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동업 제안 (1) >
프랑수아가 주축으로 된 외국인 갱 연합을 해치운 후 올리버는 조 일행과 함께 지부장이 있는 건물로 돌아갔다.
그는 해가 뜨기도 전에 돌아온 올리버 일행을 보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빅마우스를 통해 프랑수아와 그 부하들의 시체를 꺼내 보여주자 이내 의심을 거뒀다.
“아….. 진짜 그놈이군요. 직접 해치우신 겁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아니라 조가 해치웠습니다. 전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부장이 슬쩍 조를 봤고, 조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지부장이 약간의 두려움과 감탄을 자아냈다.
그도 그럴 게 백 명이나 되는 갱도 갱이었지만, 프랑수아와 그 부하는 훨씬 골치 아픈 상대였기에.
총탄도 통하지 않고, 폭탄도 견디며,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는 뭐든지 베고 부수었다.
일단 거리를 좁혀 칼을 휘두르면 보통의 무장병력은 탱크 앞 보병처럼 갈려 나갔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오늘 도착하자마자 시체로 만들어버리다니.
란다에는 괴물들이 넘친다는 소문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아, 맞다.…. 외국인 갱 분들이 백 명이라고 하셨죠?”
"예? 아, 예.... 백 명 정도입니다.”
"저희가 창고에 가 봤지만, 그 수가 팔십 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스무 명은 안 보였습니다.”
“아….. 아마, 다른 구역을 순찰 중일 겁니다. 그 정도 잔당은 저희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혹시, 이 시체는 필요하신가요?”
"시체요?”
"예, 필요 없으시면 제가 가지고 싶어서 말입니다. 필요하시면 어쩔 수 없고요.”
“아아.…. 어차피 보관하기 마땅치 않긴 한데. 증거 사진만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허락하자 지부장은 곧바로 사무실에서 사진기를 가져와 사진을 찍었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달라고 했으면 아까웠을 텐데, 다들 이리 선뜻 양보해주니 참으로 고마웠다.
‘그건 그렇고 저걸 어떻게 가공한다?’
올리버가 죽은 프랑수아와 그 부하 시체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 던칸이 있어, 근접형 송장인형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태.
아니, 그 이전에 차일드의 숫자가 한정적이라 송장인형을 제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올리버가 조작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건 이쪽에 정신을 집중해야 해 효율이 꽤 떨어졌고.
‘아니지, 잠깐만….. 꼭 내가 조종할 필요 있나? 차일드들에게 컨트롤하라고 하면 안 되나?’
올리버가 그쪽에 관해 생각했고, 이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요한 거라곤 송장인형을 조종할 만큼 뛰어난 실력의 조작계열 흑마법사 시체뿐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최소한 실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데이브 씨. 여기 사진 다 찍었습니다.”
백 포트 지부장이 필름을 꺼내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올리버는 빅마우스를 시켜 다시 시체를 삼키게 한 뒤, 빅마우스를 고이 접어 허리의 가죽케이스에 담았다.
"이리 끝내주셔서 다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뭔가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지부장.
올리버가 정중히 거절하려다 말고 조 일행을 봤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슬슬 피곤해서….. 아, 여러분 의견을 안 여쭤봤네요. 어떻습니까?”
조를 비롯한 모두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도 뭐…?
"아아, 그러시군요. 하긴 오늘 도착하시자마자 일하셨으니….. 죄송합니다. 제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아닙니다. 그저..…아.”
올리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소리 냈다.
“혹시,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뭐 하나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저한테요? 글쎄….. 아는 게 많진 않지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뭐가 궁금하시죠?”
"혹시, 셰이머스 님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드루이드 셰이머스 님요.”
***
다행히 백 포트의 지부장은 셰이머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셰이머스라는 사람이 크라임 펌 내에서 유명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그는 홀로 란다로 와 해결사가 되고 1년 만에 이 바닥 최고를 찍은 전설적인 존재였으니.
