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요리사 (2) >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혼자 적 소굴에 오는 것도 모자라, 그들을 변호하다니.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모습.
그런 탓인지, 어느새 주변에 모인 파이터 크루 소속 사람들은 홀린 듯 올리버의 말을 경청했다.
"이 바닥에 몸을 담고 있을지언정 일정한 선을 지키는 게 전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자들과 싸우지 않는다거나….. 상관없는 사람들은 해치지 않는다던가….. 최소한의 품위가 있지 않습니까.”
"품위? 사람들이 들으면 개소리라고 비웃을 이야기군.”
"그럴 수도요..…. 허나, 그렇기에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비웃고, 비난할지언정 상관하지 않고 선을 지키는 거요….. 애당초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 아닌가요?”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물었다.
별거 아닌, 잡소리에 불과할 수 있었으나, 놀랍게도 주변에 몰려든 파이터 크루 사람들은 올리버의 말에 혼란을 느끼며 웅성거렸다.
욕망과 열기, 혼란, 공포가 가라앉으며,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선택지를 다시 돌아볼 정도로 말이다.
요리사도 이를 눈치챘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그냥 미친놈이 아니었군. 혓바닥을 잘 놀리는 미친놈이야. 나도 혹하겠는데?”
"아, 혹시 뭔가 오해를 일으켰다면 죄송합니다. 전 뭘 맞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그저 제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딱히, 요리사님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 사는 분들을 변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올리버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저..…. 이 일에 엮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까지 억지로 끌어들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 그래서 혼자서 날 쓰러트리기 위해 찾아왔다? 불쌍한 이들을 돕기 위해?”
요리사가 불쾌감을 빛내며 물었다. 우습게 보였다고 생각한 건지 그의 감정은 분노로 물들였다.
아무래도 우습게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았다.
"아뇨,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파이터 크루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들이지 말아 달라 부탁드리러 온 겁니다."
대답을 들은 요리사가 ‘크흐흐흐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겉보기에는 유쾌한 웃음이었지만, 그 내면엔 엄청난 분노와 불쾌감이 머금어져 있었다.
"그럼, 빠지고 싶은 놈들은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떠날까?”
"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크하하하핫一!! 진짜 미친놈이군. 진짜 미친놈! 살다 살다 내가 만든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하다니.”
"??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전 요리사님 것을 빼앗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여기-”
“-그게 그 말이야.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내 것인데. 너도 흑마법사면 알 텐데.”
아..…. 올리버는 오랜만에 흑마법사의 법도가 떠올랐다. 가르침을 준 스승은 스승을 넘어 주인이 되는/
그렇기에 올리버도 아직 조셉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하지만 이에 관해 처음 듣는지 파이터 크루 사람들은 놀란 눈치였다.
분노하며 소리치는 조가 이를 증명해주었다.
"다들 들었어? 우릴 자기 물건이라고 생각하잖아. 근데도 크라임 펌과 목숨 걸고 싸우고 싶은 거야? 우리 잘못도 아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유로? 진짜 크라임 펌과 전쟁이라도 나면 우리뿐 아니라 여기 사는 인간들 전부 큰일 나!”
“아….. 억울하다는 목소리군. 흑마법을 가르쳐 줄 때는 좋다고 배워놓고 말이야, 막상 내가 도움을 청하니 버리겠다니.”
"말 똑바로 하시죠. 우리가 도움을 받은 건 맞지만, 그에 걸맞게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이 상황으로 우릴 몰아넣은 건 바로 당신입니다."
조의 확고한 발언에 우왕좌왕하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조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우린 우리를 위해 살아! 누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개새끼가 아니라! 너희는 어떤데!?”
조가 다른 파이터 크루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 회의감을 품은 이들이 침묵으로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요리사는 말 안 듣는 개를 보듯 짜증을 내는가 싶더니,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뭐, 좋아. 그 말이 맞다 치자고. 근데, 설사 내가 빠진다고 자존심에 금이 간 크라임 펌이 너희를 가만히 놔둘 거 같아? 다들 알잖아? 크라임 펌이 X구역을 벼르고 있는 거. 이제 와 내가 빠진다 해도 너희는 무사하지 못해 차라리 나와 함-”
“-어, 그거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올리버가 또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요리사가 얼굴 위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말 나설 때를 모르는군.”
"도움이 필요하신 거 같아서요. 어쨌건 크라임 펌에 아는 분이 한두 분 계시는데, 제가 그분들에게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잘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리사님 혼자 잘못이라고요.”
"고작 아는 사이로 이 난장판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노력은 해봐야지 않을까요?”
요리사는 같잖다는 듯 비웃으며 주변 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에게 묻는다. 정말 너희 운명을 이놈에게 맡기고 싶나?”
