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마무리? (1) >
다행히 담화는 무사히 잘 끝났다.
올리버의 말을 들은 고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터트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이상 따지지 못하겠군요. 확답을 드릴 수 없지만, 다른 이사들에게 제가 잘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상 올리버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대답. 심지어 도와주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일단, 파이터 크루와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제가 손 써볼 테니, 데이브 씨께서는 말씀하셨던 대로 파이터 크루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도둑놈들을 잡아주십시오. 그럼, 제가 설득에 무게가 실릴 겁니다.’
올리버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고든은 유쾌한 자리였다며 찬사를 보내곤 정중히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밖 차량을 타고 돌아갔다.
레스토랑 직원들은 긴장이 풀린 것을 내색지 않으며 곧장 뒷정리에 들어갔고, 포레스트는 올리버를 호출해 사장실로 같이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포레스트 님.”
올리버가 사장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올리버의 억지에 어울려 이번 회담을 맡아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로, 그의 협조가 아니었으면 꽤 애를 먹을 것이 사실이었다.
머피라는 대체 수단이 있었지만, 그는 크라임 펌 소속. 가장 나은 사람은 포레스트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포레스트는 긴장이 풀린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심란한 감정을 뿜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자네도 한잔하겠나?”
"예.”
쪼르륵. 크리스털 잔에 술을 따르는 포레스트.
그는 올리버에게 잔을 내밀었다
"잠깐만."
올리버가 잔을 쥐자 그가 말했다. 그리곤 자신의 크리스털 잔을 올리버의 잔에 살짝 부딪혔다.
짠.
맑고 경쾌한 소리. 올리버가 물었다.
"뭘 하신 거죠?”
"건배라는 거네. 축하할 일이 있으면 하는 거지. 그냥 옛날부터 하는 거니 자세한 건 묻지 말게.”
올리버는 질문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뭘 축하하시는 거죠.”
"자네 덕분에 내가 말년에 대박을 터트렸잖나? 조용히 소일거리나 하다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엄청 큰 건을 맡게 됐어. 세상사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야….. 고맙네.”
포레스트의 말은 상당수 사실이었다. 의도치 않은 행운에 기뻐하며, 그 행운을 가져다준 올리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감정은 동시에 심란했다.
올리버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호의(好意)는 가지되 친밀(親密)해지진 않으려는?
물론, 그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올리버는 그 점이 좋았다.
일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개인에겐 감정의 거리가 중요했으니.
"제가 감사받을 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덕분에 조와의 약속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음..…. 이제 와 묻긴 뭣하지만, 애당초 그런 약속을 왜 한 건가? 자네 정도면 그런 약속 안 해도 빠져나올 방법은 있었을 텐데. 아니, 오히려 그런 약속이 더 번거롭지.”
포레스트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물었다. 매번은 아니지만, 헤임달을 통해 일정 주기로 올리버의 전투를 확인했기에 그의 수준은 파악하고 있었다.
솔직히 올리버의 수준은 하고자 한다면 크라임 펌을 비롯한 이 도시의 거물 전속으로 고용될 뿐 아니라, 이 바닥에서 전설이 된 세이머스처럼 자기 조직을 만들어도 무방했다.
사업 수완이나 정치력 못지않게 무력은 이 도시에서 강력한 경쟁력이었으니.
포레스트의 질문에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 작정하고 절 죽이려고 한 거면 저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피할 길이 있는데, 싸우는 것도 좀 그래서요? 또, 조 친구들을 제가 죽여서 그 동생들을 조가 보살피는데, 조까지 죽이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무섭구만.”
"그런가요?”
"그렇네..…, 돈은 정말 안 받을 생각인가?”
포레스트가 말한 돈이란 다름 아닌 파이터 크루 사람들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받을 교육비를 의미했다.
원래라면 파이터 크루 당사자나, 중개인인 포레스트, 이용자인 크라임 펌에게 요구할 수 있었으나, 올리버는 스스로 받기를 거부했다.
그것도 꽤 단호하게.
"예. 돕는다고 했는데, 돈을 받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긴, 제대로 돈을 받는다고 하면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겠지. 한두 푼이 아닐 테니. 나로서는 이득이지만 괜찮겠나? 내가 참견 할 바가 아니지만, 자기 기술과 지식을 그리 쉽게 전파해도?”
상식적으로 지극히 옳은 말이었다.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지식으로 먹고사는 존재. 그들에게 있어 지식은 힘이고, 권력이며, 밥벌이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식을 빠져나가지 않고 꽁꽁 싸매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고, 그만한 값어치를 받았을 때만 조금씩 풀었다.
