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몸 누일 공간 (2) >
올리버가 가방을 건네자, L구역의 부동산중개인은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가져와 열어 보았다.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잠금 장치.
가방을 열자 그 안에 가득 담긴 고액화폐가 눈에 들어왔다.
해당 주택의 1년 치 선(先) 대여료와 계약금, 부동산중개인에게 줄 중개료, 그 외 비밀보장 등을 포함한 기타 특별 수수료가 포함되어 액수가 꽤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딱히 아깝진 않았다.
분명 큰돈이긴 했지만 켈 자유독립군을 시작으로 아서와의 협업, 시(市)의 직접의뢰, 경매장 호위, 경매품 회수 그 외 기타 등등.
어쩌다 보니 수많은 일을 해 올리버의 주머니 사정이 제법 두둑했기 때문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모두 은행에 넣어 이자만 받아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
그렇기에 올리버는 제대로 된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면 방금 건넨 돈은 딱히 아깝지 않았다.
탁.
L구역의 부동산중개인은 돈을 살펴보더니 케이스를 닫았다.
그는 이런 거액의 현금 거래가 익숙한지 몇 번 살펴본 것만으로 확인을 끝마쳤다.
"확인했습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아, 여기 사인한 서류입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서류를 챙긴 후, 나머지 서류를 부동산중개인에게 넘겼다.
그는 서류를 살피곤 서류철에 챙겨 넣었다.
“미리 주문하신 대로 가구를 배치했으며, 지하실은 깔끔하게 비우고 소독까지 했고요.”
"예, 아까 확인해서 압니다. 아주 깔끔하더군요. 귀찮으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귀찮긴요. 받은 만큼 일한 것뿐입니다. 여기 열쇠 받으시지요.”
부동산중개인이 열쇠 꾸러미를 두 개 내밀었다. 열쇠에는 미세하게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현관과 지하실 각 방의 열쇠입니다. 하나는 스페어 키로,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 부탁드립니다. 보안을 위해 마법 잠근 장치를 써 열쇠를 재발급받을 시 소정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점 유의하시기를.”
"예,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부동산중개인이 정중히 인사했다.
올리버는 그를 배웅하고 자신이 대여한 주택을 안팎으로 둘러봤다.
란다 도심부에 있는 여느 2층 주택처럼 지붕이 뾰족했다.
소방법 제정 이후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옆 건물과 바로 붙어 있지 않고 일정 거리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를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집 주변도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최소한 한밤중에 취객의 술주정이나, 그 취객을 쏘는 총소리는 듣지 않아도 될 듯했다.
올리버는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과 주방을 살펴봤다.
계약을 맺은 대로 기본적인 기구는 구비된 상태였고, 2층 침실과 개인실 역시 올리버의 주문대로 모두 갖춰져 있었다.
"오, 라디오도 있네.”
올리버가 침대 옆 서랍 테이블에 올려진 라디오를 보며 말했다.
공장과 노동자 거주 구역이 주를 이루는 P, Q, R, S, T, U구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물건으로, 제법 비싼 물건이었다.
필요성도 못 느껴 사지 않았다가 때마침 기회가 돼 호기심 삼아 옵션으로 구매했다.
달칵-!
올리버가 라디오를 전원을 켰다.
위이이잉!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한 채널에서 뉴스가 나왔다.
란다 지역 뉴스로, 버튼을 또 돌리자 이번에는 경제.투자 채널이 나왔다.
[-고로, 신대륙에 새로운 마석 광산이 개발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기회죠! 기회! 가장 먼저 발견한 ‘프로메테우스 사’가 개발을 독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덕분에 악재에 허덕이던 프로메테우스 사는 한숨 돌릴 뿐 아니라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셈입니다. 주식은 다시 상......]
라디오는 활기찬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댔지만, 아직 관심 분야가 아닌지라 올리버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소리가 머릿속에서 흩어졌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계속해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런 경제 시사 채널이 라디오의 핵심가치였기 때문이다.
투자에 관심 많은 란다의 중산층들은 대부분 라디오를 통해 투자 정보를 얻는데,
그렇기에 투자를 생각할 여유도 없는 노동자나 빈민가 구역은 라디오 보급이 다른 구역에 비해 몹시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되는 구역은 라디오 보급률이 높았다.
참으로 재밌는 현상.
‘음.…. 근데, 특정 사람들이 라디오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다면, 고의로 한정적 정보를 내보내 정보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올리버가 라디오를 살펴보다 문득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뭔 안전장치가 있겠지. 설마, 그렇게 허술할 리가..….
얼추 기본적인 것을 확인한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지하실에 내려갔다.
이 주택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주택 아래에 깥끔하게 마감된 커다란 지하실이 있었다.
지하실을 확인하자마자 올리버는 허리춤에 빅마우스를 꺼냈다.
올리버의 의지에 반응해 뒤룩뒤룩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는 빅마우스.
녀석은 오랜만에 지하실에서 눈을 떠 기쁜 것 같았다.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니.
“빅 마우스. 부탁드려도 될까요?”
빅마우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네 구의 송장인형을 입에서 토해냈다.
꿰에엑-!
꿰에에엑-!
꿰에에에엑-!
꿰에에에에엑-!
바닥에 쏟아지는 송장인형-도우미 1과 던칸, 저격수, 흑마법사.
올리버는 품 안에서 차일드가 든 시험관 네 개를 꺼내 마개를 열었다.
미리 합이라도 짠 듯 차일드는 제각기 송장인형에 들어가 몸을 일으켜 한 줄로 섰다.
"집……. 새 집.”
"좋아. 마음. 들어.”