"난 믿어.”
조가 대답했다. 온 진심을 담아.
"난 믿으니까. 저 사람 좀 믿어봐. 내가 보증할 테니까….. 미친 듯이 강한데도 우릴 사람 취급해 주는 사람이야.”
조의 발언에 파이터 크루 멤버들이 동조하려는 그 찰나 요리사가 말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해결사 나부랭이와 조를 해치우는 놈들에게 현금 10억 란다와 검은손에서 내 정식 제자라는 확실한 위치를 보장한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가 멈칫했다.
확실한 현금과 지위는 사람을 설득하기 더없이 좋은 요소이니.
요리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내가 사라지면, 뭐 해피엔딩이라도 될 거 같나? 파이터 크루는 내가 만들었어. 내가 사라지면 파이터 크루가 사라지는 거고, 너희가 흑마법을 배울 기회도 사라지는 거야. 정말 그걸 원하나?”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올리버가 요리사를 지나치며 말했다. 다들 흥분한 탓인지 올리버가 말할 때까지 그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도 조에게서 들었습니다. 파이터 크루가 어떻게 생겼는지요…... 잠시 실례 좀 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요새로 개조 중인 다세대주택 앞으로 갔다.
"요리사님께서 혈혈단신 나타나 무상으로 흑마법을 가르쳐주고, 방해하는 사람들을 무찔러 파이터 크루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요리사님 말씀이 맞다고요. 요리사님 덕분에 파이터 크루가 생긴 거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조직이 요리사님이 사라진 것으로 없어진다니 그건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닐까요?”
요리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사의 말과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파이터 크루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다고 하면, 여기 계신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거 같아서요.”
올리버가 양손을 펼치며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가리켰다.
“내 생각에는 네가 날 무시하는 거 같은데? 혹시 도발인가?”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제 경험상 사람 하나 없다고 조직은 사라지지 않아서요.”
올리버가 ‘마리’와 마리가 이끄는 ‘선택받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비록 올리버가 지식을 남기긴 했어도, 그를 바탕으로 조직을 유지하고, 그 규모를 키운 건 엄연히 남은 사람들의 공이었다.
물론, 그 형태가 탐탁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일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요리사는 동의하지 않는 거 같았다.
"경험? 경허엄? ..…기껏해야 20년 약간 더 산 놈이 정말 되는 대로 지껄이는구만! 내가 파이터 크루 같은 조직을 한두 번 만들어봤을 거 같나?!! 뭣들하고 있어기 저 알지도 못하는 놈을 가만 놔둘 거냐? 아니면 정말 나 대신 저런 놈에게 의지하겠다는 거야?! 선택해!!”
분노한 요리사의 고함에 파이터 크루 사람 중 심지가 약한 몇몇이 주춤주춤 올리버에게 다가왔다.
조가 움직이려고 할 때 올리버가 괜찮다고 말하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블레스(Bless)]
과거 마리가 사용했던 오리지날 흑마법.
영창과 함께 건물에 손을 가져다 대니 안개와 빛 중간 형태의 검은빛 감정이 빠르게 건물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건물 전체의 통제권을 가져온 것인데, 그와 함께 건물을 구성한 벽돌, 시멘트, 철근이 하나하나 분리돼, 검은빛 안개와 함께 허공에 둥둥 뜨기 시작했다.
쩌저.….쩌저적……우르르르르르.......
"어? 어??”
눈앞에 믿기지 않은 광경에 올리버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까지 고개를 높이 들며 뒷걸음질 쳤다.
의지가 아닌 생물학적인 본능에 의해서 말이다.
조가 소리쳤다.
"전부 물러너! 물러나라고!”
그 말을 신호 삼아 파이터 크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요리사와 올리버 곁에서 멀어지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마치, 더이상 자신들이 나설 자리가 아닌 걸 알듯이.
잠시 후, 백 명도 넘게 수용할 수 있었던 건물과 그 안에 있던 물자가 벽돌 단위로 나뉘어 허공에 둥둥 뜨게 됐다.
참으로 현실성 없는 광경.
그러나 올리버는 그저 실험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여 건물 잔해를 조작했다.
"이렇게 하던가.…? 아, 이렇게 맞네.”
감을 잡은 올리버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허공에 뜬 건물 자재와 물자가 서로 뭉쳐져 거대한 말뚝 형상이 되었다.
그 수는 총 일곱.
그 거대한 일곱 개의 말뚝은 완성과 동시에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휘이이이이이———
"어? 잠깐. 어어??”
"씨발!"
"비, 비켜!!”
"도망쳐! 도망!”
파이터 크루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물러서는 사이, 말뚝은 원형 형태로 지상에 떨어졌다.
