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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13화 (213/633)

< 213. 째깍 째깍 째깍 (1) >

다행히 포레스트는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 뭔가 있다고 생각하시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쉽지만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차를 타고 먼저 갔고, 올리버는 그런 포레스트를 배웅하고 바로 발길을 움직였다.

탁- 탁- 탁- 탁-

올리버가 걸을 때마다 손에 쥔 쿼터스태프가 바닥에 부딪히며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광고지에서만 보던 궁전 같은 건물과 웅장한 시계탑 등을 지나, A구역에서 일하는 정치인과 시(市) 공무원 등을 위해 마련된 고급스러운 공원에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올리버가 공원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비둘기 모이를 주는 남자에게 인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한 것은 아니지만.

아, 참고로 비둘기는 올리버가 나타나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며 날아가 버렸다.

그럼에도 남자는 계속해 비둘기 모이를 주변에 뿌렸다. 비둘기보다는 모이를 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듯.

"혹시나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와줬군.”

"절 기다리셨습니까?”

"알고 온 거 아닌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여기 계신 걸 우연찮게 봤고, 감사 인사드리려고 온 겁니다.”

"감사 인사? 뭐지?”

“퍼펫 님이 두고 가신 책과 시체 잔해로 송장인형을 다룰 수 있게 됐으니까요.…. 도움을 받았으니까,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남자, 아니. 퍼펫이 비둘기 모이 주는 걸 멈추며 고개를 돌려 올리버를 봤다.

"역시 재밌군. 만나러 온 시간이 그리 아깝지 않아.”

"어떤 용무로 기다리셨던 건가요?”

"그래, 할 이야기가 있어서…..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시간은 되나?”

퍼펫은 친절하게도 올리버의 시간부터 확인했다.

"예. 1시간 정도…. 혹시 여기서 이야기하실 건가요?”

"난 상관없긴 한데, 왜 싫나?”

"아뇨, 좋습니다. 다만, 그전에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뭐지?”

올리버가 저기 길 끝에 있는 아이스크림 부스를 가리켰다.

아이스크림 부스 간판에서는 고급스러운 바닐라와 진한 초콜릿 맛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어도 될까요? 먹고 싶어서요."

"음..…. 내 것도 하나 사주면.”

***

그것은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이 빠질 만큼 기괴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수백 년을 살며, 그 누구도 본모습을 본 적 없고, 손을 다 써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조직과 제자를 키운 흑마법사계의 대스승 퍼펫이 공원 벤치에 앉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다니.

그것도 스무 살 남짓의 애송이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내막만 모른다면 꽤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마치 나이 차이가 나는 친구들처럼 말이다.

"의외군.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건 없습니다. 단 것도 좋아하고요….. 퍼펫 님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까?”

당연한 의문이었다. 퍼펫이 지금 쓰고 있는 육신 역시 송장인형이었으니.

그렇지만 퍼펫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좀..…. 차별적인 발언 같군. 레이시스트해.”

"아, 죄송합니다.”

사과를 듣자마자 퍼펫이 클클클 웃어댔다.

"허나, 당연한 의문이기도 하지. 비록 송장인형이지만, 맛을 느낄 수 있어. 바람의 감촉도 느낄 수 있고, 새들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지.… 비록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이 축복을 누리고 싶으니.”

수백 년을 살며 셀 수 없는 인체 실험을 자행한 자가 한 말치곤 매우 뻔뻔했지만, 한편으로 그의 모습에서 진심을 넘어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우적. 우적. 우적.

둘 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아래의 콘까지 다 씹어 먹었다.

아주 고소했다.

"그럼, 괜찮으시다면 절 왜 만나러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솔직히 여기 계신 것 보고 놀랐거든요.”

"이유는 많아, 개인적인 내 호기심도 있고, 상황이 상황인 것도 있고, 또 자네가 최근 재밌는 일에 엮여서이기도 하지.”

퍼펫이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진심인 듯했다.

"제게 호기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라는 것과 재밌는 일에 엮였다는 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인육 요리사.”

퍼펫이 나지막하게 그 단어를 말했다.

"근래, 자네가 인육 요리사 제자들을 쓰러뜨렸다더군.”

"요리사, 조작계열 흑마법사, 돼지 얼굴, 베니움. 이렇게 네 분입니다.”