심지어 그 절정 때 과감히 은퇴해 크라임 펌에 들어오기까지 했다.
물론, 이름을 알린 해결사가 강대한 조직에 들어가는 건 흔한 경우였으나, 셰이머스는 그 결이 달랐다.
‘예, 저도 그저 들은 거긴 하지만 당시 크라임 펌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고 했거든요. 시의원이라던가, 자본가라던가 뭐 그런 사람요.’
권력, 재물, 명예 등등 전체적으로 고려한다면 크라임 펌보다는 시의원, 자본가가 더 나은 선택지였으나, 어째서인지 셰이머스는 다 거절하고 자청해 크라임 펌으로 들어왔다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해결사 시절 조금씩 보였던 수완을 본격적으로 발휘해 이사들 간의 정쟁(政爭)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확보하더니, 어느새 개인이면서도 조직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였다.
'리프 론(Leaf Loan) 말씀입니까?’
'예, 맞습니다. 리프 론(Leaf Loan). 크라임 펌 내에서도 알아주는 대부업체죠. 소문으로는 애인들 돈으로 세웠다는데,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돈이 쪼들리는 사업체를 쏙쏙 찾아내 먼저 돈을 빌려줘 크게 성장했답니다. 소문으로는 자산 규모가 거의 이사님들 수준이라 하던데, 사업 확장을 하는 걸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 백 포트에도 하나 있지요.’
백 포트 지부장은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을 빛냈다.
저번에 고든 굿하트도 셰이머스에게 불편한 감정을 빛냈는데, 어째 기존 크라임 펌 멤버들은 그를 불편하게 여기는 거 같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쨌건 셰이머스에 대한 정보를 대략적으로 들은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부장이 마련한 호텔로 가 늦은 점심시간까지 푹 쉬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올리버가 배웅 나온 백 포트 지부장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아뇨, 별 말씀을. 저야말로 감사하죠. 제가 골머리 썩던 문제를 몇 시간 만에 해치워 주셨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한 게 없고, 일을 한 건 이분들입니다. 인사는 이분들에게 하셔야 마땅합니다.”
올리버가 조 일행을 가리켰고, 지부장은 그들에게도 다시 인사했다.
“예….. 어찌 됐건 다시 감사드립니다. 만약 백 포트에 방문하시거든 언제든 절 찾아와주십시오.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뭐든 돕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아쉽군요. 뭐라도 대접해야 마땅한데.”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선약이 있기도 하고요.”
"선약요?”
"예."
***
올리버는 백 포트 지부장과 헤어진 후 도시를 떠나지 않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올리버가 조 일행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먼저 복귀하셔도 됩니다.”
"뭐, 조금 더 늦게 복귀한다고 무슨 일 있겠습니까? 만나기로 한 장소 맛집이라고 하던데, 저희도 겸사겸사 배 좀 채우지요.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아뇨. 그건 아닙니다. 동생분들 보고 싶으실까봐요.”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을 만큼, 그놈들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조의 말에 오언과 샘이 웃었다.
"....혹시, 방금 그거 농담인가요?”
"아마도요?”
“아….. 재밌는 농담인 거 같습니다. 기억해야겠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혹시 농담입니까?”
"예?"
"예?"
"......."
"......."
어색하게 어그러지는 대화. 올리버가 다시 궤도를 바로 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괜찮으시면, 저 대신 약도 좀 봐주시겠습니까? 처음 와보는 곳이라 그런지 길 찾기가 어렵네요.”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버가 건넨 약도를 보더니 이내 능숙하게 길을 안내했다.
"여기 같습니다.”
조가 한 2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2층 건물은 전부 식당이었으며, 간판 위에는 <코르누코피아>라는 알 수 없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초대 받은 식당이 맞았다.
가게를 확인하자마자 올리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랑. 달랑. 포레스트 레스토랑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종소리가 울렸고, 덩치 좋은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놀랍게도 마력사용자였다.
