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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12화 (212/633)

< 212. 외양간이라도 고친다 (2) >

성기사 셀랜드 지부는 생각보다 길이 복잡했으며, 란다 특유의 효율적인 건물 구조와는 거리가 있었다.

목적이 편리성보다는 방어.보안에 맞춰진 구조.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 빙빙 돌고 돈 끝에 한 방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다.”

길 안내를 해준 서번트가 말했다. 창문 하나 없는 철저하게 폐쇄된 곳.

"들어가라.”

길 안내를 해준 서번트가 재촉했다.

"예, 알겠습니다. 길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를 갖춘 올리버의 인사에 서번트는 콧방귀를 꼈다. 뭐랄까 여기 있는 분들 참으로 화가 많은 것 같았다.

끼익..….

두꺼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올리버는 조잡한 탁자와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

그 공간 안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엘튼 기사님. 오랜만입니다.”

올리버가 사자처럼 풍성한 수염과 머리를 기른 성기사에게 인사했다.

중년의 그는 건장한 체격에 눈빛도 날카로워 정말 두 발 달린 사자처럼 보였다.

과거 오염구역에서 퍼펫에게서 기적적으로 살아남고, 시(市) 공무원인 폴 카버에게 붙잡혀 심문당할 때, 저분이 요안나와 함께 와서 올리버를 다시 심문했었다.

기껏해야 1년도 안 된 이야기건만,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성기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기억하나?”

"예.…. 그런데 같이 오셨던 동료분은 안 보이네요.”

그 동료란 다름 아닌 요안나로,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질문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엘튼은 불쾌한 감정을 살짝 빛냈다. 마법 아이템과 다른 힘으로 감정을 숨길 수 있게 도움받았지만, 올리버의 눈에는 희미하게 보였다.

"왜 관심을 가지지?”

"관심 있는 건 아니고, 전이랑 달라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바로 신경 끄며 말했다. 엘튼도 아직 불쾌한 기색은 남아 있지만 구태여 캐묻진 않았다. 딱히 궁금하지 않았으니.

"앉아."

"예."

올리버는 엘튼의 바로 맞은편 탁자에 앉았다.

과거 심문당했을 때가 다시 떠올랐다.

"무슨 일로 흑마법사를 불러 조사하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성기사가 무심하게 서류를 정리며 말했다.

"여기 규칙을 알려주지. 질문은 내가 하고, 넌 대답만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이름이 뭐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패턴.

올리버는 데이브라고 대답했다. 그다음에는 담당 중개인을 물었고, 또 그다음에는 어떤 경위로 계약하게 됐는지 물었다.

이미 과거 대답했던 질문. 당연히 궁금해 묻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심문할 때와 마찬가지로 트집 잡을 게 없는지 묻는 거였다.

올리버는 대답했다. 과거 했던 뻔하고 지루한 대답을 똑같이.

문답이 오갈수록 올리버의 지루함은 심해졌고, 동시에 왜 이러는 건지 다시 묻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자 문득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았다.

만약, 질문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건 올리버에게 너무 괴로운 일이 될 거였다.

과연 거기서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저번에 만났을 때 퍼펫과 넌 전혀 관계가 없다고 그랬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송장인형을 사용하는 거지?”

엘튼이 감정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었다.

"사람만 한 먹보주머니를 사용하는 흑마법사가 송장인형을 사용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런 먹보주머니를 사용하는 해결사는 이 도시에 너 하나뿐이고….. 부정하나?”

아..…. 올리버는 새삼 포레스트의 조언 중 버릴 게 없다는 걸 통감했다.

사람들 앞에서 빅마우스 사용도, 송장인형 사용도 자제하라고 했건만, 그 말을 어기자마자 이런 문제가 발생하다니.

“저 맞는 거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그 정도 크기의 먹보주머니를 사용하는 건 저밖에 없거든요.”

"그럼 어디 한번 설명해봐. 어떻게 송장인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는지.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할 셈인가?”

"아뇨, 송장인형은 처음부터 쓰진 못했습니다. 다만, 오염구역에서 송장인형 관련된 서적을 주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재료는 버려진 송장인형 잔해를 주워 고쳐 사용했을 뿐이고요.”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하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올리버가 뻔뻔히 거짓말을 했다. 뭐, 100퍼센트 거짓말은 또 아니었지만.

