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만남 (2) >
올리버는 보았다.
붕대를 두른 사내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순간을.
철판을 이어 붙인 듯한 대검과 차량이 부딪치자 차량 앞부분이 푸딩처럼 뭉개지며,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척 봐도 일반인을 초월한 초인의 영역.
그러나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저 대검-붕대 사내가 뿜는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모순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올리버는 재빠르게 감정을 추출. 블랙 슈트를 만들어 몸에 장착했다.
그리곤 포레스트와 알을 각각 옆구리에 끼며 챙겼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뭐?!"
쾅!!
올리버는 차 문을 발로 차 날린 다음, 그대로 포레스트와 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포레스트의 차량이 바닥에 처박히며 말 그대로 고철이 됐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네. 더 이상 구할 수도 없는 내 빈티지 차량이 작고하셨거든.”
"저 낡은 차량요?”
"빈티지 차량이네. 낡은 거랑 다르니 단어 구분해서 사용하게. 어쨌건 구해줘서 고맙네."
다행히 말하는 걸 보아하니 포레스트는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알도 마찬가지였고.
‘그건 그렇고, 누구지?’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포레스트와 알을 구석에 내려놓으며 앞의 대검-붕대 사내를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었나요?”
붕대 사내는 두꺼운 대검을 올리버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칼로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너..…. 데이브….?”
"예, 데이브입니다. 란다 T구역 27번 거리 해결사로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누구신지요?"
올리버는 방금 자기가 탄 차량을 날려버린 습격자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곤 정체를 물어봤다. 대답은 포레스트가 대신해줬다.
"전신을 감싼 붕대, 초월적인 신체 능력, 갈라지는 듯한 괴기한 목소리…..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이구만.”
개발 반대 위원회. 딱 한 번 들은 적 있었다.
과거 켈 자유독립군의 윌레스가 란다 감옥을 습격했을 때, 시(市)에선 그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제조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억울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올리버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Z구역에 둥지를 트신 조직이요? 란다 재개발 때부터 시위하셨다던?”
“그래,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지. 참 이상하군. 웬만해선 Y구역 밖으로는 나오질 않는데…..."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 포레스트는 음모의 냄새를 맡은 듯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내막은 포레스트에게 맡기고 올리버는 당장의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
필요하다면 싸울 생각이지만, 가급적이면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니.
“괜찮으시다면 공격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이유 정도는 말해줬다.
"감히, 더러운 죄인….. 우리 땅을 침범했다….. 피해도 입혔고….. 죽어 마땅하다.”
죄인. 침범. 피해…. 알 수 없는 단어뿐이었지만, 이내 올리버는 무슨 뜻인지 눈치챘다.
"아..…. 핑크맨하고 같이 일할 때 군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도 시체대포를 처음 써본 거라서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거든요. 혹시, 제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해드리면 어떨까요?”
올리버는 진지하게 물었지만, 대검-붕대 사내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우린 피를 원한다..…. 돈은 이미 충분히 받았고.”
"돈을 받았다고요….? 그럼, 저분들이라도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올리버가 포레스트와 알을 가리켰다.
"저분들은 딱히 그 일과 관련이 없거든요.”
“상관없지 않다….. 저들 중개인….. 모두 죄인….. 죄인은 고통받아야 한다.”
훌륭한 삼단논법. 올리버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그와 함께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옆으로 휘둘렀다.
붕一!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빠르게 접근하던 촉수 비스름한 것이 찢겨나갔다.
“캬햐햐햐햫-!!!”
올리버의 공격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바닥에는 피와 길쭉한 살점이 흩뿌려졌다.
우둘투둘하고, 축축하며, 시뻘건 살점이 말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혀였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려 헛바닥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을 찾았다.
그는 도마뱀과 같이 벽에 매달려 있었으며, 입에서는 대량의 피를 흘리며 몹시도 고통스러워하였다.
대검-붕대 사내처럼 그 역시 붕대로 온몸을 칭칭 두르며 거대한 망토까지 뒤집어 써서 필사적으로 모습을 감췄지만, 그럼에도 미처 가리지 못한 입과 손가락 끝에는 사람의 것과 매우 거리가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이 달려 있었다.
“캬착햐햐학一!!!”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혓바닥-붕대 사내는 복수심을 빛내며 소릴 지르더니 도마뱀처럼 건물 위쪽으로 기어서 도망쳤다.
올리버는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그를 보며 물었다.
"원래 Y.Z구역에는 돌연변이가 많나요?”
“다른 구역에 비하면 꽤 많지. 특히, Z구역은.”
“근데, 그냥 평범한 돌연변이 같지는….응?”
