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휴가 복귀 (2) >
'음…... 역시 이상한데.’
마탑 정문을 지나 부지 안쪽에 위치한 원소학파 타워에 도착한 올리버가 생각했다.
어째 사람들이 점점 자신을 주시하는 거 같았다. 열 명 중 한두 명꼴로 말이다.
물론, 그리 대단한 숫자가 아닐지 모르지만, 마탑은 작은 도시와 같은 규모.
그 크기에 걸맞게 사람들 역시 많아 열 명 중 한두 명도 모아보면 꽤 많은 수준이었다.
즉, 그냥 넘길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거였다.
"저 사람이? 홍인(紅人) 개인 직원이라고.”
"맞아.”
"저 사람이 데릭이랑 비긴? 별거 없어 보이는데.”
"나도 동감.”
"그냥 연습 시합이었으니, 대충 상대해 준거 아닐까?”
"여기서 그런 걸로 봐주는 놈이 어딨어?”
“내가 듣기로 데릭을 가지고 놀았다던데?”
“아냐, 막기에 급급하다고 했어.”
“막상막하라고 난 들었는데.”
"뭐가 됐건, 마력불생성증 결함품이랑 비겼다는 거잖아?”
"킥킥. 그건 그렇지. 자존심이 아프겠어.”
올리버는 자신이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의 눈과 주변의 수군거림이 착각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마탑의 몇몇 학생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부는 그저 호기심, 흥미였으며, 다른 일부는 불쾌함, 의심과 같은 감정을 빛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 깊이가 깊거나 진지하지 않고 얄팍하다는 정도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며칠 조용히 있으면 다들 잊을 수준.
볼일만 보고 다시 휴가를 신청할까 싶었지만, 또 다른 수군거림을 듣고 이내 관두기로 했다.
"근데, 왜 여태까지 못 봤지?”
"휴가 신청도 안 하고, 며칠씩 안 나왔데.”
“며칠씩이나? 뭐지, 다른 도련님들도 그런 짓은 잘 안 하잖아?”
"내가 뭘 아나. 중요한 건 케빈 그 성질 더러운 양반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는 거야.”
“그 사람 피부색처럼 포악한 성격 아닌가? 교수님들이 욕하는 걸 내가 몇 번이나 들었는데.”
“그러니까….. 듣기로는 무슨 도련님이라 하던데. 도련님이 왜 케빈 같은 교수 밑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또 며칠 쉰다고 조용해질 거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더 이상한 소문이 퍼질지도.
도련님이라니….. 올리버가 마탑에 안 나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역시, 마탑 학생분이랑 시합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나?’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올리버도 시합에 들어가기 직전 이에 관해 우려를 표한 바 있었다.
케빈 역시 눈에 조금 띄는 게 약간 더 나을 거라고만 했을 뿐,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 적은 없었다.
시합의 여부를 떠나 휴가를 자주 떠난 것도 눈에 띄는 요소이기도 했다.
심지어 올리버는 정식 신청도 하지 않고 무단으로 쉬었기에 더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억울한 부분이 없냐면 그건 아니었다. 무단으로 휴가를 쓴 것은 케빈이 그러라고 하였기 때문이었으니.
그러나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건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이었고, 배려를 받으면 받았지, 케빈에게 피해를 입은 것은 없었다.
누굴 원망할 입장이 아니었다.
애당초 이런 일을 일일이 신경 쓸 거면 마탑에 들어와서도 안 됐고 말이다.
누가 뭐라든 1차 책임은 올리버 자신에게 있었다.
‘일단, 교수님한테 찾아가 여쭤보는 게 순서겠다. 상황이 뭔지 이해가 안 돼.’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
"연락도 없이 오랜만이군."
깔끔하게 정리한 흑발과 다른 교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명품 정장을 맵시 있게 입은 던바가 빈틈없는 태도로 올리버를 반겨주었다.
….아, 정정. 엄밀히 말하면 반겨준 것은 아니었다.
누굴 반겨주기에는 그는 너무 바빠 보였다. 약간 거칠어진 피부와 눈밑에 막 생긴 다크서클, 피로가 쌓여 약간 퇴색된 생명력이 아니더라도, 책상 위에 쌓인 서류와 교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많이 바쁘십니까?”