겉보기에는 째째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
그러나 올리버는 그 당연함을 이해하지 못한 듯 말했다.
"예. 가르쳐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기적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뭐 그건 제가 감수해야 하는 거고요.”
포레스트는 더 이상 이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궤도가 너무 달라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쾌하거나 답답하진 않았다. 아니, 답답하긴 했지만, 기분 좋은 답답함이었다.
란다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포레스트는 눈앞의 사내가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으로 말이다.
“후우….. 술은 한동안 그만 마셔야겠군. 할 일이 많아서.”
"역시, 그렇죠?”
그랬다. 삼백 명이 약간 안 되는 파이터 크루 멤버들과 전부 계약하고, 이를 크라임 펌에 공급해주는 건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레스토랑도 옮기고, 경비업체도 늘려야겠어. T구역의 다른 중개인 중 동업자도 찾아봐야겠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군.”
"중개인요?”
"그래, 관리하는 해결사가 일정량을 넘어 일이 너무 많아지면, 다른 중개인을 고용하기도 한다네. 동업자 개념에 더 가깝지만.”
"아, 그렇군요.…. 그런데 레스토랑까지 옮길 필요가 있나요?”
"나도 썩 내키지는 않네. 자리는 중요한 거라서. 하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옮겨야 하네. 직원도, 거래처도, 해결사도 늘어날 테니."
포레스트의 감정은 확신으로 빛났고 올리버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일도 경험도 더 많은 포레스트가 저리 말하는 거면 그런 이유가 있을 테니.
'음..…. 혹시, 파이터 크루 사람들과 계약할 때 내가 서류 작업 돕겠다고 하면 실례려나?’
올리버가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마탑에서 일하기 위한 대비였다.
멀린과 케빈의 도움을 받아 취직했지만, 올리버는 서류 작업을 전혀 할 줄 몰랐다.
물론 같진 않겠지만, 포레스트도 결국 서류 만지는 일을 하니, 저 일을 도우면 어느 정도 요령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이에 관해 부탁하긴 망설여졌다.
이미, 파이터 크루 건도 도움을 받은 마당에 서류 작업을 전혀 모르는 올리버가 이를 돕겠다니. 너무 민폐가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포레스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데이브. 혹시 괜찮다면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지요.”
"파이터 크루 멤버들 흑마법을 훈련시킬 때 X구역에서 할 테지?”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가도 되겠나?”
“예?”
"조라던가 다른 이들이 중간 관리를 맡아 주겠다고 했지만, 난 나와 거래하는 해결사를 모두 관리하고 싶거든. 그래야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자네와 함께 가면 일 하기도 쉽고, 친분 쌓기도 편할 거 같은데, 부탁해도 되겠나? 대가는 지불하겠네.”
"그럼, 저도 부탁 하나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수락할 줄 알고 지른 건데, 받아들이니 당황스럽군. 나 싫어하나?”
"......."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그보다 부탁이 뭔가?”
"혹시, 서류 작업하시나요?”
"내 일의 반이 서류 작업이네. 일을 하청받고, 정보를 모으고, 교차 검증하고, 해결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당연히 하겠지. 왜 그러나?”
“그럼, 그때 제게 서류 작업 좀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빌어먹을, 중개인으로 전향하려는 건가?”
***
포레스트와 약간의 헤프닝이 일어났지만, 거래는 성공적으로 성사됐다.
사실 거래도 뭣도 아니었다. 포레스트를 데리고 그냥 X구역으로 가면 되는 거였으니.
그 대가로 포레스트는 올리버에게 서류 작업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였다.
‘물론 그전에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하지만.’
[41번 거리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귀에 꽂은 통신장치에서 조나단 팀의 홍일점 아울이 말했다.
올리버를 비롯한 베어, 몇몇 핑크맨 단원이 대형에 맞춰 이동해 포위를 좁혔다.
그러자 도망 중인 베니움과 그 부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베니움은 인육 요리사의 부하이자, 요리사의 동료인 동시에 갈로스에서도 나름 악명 높은 흉악범.
주 죄목은 테러로, 그 덕분에 란다에서도 제법 높은 현상금이 붙어있다고 했다.
"현상금이 꽤 되는 거로 아는데, 부하들은 영 신통치 않구만!!”
베어가 좁은 길목으로 도망치는 베니움의 부하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뒤를 잡힌 부하는 흑마법으로 강화한 육체와 식칼로 막으려 했지만, 칼이 부러지며 그대로 어깨에서 가슴이 사선으로 썰려 나갔다.
