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마무리? (3) >
딴따다라단! 딴따다라단! 딴! 딴!!
빠라라람! 뺘라라람! 빰! 빰一!!
빵빤 따달단 빰빠 따라단 다다다란단 딴딴다다단!!
레스토랑 홀에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그 소리에 맞춰 하얀 셔츠에 베스트를 단정하게 갖춰 입은 멀끔한 요리사가 두 팔을 걷어붙인 채 요리를 시작했다.
스르릉. 스르릉. 칼을 날카롭게 갈며,
탕탕. 도마를 두들기고,
스륵. 스륵. 향신료를 뒤섞어 소스를 졸여내고,
치지지지직! 버터를 녹인 팬에 잠시 레스팅한 고기를 다시 올리곤 거듭 버터를 끼얹어 풍미를 올렸다.
정장을 입었음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작.
그 동작에 맞춰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주방을 넘어 홀로 천천히 퍼졌다.
"흐음......."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자신의 솜씨에 만족하듯 작게 미소 지으며 완성된 요리를 접시 위에 옮겨 담았다.
그리곤 가니쉬를 올리며, 특제 소스를 뿌렸다.
완성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음식.
가히 훌륭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완벽한 스테이크를 내온 요리사가 말했다.
그는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는 깔끔하고도 능숙한 동작으로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렸다.
서비스를 받는 손님들이 절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모습.
비록, 요리사와 이 요리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손님은 별 감흥을 못 느꼈지만 말이다.
"안 드십니까?”
손님 맞은편에 합석한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를 맛보며 물었다. 군살이 전혀 없는 날렵하고 탄탄한 체형과 다르게 그는 음식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다.
"사람 고기 먹는 취향은 없어서..…. 자네나 맛있게 먹게.”
손님의 말에 요리사는 정성스레 요리한 허벅지살을 작게 잘라 포크로 찍어 입안에 넣고 음미했다.
“으흠..….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전 늘 음식을 맛있게 먹는답니다. 음식은 큰 축복이거든요.”
서걱. 서걱. 푹-
요리사가 다시 한 점을 잘라 한입 먹었다. 그의 얼굴에는 크나큰 만족과 기쁨이 빛났다.
저 근엄한 얼굴이 음식 정도로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게 절로 신기할 따름.
요리사가 스스로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특히, 전 굶어봐서 음식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맛있는 식사가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안답니다. 천국은 멀지 않습니다. 이게 천국이지요.… 정말 안 드실 겁니까?”
"마음만 받도록 하지.”
“흠, 어쩔 수 없지요.”
요리사는 자신의 몫을 다 먹어 치운 후, 손님 앞에 놓인 접시를 가져와 자신이 먹기 시작했다.
"낭비는 죄악이라서요. 하긴, 퍼펫 님은 다른 식으로 활용하니 별문제는 아니지만요.”
손님….. 아니, 퍼펫이 침묵했다. 그런 퍼펫을 보며 요리사….. 좀 더 정확히는 인육 요리사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이렇게 마주 본 게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15년일세. 요청할 것이 있어 이리 찾아왔네.”
“요청요?”
"그래, 자네 제자들을 란다에 보냈더군.”
달그락. 달그락. 인육 요리사는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고 고기를 썰어 입에 가져다 넣었다. 우물우물우물. 음식을 씹곤 삼켰다.
"글쎄요. 전 그런 기억이..…. 다만, 과잉 충성하는 아이들이 멋대로 그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죠.”
"그렇군. 그렇다면 크라임 펌과 대립을 멈춰 달라는 내 부탁도 쉽게 들어줄 수 있겠구만.”
"하하. 그건 힘들겠는데요.”
요리사가 피를 섞어 숙성시킨 블러디 와인 마시며 답했다. 그는 엷게 미소 짓고 있었다.
"멋대로 행동하는 바보들이긴 하지만, 뭐가 됐건 충성심에 비롯된 행동. 스승 된 도리로 제자들 복수는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넨 그 도리란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잖나?”
"뭐,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움직일 명분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언제부터 명분을 신경 썼지?”