"말해 봤자 모르니 말하지 말게. 내 제자도 아닌 데다, 수백 년 동안 만난 사람이 얼만데 일일이 기억할 거 같나?”

퍼펫은 평범하게 매정한 소리를 했다. 하긴, 그는 자기 제자인 글립도 잊어먹었으니.

거지들을 산 채로 넘겨 검은손에 들어가려고 했던 흑마법사 말이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수백 년을 살면 보통 사람과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그래도 안타깝긴 안타까웠다.

"대답해보게. 정말 그들을 쓰러뜨렸나?”

"예."

올리버는 대답과 함께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처음 만난 조작계열 흑마법사는 송장인형-시체대포로 단숨에 지져버리고, 요리사와 돼지 얼굴을 정면 승부로 쓰러뜨리며, 베니움은 핑크맨과 합심해 포획했다고.

말하고 나니 베니움 건은 괜히 이야기했나 싶었지만, 다행히 퍼펫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너무 하찮아서 말이다.

오히려 그는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송장인형을 그 정도로 다루니 대단하군.”

"책이 도움이 됐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글립의 일지가 있었지만, 첫 발자국을 떼게 해준 건 퍼펫의 서적이었다.

"깜빡하고 안 챙긴 책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어이없구만.”

"그게 세상의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올리버의 말에 퍼펫이 클클클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구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혹시, 검은손에 들어올 생각 있나?”

느닷없이 튀어나온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올리버가 대답하지 못하고 말없이 퍼펫을 바라봤다.

희미한 감정 상태로 봤을 때 그는 진심인 듯했다.

“….검은손요?”

"그래, 원한다면 내 제자로 들어와도 좋고, 그게 싫으면 그냥 내 그늘에 머무는 것도 좋아. 것도 아니면 조직을 만들어 손가락이 되도 좋고. 인력과 자금 정도는 지원해주지.”

그는 진심이었다. 실로 파격적인 조건. 그 이유가 궁금했다. 뭐, 대답은 정해진 상태지만.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죄송합니다.”

"호..…."

퍼펫의 표정에 감정이 살짝 드러났다. 아무래도 이런 대답을 예상치 못한 듯했다.

"이유를 물을 수 있겠나? 검은손에 들어가길 원하는 흑마법사는 많은데.”

"그냥 조직에 소속되는 게 꺼려져서요. 조직에 소속되면 일을 해야 하니 거기에 시간도 빼앗길 것 같고, 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것 같아서요.”

올리버는 여느 때와 같은 대답을 했다. 동시에 다음 대사를 예상하며 거기에 맞게 답변을 준비했다.

아마, 검은손이 얼마나 대단한 조직이고, 이런 제안을 받는 게 큰 특권인지 설득하겠지.

그러나, 퍼펫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거라면 문제없어. 자네 실력 정도 되면 다른 손가락과 직접적인 마찰만 일으키지 않으면 웬만한 의무에서 다 벗어날 테니. 자유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조직에 올리버를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에 따른 혜택도 준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올리버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

그런데 퍼펫에게선 그런 게 없었다. 그저 혜택만 있을 뿐. 심지어 아주 거짓말도 아니었다.

"관대한 제안이군요.”

"내 흥미를 끌었으니까…. 자네에게도 결코 손해 보는 제안이 아닐 거야.”

"예, 그런 혜택을 주셨으니 당연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예?”

"협박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검은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자네 삶이 약간 고달파질 수도 있어.”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자네를 노릴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거거든. 자네가 인육 요리사의 제자들을 쓰러뜨렸으니.”

“..…복수 같은 건가요?”

"전혀. 그저 자네 자체에 대한 욕심이지.”

"....?"

"갑자기 등장해 인육 요리사의 제자를 죽인 흑마법사. 그것만으로 여러 가치가 있지. 자넬 죽이는 것만으로 누구든 명성을 높일 수 있고, 혹은 훌륭한 실험 데이터를 뽑을지 모르지. 흑마법사나 마법사나.”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전 그저 핑크맨에 고용돼서 한 것뿐인데요?”