상황을 지켜보던 대검-붕대 사내가 점프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는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앙一!!!
올리버는 공격이 닿기 전 블랙 슈트로 감싼 쿼터스태프로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다.
거대한 대검과 그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완력이 더해지자 가히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힘 하나만큼은 거의 요리사님 수준인데?’
대검-붕대 사내가 분노한 감정을 빛내며 입 주변이 들썩거릴 정도로 소리쳤다.
"감히….! 우릴 비교 마라.…! 버러지들과..…!!”
분노와 함께 더욱 강해지는 힘. 이대로 올리버를 짓뭉개 죽일 생각이었다.
올리버가 서둘러 사과했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눈에는 다 똑같으셔서.”
올리버에게 있어 돌연변이나, 개발 반대 위원회나, 일반인이나 모두 같다는 이야기였으나, 의미를 잘못 전달된 건지 대검-붕대 사내는 이를 더욱 꽉 깨물더니 대검을 도로 가져와 믿기지 않는 완력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앙……! 콰과광!! 까가강! 쾅! 깡!! 캉카강一!!!
대검-붕대 사내의 공격에는 기교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쇳덩어리와 그 쇳덩어리를 휘두를 괴력이 합쳐지니 기술을 초월한 위력을 발휘했다.
흡사, 쇳덩어리로 이뤄진 태풍. 엄청난 풍압과 함께 주변의 벽을 박살 났고, 바닥에는 투박한 자상(刺傷)을 남겨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올리버 주변과 그 뒤로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블랙 슈트를 두른 올리버의 쿼터스태프가 노련한 것을 넘어 아름다울 정도로 그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악一!!”
약이 오른 대검-붕대 사내가 대검을 들어 올리버를 내리찍은 다음 곧이어 다른 한쪽 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곤 그 상태로 자신의 대검을 후려쳤다.
쾅——!!!
작은 충격파가 퍼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대로 힘으로 찍어 눌러 압살하려는 것.
다행히 이를 먼저 눈치챈 올리버는 쿼터스태프의 한쪽으로 기울여 공격을 흘렸고, 덕분에 공격을 별다른 피해 없이 흘릴 수 있었다.
올리버는 능숙하게 쿼터스태프를 당겨 회수한 후 내지르려고 했다.
대검-붕대 사내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기 전까지.
캬햐햐햐햐햐햐햐햐햐햐햐햐핫———!!!"
아웃크라이(Outcry) 와 같은 충격파가 올리버의 얼굴을 직격 했다.
마법이나 흑마법의 도움 없이 이 정도 굉음을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올리버의 뇌가 흔들리며, 시야가 흐릿해졌고, 뒤이어 커다란 충격이 몸을 덮쳤다.
대검-붕대 사내가 올리버를 후려친 것이었다.
퍼억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올리버는 바닥을 한 바퀴 구르는가 싶더니 균형을 잡고 다시 일어났다.
꾸준하게 운동한 보람이 있었다.
“이런..…."
균형을 잡자마자 다섯 개의 손톱이 나타나 올리버를 덮치려고 했다.
숨어있던 또 다른 적이 나타나 올리버를 공격한 것으로, 그 역시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짐승처럼 크고 날카로운 손톱이 특징이었는데, 기습한 타이밍으로 봐 상당한 경험이 있는 자임을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허나, 전투 경험이라면 올리버 역시 적지 않았기에 올리버는 반 박자 빠르게 고개를 숙여 공격을 여유롭게 피한 다음 그 거리에서 해잇 불릿을 쏴 그대로 손톱-붕대 사내의 배를 꿰뚫어줬다.
퍼버버벅-…!!
"....크윽!”
증오의 탄환을 맞은 배 부분은 주먹만 한 구멍이 여러 개 나며 그와 동시에 내장이 헤집어졌다.
땅 위로 쏟아지는 피와 내장 조각.
하지만 놀랍게도 손톱-붕대 사내는 쓰러지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상처 부위가 천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퍼펫에 인육 요리사의 제자, 거기다 개발 반대 위원회까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존재들은 다들 이런 회복 능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정도, 공격 따위….!!”
대검-붕대 사내가 다시 한번 철판 대검을 높이 치켜들며 점프해 합세했다.
올리버는 손톱-붕대 사내의 몸에 증오의 탄환을 다시 박아준 다음 자신을 노리는 대검을 피했다.
굉음과 함께 지면의 부서지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일어났다. 역시 엄청난 괴력.
“흥!!"
대검-붕대 사내가 다시 올리버를 향해 입을 벌렸다. 소리를 지르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올리버가 더 빨랐다.
