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동업 제안 (2) >
올리버가 셰이머스 맞은편에 앉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두툼한 티본 스테이크가 두 접시 나왔다.
겉을 바싹 익힌 스테이크로 하나는 올리버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셰이머스의 것이었다.
"스테이크는 입 맛에 맞아?”
올리버가 입에 넣은 티본 스테이크를 천천히 삼키곤 대답했다.
“..…예, 맛있습니다.”
“다행이네. 이 가게 대표 메뉴거든. 맛있어서 나도 스무 접시째 먹고 있지.”
셰이머스가 자기 옆에 탑처럼 쌓인 접시를 가리켰다. 그리곤 티본 스테이크를 뼈째로 씹어먹었다.
아작아작.
치악력이 보통이 아닌지 단단한 뼈는 사탕처럼 부서졌다.
"드루이드 분들은 원래 먹성이 좋으신가요?”
"보통은? 우린 정신과 육체 모두 극한으로 단련해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거든. 거기다 대부분 어렸을 때 굶고 자란지라 먹는 것에 한도 좀 맺혔고.”
“굶고 자랐다고요?”
"아, 모르나? 대부분 드루이드는 가난해서 팔려온 놈들이야. 수행은 힘든데, 속세와 인연을 끊어야 하니 어느 누가 하고 싶어 하겠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배워야 할 게 많구만.”
셰이머스는 그렇게 말을 끝냈지만,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거 같았다. 질문을 유도하는 듯한…. 올리버는 기꺼이 응해줬다.
“셰이머스 님도 그렇습니까?”
"나? 물론, 내 부모 얼굴은 기억도 안 나지만, 팔렸다는 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셰이머스가 특유의 과장된 태도로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와 함께 올리버의 안색을 살폈다.
"뭐..…. 내 부모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린랜드는 이름과 달리 척박하고, 가난한 동네인지라 드루이드에게 애들을 공양하는 건 흔한 경우거든. 덕분에 이렇게 부자가 됐으니 원망은 없어.”
"그럼, 팔려나간 분들은 전부 드루이드가 되나요?”
“글쎄..…. 반대로 묻지. 수련하면 전부 흑마법사가 되나?”
“음….. 아뇨.”
"바로, 그거야. 드루이드가 되는 건 어려워. 재능을 가진 일부만 될 수 있지. 한해에 한 명도 안 생길 때도 있어.”
"그렇군요......"
"드루이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군.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네. 해결사 일을 하면 한 번쯤은 만나봤을 텐데. 요새 나같은 놈들이 많거든.”
"한 분 정도 만나봤습니다. 다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오, 누구지? 란다에 있으면 엔조이먼트일 텐데. 이름은 아나?”
"스콧 씨입니다.”
"음…. 모르는 이름이군.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 아나? 드루이드라니 한번 보고 싶긴 한데.”
“죽었습니다.”
“아, 그래.…? 누구한테. 드루이드를 죽일 정도면 한 가닥 하는 놈일 텐데.”
"저한테요.”
"......."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같이 일하는 도중 서로 어긋났습니다…. 혹시 불쾌하신지요?”
“불쾌? 전혀. 약한 놈은 죽는 게 맞지. 오히려 그런 각오도 없이 이 바닥 뛰어드는 게 나쁜 거 아닌가?"
셰이머스는 거짓으로 답했다. 마법 아이템으로 감정을 숨겼지만, 올리버는 볼 수 있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사업 이야기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에에? 이거 의왼데? 넌 대화의 즐거움을 안다고 하던데, 벌써 재미없게 일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거야? 아니면 내가 매력 없나?”
셰이머스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 냈다.
솔직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올리버는 대화를 즐겼다. 진심으로 말이다.
남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그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하지만, 셰이머스의 경우에는 그 결이 달랐다.
그는 올리버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는 거짓과 의미 없는 진심을 섞어가며 올리버를 파악하려고만 할 뿐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거기에는 진심이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다만, 셰이머스 님이 저와 무슨 사업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지 궁금해서요….. 전 사업에 관해 아는 게 전혀 없거든요.”
"정령들이여 맙소사….. 재능은 있는데,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니. 이보다 슬플 경우가 또 있을까? 넌 이미 하고 있잖아?”