"하지만 가장 활약했지. 거기에 흑마법사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내 쪽이나, 인육 요리사 쪽에서는 자네 자체가 매력적인 물건이기도 해. 인육 요리사는 사람을 먹음으로써 힘을 축적하니까. 그건 자네도 알 테지?”

"예."

"나도 다르지 않아. 송장인형이 강할수록 나의 힘도 강해질 테니.”

“그런데, 절 죽이실 생각은 없으시군요.”

"아직은. 죽은 자네보다는 살아있는 자네가 더 호기심이 동해서 말이야.”

"어째서지요?”

“..…바로 대답해주면 재미없지.”

퍼펫이 클클 웃으며 말했다. 그냥 허풍이 아닌 진짜 무슨 이유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거는 이거.

올리버는 다시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걱정해주시는데, 그럼에도 거절해야 할 거 같습니다.”

"걱정해주는 건 아니고..…. 다만,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내 말과 제안이 거짓이 아닌 걸 알 텐데. 왜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려는 거지.”

올리버는 그 질문을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다.

첫 만남이야 어쨌건 퍼펫은 올리버가 송장인형과 인공영혼을 쓸 수 있게 가르침을 준 사람.

더욱이 지금 여기 나타나 정중히 대화해 올리버에게 친절한 제안과 경고까지 해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올리버 역시 그에 걸맞게 고민해서 대답하는 게 예의.

올리버 생각을 정리했다.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여자와 아이들을 가둔 글립의 지하창고와 퍼펫의 인체 실험 현장, 로스번을 만난 마텔 지하 비밀 실험실 등등.

감히, 올리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없지만, 역시……

“....좀 그래서요.”

올리버가 대답했다.

짧지만, 많은 뜻이 담긴 그 말에 퍼펫이 기분 나빠하긴커녕 클클클 웃었다.

"좀 그래서라..…. 하긴 그 정도 이유면 충분하지.”

퍼펫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한 기색이나, 분노는 없었다.

"가시는 겁니까?”

"볼일이 끝났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지.”

"아..…. 좋은 대답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예의 바르군. 아이스크림 잘 얻어먹었네. 보답으로 재밌는 걸 하나 알려주지."

"무엇을 말씀인지요?”

"째깍. 째깍. 째깍.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네.”

***

팔랑. 팔랑. 팔랑.

올리버는 마탑 직원실에서 케빈이 준 책을 읽고 있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중요한 핵심 내용을 요약해 노트로 옮겨 적는 것으로, 케빈의 수업을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이었다.

원래는 케빈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강의실 배정과 수업 추가 예산 확보, 교육시설 사용 일정 조율 등 부수적인 일이 쌓여 올리버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책 위주로 정리를 맡게 됐다.

그렇다 해도 업무는 업무.

원래라면 기쁘고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지만, 올리버는 평소처럼 완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퍼펫이 남긴 말 때문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네.’

시계가 움직인다니 전혀 알 수 없는 말.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퍼펫은 대답해주지 않고 떠났으며, 올리버는 따라가 묻지 못했다.

그저 느낌이긴 했지만, 단순히 심심해서 한 말은 아닌 듯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시계가 움직인다니.

문득, 인육 요리사 부하가 경매장을 습격한 것과도 미세하게 상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 똑-!

딴 생각을 하며 책 내용을 요약하던 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어째 거칠었으며, 실제로 문 너머에 보이는 감정 역시 꽤나 짜증이 쌓인 상태였다.

낯이 익기도 했고.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역시나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원소학파 타워 내 있는 도서관 사서였다.

올리버가 자동문을 보고 신기해하자 못마땅하게 보던 분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손님에게 올리버가 정중히 인사했다.

사서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왜 여기 있는 거죠?"

"네?”

"도서관 정리를 위해 교수 개인 직원들에게 호출했는데, 제논 씨만 안 오셨어요. 뭐 하자는 건가요?”

날 선 질문에 올리버가 당황했다.

"호출요?”

"예, 호출기 신호가 없던가요?”

"호출기를 아예 못 받았습니다."

사실이었다. 올리버는 호출기란 존재를 책에서도 케빈에게서도 듣지 못했다.

“..…올해부터 도입한 건데,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군요. 비품관리실에 문의해 보세요.”

"조언 감사합니다.”

"원래는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예요….. 그보다 어서 도서관으로 오세요. 당신이 안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더 일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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