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15화 (215/633)

< 215. 편지 비행기 (1) >

"피곤하실 텐데 쉬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거대한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올리버와 절뚝이며 따라오는 조가 말을 주고받았다.

조는 놀랍게도 올리버에게 예를 갖춰 존댓말을 했다.

갑작스러웠지만 이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질서.

올리버가 파이터 크루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흑마법을 가르치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권위를 갖춰야 했고, 그걸 위해서는 조 자신을 포함해 가르침을 받는 모두가 올리버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 데이브 씨의 힘을 봤으니, 쉽게 생각하는 놈들은 없겠지만, 여기엔 바보들도 많아 좋게 좋게 상대해주다 보면 자기도 동급이라 생각하는 놈들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고로, 이제부터 저를 포함해 모두 존댓말 하겠습니다. 데이브 씨는 말 편히 놓으시죠.’

올리버는 존댓말이 더 편하다고 정중히 거절하면서도 조가 존댓말 하는 걸 말리지 않았다.

애당초 말투야 말하는 당사자가 정하는 거였으니, 올리버가 이래라저래라할 권리가 없었다.

그렇게 과거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올리버는 딘클리지가 운영하는 체육관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근육질 사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오! 왔나?!"

키는 작지만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딘클리지가 덤벨을 들며 다가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관장님.”

올리버가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고, 조는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딘클리지가 그 모습을 보며 체육관 내 있는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보이냐?! 좀 보고 배워! 크라임 펌과 거래하는 거물조차 회원이라는 이유로 나한테 존경심을 보이잖아!! 예의라는 걸 좀 배우라고!”

딘클리지의 고함에 운동 중인 회원들이 ‘예, 예.’ 건성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일? 별거 없어. 그저 새로운 사업을 하는데, 이놈들이 내 합리적인 비싼 가격에 순응하지 않고 가격을 깎으려고 해서 서먹한 것뿐이야."

"합리적인 비싼 가격이라 게 있나요?”

"물론이지. 바로, 여기 있잖아! .…근데, 조 요즘 어디 가서 맞고 다니나?”

딘클리지가 온몸에 멍이 든 조를 슬쩍 보곤 물었다.

조는 올리버를 슬쩍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하게는 훈련한 겁니다."

올리버가 조의 말을 정정해줬다.

쿼터스태프로 후려치고, 찌르고, 주먹으로 때리며, 발로 걷어차고, 무릎으로 찍고, 팔꿈치로 까고, 흑마법을 쏴 맞췄을지언정 그건 훈련이었으니, 결코 맞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딘클리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버를 봤다.

"그..…렇군.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인가? 어깨에 둘러멘 짐을 보아하니 운동하러 온 거 같지는 않은데.”

"예, 맞습니다. 사실, 스미스 씨를 만나 뵈러 왔습니다.”

***

체육관 옆의 작은 폐건물.

무너지기 직전까지는 아니었지만, 허물어져 가는 그 건물로 올리버는 들어갔다.

청소를 덜 한 건지 건물 안에는 약간의 먼지가 떠다녔다.

"어서 오..…. 어?!”

건물 안에는 한 통통한 사내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올리버에게 빅마우스를 만들어준 흑마법사 장인이었다.

"데이브 씨?”

"스미스 씨. 안녕하십니까?"

올리버가 최근 알게 된 통통한 흑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며 정중히 인사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묘해 X구역 불법 격투기 시합장에서 재회한 그는 딘클리지와 좋은 첫 만남을 가지곤 바로 동업에 들어갔다.

"잠깐만요. 누가 좋은 첫 만남이라고 했습니까? 반협박 당해 여기 붙잡힌 건데!”

"예? 제가 듣기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의하신 거라고 들었는데요. 아니었습니까?”

"합의? 뭐 하기는 했죠. 돈도 떨어져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수준까지 갔으니까. 그런 와중에 지낼 곳과 장사할 자리를 알아봐 준다니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요?”

"대신 수익의 50퍼센트를 가져가겠다지 않습니까. 이건 그레이마켓에서보다 더 심합니다.”

"아..…. 그럼, 동업 안 하시면 되지 않았나요?”

"앞서 말했다시피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거절하면 크라임 펌에 절 신고하겠다 협박했고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아, 안타깝네요..….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스미스의 말에 어떠한 공감도 없이 올리버는 바로 자기 용무로 넘어갔다. 일이 많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올리버의 그런 태도에 스미스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카운터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이 도시 싫어! 내 편 따위는 아무도 없다고! 망할 도시 놈들! 착하고 순박한 시골 출신을 등쳐먹기나 하고..…."