"조금.”
케빈이 부정하지 않았다.
"수업을 3개나 맡다 보니. 거기다 연구를 위해 일정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고, 몰아서 하니 체감상 1.5배 정도 더 바쁜 것 같아.”
과장이 아닌 사실이었다. 감정 상태와 그동안 본 케빈의 성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허세나 엄살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수업이 하나 생길 때마다 잡무가 늘어나는 것도 한몫하고.”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리버는 사과했다. 그 잡무를 대신 나눠 짊어져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올리버 자신이었기에.
그러나 케빈의 반응은 전혀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됐어.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심. 케빈은 곧 그 이유를 스스로 말했다.
"애당초 난 직원을 두지 않았거든. 즉, 지금 하는 일은 원래 내가 하고 있었어야 할 일이라는 거지. 네가 신경 써야 할 게 아니야."
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케빈의 말대로 원래 케빈은 직원이 없었다. 멀린도 케빈도 마탑 사람도 이에 관해 한 번씩 이야기했으니.
홍인(紅人)인 케빈은 직원을 구하기 어려웠고, 케빈 역시 구태여 직원을 구할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올리버가 케빈의 직원이 된 것은 그저 멀린에 의한 갑자기 결정된 사안.
즉, 케빈의 말대로 올리버가 휴가를 가든 말든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막말로, 이 업무는 본래 케빈이 감당해야 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올리버는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 약간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 됐건 자신의 케빈의 직원이었고, 일을 돕는 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죄송합니다. 다시 휴가를 떠날 수 있긴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다시 일을 돕겠습니다.”
휴가를 떠난 건 사과하지만, 또 휴가를 가겠다고 말하는 모습에 쉬지 않고 서류를 작성하던 케빈은 손을 잠시 멈추며 올리버를 봤다.
불쾌함보다는 어이없는 감정을 빛냈다.
"그거참 제멋대로인 말이군. 미안하지만 또 휴가는 갈 거라니. 뭐, 애당초 그러기로 한 거라 따질 생각은 없지만, 그럼, 사과를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그렇지만 죄송한 것은 죄송한 거니까요.”
"즉, 넌 내 감정보다는 네가 사과하고 싶은 게 우선이라는 거군?”
예상치 못한 질문에 올리버가 멈칫했다. 여태까지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확실히 틀린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올리버는 케빈의 상황이나, 기분보다 자신이 미안한 게 더 중요했다.
“음.…. 맞는 말씀인 거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죄송합니다.”
이어지는 사과에 케빈은 수수께끼라도 마주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할 수만 있다면 널 실험실에 가둬놓고 한 10년 동안 관찰해보고 싶어. 사과 방식이 이해가 안 되거든 진심으로 말이야….. 뭐, 이곳에 제멋대로인 인간이 너 하나뿐이겠느냐마는.”
케빈이 감정을 섞어가며 말한 뒤 다시 서류 작업에 들어갔다.
"좋아.…. 원한다면 다시 업무를 나눠주도록 하지. 하지만, 더 이상 수업에 관련된 서류 업무는 나눠주진 않을 거다. 또 휴가 가면 인수인계로 일만 더 늘어나니.”
수업에 관한 서류 업무라면 책이나 논문을 읽어 수업 내용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으로, 올리버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업무였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니.
"너한테는 이제부터 단순 업무만 맡길 거야. 불만 있나? 있으면 말해. 빠져도 되니까.”
"아뇨. 전혀 없습니다.”
“....뭐, 좋아. 일단, 네 사무실에 수업 일정 자료를 놔뒀으니, 오늘은 그거부터 읽고 숙지해. 다행히 오늘은 수업이 없으니. 내일부터 잡다한 수업 준비는 네가 맡아. 필요한 재료라던가, 마법 전투 실습 세팅 같은 거. 질문 있나?”
케빈의 머리를 머릿속에 다 정리한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는 없습니다.”
서걱서걱 움직이던 펜이 일순간 멈추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외에는 질문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다. 혹시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바쁘니 썩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업무 사기를 위해 딱 하나 정도는 허락해주지. 질문해봐.”