올리버가 송장인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오염구역에서 주운 서적 덕분이긴 했다. 송장인형도 처음에는 재활용한 거고.

"이유가 뭐가 됐건, 송장인형을 사용한 것만으로 널 체포할 수 있어.”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만, 그럴 수 없을 뿐.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올리버를 쉽사리 체포할 수 없는 거 같았다.

올리버는 그 점을 감안하며 자신을 변호했다. 굳이 성기사와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었으니.

"송장인형을 쓴 점은 죄송합니다. 다만, 이미 송장인형이었던 걸 재사용한 점을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상대로 성기사는 이 이상 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다른 책잡을 것을 찾았다.

"물어볼 게 하나 더 있다.”

"예, 말씀하시죠.”

"넌 퍼펫을 만나고 패했다고 했지?”

"예."

"그런데 나중에 퍼펫이 나타난 곳으로 가보니. 엄청난 전투의 흔적이 있던데, 아는 바 있나? 일방적으로 패해서 생긴 그런 전투의 흔적이 아니던데.”

낚싯대를 던진 엘튼.

그의 감정 상태로 봤을 때, 알든 모르든 트집 잡을 게 확실했다.

그래서 올리버는 주제와 상관없는 다른 말을 꺼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거기까지 가셨으면 혹시 보셨습니까? 마법사들이 인체 실험을 했던 흔적을요.”

쿵!

아무것도 없었지만, 엘튼의 귀에 무엇인가 무거운 게 떨어진 소리가 들렸다.

분명, 환청에 불과했지만, 공간은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깊은 침묵. 성기사 엘튼이 입을 열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궁금해서요. 보셨습니까? 아니면 안 보신 척하는 겁니까.”

꾸욱……!

성기사 엘튼은 이를 꽈악 깨물었다. 분노, 창피함, 후회, 번민으로 물든 그의 모습은 진짜 사자처럼 위압적이었다.

다시 납처럼 내려앉은 침묵. 흑마법사와 성기사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봤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혹시, 곤란한 질문을 한 거면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솔직히 뭘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거든요.”

모독적이기 그지없는 발언. 그러나 올리버는 악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조롱보다 악의적이었다.

엘튼이 입을 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흑마법사.”

"성기사. 신을 대신해 인간계를 지키는 방패이자, 인류의 수호자. 아버지의 가르침을 수행하며, 질서를 지키는 존재.…. 라는 것은 압니다.”

"감히, 흑마법사가 신을 논하나?”

"아뇨, 논할 정도로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 경전을 읽어봤지만, 전부 이해하기도 힘들고요. 다만, 동경은 합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단한 분 같거든요.”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었다.

올리버의 목소리에는 동경과 존경이 약간 있었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이 신을 말할 때와 아주 거리가 있었다.

사람에게 있어 신이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동경하고 숭배할지언정 결코 좁힐 수 없는 절대적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올리버에겐 그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대하듯 친근하기 그지없었다.

자칫 불경할 수도 있는 모습. 하지만 우습게도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성기사 조차 순간 제지할 생각을 못 했다.

성기사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입 조심해라. 함부로 신을 입에 담지 마라.”

"죄송합니다. 질문에 대답한 것뿐인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성기사는 눈앞의 흑마법사를 보며 인상을 썼다.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왠지 인상 깊은 놈이라 기억해뒀는데,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크게 달라졌다.

그래서 그 아이가 몰래 만난 것일까?

다시 침묵이 감돌았고 올리버는 질문을 기다렸다.

째깍- 째깍-

있을 리 없는 시계 소리가 들리며 계속해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슬슬 시간이 아까워지려고 할 때 올리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사님. 혹시, 질문이-”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갑자기 입을 연 성기사. 올리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성기사가 말을 하다 말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놀라운 인내심과 의지를 발휘해 혀를 놀렸다.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세상은 복잡하다. 흑마법사. 그리고 파테르 교는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조직이지."

"......."

"그렇기에 우리 역시 때때로 세상과 타협해야 해.”

"아, 그렇군요. 뭐….. 이해합니다.”

올리버는 난생처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이해합니다.’를 말을 했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깊이 생각하기도 싫었고, 귀찮았다.

그냥 빨리 이 순간이 가길 바랄 뿐. 그때 성기사가 다시 말했다.