"죄송하지만 손님. 오늘은 가게가 사정이 있어 쉬는 날입니다.”
“여기 오라고 초대받았는데요?”
올리버가 어제 창고에서 만난 드루이드가 준 명함을 내밀었다.
검은색 명함으로 [리프 론(Leaf Loan)]이라는 글귀가 고풍스럽게 박혀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아까 전보다 더 친절하게 말했다.
올리버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조 일행과 함께 올라가려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종업원이 말렸다.
"죄송하지만, 손님….. 일행분들 빼고 손님만 올라가 주셨으면 합니다. 사장님께서 단둘이 식사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이분들도 식사 안 했는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1층에서도 음식을 대접해드릴 수 있습니다. 때마침 다른 직원분들도 식사 중이시라…. 괜찮으시다면 합석 하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조 일행을 보며 의사를 물었고, 조 일행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야 뭐 상관없습니다.”
종업원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직원을 한 명 불렀다.
그리곤 올리버와 조 일행을 따로 안내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데이브 씨도요.”
뚜벅. 뚜벅. 뚜벅.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올리버는 2층으로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향긋한 음식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어서 와. 제때 맞춰 왔군.”
수많은 테이블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던 셰이머스가 티본 스테이크를 뼈 채로 씹어 먹으며 올리버를 맞이해 줬다.
그는 경매장에서 봤을 때보다 캐주얼한 차림을 했으나, 그 외에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와 옷은 녹색이었으며, 쾌활했고, 란다 부유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한껏 뽐냈다.
‘하긴, 고든 씨께서도 란다의 신(新) 계급이라고 칭할 정도였으니.….’
올리버는 그 신(新) 계급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셰이머스 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핫! 역시, 소문대로 예의가 바르군. 해결사 놈들은 대부분 근본이 없어서 좀만 잘 나가도 싸가지가 없는데 말이야. 뭐,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셰이머스는 유쾌하게 다시 웃었다. 그의 감정은 즐거움, 통쾌함, 만족으로 빛냈다.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사장님.”
"어, 잘 가 봐.”
셰이머스가 종업원을 친근하게 배웅해줬다.
"식당도 운영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냥 편의상 사장이라 불리는 거지, 진짜 사장은 아니야. 엄밀히 말하면 난 투자자에 불과하지. 가게 사장은 내 이거거든."
셰이머스가 자기 키처럼 길쭉한 새끼손가락을 펴 보였다.
"새끼손가락이 사업을 한다고요?”
"아니, 씨발. 애인이란 뜻이거든.”
“아…..”
“이쪽 언어를 전혀 모르는구만.”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할 건 아니지. 나도 처음 란다로 왔을 때 약간 그랬으니까…. 그래도 너만큼은 아니었던 거 같다.”
"처음 란다로 왔을 때면, 3년 전 말씀입니까?”
"그래. 어떻게 한 거야? 나에 대해 뒷조사한 거야?”
"뒷조사는 아니고, 그냥 듣게 됐습니다. 크라임 펌에서 셰이머스 님이 유명하셔서요.”
“아, 내가 유명하긴 유명하지. 가장 잘 나날 때 들어와서 온갖 궂은일을 해줬으니. 근데, 이제 좀 자리 잡고 내 사업 좀 하려니까. 미친 놈들이 뒤에서 쑥덕대네….. 솔직히 말해봐. 다들 내 험담했지?”
"예."
올리버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무 솔직하잖아?”
"란다에서 사업하는 분들은 늘 서로 죽이려고 해서 욕하는 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그 어떠한 악의도 가지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해결사로 살면서 봐도 란다의 일상은 이랬으니, 욕 정도면 괜찮은 건 줄 알았다.
"크크크크크크크큭!! 아, 큰일 났네. 점점 마음에 들어. 일단, 앉아서 식사나 같이하지. 그리고 사업 이야기 좀 하자고."
"사업 이야기요?”
"당연하지. 설마 내가 정말 밥만 먹자고 불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