"제가 가지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신경 썼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거 내가 주도록 하지.”
뚝. 쉬지 않고 나이프를 놀리던 인육 요리사의 손이 멈췄다.
“….제가 원하는 것이요?”
"자네 제자들이 노린 거, 사막의 땅에 잠든 마법사 왕의 미라 아닌가?”
“..…계속 말씀해보시죠.”
"크라임 펌과 교섭해 그 물건을 구매했네. 내가 쓰는 방법도 있지만, 자네에게 주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콕 집어 제시하자 인육 요리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수백 년을 산 존재라도, 그 안에는 관록의 차이가 존재했다.
"관대한 제안이군요. 교섭한다 해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닐 텐데요?”
"내 지갑 사정을 걱정해주는 건가?”
"아, 죄송합니다. 제 수준으로 봤군요….. 보답으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이번 일에 관여하지 말고, 셀랜드에도 관심을 꺼주게. 그쪽에 요즘 관심이 생겼거든.”
"관심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 혹시 해결사 때문입니까? 그…. 데이브?”
"......."
“퍼펫 님만큼은 아니지만, 저 역시 속삭여주는 입은 많습니다. 제 제자들을 쓰러뜨렸으니,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퍼펫 님께서 그놈과 만나셨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그래, 꽤 재밌는 친구였지.”
“음….. 그런데도 목숨을 부지하다니, 저도 흥미가 동하는군요.”
"나도 궁금하네.”
“…예?”
"갈로스에서 새로운 팀을 창설해 자네를 노리고 있는 와중에 연합 왕국에도 소란을 일으키다니 말일세.”
"제가 그들을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최소한 신중한 자네 방식은 아니지…. 아, 혹시 여동생 선물인가? 자네 사랑스러운?”
촤아아아앙!!
인육 요리사의 몸에서 감정이 요동침과 동시에 밖으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칼날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순간의 노기(怒氣)로 발현된 감정의 칼날은 공기를 찢고,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과 벽, 기둥에 깊은 자상(刺倍)을 남겼다.
공기를 얼게 하는 위협. 그러나 놀랍게도 이건 상대를 봐가며 자제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퍼펫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화나게 했나? 미안하군. 죽이고 싶다면 죽이게. 몇 번 해보지 않았나?"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감정 조절이 서툴러서 그런 것뿐이니. 부디 이해해주시길.”
"이해해주겠네. 그리고 나도 용서를 구하지. 남의 가족을 함부로 언급하면 안 되는 법인데 말이야. 용서해주겠나?”
“...예.”
"기쁘군. 그럼, 내 부탁은 어떻게 되나?”
퍼펫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감히 누구 부탁인데요.”
"그거 고맙군. 그럼, 난 이만 일어나 보겠네.”
"떠나기 전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나에게?”
"네. 검은손 중 가장 오래 사신 분이고,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되는 유일한 분이니까요.”
"궁금한 게 뭔가?”
"잠자는 공주가 말한 계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숲에 찾아가 봤나?”
"아뇨, 만나지 못했습니다. 허나, 과거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면 시계가 움직일 거라는….. 위선자들이 통제하고 있지만, 전 확인했습니다. 거기서 지옥의 입구가 열렸다더군요. 퍼펫 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약속된 날이 온 것 같습니까?”
"글쎄, 오래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건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뿐이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비하고, 조심하는 것뿐이지."
"만약, 나중에 뭔가 알게 되신다면 말씀 한마디 부탁드리죠. 협조할 테니. 전 살고 싶거든요.”
"알게 된다면 말이지.”
퍼펫은 그 한마디만 하고 떠나버렸다. 거대한 레스토랑 홀에는 인육 요리사만이 남았다.
그는 포크에 찍은 고기를 보며 말했다.
"곧 우리의 시대가 오나니.”
그는 고기를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
"다시 출근하는 건가?”
마탑 부지 내. 원소학파 타워. 그중 가장 구석진 복도 끝에 위치한 연구실을 방문하자 붉은 피부에 긴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케빈이 맞이해줬다.
