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04화 (204/633)

< 204. 협상 (1) >

올리버가 가벼운 스냅으로 칼을 휘두르자 칼날은 매우 자연스럽게 선을 그리며 요리사의 목을 베어냈다.

툭 하고 떨어지는 머리.

그리 빠르지도 않은 공격이었건만, 요리사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단신으로 파이터 크루를 세운 사람치고는 매우 허무한 최후.

그래서일까? 삼백 명이 약간 안 되는 파이터 크루 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은 채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압도적인 충격과 공포를 느끼며 말이다.

올리버는 그들의 감정을 살피다 자신의 손에 쥔 칼날로 시선을 돌렸다.

요리사를 흉내 내 만든 살의의 칼날.

다시 봐도 내키지 않는 물건이었다. 사용한 재료의 특성과 이를 살리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인해 효과는 뛰어났지만, 너무 과했다.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역시 지나쳐.”

올리버는 찝찝한 물건을 털어버리듯 손을 흔들어 검을 감정으로 되돌린 다음 훌훌 털어버렸다.

‘아, 근데 조나단 씨와의 약속이..… 아, 역시.’

올리버가 뒤늦게 핑크맨과 한 약속인 ‘인육 요리사 부하 포획’을 떠올리며 요리사와 뚱보의 시체를 살펴봤다.

두 시체는 경매장 습격자들과 마찬가지로 흉측하게 부글부글 끓더니 허물어졌다. 근육과 살, 뼈, 내장 전부가 말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올리버는 이 잔해라도 챙겨야 하나 싶어 빅마우스를 꺼내려는 찰나 누군가 다가와 멤브레인 박스와 채집 도구를 내밀었다.

조였다.

"필요하면 이걸 써.”

"아.….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도움에 올리버는 감사를 표하며 물건을 받고, 박스에 허물어진 살점을 담았다.

".…죄송한데, 세 개만 더 줄 수 있나요?”

조는 고개를 끄덕이곤 뒤쪽에 있던 사람들에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주뼛주뼛 조의 눈치를 살피던 저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부리나게 움직여 박스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각 샘플 별로 두 개씩 보관하고 싶거든요.”

"왜 두 개지?”

"하나는 제가 쓸 거고, 다른 하나는 핑크맨 쪽에 넘겨줄 생각이라서요….. 약속을 하나 했는데, 혹시 못 지키면 이거라도 넘기는 게 예의인 거 같아서요.”

올리버의 채집이 끝날 무렵 한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악!”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뚱보 흑마법사의 선홍빛 고기 해머와 그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있었다.

해머에 손을 대려고 한 건지 그의 팔뚝은 물어뜯긴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끄으으윽......”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조가 성큼성큼 걸어가며 물었다. 남자를 부축해주던 사람이 놀라 말했다.

"그, 그게 신기해서 살펴보다가 저기 입이 튀어나와 깨물었습니다.”

"왜 손을 대는데? 네 물건이냐?”

조가 특유의 안광을 내뿜으며 추궁했다.

그가 화를 낼 이유가 없음에도 왜 저리 화를 내는 건가 싶었는데,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조는 올리버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혹여, 올리버가 불쾌할까 봐 자기가 먼저 뭐라고 해 일이 커지는 걸 방지.

올리버는 조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다가갔다.

"그보다 괜찮으세요?”

"예? ..…예! 예! 괜찮습니다. 약간 물어뜯긴 것뿐입니다.”

"근데, 만져서 뜯긴 거라고요?”

"예, 저도 모르게 손을 댔는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남자. 올리버는 시선을 돌려 얼룩덜룩한 선홍빛 해머에 다가갔다.

올리버의 발걸음에 따라 절로 흩어지는 사람들.

올리버가 다가가 직접 살폈다.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해머 곳곳에 돋아난 지렁이 같은 입술에는 싸울 때 보이지 않았던 이빨이 생겨 있었다.

심지어 이빨은 사람의 것보다 육식동물의 이빨에 더 가까워 살짝만 물려도 살점이 떨어질 것 같았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만지려고 해서 발동된 건가? 일종의 방어 장치? 아니면 파손된 살점을 메꾸려는 건가?’

올리버 해머의 뜯긴 부분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요리사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변의 생명력을 빨아들인 뒤 해머의 살점을 살짝 뜯어줬다.

인육 요리사 계파만의 회복법일 수도..…. 여하튼 참으로 독특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보통 물건은 아니겠군.’

잘 아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그렇게 확신했다.

고기 망치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생명력을 추출하는 힘 역시 보통이 아니었으니.