"흥!!"
베어가 도끼에 박힌 베니움의 부하를 거치적거린다는 듯 도끼로 휘둘러 떨쳐냈다.
덕분에 어깨에서 가슴까지 썰린 베니움의 부하는 피를 흩뿌리며 벽에 처박혀 쓰레기처럼 널브러졌다.
[함부로 죽이면 어떡해요?!]
[이 정도로 당할 녀석이면 어차피 사로잡을 가치 없잖아? 진짜 목표는 베니움.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을 치운 것뿐이야.]
아울과 베어의 짧은 말다툼이 통신장치를 통해 들려왔다.
틀린 말은 아닌지, 아울은 그 이상 따지지 않았고, 거기에 조나단이 합세했다.
[베어 말이 맞아. 어차피 인육 요리사의 가르침도 못 받은 총알받이. 중요한 건 베니움이야. 나머지는 방해되면 치워. 데이브 씨. 부탁 드립니다.]
조나단이 마지막에 올리버를 콕 집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육 요리사의 지식을 제공받은 흑마법사를 올리버가 자그마치 셋이나 죽였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조작계열 흑마법사는 임무를 위해 어쩔 수 없었지만, 요리사와 돼지 얼굴 뚱보는 올리버가 멋대로 저지른 일이기에 나름대로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었다.
"예, 노력해보겠습니다.”
[좋군요. 그럼.…. 지금!]
조나단이 신호와 함께 우회해 베니움의 앞을 막아섰다.
베니움이 자동차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을 고려하면 실로 대단한 달리기 실력.
단련된 육체, 몸에 품은 마력, 마석을 원료로 사용하는 전투복. 세 박자가 모두 합쳐진 덕분이었다.
후열에 집중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한 베니움은 놀라며 다급히 멈췄고, 그 빈틈을 노력 조나단은 거대한 리볼버를 겨눴다.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축적된 마력. 방아쇠를 당기자 찰칵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퇑一!!
충격파와 함께 날아간 마력 탄환은 일직선 위로 있는 모든 것을 관통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베니움의 부하들을 모조리 찢고 뭉개버렸는데, 송장인형-저격수의 소드 오프 샷건과 비견할만한 위력이었다.
"제기랄!”
한 번의 총격에 부하들을 전부 잃은 베니움이 흑마법으로 강화된 다리에 힘을 줘 지붕 위로 뛰어 피했고, 그에 맞춰 끈질기게 추격하던 베어가 번쩍 뛰어올라 쌍도끼를 휘둘렀다.
“으랐차!”
마력을 머금은 도끼는 벽돌조차 치즈처럼 잘랐지만, 움직임이 빠른 베니움은 아크로바틱하게 회피한 후 입안에서 무엇인가를 머금더니 그대로 토해냈다.
녹색 빛 독액.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덮은 독액에 베어의 전투복에서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를 뿜어져 나왔다.
위잉……타다당!!
그때였다. 허공에서 보랏빛 마법진이 생기더니 커다란 탄환이 쏟아져 베어를 맞췄다.
속을 성수로 채운 공갈탄으로, 탄환이 깨지며 안에든 성수가 독액을 중화시켰다.
피해를 입었지만, 최소화한 것.
안전을 확보한 베어가 고함을 지르며 쌍도끼를 옆으로 휘둘렀다.
"하앗-!!"
예상치 못한 반격에 살이 으깨지고, 뼈가 부서진 베니움이 내장과 갈비뼈를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저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베니움은 분노를 느끼며 반격하려 했지만, 후열에서 다가오는 올리버를 보며 반격하지 않고 다시 도주하려 했다.
가슴과 복부에 생긴 커다란 상처는 이미 아물고 있었다.
"그냥은 못 간다.”
조나단이 다른 팀원들과 함께 건물 위로 올라와 베니움의 퇴로를 막았다.
건물 위에 꼼짝없이 고립된 베니움.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한 듯 요리사와 같은 흉악한 표정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조용히 꺼져 주려고 했더니만, 빌어먹을 다 좆 까라지..…."
그와 함께 볼과 목이 녹색빛으로 물들었다.
광범위한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쓰려는 것.
[포이즌 클(Poison CI-)—]
[-클링 스파이더 웹(Cling Spider Web)]
올리버가 먼저 흑마법을 발동. 검은빛 거미줄이 베니움을 덮쳤다.
베니움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