 저희도 최대한 교통편을 지원해 드릴 생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하는군. 일을 요청했는데, 교통을 비롯해 필요한 지원을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실로 맞는 말에 휘트니의 기가 살짝 꺾였다. 하지만, 케빈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교통편을 지원한다고 해도 최소 일주일은 걸릴 일 아닌가? 그쪽 연구 지역은 노스랜드 안쪽에 있는 데 반해 보안상의 이유로 포털 마법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으니.”

"......."

"포털마법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노스랜드 경계지. 그 이후부터는 열차와 차 혹은 도보를 통해 이동해야 하지. 운이 나빠 교통에 문제가 생기면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 있고….. 설마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나?”

케빈이 추궁하며 노기가 섞인 눈빛으로 휘트니를 노려봤다.

감정적인 분노가 아닌 합리와 이성에 따른 분노.

휘트니는 곤혹스러움을 빛내면서도 애써 침착한 척 입을 열었다.

"예, 그만큼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말한 연구 지역에는 저희 마탑의 연구시설이 제법 몰려 있습니다.”

“여러 짐승과 약초가 나는 곳이니. 인구밀집도도 낮아 눈치도 덜 볼 수 있고.”

"예, 그래서, 연금술학파의 포션 연구소와 생명학파의 키메라 연구소 등 여러 연구소가 있는 거죠.”

교수 연구실 한쪽에 가구처럼 서 있던 올리버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명학파의 연구소라 하니 마텔의 비밀 지하 연구실이 떠올랐다.

"......."

"당연히 연구원들도 있죠. 그 숫자가 제법 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한두 명씩 꾸준히 실종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실종일 가능성은?”

“수색하고 있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흔적자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일반 마법사들을 파견하면 되잖나?”

"이미 두 차례 파견해 봤습니다. 그들은 연구 지역에 있는 연구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탐색하였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케빈의 감정이 귀찮음에서, 약간의 관심과 진지함으로 변했다.

“마탑에서 보낸 마법사마저 실종된 거면 본격적인 수색대를 파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피해 규모가 작습니다. 또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중앙의회에서 시비 걸 거리가 생겨서요.”

"......."

"하지만, 아무리 미미하다 해도 피해는 피해. 계속 볼 수가 없어 케빈 교수님께 이리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교수님은 노스랜드에서 복무해 그곳에 대해 잘 알고, 반군 토벌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시지 않았습니까?”

"고작 몇 개월이지.”

"하지만, 가장 근래 경험자이지 않습니까. 다른 학파의 교수님들도 이리 부탁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휘트니가 들고 있는 서류철에서 편지지를 다수 꺼내 내밀었다.

마력이 감도는 밀랍 봉인과 편지봉투 테두리의 푸른색, 붉은색 줄무늬 탓에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정성스러운 편지 봉투군.”

"물론, 이 요청은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다른 교수님들은 모두 감사할 겁니다.”

숨겨진 뜻이 있는 듯한 말에, 케빈은 마탑 행정부서 소속 휘트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생각 좀 해보지.”

휘트니는 만족한 대답을 들은 듯 조용히 인사하곤 밖으로 나갔다.

몸을 돌리는 와중 올리버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또각. 또각. 또각.

발소리가 점차 사라지며 침묵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케빈이 주문한 책을 가져다주러 온 올리버는 그 침묵 속에서 책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두고 가는 게 나을지 고민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케빈이 대뜸 물었다.

"조용히 책을 놔두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리버의 대답에 케빈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올리버를 봤다.

“..…제가 실수한 건가요?”

"너니까 실수는 아닐 수도 있겠다….. 저 요청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거다.”

올리버는 살짝 놀랐다. 평소 이런 종류의 일에 관해서 질문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해 성심껏 대답했다.

"일단, 마탑 교칙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올리버가 과거 읽은 [마탑 교칙] 서적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마탑의 교수는 분명 교수였지만, 동시에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 합당한 이유와 합의만 있다면 이런 식으로 동원할 수 있었다. 물론, 강제력을 발휘해 명령할 수도 있지만, 그럼 그 절차가 몹시도 복잡해졌다.

"그래, 교칙상으로는 문제없지. 그럼, 내가 저 요청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나?”

"아뇨.”

올리버가 바로 대답했다.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건 분명 교칙상 문제가 안 되지만, 달리 말하면 교수님이 거절하셔도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케빈이 희미한 만족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군. 틀린 말이 아니야. 그렇기에 행정부서에서도 도움을 ‘요청’한 거지….. 내가 만약 요청에 응하면 어떻게 되지?”

이번에도 머뭇거림 없이 대답이 나왔다.

"교수님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고려해 휴강하거나, 혹은 다른 교수님께서 수업을 맡으실 겁니다.”

“바로, 그거지. 저쪽은 그걸 노리는 거지.”

저쪽? 올리버는 의구심을 품으며 물었다.

"교수님. 감히, 교수님 말씀에 토를 달려는 건 아니지만, 방금 오신 직원분께서는 그런 속셈을 가지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물론, 교수님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은 건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일개 직원에 불과해. 내가 말한 저쪽은 그녀에게 이러한 요청을 하게끔 만든 누군가야.”