먹보 주머니와 같은 널리 쓰이는 아이템조차 제작하는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니,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이 물건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올리버는 손을 뻗었다.

타닥!! 까라락…! 딱! 딱! 까라락…!

수많은 이를 갈거나 부딪히는 해머.

모두가 경계하는 와중 올리버는 해머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해머에 돋아나 있던 수많은 입에 난 이빨들이 잇몸으로 다시 들어갔다.

놀란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해머를 계속해 살펴봤다.

손잡이와 머리 부분 모두 뼈와 살점으로 이뤄졌으며,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박이 뛰는 게 느껴졌다.

무게는 꽤 나가 블랙 슈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들기도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데 반해 무게 균형도 꽤 잘 맞고..…. 연구해볼 가치는 충분히 차고 넘쳤다.

‘근데 이걸 들고 가야 하나? 빅마우스가 삼킬 수 있으려나?’

"데이브.”

"예? 조?”

"어쩔 생각이야?”

"일단, 빅마우스에게 한번 먹여볼 생각입니다. 이 해머… 먹보주머니와 같은 인공생명체 계열인 것 같은데,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빅마우스는 살아있는 건 못 먹거든요.”

"내 질문은 그게 아니야.”

"....?"

“..…이곳을 전쟁터로 만들려는 미치광이에게서 우릴 구해준 건 고맙지만, 솔직히 상황이 변한 건 아니거든. 어떻게 크라임 펌에게 우리의 무고를 설득할 생각이야?”

"아……"

"설마, 거짓말은 아니지?"

조가 인상 쓰며 물었다.

"아뇨, 거짓말 아닙니다. 통할지 모르지만,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뭔지 물어볼 수 있을까?”

"음..….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질문 하나 드려도 되나요?”

"뭔데?”

"블랙마켓 경비로 일하셨잖습니까? 어떠셨습니까? 임금이라던가, 대우라던가요?”

***

"자넨 늘 날 당황스럽게 하는군.”

T구역 27번 거리에 있는 포레스트 레스토랑.

그곳의 사장이자, 중개인인 포레스트가 사무실에 조를 비롯한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이끌고 들어온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그는 놀란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한 건가요?”

"잠깐만. 술이 한 모금 필요해.”

포레스트는 그답지 않게 올리버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술을 따라 한 모금 들이켰다.

"음…잠시만, 두 모금이 필요하겠네. 진정이 안 돼서.”

그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술을 들이켜곤 입을 열었다.

"후..…. 뭐라고 했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겠나?”

"이번에 제가 맡은 경매품 회수 건 말씀입니다.”

"그래, Y구역 갱들과 인육 요리사 부하가 합심해 일을 벌였지.”

"그리고 인육 요리사 부하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요리사입니다. 파이터 크루 대장이요."

"오늘 내가 이야기해줄 내용이었군. 소문이 쫙 퍼졌다고.”

"예, 저도 오늘 조에게서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설명하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알고 싶거든.”

포레스트의 제안에 올리버가 기꺼이 발언권을 넘겼다.

"흐음..…. 자네 생각에는 그 소문을 요리사가 퍼트린 것 같다고?”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추측에 자신이 없긴 했지만, 올리버는 확신했다.

그동안 잘 숨긴 정체가 갑자기 까발려져 소문이 퍼지고, 이를 부정하지 않고 바로 전쟁 준비를 하는 등 요리사의 행동은 의도한 게 아니면 설명이 힘들었다.

이와 같은 이유를 이야기하자 포레스트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아니, 오히려 그게 더 말이 돼. 이쪽도 너무 갑작스럽게 퍼진 소문이라 의심하고 있었거든. 속셈을 가지고 퍼트린 거라면 말이 되지.…. 이런, 나 혼자만 마시고 있었군. 손님들도 한잔들 하시겠소?”

포레스트가 침착함을 되찾으며 올리버 곁의 조 일행에게 물었다.

조는 고개를 저었다.

"가급적 맨정신으로 있고 싶습니다."

"훌륭하군.”

포레스트는 조를 칭찬하며 자기 잔에 술을 따라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노리는 바는 뭐라 생각하나? 요리사가 오랜 기간 숨긴 정체와 공들인 조직을 버리면서까지 크라임 펌의 시선을 잡아두려는 이유가?”

"앞서 말했다시피 전 추측에는 자신이 없지만, 진짜 목표를 위한 시선 끌기용 아닐까요.”

포레스트도 그쪽이 의심되는지 생각에 빠졌다.

"사람들이 말하길 파이터 크루가 지금 Y구역과도 사이가 틀어져 근거지를 옮겨야 했다고 말했거든요.”