원래대로라면 시계 종말론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으나, 케빈의 업무량과 분위기 그리고 상황을 고려해 그 질문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보다 더 자세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때 물어보는 게 훨씬 나을 듯했다.
"오늘 출근하는 와중 몇몇 학생 분들이 절 보고 수군댔습니다.”
"그래?”
전혀 놀란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알고 있는 반응에 더 가까웠다.
“왜 이런 것인지 혹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잘 이해가 안 돼서요. 처음 출근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제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마탑 학생과 싸워 비긴 게 그렇게 주목할 일입니까?”
"마력불생성증을 앓고 있는 일개 직원이 레드힐 가문의 기대주와 싸워 지지 않았다면 그럴 수도 있지.”
“레드힐 가문의 기대주요?”
"어, 참고로 레드힐 가문은 아그니 소학파에서 나름 이름있는 명문가야. 데릭 레드힐은 방계지만 그 가문 소속이고. 꽤나 기대받고 있지.”
오, 몸에 품은 마력의 질과 양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남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럼, 역시 싸우는 건 실수였습니까?”
"꼭 그럴 게 볼 것도 없어. 지금 웅성거리는 거 한주도 안 돼 가라앉을 거야. 네가 휴가 떠난 후, 하루 이틀은 소란스러웠지만, 이내 잠잠해졌거든. 네가 다시 보이자 잠시 쑥덕이는 것에 불과해. 며칠 동안 가만히 있으면 잦아들 거야. 이곳에서 사건 하나로 관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게 아니거든.”
"아..….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대답했다. 자기가 본 감정 상태와 정확히 일치하는 설명이었다. 얕고 가벼운 관심.
“솔직히, 네게 보이는 관심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더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데릭 녀석이 망신당한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거지.”
"왜죠?”
"마탑은 경쟁과 정치가 판을 치는 곳이고, 기뻐할 거라고는 자신의 성취 아니면 남의 불행밖에 없거든. 더 자세히 알고 싶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뜨린 마법사들의 일기나 일지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 있기에 흥미가 있었다.
“그럼, 나중에 이야기해주지. 지금은 말고, 바쁘니까. 너도 네 자리로 가서 내가 시킨 일부터 해.”
가장 재밌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멈춘 케빈. 올리버는 아쉬워했지만, 케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바쁜 건 사실이었고, 케빈의 말처럼 나중에 들어도 됐으니. 올리버는 일단 자기 일부터 하기로 했다.
***
케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휴가 이후 첫 출근에는 사람들이 올리버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다음 날 출근하니 그 수가 반으로 줄더니, 삼일, 나흘이 지나니 모두 잊은 것처럼 올리버에게 신경을 껐다.
마탑에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기 힘들다는 케빈의 말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올리버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맡은 바 일에 집중했다.
딱히 어렵진 않았다.
친절하게도 케빈은 매주 수업 일정표를 올리버의 직원실에 놔뒀기에, 올리버는 휴가 기간 동안 놓친 수업 내용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필요한 준비물이나, 교제 등도 늘 깔끔하게 알려줘 올리버가 해야 하는 건 적당히 시간 날 때 준비하는 거면 충분했고.
그 외에도 업무라곤 중간중간 생기는 단순한 심부름 및 잡무가 전부였다.
전에 비해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수월해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데릭과의 시합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마탑의 학생들이나, 다른 직원 등이 올리버를 대하는 것이 한결 부드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마지못해 상대해주는 외부인이었다면, 지금은 나름대로 내부 사람으로 인정해주었다.
덕분에 따돌림당하다 일을 떠맡는 경우는 없어졌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호출되 비교적 공평하게 일을 배분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올리버에게 그 시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과 안면을 틀 수 있고, 이야기도 한 두 마디 나눌 수 있었으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과도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바로 케빈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로, 대부분 마탑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뤘지만, 간혹, 성적이 높은 학생들도 말을 걸어줄 때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어떠한 속셈을 품고 있긴 했지만, 여하튼 대화를 나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올리버는 휴가 복귀 후 다시 무난하게 마탑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마탑 행정부서에서 지원 요청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 나더러 노스랜드 깡촌에 가라는 거지?”
케빈이 마탑 행정부서에서 온 관계자를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