"누군가가 누구죠?”

“날 싫어하는 누군가겠지. 힘과 영향력만 있으면 이런 요청을 하게끔 우회적으로 조작할 수 있거든.”

케빈이 익숙한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거리에서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피에로와 비슷한 손동작이었다.

"넌 확실히 눈이 좋은 것 같지만, 눈에만 너무 의지하지 마. 이 세상에는 자기 모습을 숨긴 채 체스말만 움직여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도 있으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것도 꽤나 묵직한.

갑자기 멀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탑은 어느새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이 아닌 하나의 정치판이 되어 버렸다는....

올리버가 자신의 짧은 생각에 사과하려 할 때, 케빈이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 못하는 목소리로.

"물론, 내 생각이 틀린 걸 수도 있어. 그저 내 피해망상인….. 노스랜드는 험한 곳이니, 정말 실력 있는 마법사를 파견하고 싶을 것일 지도 모르지.”

"그쪽이 험한가요?”

"어, 합리적인 법체계보다는 관습법과 씨족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곳이거든.…. 왕국의 행정력은 철도와 광산 도시에만 미치지, 그 구간을 벗어나면 심심치 않게 노상강도나 위험한 짐승을 마주할 수 있어.”

오..…. 흥미로운 이야기에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같은 연합왕국인데도 그리 그리 차이가 나다니.

아니, 가만 생각해보니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당장 란다와 그 주변 도시만 봐도 삶과 문화가 차이가 나지 않은가? 저 멀리 있는 노스랜드와 차이가 있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다.

"어쨌건 고민이군.…. 이렇게 편지까지 보낸 거 보면 날 아주 보내고 싶다는 건데, 안 가면 날 겁쟁이 혹은 직무유기나 하는 무책임한 놈으로 몰아가겠지.”

케빈이 아직 뜯지 않은 편지 봉투를 흔들었다. 마치, 정성스러운 편지가 아닌 정성스러운 올가미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올리버가 조용히 손을 올렸다.

"뭐지?”

"우선,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뭘?"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셔서요. 덕분에 좀 더 많은 걸 보고 배운 느낌입니다.”

올리버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그 말에 케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이유를 말한 건 다양한 정보를 주입해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놈은 정말 순수하게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질문을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해봐.”

"만약 가게 된다면 다른 교수님이 케빈 교수님의 수업을 대신 이어받을 수도 있는데, 그건 싫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내 수업이니까.”

“하지만 원래 수업을 맡길 원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에 좋아하는 것만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니거든. 못마땅한 것도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호오, 흥미로운 말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순간이나마 빛난 케빈의 감정이었고.

여러 감정이 뒤섞였는데, 꽤 예뻤다.

그와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케빈의 목표가 무엇일지 말이다. 마법사와 마탑, 수업조차 싫어함에도 최선을 다하게 하는 그 목표가 궁금했다.

"즉, 교수님께서는 수업을 계속 진행하면서도, 이번 요청을 별문제 없이 넘기고 싶다는 말씀인지요?”

"욕심을 낸다면 그렇겠지?”

“음…. 그럼, 제가 가보면 어떨까요?”

"뭐?”

“제가 그 연구 지역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교수님 대리로요.”

***

올리버의 제안은 간단했다.

케빈은 마탑에서 계속 수업을 하며, 마탑 행정부에서 요청한 연구 지역 수색을 올리버에게 맡기는 거였다.

규정상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상황이 급한 게 아니면 교수는 자신의 신뢰하는 직원 혹은 개인 제자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으니.

물론, 이 경우 문제가 생길 시 교수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했지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케빈이 요청받은 일을 맡으면서도, 수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자신이 마탑에서 잡무만 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케빈에게 도움이 될 거라 이야기하며 제안했다.

케빈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선선히 그 제안을 받아들여 줬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케빈은 이 사실을 마탑 행정부서에 통보했다.

마탑 행정부서는 케빈의 결정에 불만인지 통신 장치 너머로 뭐라 이야기했으나, 케빈이 원칙에 의해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압박감 있는 말투로 말하자 이내 꼬리를 말았다.

마탑 교칙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니.

그렇게 올리버는 약간의 여비와 마탑에서 준 출입증, 신분 보증서를 챙겨 떠나기로 했다.

마력 포털을 이용해 떠나기 전 케빈이 노스랜드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조언해줬다.

마을이나 도시 안에는 왕국 사람들을 싫어하는 노스인들이 많으니 바가지나 사기를 조심하라고 했으며,

마을과 도시 밖으로는 야생 동물과 켈 반군 그리고 노상강도를 조심하라고 했다.

노스랜드 특유의 가난함 환경과 노스인의 특유의 호전성 탓에 노상강도가 많고 잔인하다며 말이다.

그리고 열차에 올라탄 올리버는 지금 그 가난과 호전성 탓에 생긴 존재를 창문 밖을 통해 보고 있었다.

"당장 열차를 멈춰라..…!!”

개조 차량 위에 올라탄 사나운 마력은 품은 근육질 사내가 양날도끼를 어깨 위에 걸친 채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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