"말이 안 되진 않군. 데이브 자네 덕분에 Y구역 갱들과 인육 요리사 부하들의 동맹이 깨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럼, 진짜 원하는 물건을 털기 위해서겠군.”

"진짜 원하는 물건요?”

"그래, 이 상황에서 그런 일을 벌인 거면 그것 말고는 말이 되는 게 없어. 다만, 뭘 원하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궁금하군. 어쨌건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

포레스트가 다급히 커다란 통신장치를 작동, 수화기를 들려는 순간 조가 훅스위치를 내렸다.

포레스트는 그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불쾌함을 머금은 시선으로 조를 바라봤다.

"뭐 하는 짓이오?”

"선생 하는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우린 약속받은 게 있습니다. 우리 안전이 먼저 확보돼야 합니다.”

각오가 느껴지는 조의 목소리에 포레스트가 눈동자만 굴려 올리버를 봤다.

올리버가 한번 봐 달라고 양해의 제스처를 취하자 포레스트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수화기를 내렸다.

"최대한 빨리 부탁하오. 나도 내 일이 있거든.”

"감사합니다. 포레스트님.”

"아니네. 다만, 두 번 다시 내 통신장치를 멋대로 건드리지 말길 부탁하네. 말하는 도중 입을 막는 행동이랑 같거든… 모욕감을 느끼네."

올리버는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조에게 부탁했다 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포레스트에게 사과했다.

"뭐, 좋아..….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나?”

"크라임 펌과 오해를 풀 수 있게 자리를 주선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 상황이 급하면 일이 끝난 후라도요.”

"아, 파이터 크루 자체는 관여가 안 되었다고 그랬지?”

"예. 오히려 협력하라고 협박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하네. 다만, 그와 별개로 자네가 간과한 사실이 몇 가지 있네.”

"그게 뭐죠?”

"첫 번째, 자넬 실망시키긴 정말 싫지만, 크라임 펌 이사급은 거물이네. 뒷세계 한정이 아닌 이 도시 전체로 봤을 때도 말이야. 란다의 지하경제를 움직이고, 더 나아가 셀랜드 전역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지. 그런 그들과의 자리를 내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번 임무를 의뢰한 분이니 가능하지 않을까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이유가 나왔군. 우리 고용주는 엄밀히 말해, 크라임 펌이 아닌, 크라임 펌의 의뢰를 받은 핑크맨.… 아니, 조나단이야. 그 말은 즉 우린 크라임 펌과 일 문제로 상의할 자격이 없다는 거야. 그건 조나단 영역일세.”

"그럼, 조나단 씨에게-”

“-그게 세 번째 이유야. 핑크맨의 이름값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요구받은 일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주는 프로페셔널함에 있어. 자넨 뛰어난 능력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탁을 들어주진 않을 걸세. 영업방침에 어긋나거든.”

아..…. 연달아 세 번이나 논파 당한 올리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초반부터 이야기가 막힐 줄이야.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음..…. 그럼, 크라임 펌과 연락은 아예 불가능한 건가요?”

정 안 되면 머피를 찾아가 부탁할까 생각하던 중 포레스트가 대답했다.

"엄밀히 말해 연락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나도 그쪽과 연락을 나눌 수 있는 파이프라인은 가지고 있거든. 다만, 그걸 쓰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구실이 있어야 해. 그냥 쓸 수는 없거든.”

“구실요?”

"그래, 그게 규칙일세.”

"음..…. 구실이란 구체적으로 뭐죠?”

"광범위한 질문이군. 서로의 이익과 관여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크라임 펌에 도움을 주거나, 거래를 제안하는 것도 구실이 될 수 있지. 그저 심심하다고 부르는 게 아닌 그럴 만한 이유인 셈이네.”

"그럼, 빚을 갚는 조건으로 자리를 부탁하면 어떻게 되나요?”

“빚? 가능하지. 그럼, 정당한 거래니. 그런데, 자네에게 빚진 크라임 펌 간부가 있나?”

"빚까지는 모르겠지만, 경매장 습격 때 의도치 않게 도와 드렸거든요. 그 보답으로 원하는 물건을 준다고 했는데, 그걸 안 받는다고 하고 오해를 풀 자리를 가져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물론, 되네. 그 정도면 차고 넘치지. 그런데 그래도 되겠나?”

점잖은 포레스트는 평소와 같이 말을 자제했으나, 1년 동안 같이 일한 올리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너무 말도 안 된다는 대가를 치른다는 이야기였다. 손해니 그만두라고.

올리버는 뒤를 돌아봤다. 조를 비롯한 파이터 크루 각 무리의 장들이 서 있었다.

"음….. 이미 약속한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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