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외양간이라도 고친다 (1) >
우우우웅——!
포레스트와 올리버가 탄 차량이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달리며 A구역으로 향했다.
란다의 심장인 A구역에는 시의회와 관련 행정시설 그리고 파테르교 성기사 지부가 밀집해 있었다.
차에 탄 포레스트는 통신장치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러니 안 와도 되네. 알았네. 바로 연락하지.”
달칵.
통신이 끝나자 올리버가 물었다.
"누구와 통화하신 거죠?”
"조. 소문을 들었는지, 자네가 어떻게 됐는지 묻더군.”
"그래요?”
"그래, 무뚝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넬 많이 좋아하나 보더군. 자기가 필요한지 묻는 거 보니.”
"오, 그거 고맙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조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진짜 몰랐으니.
포레스트는 그런 올리버를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자네와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분명 즐겁긴 하지만, 일단 현실로 돌아오지. 내가 건네준 건 다 외웠나?”
올리버가 메모를 들며 대답했다.
"예, 첫째, 과거사에 대한 질문은 최소한으로 대답하라. 둘째, 악마에 관해 묻거든 무조건 관심 없고 모른다고 대답해라. 셋째, 임무에 관해 물으면 계약 조항을 이야기해 묵비권을 행사하라….. 다 외웠습니다.”
"훌륭하군.”
포레스트는 곧바로 올리버에게 준 메모를 도로 가져와 구긴 후 자기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늘 양복을 차려입고, 예의를 지키며, 품위를 유지하던 것과 대비되는 행동. 올리버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성기사에게 책잡힐 걸 줘서는 안 되거든.”
"..…아.”
"다시 집중하지. 송장인형을 사용하는 걸 사람들이 봤다고?”
"예, 조나단 씨와 마지막 임무를 할 때요. 베니움 씨를 포획하는 과정에 도우미2 파커를 사용했습니다. 거기 사는 몇몇 분들이 목격했습니다.”
"도우미2 파커?”
"예, 거미 오염생명체를 기본으로 의사와 기계 정비공의 손을 엮어 만든 송장인형입니다. 대형견 크기로, 송장인형을 즉석에서 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용도입니다.”
"디테일한 설명 고맙네. 차멀미가 올라오려고 하지만 물어본 내 잘못이겠지. 음…. 현장에서 고생하는 친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긴 싫지만, 꼭 그 송장인형을 사용해야 했나? 특히, 그렇게 개성적인 물건을?”
"전에 조언도 해주셨는데 어긴 점 죄송합니다. 그러나 꼭 필요해 사용한 겁니다. 안 그러면 피해가 커져 거기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거든요.”
"으흠….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포레스트는 이유를 듣자마자 바로 납득하며 추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사소한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닌 현재 상황 해결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송장인형은 오염구역에서 노획한 걸 수리해 썼다고 주장하게. 억지처럼 들려도 얼굴에 철판 깥고.”
"예, 알겠습니다….. 근데, 그게 낫나요?”
"사실, 송장인형 자체를 쓰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야. 자넬 비난할 생각은 아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물건이거든. 재료가 재료 다 보니.”
"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아뇨, 그건 아닙니다. 맞는 말이긴 하죠.”
“….그리고 송장인형을 처음 창시한 게 퍼펫이기도 하니까 그쪽 기술을 쓰는 건 퍼펫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색안경부터 끼거든.”
"그렇습니까?”
"소문이긴 하지만, 일단 그렇게 알고 있네.…. 뭐, 송장인형 자체가 오래된 기술이다 보니 다른 경로로 익히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굳이 굴뚝에 연기를 보일 필요가 있겠나?”
"아, 그렇군요….. 그런데 잘 아시는군요.”
"매일 저녁마다 공부하거든.”
포레스트가 농담하듯 미소 지었다.