"캬하아아아.”
"......."
다행히 차일드들은 새 지하실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하긴, 전(前) 숙소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넓고, 곰팡이 같은 것도 없어 환경도 쾌적했으니.
먹보주머니도 비싼 걸 좋아하듯이, 차일드 역시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좋아하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짝! 짝!
올리버는 손뼉을 부딪쳐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올리버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는 빅마우스와 송장인형들.
올리버는 1만 란다 100장으로 구성된 지폐 다발을 빅마우스에게 건넸다.
"꾸륵??!!”
"드세요. 여태까지 고생 많으셨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빅마우스는 맛을 음미하듯 지폐를 한 장씩 뽑아 삼켰다.
올리버는 곧바로 차일드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감정과 생명력을 한데 뭉친 에너지였다.
"드세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송장인형에 들어간 차일드들이 입을 벌려 감정과 생명력의 혼합물을 그대로 추출해 흡수했다.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슈화하하아아아악——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 차일드들. 원래부터 좋았던 먹성이 더 좋아졌다.
역시 차일드는 함부로 안 만들길 잘했다. 아무 생각 없이 숫자를 늘렸으면 식비를 감당하기 꽤나 어려웠을 것이다.
"다들 배는 좀 차셨어요?”
"아니.”
“꾸르르."
"싫어.”
"안 돼.”
"더 줘.”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예의상 물어본 거니.
"보시다시피 저희 모두 이사했습니다. 전에 살던 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요. 이제 제대로 연구실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차일드들은 환호했고, 빅마우스는 눈치껏 기뻐했다.
“꾸루루루루루루......"
"네, 기뻐해 줘서 고마워요….. 세컨드 총 쏘지 마세요.”
저격수에 들어간 차일드-세컨드가 여덟 개의 손으로 축포를 쏘려다 말고 다시 도로 총을 집어넣었다. 몹시도 실망한 기색이었다.
"캬하아아......"
"이제 여기로 숙소를 옮길 건데, 지하실을 실험실 겸 작업실로 쓸 거예요.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빅마우스?”
“꾸륵?”
"며칠 전 블랙마켓에서 산 물건 말한 순서대로 꺼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퍼스트?”
“캬흐….”
"여기 그림이랑 설명 간단히 적은 게 있어요. 빅마우스가 토해내는 순서에 맞춰 배치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할 일이 많아 도움이 좀 필요하네요.”
올리버의 부탁에 퍼스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차일드와 빅마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일 끝난 후 돈 더 드리고, 감정이랑 마력, 생명력도 더 드리도록 할게요.”
"하하하할!!!”
"캬하하하!!!”
“딱-! 딱-! 딱-!"
"꾸루루룩-!!"
보상을 듣자마자 차일드와 빅마우스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바로 움직였다.
다들 사이가 좋은 덕분에 합이 잘 맞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각자 위치를 잡아 빅마우스가 토한 물건을 지정한 장소로 옮기고, 퍼스트는 빅마우스의 등을 두들겨 줬다.
더 열심히 토하라고.
올리버는 그 모습에 만족하며 지하실 밖으로 나와, 몸 안에 저장한 마력을 추출해 현관과 창문 등에 미리 배워 온 보안(保安) 마법을 걸고, 집 내벽에는 방음(防音)을 걸었다.
침입자가 들어올 확률도 낮고, 프라이버시도 보장됐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그렇게 집 전체에 마법을 부여하던 중 삐- 삐- 삐- 신호음이 울렸다.
포레스트 직통 통신장치였다.
달칵-
올리버는 통신장치를 받았다.
"예, 포레스트 님. X구역까지 가는 건 시간이 좀 남지 않았나요?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 ..…예, 압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레스토랑으로 가겠습니다.”
올리버는 통신을 마치자마자 바로 외출준비를 했다.
***
포레스트의 호출에 올리버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송장인형과 빅마우스를 챙겨 T구역 27번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은 아직 운영 중이었지만, 가만 보면 곧 레스토랑을 이전한다는 푯말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좀 부탁하지. 이런 건 조합에서 나서줘야지….. 응? 왔나?”
보기 드물게 레스토랑 밖에서 통화 중이던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맞이해줬다.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까칠하게 굴기 싫지만, 그다지 괜찮지 않구만. 솔직히 당황스럽고 짜증 나네.”
포레스트는 들끓는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다름 아닌 성기사의 흑마법사 호출 건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벼운 조사를 한다나 뭐라나.
올리버가 물었다.
"이런 경우가 없었나요?”
"드물지만 몇 번 있긴 했지. 하지만 그건 뭔 일이 터진 후였고….. 갑자기 전조도 없이 이러는 건 처음이야. 그래서 좀 화가 나는군.”
포레스트는 진심이었다. 마치 예의 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불쾌함과 같았다.
"몇몇 실력 있는 해결사들은 이미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더군. 개중에 내가 아는 친구들도 있고. 흑마법사긴 하지만 점잖은 친구들인데."
포레스트는 순간 욱하려고 하다 참곤 다시 입을 열었다. 적절한 대응을 위해 감정을 추스르는 거였다.
"하지만, 성기사와는 싸울 수 없지. 일단, 따르는 게 여러모로 현명하네. 미안하지만 협조해줄 수 있겠나?”
포레스트는 부탁했고, 올리버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사 직후라 시간을 빼앗긴 게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으니.
"그럼 바로 출발하지.”
"포레스트 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자네 일인데.”
"오..…. 감사합니다.”
"자네 죽으면 지금 벌인 일이 다 엎어지는데 뒷감당 어떻게 하라고.”
"......."
"날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어서 갈 준비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