“예?”
"흑마법사 양성 사업 말이야.”
“흑마법사 양성.…? 아, 혹시 파이터 크루 분들 말씀입니까?”
“그래, 어제 싸운 걸 봤어. 아주 대단하던걸? 진심으로 말이야.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난 이런 일에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야.”
진심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 어떻게 보셨는지요? 근처에는….아, 세계수를 통해 보셨군요.”
올리버가 과거 고든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든이 말하길 셰이머스는 정령술, 자연교감, 수인화를 비롯해 세계수도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오.…! 어리숙한 주제 의외인 부분에서 똑똑하군. 세계수로 본 걸 바로 맞추다니. 대단해."
"저번에 세계수를 다루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그저 사실을 이야기 한 거지. 일반인은 세계수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해결사도 제대로 아는 놈들이 거의 없거든. 주체적으로 판을 볼 줄 아는 놈들만 세계수에 대해 알지.”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놈들만 세계수의 힘에 대해 알거든….. 궁금해서 그러는데 세계수는 어떻게 알게 됐지? 요즘은 흑마법사도 세계수 가르치나?”
"우연히 책에서 읽어봤습니다.”
“책에서? 우연히?”
“예, 중고 책방에서 몇 권 샀거든요.”
"그거참 신기하네. 세계수에 관한 책이 중고 책방에 있다니.…. 하지만 네가 거짓말한 건 아닐 테니 뭐 그냥 넘어가자고.”
"예, 감사합니다.”
"어쨌건, 요점은 내가 네 능력을 확인했다는 거야. 파이터 크루 그 똥개들을 나름 쓸만한 투견으로 만들었으니….. 대단해."
"파이터 크루 분들이 열심히 배우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게 병신이면 다 의미 없지. 우선, 사과부터 할게.”
“예? 무엇을 말씀입니까?”
“저번에 경매장에서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잖아? 그거 사과할게. 내가 네 실력을 모르고 너무 우습게 대한 거 같아."
"아뇨, 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능력 있는 놈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특히 넌.”
"저요?”
“그래.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넌 날 닮았거든.”
"그런가요?”
"홀로 란다로 와 1년 만에 해결사로 명성을 알렸잖아? 나처럼 부자 애인을 뒀고.”
“??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만?”
"제인..…그 꼰대 딸내미 있잖아. 제인이랬나? 애인 아니야?”
“전혀요.”
“아..…. 아니면 말고, 어쨌건 넌 날 닮았어. 흑마법사긴 하지만 나만큼 유능하지. 또, 흑마법사일 테니 나만큼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을 거고. 객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넌 아주 매력이 넘쳐….. 그래서 동업을 제안하고 싶어.”
“....무슨 동업이죠?”
"용병 사업 비슷한 거야. 흑마법사를 단련시켜서 파는 거지.’’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능력만 되면…. 교육과 일자리를 원하는 3류 흑마법사는 넘치고, 무력을 원하는 사람도 넘치거든. 이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도시 밖도 마찬가지야….. 설마, 란다에 넘치는 용병과 초인들이 여기서만 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솔직히 그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진짜 배워야 할 게 많네….. 하지만 괜찮아. 나랑 같이 일하면서 가르쳐줄게.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과 힘을 어떻게 모으는 지, 그 돈과 힘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말이야….. 유망한 사업이니 1, 2년이면 상류층 거주지에 빌딩도 살 수 있을걸?”
셰이머스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물론. 다만, 그 대사는 거절할 때 하는 대사인 거 같은데?”
"절 높이 평가해주시고, 이렇게 제안해주시는 것도 고맙지만…. 솔직히 거절하고 싶습니다.”
"흐음..…. 이유를 묻고 싶은데.”
"전 조직에 소속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게 아니야. 동업하자는 거지.”
"하지만 셰이머스 님의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 건 똑같지요.”
올리버가 정확히 지적하자, 셰이머스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맹한 것 같으면서도 날카롭고, 유약한 듯하면서도 단호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보통 해결사 놈들은 이름 알리자마자 안정된 직장을 찾는데 말이야.”