이후로 포레스트는 자신이 같이 들어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올리버를 안심시키는가 하면, 중개인 조합에 도움을 요청했고, 다른 흑마법사들을 예로 들어 별일 없었으니 큰일은 없을 거라 추가 설명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심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기껏해야 귀찮게 하는 수준일테니, 초조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게. 묻는 말에만 최소한으로 대답하고.”
"예,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성기사들을 상대할 준비가 끝나자 알이 조심히 말했다.
"사장님. 데이브 씨.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밖을 보자 그 말은 사실이었다.
군 시설과 신전을 반반씩 섞은 새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
"성기사 셀랜드 지부이네.”
"건물은 멋지네요.”
"신도들 십일조로 지은 돈이니 당연히 멋있어야지. 교단은 그런 걸 많이 신경 쓰거든. 멋지고 위엄 있는 거.”
"이유가 있나요?”
"그래야 권위가 서거든.”
포레스트가 비아냥과 조롱을 섞어 대답했다. 같잖다는 듯.
잠시 후, 정문 입구에서 차가 정차했다.
관계자로 보이는 경비원들이 알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피부?”
기시감이 느껴졌다. 처음 내무부 건물에 방문했을 때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
포레스트는 그때처럼 자신의 운전기사라고 경비원에게 말했다.
차이가 있다면 내무부 경비원들은 포레스트의 얼굴을 확인하자 사과와 미소로 맞이한 데 반해,
여기 성기사 셀랜드 지부 경비원들은 더욱 인상을 썼다는 거였다.
"뭐가 됐건 내무부에선 우리가 손님이었지만, 여기 인간들에게는 아니거든. 마치 박멸해야 하는 벌레라고 생각하지. 위법으로 먹고사는."
정문을 통과하고 들어갈 때 포레스트가 말했다.
“그렇군요….. 근데, 왜 안 그러는 거죠?”
"도시 협약에 의해 흑마법사 범죄와 악마에 관한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손댈 수 없거든, 또 중개인 조합에서도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먹이고 있고.”
“.…기부금을 먹인다고요?”
"난 그렇게 표현하고 싶네. 기부금인 동시에 뇌물이니. 어쨌건, 요점은 평소에도 공사를 쳐 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거네. 내가 상대할 테니, 자네는 요청할 때만 대답하게. 쓸데없는 말은 삼가고.”
진심이 담긴 포레스트의 부탁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포레스트 님만 믿겠습니다.”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지.”
***
"이게 뭔 상황이요?”
차에서 내려 성기사 셀랜드 지부 건물로 들어온 포레스트가 복도를 걷다 말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포레스트는 척 보기에도 화가 난 상태였다.
아주 경우 없는 일을 당한 것처럼.
"말씀드렸다시피 호출한 흑마법사 한 명만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두꺼운 목에 곰처럼 우악스러운 직원이 대답했다.
상당히 위협적인 외관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의 외모를 살려 상대방을 압박할 의사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포레스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역시 란다의 거친 삶에 몸 담고 있는 이였으니.
"이해가 안 되오. 왜 내가 못 들어가는 것이오? 데이브의 담당 중개인인데. 난 이 친구의 신분 보증인이기도 하오. 뭣보다 앞의 중개인들은 해결사와 함께 들어갔다고 들었소.”
"좀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 임의로 규칙을 바꾼 것뿐입니다. 협조해주시죠.”
"우린 충분히 협조했고, 그 규칙에 동의할 수 없소.”
"지금 성기사의 요청을 무시하는 겁니까?”
"이 도시의 규칙을 지키라는 거요. 이곳은 란다거든. 토끼 고기 먹으면 귀가 길쭉해진다고 믿는 무지렁이 촌부들만 사는 시골 촌구석이 아닌 란다 말이오.”
포레스트는 자신의 불쾌감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말에 성기사 지부 직원 역시 불쾌감을 빛냈다.
성기사라는 권위가 도전받는 게 큰 불만인 듯했다.