"예, 교수님.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어떤 것 같나?”
케빈이 물었고, 올리버는 그를 살펴봤다.
그는 적잖은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바빠 보이십니다.”
"제대로 봤군. 왔으면 돕게.”
"네.”
올리버는 바로 웃옷을 벗어 다가갔다.
수백 장은 족히 되는 서류. 모두 똑같은 양식을 하고 있었다.
"전부 이번 학기에 있을 수업 신청서야. 여기 신청 수업란 보이나?”
"예, 교수님.”
"같은 과목으로 똑같이 나눠, 이름은 알파벳 순서로 정렬하고. 그런 다음 학생 인적 사항을 확인해 여기 메모에 적힌 대로 기록해. 할 수 있겠나?”
케빈의 짧고 명료한 주문. 올리버는 기쁘게 수락했다.
과정이야 뭐가 됐건, 올리버는 마탑의 직원으로 온 이상 뭔가 일을 하고 싶었다.
이곳 시설을 이용하고, 급여까지 받는데, 아무런 일도 안 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물론, 며칠간 멋대로 출근을 안 한 올리버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예?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케빈은 분명 올리버에게 일을 제대로 하라 경고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올리버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올리버는 몇 년 동안 사무직에 종사한 사람처럼 낭비 없이 능숙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쪽 일에 종사한적 있나?”
"짧게 며칠 정도요.”
"며칠?”
케빈이 물었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의 의뢰인 경매품 회수 및 인육 요리사 부하 포획이 공식적으로 끝난 뒤, 올리버는 곧바로 다음 일에 들어갔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포레스트와 함께 X구역으로 가, 파이터 크루 사람들에게 현재 크라임 펌과의 교섭 상황을 전파하는 것. 사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크라임 펌의 이사인 고든 굿하트가 순조롭게 이사들을 설득해 파이터 크루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으니.
문제라면 앞으로 이걸 관리해야 할 포레스트와 이들의 실력을 크라임 펌의 요구조건에 맞춰 올려야 하는 올리버뿐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
그렇기에 올리버와 포레스트는 며칠 동안 X구역으로 출근하다시피 해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훈련 시켰다.
처음 조를 가르쳤을 때처럼 다들 추출도 제대로 못 해 말이 아니었는데, 그 수가 많아 수고로움은 배가 되었다.
거기에 포레스트의 서류 작업도 도와야 했고.
덕분에 올리버는 정신없이 바쁘긴 했지만, 해당 업무의 맥락과 중요성, 요령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1차 분류는 끝냈습니다.”
올리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서류를 깔끔하게 3개로 나눈 후 말했다.
“13학년 수업인 [화염마법 개론과 기초]. 14학년 수업인 [코드어 기초 적용], 15학년 수업이 [마법 전투 기초] 전부 나눴습니다. 세부 자료는 점심시간 전까지 정리해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이 오전 10시 20분인 걸 고려하면 꽤 촉박한 일정.
하지만 삼백 명이 조금 안 되는 파이터 크루 사람들의 서류를 포레스트와 알 단 셋이서 정리한 올리버에겐 별 게 아니었다.
케빈은 그 태도가 마냥 싫지 않은지 올리버를 한번 보곤 말했다.
"오늘 오후 3시 중으로만 줘. 급하게 해서 실수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
실수할 생각은 결코 없었지만, 올리버는 사족을 붙이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포레스트와 알과 같이 서류 작업을 해보니, 쓸데없는 의견을 내는 것보다 일단 시키는 대로 따라 그때그때 대응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럼, 해당 자료는 직원실로 가져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잃어버리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일단 당장의 업무가 끝난 후라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케빈은 살짝 귀찮은 내색을 냈지만 받아주었다.
"뭐지?”
"원래 수업을 하실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많이 하시는 이유를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글쎄.…. 나도 묻고 싶군. 얼음 공주님이 왜 내 수업을 듣는다고 했는지.”
"얼음 공주요?”
"어, 네 첫 출근날 수업 일정 물으러 왔던 아가씨 말이야. 내 수업을 듣고 싶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