“글쎄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법이니까요? 셰이머스 님도 크라임 펌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다 거절하시고 크라임 펌으로 오셨지 않습니까?”
크하핫!! 셰이머스가 대뜸 웃었다.
"오, 그 이야기도 들었나?”
"예."
"근데, 헛들었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크라임 펌으로 왔을 거 같아? 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짜서, 크라임 펌에 들어온 거야. 남은 여생을 남들 심부름해주다 끝내기 싫어서 말이야.”
"사업체를 세우는 게 목표였습니까?”
"정확히는 부와 권력을 얻는 게 목표지. 해결사 일과 사업체는 수단이고. 변태가 아닌 이상 돈 몇 푼에 남의 심부름하는 걸 좋아하는 놈이 누가 있겠어? 넌 그 변태야?”
셰이머스가 질문했고, 올리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기가 변태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그러고 보니 올리버는 자신이 왜 해결사 일을 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심도 있게 고민해봤다.
근래 해결사 일을 하는 건 여러 사람을 만나 견문을 넓히기 위한 거였지만, 그 이전에는 블랙마켓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블랙마켓은 왜 이용하려고 한 거였지?’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을 떠올렸고, 얼마 가지 않아 올리버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냈다.
자신이 조셉 패밀리를 나와 해결사가 된 이유를 말이다.
"아름다운 빛에 대해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름다운 빛? 그게 뭔데?”
"감정입니다. 조금 특별한 감정요.”
"감정? 아아….. 하긴, 흑마법사는 감정을 원료로 사용하니. 네 입에서 특별한 감정이라는 걸 보아하니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겠네?”
"예. 블랙마켓에서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거기서도 없더군요.”
"그럼, 더더욱 보기 힘든 감정이겠네. 그럴수록 힘을 키워야지.”
셰이머스가 다시 한번 올리버를 회유했다. 올리버는 일단 따라가 봤다.
"그래야 하나요?”
"그럼, 네가 세상을 아직 모르는 거 같은데, 귀한 것일수록 힘 있는 자만 가질 수 있는 법이야.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술, 좋은 여자. 다 같은 맥락이지.”
“아….. 그렇군요.”
“해결사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힘을 키우면 찾기 훨씬 수월할걸? 돈과 힘이 생기고 부하도 생길 테니 그놈들에게 시킬 수 있거든….. 원한다면 나도 도와줄 거고.”
셰이머스는 진심을 빛내며 말했고, 그로 인해 올리버는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 사업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업보다는 올리버를 자기 영향력 아래 두고 싶은 거였다.
“음…..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서두르고 싶진 않거든요.”
“호.…. 그렇게 간절한 게 아닌가 봐?”
“아뇨, 간절합니다….. 다만, 세상에는 그 못지않게 재밌는 게 많아서요. 천천히 다 둘러보고 싶습니다.”
셰이머스가 마음을 정한 듯 턱을 했다.
"그래..…? 그렇다면 별수 없지.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난 볼일 다 봤으니 이만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셰이머스의 말에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도중 식당 한쪽을 빤히 바라봤다.
“식사 맛있게 먹었습니다. 셰이머스 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뜻이 안 맞긴 했지만,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군. 나중에 내 일도 도와줬으면 좋겠고."
"포레스트 님에게 말씀해 두겠습니다.”
“포레스트? 아아.… 이봐,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내가 조언 하나 해줄까?”
"조언요?”
"그래, 중개인을 너무 믿지 마. 그놈들 말로는 해결사의 친구니 동업자니,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라 해도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는 족속이거든. 특히, 포레스트 그 양반은 더욱 그렇고.”
***
흑마법사 데이브가 나간 후, 레스토랑 <코르누코피아> 2층에는 셰이머스만 홀로 남게 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셰이머스 혼자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가게 한구석에서 무엇인가 일렁이더니 이내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보호색 주술로 몸을 숨기고 있던 드루이드로, 셰이머스의 부하 직원이었다.
아자작! 아자작!
셰이머스가 티본 스테이크를 씹어 먹으며 대답했다.
원래 먹성이 좋은 그였지만, 짜증이 나거나, 생각이 깊어질 때는 평소보다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솔직히 그다지 좋지 않네…. 차여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거든.”