그는 근육과 살집이 조화를 이루는 거대한 손을 천천히 들어 그 상태 그대로 포레스트의 어깨에 얹으려고 하였….
...탁!
뒤에서 지켜보던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살짝 들어 직원의 손을 멈춰 세웠다.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놀라며 이쪽을 주시했다. 여차하면 움직일 기세.
아, 이제야 이들이 누군지 기억났다.
서번트였다. 성기사를 보조하는 수행원이자, 병사들.
처음 요안나와 만났을 때 이들과 비슷한 이들을 봤다.
‘아….. 그럼, 오늘 요안나 씨도 만나는 건가?’
충분히 가능할지도. 요안나는 성기사였으니. 그러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어색하다고 할까, 시큼털털하다고 할까. 여하튼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그때, 누군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올리버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봐.….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예? 아…..”
올리버는 포레스트와 대화를 나누던 서번트를 봤다. 올리버의 쿼터스태프가 그의 손을 막은 상태였다.
그는 이 행위가 몹시도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고.
"감히, 흑마법사 따위가 우릴 적대하는 거냐?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 파테르교의 유일신.
올리버는 이곳에서 신이 내려와 잠자시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유적 표현일 거 같아 참았다.
올리버는 주변에 경계 태세를 하는 다른 서번트들을 보곤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뇨, 그저 연장자 몸에 함부로 손대는 건 무례한 행동일 거 같아서요. 서로 예의를 지켜야죠.”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포레스트의 몸에 손을 대려고 하던 직원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우악스러운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에 맞춰 올리버도 쿼터스태프를 내린 뒤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멋대로 손댄 점 정중히 사과하겠습니다.”
과거 천사의 집에서 배운 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한 올리버. 다시 입을 열었다.
"저 혼자 들어가면 된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자네 지금 무슨 말인가?”
포레스트가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는 올리버를 붙잡으며 물었다. 올리버는 작게 대답했다.
"일단, 협조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거절해도 되네. 말 그대로 협조지. 법적인 강제성은 없거든.”
"강제성이 없는데도 포레스트 님이 협조하려고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정답이었다. 당장 거부해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으나, 우회적으로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흑마법사와 악마에 관해서는 수사권과 경찰력 동원권을 가졌으니.
가정이긴 하나, 성기사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포레스트의 일을 충분히 방해할 수 있었다.
"그 정돈 감당할 수 있네.”
"지금은 포레스트 님이나, 저나 바쁜 시기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정곡을 찌르는 말에 포레스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약속한 시일 내, 크라임 펌에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곧 공급해야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심지어 술과 커피 마실 시간마저 아까웠다.
술과 커피 마실 시간마저 말이다!
그런 와중에 성기사 쪽과 문제가 생겨 행여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간 생각 이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음지에서의 계약은 때때로 양지보다 더 철저했으니.
"거기다 레스토랑 이사할 곳도 알아보셔야 하고, 거래처도 더 늘려야지 않습니까? 그냥 협조하죠. 그게 나을 거 같은데."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포레스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곤란한 당사자가 저리 말하니 뭐라 말한 건덕지도 없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됐나?”
“1년 넘게 있으니, 이곳 호흡이 조금이나마 이해되거든요. 아는 게 생기니 말하는 게 조금 쉬워지네요.”
“후우…. 정말 괜찮겠나?"
"네. 일단 해봐야 알겠지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고요.”
"뭘 그리 속닥이는 겁니까?”
포레스트를 막은 서번트가 심문하듯 물었다. 그는 약간 누그러지긴 했어도 올리버와 포레스트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했다.
포레스트가 결국 결심한 듯 말했다.
"잠시 양해 부탁드리오….. 데이브. 그럼 자네에게 또 일을 부탁하지. 도와주겠다 해놓고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네.”
"이미 이것저것 알려주셔서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포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올리버는 몸을 돌려 서번트에게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서번트는 수상쩍은 시선으로 올리버를 보곤 안내했다.
"따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