[해잇 불릿(Hate Bullet)]
".....!!"
입 안을 향해 날아오는 증오의 탄환.
붕대 사내는 올리버의 빠른 반격에 당황하며 공격을 중단. 대검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호했다.
타다다다다당!!!
십여 발의 증오의 탄환이 대검에 가로막혔고, 그 사이 올리버는 쿼터스태프에 흑마법의 기운을 집중시킨 다음 그대로 내질렀다.
까앙—!!!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대검-붕대 사내가 충격으로 뒤로 밀려났다.
상처를 회복한 손톱-붕대 사내가 아군을 돕기 위해 다시 덤벼들었지만, 그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악————!!!!”
올리버의 얼굴을 덮은 블랙 슈트에 입이 돋아나더니, 그대로 분노의 함성을 내질러 손톱-붕대 사내를 공격하였다.
물리력을 머금은 함성은 손톱-붕대 사내의 안과 밖을 동시에 타격했고, 그로 인해 그는 양쪽 귀에서 피를 흘리며 행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올리버는 그 상태 그대로 손톱-붕대 사내의 머리를 향해 증오의 탄환을 다섯 발 꽂았다.
파바바바팟——!!!
축축한 소리와 함께 반쯤 날아간 머리. 그렇게 손톱-붕대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생명력이 끈질기고, 회복 능력이 우수하였지만, 인육 요리사 쪽처럼 목숨이 여러 개는 아닌 듯했다.
"캬햐핳! 너 이..…!”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대검-붕대 사내는 짐승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분노했고. 올리버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화해하실래요?”
"캬햐햐햫一!!”
대검-붕대 사내는 다시 한번 거대한 쇳덩어리를 휘둘러 올리버를 공격했다. 올리버는 아까 전처럼 방어했고.
거대한 대검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풍압을 일으켜 올리버를 으깨버리려고 했으며,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공격 방향에 맞춰 공격을 막거나 흘려버렸다.
다만, 아까 전과 다르게 반격도 가했다.
빈틈을 보일 때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타격을 가하고, 근거리에서 증오의 탄환을 쏴 신체를 파괴 차근차근 대검-붕대 사내를 제압해 갔다.
개발 반대 위원회가 도대체 무엇이며, 누가 돈을 줬는지 듣기 위해.
‘또, 왜 미묘하게 익숙한 건지도 궁금해.’
근접 전투 중 중간중간 그림자 촉수와 말뚝을 이용해 대검-붕대 사내의 다리를 찌르고 묶으며, 동시에 쿼터스태프로 어깨와 무릎을 박살 내었다.
대검-붕대 사내가 입는 피해가 회복력을 넘으려는 순간 올리버의 눈에 무엇인가 포착됐다.
곳곳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들이 움직인 것. 목표는 올리버가 아닌 포레스트와 알이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려 포레스트 쪽을 봤다.
아까 전에 올리버에게 혀가 잘려진 혓바닥-붕대 사내를 비롯해 다른 붕대 사내들이 포레스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인질로 잡으려는 것 같았다.
알이 권총을 들어 방패 역할을 자처했지만, 상대하긴 역부족.
올리버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올리버에게 두들겨 맞던 대검-붕대 사내는 올리버를 방해하기 위해 다시 덤벼들었다.
“어딜....!!”
[리바이브(Revive)]
[오비디언스(Obedience)]
올리버가 한 박자 더 빠르게 흑마법을 사용했다
흑마법의 대상은 아까 전 올리버가 죽인 손톱-붕대 사내로, 그는 머리가 반쯤 날아간 상태로 되살아나, 대검-붕대 사내를 할퀴고 공격했다.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발목이 붙잡힌 대검-붕대 사내.
올리버는 그 틈 사이 쉐도우 텐타클을 사용해 그림자 칼날과 말뚝, 촉수로 포레스트와 알을 둘러싸 보호한 다음,
주춤한 붕대 사내들에게 타켓팅을 사용해 종이를 던져 몸에 꽂았다.
멀린이 가급적 공간 마법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이번에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종이가 몸에 꽂힌 걸 확인하자마자 올리버는 그 상태로 몸에 저장한 마력을 끌어모아 종이에 깃든 마법 술식과 연동, 그대로 발동시켰다.
위이이잉..…!!
벌레의 날갯짓처럼 작지만 선명한 소리와 함께 보랏빛 마법 포털이 종이 위에 생기며, 그와 동시에 붕대 사내들의 몸이 토막 났다.
“캬햐햐햐핫!!!”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크흐흐흐흐….!"
"......."
그와 함께 포털에서 송장인형들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