"시골 출신이신가요?”

"원래 도시에는 도시 토박이보다 시골 출신이 더 많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단기간 내 많아지겠습니까? 쥐새끼도 아니고!”

"오..…. 그렇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에요. 기분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부자가 돼 방탕한 삶을 살겠다는 순수한 희망을 품은 채 도시로 왔는데, 모두 내 등골만 빼먹으려고 하잖습니까?! 심지어 여기 관장이란 양반은 매일 운동도 시킨다고요! 운동!!”

통통한 남자가 다시 카운터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정말 슬프다기보다는 피로와 짜증이 겹친 정신적 피로 상태에 더 가까워 보였다.

조가 조용히 올리버에게 다가와 속삭여 물었다.

"때릴까요?”

"아뇨. 왜 때려요?”

"보통 때리면 우는 걸 그치거든요.”

"진짜요?”

올리버가 잠시 고민한 후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저기 개업 선물을 가져왔는데, 혹시 이거면 좀 기분이 풀리지 않으실까요?”

"훌쩍……선물이 뭡니까?”

"선물은 현금이 최고라고 해서, 1천만 란다를一”

"一오, 진짜요?”

언제 울었냐는 듯 스미스는 민첩하게 일어났다. 역시,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1천만 란다?”

"예."

"진짜로?"

“예.…. 만들어주신 빅마우스가 그만큼 제 성능을 하고 있거든요.”

그건 사실이었다. 반은 호기심 삼아 주문한 빅마우스는 현재 쿼터스태프 다음으로 올리버가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어떤 의미로는 송장인형 이상이었다.

전투에는 쓸 수 없지만, 전투 후 엄청난 양의 노획물을 부담 없이 챙길 수 있었는데, 이는 가히 획기적이었다. 올리버의 능력 밖 일이기도 했고.

아닌 말로 빅마우스가 없으면 이만큼 빨리 성과를 내지도 못했을 거였다.

‘책, 송장인형 잔해라던가, 시체, 실험실 비품 운반 등등 덕을 참으로 많이 봤지.'

값어치로만 따져도 수억 란다는 족히 넘을 터.

그렇기에 올리버는 이러한 물건을 만들어준 스미스에게 개업 기념 선물로 1천만 란다를 줘도 딱히 아깝지 않았다.

큰돈이긴 했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으니. 따로 물어볼 것도 있었고.

빳빳한 지폐 선물을 받은 스미스는 머리를 매만져 정리한 후 자세를 가다듬었다.

"제 새로운 가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손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올리버가 붕대로 칭칭 감은 해머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쿵.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거 굼실거리는 거 같은데 내 착각입니까?”

"아뇨, 제대로 보셨습니다.”

올리버가 붕대를 풀었다. 세 겹으로 싸인 붕대 아래에는 선홍빛 살점과 하얀 뼈로 이뤄진 해머가 있었다.

"이건..…."

"설명하자면 긴데, 과거 싸운 흑마법사에게서 노획한 겁니다.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아 알아보려고 했지만, 제 재주로는 한계가 있어서요. 기능이-”

“-강력한 내구도와 생명력 흡수, 섭취를 통한 상처 체력 회복인가요?”

오.… 정확한 설명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어….. 대답에 앞서 지금 하는 말은 비밀로 지켜줄 수 있습니까?”

"예.”

"내 스승님이 만든 물건 같습니다.”

***

스승님.

흑마법사에겐 참으로 가까우면서도 먼 단어였다.

스승의 역할을 해주는 존재가 있지만, 그들의 명칭은 주인님이었다.

실제로 가르침을 줘 인도해주는 스승보다는, 소유주에 가까웠으니.

그런데, 스미스는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우리 스승님이 좀..…. 많이 특이한 분이라 그렇습니다. 흑마법사치고는요. 좋은 뜻은 아니지만.”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이걸 스미스 씨 스승님이 만들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진심. 놀라웠다. 스미스의 실력도 꽤 괜찮은 편이라 어느 정도 좋은 스승을 뒀을 것을 예상할 수 있긴 했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그럼 이거에 대해 잘 아시나요?"

"아뇨. 자세히는 모릅니다.”

이것 역시 예상치 못한 대답.

조가 도울 요량으로 주먹을 우두둑 풀며 다가왔다.