———쾅!! 콰앙! 쾅—!! 콰과쾅!!
도로가 뒤집히고, 짓다 만 건물은 무너지며, 흙먼지가 일어나 주변을 뿌옇게 물들였다.
콜록! 콜록! 기침소리와 욕설 소리 가운데서 요리사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턴 채로 말했다.
"혹시, 이 요새 하나 짓는데, 돈이랑 시간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다른 건물에 쓰기는 좀 그래서요. 상관없는 남들에게 피해 주면 좀 그렇잖습니까?"
이미 난리를 일으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올리버는 돌기둥 경계선 안쪽으로 걸어오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친 사람은 없었고, 말뚝 경계선을 중심으로 요리사와 파이터 크루 사람들이 분리됐다.
그중 가장 좋은 건 대다수 사람이 올리버와 싸울 생각을 접은 것이었다.
"이 정도면 제가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요리사님?”
"힘자랑 좋아하는 놈인 줄은 몰랐는데..…."
"대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빅터 씨께서 힘이 중요하다고 하셔서요.”
"......."
올리버가 다시 주변을 살펴보곤 말했다.
"크라임 펌과 전쟁을 벌이려면 부하분들에게 명령하는 게 아닌 직접 저와 싸우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금 올리버가 보여준 그 모습에 조가 괜히 배신한 게 아니라는 걸 모두 깨달았다.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요리사가 자기 힘을 증명해야만 했다. 과거,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그 사실에 요리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아주 소름 끼치게.
"하하하..…. 내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나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는 거 보니. 좋아, 좋다고. 계획이고 보상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치우자고.”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기려고 노력하긴 할 거지만, 확신하진 않습니다. 요리사님이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건 다른 분들을 봐서 알 거든요. 만약, 떠나주신다면 저도 아무것도一”
올리버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요리사가 쥐고 있던 스테이크 나이프(Steak Knife)를 올리버에게 던졌기에.
스테이크 나이프(Steak Knife)는 흑마법을 두른 탓인지 총알처럼 빠르게 날라왔지만, 올리버는 그동안 쌓은 경험 덕분인지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다음에 들어온 진짜 공격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캉!!
맞닿은 프렌치 나이프(French Knife)와 쿼터스태프.
요리사가 점잖던 가면을 벗어 던지곤 악귀와 같은 분노에 찬 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흑마법도 걸지 않은 보통 지팡이인데, 내 칼을 막다니.…. 무슨 마법 아이템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좀 튼튼하더라고요.”
"그래? 어디 한번 볼까?!!”
촤라라라랑!!
요리사가 반대 손으로 다른 식칼을 꺼내며 휘둘렀다.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제때 반응해 쿼터스태프로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냈다.
"확실히 잔재주만 믿고 깝죽거리는 어중이떠중이랑 다른가 보군. 그래야지. 암! 날 이렇게 빡치게 했으면 말이야. 좋아, 아주 좋아!!”
요리사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몸에서 직접 감정을 추출, 흑마법으로 가공, 자신의 육체에 부여했다.
검붉은색으로 물드는 피부와 근섬유질이 보일 정도로 강화된 근육.
얼핏 보면 평범한 질병계열 흑마법처럼 보였지만, 올리버는 보통 흑마법이 아님을 간파했다.
일반적인 질병계열과 달리 몸이 필요 이상으로 부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별거 아닌 듯했지만, 이는 엄청난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었다.
늘어난 근육을 압축해 효율을 극도로 높이는 것이기에.
"걱정돼서 그러는데, 아까 전에 감정을 상당히 쓴 거 같던데, 여분은 있나? 지고 나서 핑계 대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좀 많이 쓰긴 했지만, 여분이 조금 남아-”
—쾅!!
올리버가 대답하는 사이 요리사가 디디고 있던 지면에 실금이 생기더니 이내 폭발이 일어나듯 부서졌다.
[블랙 슈트(Black Suit)]
[쉐도우 텐타클(Shadow Tentacle)]
핑—————카라라랑!!!
폭발할 정도로 지면을 찬 요리사.
그는 그 반동을 이용해 올리버에게 단숨에 접근,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선이 올리버의 목을 노렸지만, 올리버는 몸을 옆으로 틀고, 그와 동시에 블랙 슈트를 걸치며, 그림자 촉수로 방어벽을 만들어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림자 촉수가 갈가리 찢겼지만.
"재있는 기술이군. 흑마법 다루는 솜씨도 그렇고….. 널 먹으면 가질 수 있으려나?”
검은손 인육 요리사 계파의 요리사가 송곳니밖에 없는 이빨과 길쭉하고 시뻘건 혀를 할짝대며 물었다.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