셰이머스가 그렇게 말하곤 킥 킥 웃었지만, 부하 직원은 셰이머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늘 실없이 한량처럼 웃으며 지냈지만, 그건 사실 포식자가 사냥하기 전 몸을 낮추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겠는가?
"지금이라도 쫓아가 해치울까요?”
부하 직원이 셰이머스에게 물었다. 실제로 여차하면 멱을 따기 위해 가게에는 셰이머스의 부하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모두 란다에서 나름 이름을 알린 이들로, 셰이머스의 재력 혹은 힘에 굴복한 이들이었다.
"음……. 아니. 됐어. 그렇게 만만히 볼 녀석은 아니야.”
"그렇습니까?”
"어. 그 귀여운 새끼, 네가 있는 줄 알더라. 눈깔이 한순간 멈췄거든.”
“설마요? 보호색 주술은 완벽했습니다. 거기다, 감정을 숨기는 마법 아이템도 착용했는데요.”
“근데, 눈치챘어.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진 모르겠지만. 물론, 잡으려면 못 잡을 건 아니지만, 크라임 펌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이리 노골적으로 일을 저지를 순 없지. 그건 매너가 아니잖아?”
셰이머스가 반 장난씩으로 말했지만, 사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크라임 펌과 자신의 관계가 소원한 것을 넘어 은근히 견제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그렇다고 벌써 일을 저지를 순 없었다.
아직은 크라임 펌의 영향력이 필요했다.
엔조이먼트가 속세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말이다.
"그보다 어땠어? 1층의 파이터 크루 똥개들은?”
"사장님 말씀대로 시비를 걸어 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진짜?”
"예, 족보도 없는 뒷골목 하류 인생들이라 쉽게 도발에 걸려들 줄 알았는데. 그냥 조용히 식사하다 나가더군요. 군기가 제법 잘 잡혀 있습니다.”
“하..…. 진짜, 싫다.”
셰이머스가 오늘 했던 말 중 가장 진심을 담아 말했다.
데이브란 놈을 처음 볼 때만 해도 란다에 널리고 널린 다크호스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혼자 힘으로 크라임 펌과 협상한 것도 모자라, 동네 똥개 수준에 불과하던 파이터 크루 놈들을 그 정도로 키우다니. 심지어 군기까지 잡고.
단순히 힘만 세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바로, 지도자의 능력.
"사장님께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닐까요? 정작 데이브란 놈이 이번 일로 챙겨간 건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그래서 더 신경 쓰여.”
"예?”
"파이터 크루, 크라임 펌. 두 조직을 화해시키고, 관계까지 구축한 놈이 아무것도 못 챙겼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그냥 이야기만 꺼냈어도 적잖게 챙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둘 중 하나라는 거지. 뒤로 무슨 수작을 벌이는 진짜 똑똑한 놈이라거나, 아니면 정말 욕심 없는 멍청이라거나..…. 이왕이면 전자였으면 좋겠군.”
"멍청한 놈이 아니라요?”
"어, 똑똑한 놈이면 결국 예측이 되거든. 속셈이 있으니까. 하지만 멍청이는 예측이 안 돼. 목표가 없으니까. 혼돈이지.”
부하 직원은 침음성을 내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음…. 저 같은 조무래기가 이해하긴 너무 어려운 말이군요. 어느 쪽이든 간에 한시라도 빨리 해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정도로 단련된 무력 집단이 크라임 펌 휘하에 생기면 앞으로 쥐고 흔들기 힘들 겁니다.”
셰이머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얼핏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취약하기 그지없는 크라임 펌의 조직 구조를 이용해 가장 큰 재미를 본 당사자였으니.
"오, 그래선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아직 먹어야 할 게 많은데….. 저번에 확보한 파이프라인 아직 사용할 수 있나?”
“저번이라면 Y구역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들을 통해 개발반대 위원회에 연락 좀 넣어라.”
"뭐라고 넣을까요?”
"감히, Y구역에서 깽판 친 흑마법사를 그냥 놔둘 거냐고 말이야. 적당히 돈 좀 쥐여주면 바로 반응이 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