"에헤이! 진짜 모릅니다…. 사람을 재료로 만든 무기 같은 건데, 기본적인 기능만 알지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여기 딘클리지 씨가 관리하는 사업장이니 나한테 폭력을 행사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제발.”

올리버는 조를 멈춰 세웠다.

"죄송합니다. 조 멈추세요. 스미스 씨는 사실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암요! 전 저한테 돈 주는 사람에게 거짓말 안 합니다….. 가급적 말이죠.”

한차례 소동이 가라앉고,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스미스 씨 스승님이 만든 걸 아신 거죠?”

"여기 이 부분 보이십니까?”

스미스가 망치의 아래쪽 부분을 가리켰다. 불도장으로 지진 부분이 보였다.

"이건..…?”

"콩 줄기입니다. 화상이 좀 번졌지만, 스승님이 자기 작품에 박는 일종의 브랜드 같은 겁니다.”

"아……."

"그래서 제가 이 물건은 몰라도, 스승님이 만든 물건이라는 건 아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 물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아시는 바가 없으신 거군요?”

"예. 사람을 재료로 하고, 아까 전에 말한 기본적 기능 외에는 저도 잘…. 제가 도울 건 없을 것 같습니다."

흠..…. 올리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약간 아쉽긴 했지만, 또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호기심이 가는 물건일 뿐이지, 당장 안달 날 정도로 궁금한 것은 아니었으니.

기껏해야 약간 아쉬운 정도?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 대강이나마 들었고, 누가 만든 것인지도 알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한 수확이었다.

실험실 장비를 맞춘 후 천천히 연구해보는 방법도 있었다.

정 안 되면, 토막토막 분해해 연구해보는 것도 방법이었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던 중 스미스가 대뜸 말했다.

"혹시, 원한다면 제 스승님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진짜 갑작스러운 제안.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예? 어디 계시는지 아나요?”

"아뇨, 그분이 방랑벽이랑 빚, 원한을 가진 사람이 많아 늘 떠돌아다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50퍼센트의 확률로 연락할 방법은 압니다.”

“50퍼센트요?”

"사실 30에서 40퍼센트지만요. 어쩌면 20퍼센트일 수도......"

스미스가 그 말과 함께 선랍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냈다. 안에는 빳빳한 종이가 있었다.

".....음, 사람 가죽이네요."

"예, 종이처럼 가공한 최고급 인피(人皮)죠. 여기에 용건을 적어서 날려 보내면 됩니다. 운이 좋으면 스승님에게 도착할 겁니다. 써드릴까요?”

동화 같은 이야기. 그러나 스미스는 진심이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옆에서 지켜보던 조가 의심을 품으며 끼어들었다. 뒷골목에서 과한 호의는 미끼일 가능성이 있었으니.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냐니….. 진심으로 묻는 거요? 생각해 보세요. 개업 선물로 1천만 란다를 주는 호구에게, 아니! 손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면 나중에 어떤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 물론, 편지가 도착할 확률이 낮고, 받는다 해도 올지 의문이며, 와도 절대 공짜로 도와줄 건 아니지만, 내가 도운 건 사실이니 나중에 충분히 유세 떨 수 있다 이 말입니다.”

".....호구요?”

"말이 잘못 나온 겁니다. 손님."

"와도 공짜가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죠?”

"그게 제 스승님은 뭐랄까 아주 아주..…. 한량이어서 그냥 도와주는 법이 없거든요. 용돈을 좀 요구할 겁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도와 줄지 의문이고요.”

"음.…. 얼마나 내야 하죠.”

스미스가 잠시 고민하다 올리버의 귀에 속삭였다.

"뭐, 그 정도면….. 한번 불러주실 수 있나요?”

올리버가 결정했다. 급한 건 아니었지만, 호기심을 해소할 방법이 있으면 굳이 참을 필요도 없었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면 지금으로서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대답을 들은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인피(人皮)에 편지를 써 종이비행기를 접은 다음 날렸다.

놀랍게도 인피(人史) 비행기는 정말 마법처럼 하늘 높이 아름답게 날아갔다.

"원래는 높은 곳에서 던져야 하지만-”

-콱!

날아가던 인피(人皮) 비행기를 지나가던 까마귀가 물고갔다.

까악- 까악- 까악-

"......."

"......."

"......."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올리버와 조

스미스가 다시 편지를 쓰곤 비행기를 접었다.

"높은 곳에서 던져야 더 효과가 좋은데, 방금 그걸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따라오시죠. 높은 곳에서 던지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