"타협하지 않는 자는 종종 꺾이지.”

"음.…. 저기 기사님? 일개 흑마법사인 제게 그리 말씀하실 필요는-”

"-요안나처럼.”

"......."

"우리라고 눈과 귀가 없지 않아. 이 도시의 추악한 면을 모르지 않고. 하지만, 우린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몸. 자신만의 알량한 정의를 가지고 움직일 수 없어.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사건에서 멀어져 해결할 기회조차 사라지고 말지.”

"......."

“요안나. 그 아이는 마법사가 끔찍한 인체 실험을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몇 개월에 걸쳐 상부에 주장했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났다. 너를 만난 후부터 말이야.”

“….어떻게 아신 겁니까?”

올리버는 부정하지 않았다. 성기사의 감정 상태를 보고 같잖은 거짓말로 넘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알았기에.

뭣보다, 요안나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말했잖아? 눈과 귀가 없지 않다고. 자세한 건 모르지만 너와 신전에서 만나던 건 알고 있었다.”

"질문 하나 허락해 주실 수 있습니까? 부디 부탁드립니다.”

“말해라."

"왜 가만히 내버려 둔 거죠? 전 흑마법사인데.”

"그 녀석을 믿었으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엘튼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요안나를 믿었다.

"그런데 널 마지막으로 만난 날부터 괴로워하고 번민하더니 앞서 말한 대로, 란다 마법사들에 대한 감사를 계속해 주장하다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말았지 …나도 묻지. 무슨 대화를 나눴나?”

"왜 궁금하시죠?”

"착한 아이고. 내 파트너였으니까.”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

"길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심문을 마치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와 말했다.

길 안내를 해주는 서번트는 올리버를 요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나와서 다행이군. 생각보다 빨리 나왔어. 별문제 없었나?”

복도에서 기다리던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반기며 말했다. 그는 올리버의 무사 귀환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기뻐했다.

감정상태를 보아하니 만일의 사태를 걱정한 듯했다.

"예, 별일 없었습니다. 복도에서 기다렸습니까?”

"그렇네.”

"차에서 기다리시지 그랬습니까?”

"이렇게 복도에서 기다려야 내가 자넬 걱정했다는 티를 낼 수 있잖나? ..…무슨 일 있나? 얼굴이 이상한데.”

올리버는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제 얼굴이 이상한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조금 미세하게….. 내 착각인 거 같네. 근데, 무슨 일 있었나?”

"아뇨.…. 없었습니다. 우선 나가죠.”

"아, 내 배려가 부족했군.”

포레스트는 바로 올리버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차로 가는 도중 포레스트가 물었다.

“A구역에서 T구역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데, 일정 있나?”

올리버는 시계를 확인했다. T구역에 도착하면 오후 4시나 4시 반쯤될 듯했다.

저녁 6시쯤에 X구역으로 가 흑마법을 가르쳐줘야 했다.

"시간이 애매하긴 하네요. 혹시 일 이야기 하시려는 건가요?”

"섭섭하군. 날 뭐로 보나? 오늘 고생한 사람에게 일을 떠넘길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다고. 뭣보다 자네는 파이터 크루를 맡은 사람. 최소한 이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할머니 유골함처럼 모실 생각이야. 일이 끝나면 다시 굴릴 생각이고..…. 그래 그런 눈으로 날 보게. 그게 보기 좋구만.”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괜찮으면 식사나 한 끼 하자고. 오해는 하지 말고, 젊은 친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남자에겐 취미가 없으니.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하고 싶은 말요? 뭐죠?”

"여기서 말하긴 뭣하니 식사하자는 거지. 분위기 좀 읽게.”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누구와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마음이 좀 그랬으니.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아이스크림요.”

"아이스크림?"

"예, 조금 당기네요.”

"그렇군…. 좋아, 아이스크림을 잘 만드는 호텔이 있으니 그럼 거기로…. 뭐하나?”

포레스트가 갑자기 멈춰서 먼 곳을 바라보는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포레스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면, 미동이 거의 없는 올리버의 포커페이스가 약간 흔들렸다. 놀란 것이라도 본 것처럼.

올리버가 말했다.

"포레스트 님."

"왜 그러나?”

"약속 시간까지 레스토랑에 갈 테니, 여기서 잠시 헤어질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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