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요리사 (1) >
"형. 도대체 이거 뭐야?”
동생의 물음에 오언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왜냐면 자신도 지금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파이터 크루의 우두머리인 요리사가 사실 검은손의 멤버라는 둥, 크라임 펌의 경매품을 훔쳤다는 둥.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이야기가 연이어 쏟아졌다.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이로 인해 자신들조차 크라임 펌의 표적이 됐으니, 살고 싶으면 자신을 도우라는 요리사의 발언이었다.
‘어차피 나랑 엮인 시점에서 너희도 다 좆된 거야. 날 돕든 안 돕든 도매금으로 묶여 크라임 펌의 표적이 될 테지.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날 도와라. 그렇다면 너희 모두 검은손에 받아주마. 그리고 위대한 금단의 지식을 나눠 너희가 상상도 못 하던 힘을 얻게 해주겠다.’
고작 열아홉 살인 오언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
아니,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오언의 관심이라고는 조와 샘 등 동네 형을 따라 동생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 크라임 펌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니.....
너무나 어이가 없고 현실성이 없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너희 대장이 많이 늦네?”
요리사가 보낸 파이터 크루 멤버가 비아냥거렸다.
수많은 무리로 나뉜 파이터 크루 중 우리와 유난히 사이가 나쁜 놈들로.
요리사가 보호 명목으로 붙여줬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둔한 오언도 알았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이놈들은 우릴 감시할 목적으로 여기 배치된 거였다.
조와 샘을 통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이를 아는지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부둥켜안았다.
조와 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간 걸까?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고민하는 그때였다.
"어..…. 야, 저기 조 오는데?”
"어디? 오….. 해치우고 왔나?”
"생각보다 빠른데? 얼굴도 멀쩡하고? ..…소문과 달리 별거 아니었나 본데?”
"그러게. 근데, 저건 누구……응?”
오언이 앞을 봤다.
조가 수십 명은 족히 되는 파이터 크루 멤버들을 이끌고 오는가 싶더니, 냅다 달려와 얄밉게 대화를 나누던 두 책임자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이들 역시 간부로서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건만, 근래, 흑마법 실력이 몰라보게 향상된 조의 상대가 되지 못해 모두 한방에 쓰러졌다.
쾅-!
콰직!!
한 명은 벽에 처박히고, 다른 한 명은 바닥에 처박혔다.
갑자기 일어난 광경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놀라 움직였지만, 조의 눈빛을 보자 이내 행동을 멈췄다. 아니, 겁을 먹고 얼었다.
"조?”
"나 요리사하고 인연 끊을 건데, 오언 넌 어떡할래?”
***
올리버가 다가갔을 때, 조는 한창 교통정리 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 둘을 날려버리더니, 그 밑의 부하들을 눈빛만으로 제압하곤 소리쳤다.
"난 이제부터 보스랑 인연 끊을 거다. 충성하고 싶은 놈들은 덤비고, 몸 성하고 싶은 놈들은 눈치껏 꺼져라. 가는 놈 굳이 잡진 않는다."
간단명료한 선택지에 눈치를 보던 이들은 웅성거리더니 하나둘 도망쳤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조는 대장자질이 꽤 있는 거 같았다.
조셉, 캔트, 포레스트, 머피, 아서, 조나단 같은.
"의외로 쉽게 물러나네요?”
"솔직히 요리사가 갑자기 일을 밀어붙여서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놈들이 많아. 소수를 제외하고는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거뿐이야. 달래겠다고 검은손에 넣어주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누가 그걸 믿어?”
그 말을 증명하듯 어느새 이곳을 지키던 사람들 모두 사라졌다.
조는 신경도 안 썼지만.
"야, 샘.”
"왜?”
"넌 우리 애들이랑 같이 여기 지키고 있어. 1시간 안에 안 오면 애들 데리고 어디로든 튀고. 오언 넌 어떡할 거야?”
"아…. 저, 저야. 조가 가자는 대로 가죠. 근데,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조가 오언에서 올리버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데이브를 죽이려 했는데, 데이브가 우리 도와준다고 했어. 너도 샘이랑 같이 여기 지키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알겠어?”
"아….. 예!”
오언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대략적인 맥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자마자 아이들을 비롯한 같은 공동체 소속 사람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무슨 대비 훈련이라도 하는 건가? 하긴, 여긴 경찰 같은 게 사실상 없으니.’
"고마워.”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끝낸 조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오늘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상당히 진정된 분위기를 풍겼다. 고맙다는 말 역시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
올리버는 정중히 화답했다.
"아뇨, 어차피 제 일이기도 해서요.”
"그거 말고. 바로 여기로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애들 빨리 구할 수 있었어. 진짜 고마워.”
그랬다. 정석적으로 보자면 이렇게 다짜고짜 밀어붙일 게 아닌 포레스트에게 보고하고, 고용주인 조나단과 상의해야 마땅했으나,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조의 공동체 사람들이 요리사 손에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고 해서 말이다.
그래서 올리버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들이닥쳤다.
덕분에 별문제 없이 구할 수 있었고.
확실히, 해결사로 보면 썩 칭찬받을 행동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어쩔 수 없었다고 결론 내리며 그러려니 했다. 도와주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언, 샘 그리고 이쪽에 사는 청년들이 수비를 마치자 조가 말했다.
"그럼, 마저 갈까?”
작은 두려움을 빛내며 묻는 조.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만약, 잘못하면 이백 명이 넘는 놈들과 싸워야 할지 몰라. 너에 비하며 별거 아니긴 하지만, 숫자가 아주 많아."
"음..…. 요리사라는 분 앞까지만 데려가 줄 수 있나요?”
"어, 거기까지는 할 수 있어.”
"그거면 충분합니다.”
***
대화를 주고받은 뒤 조는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올리버를 안내했다.
현재, 요리사는 X구역에 파이터 크루 멤버를 소집했으며, 동시에 크라임 펌의 공격에 대비 중이라 했다.
“Y구역의 사제(私製) 무기를 사고, 건물 하나를 요새화해서 말이지.”
“어..…. 원래 Y구역에 터를 잡지 않았나요?”
"손잡은 Y구역 갱들과 관계가 크게 틀어져서, 이쪽으로 넘어왔어. 누가 거기에 커다란 폭탄을 터트려서 막심한 피해를 줬거든..”
"누가 그런 짓을 벌였죠?”
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어쨌건, 크라임 펌도 크라임 펌이지만, 잘못하면 Y구역 갱들과도 싸울 수 있어. 셈 강을 끼고 있지만, 마냥 안심할 수도 없거든. 갑자기 상황이 이리 꼬이다니.”
조가 한탄하듯 말했다. 올리버는 동의하는 바였다.
너무 급작스러웠다.
갑자기 경매품을 턴 게 요리사라는 소문이 퍼진 것도 석연치 않았고 그의 대응도 너무 급하고 요란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바로 까발리며 바로 전쟁 준비라니.
꼭 싸우자고 도발하는 것 같았다.
"저기야.”
조가 올리버 곁을 나란히 걸으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커다란 사거리에 있는 거대한 다세대주택으로, 백 명도 넘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거대한 건물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으며, 창문에는 널빤지 아니면 기관총이 배치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도 보였다. 하나같이 감정 상태가 어수선했다.
"야, 조. 일 끝내고 온 거야?”
주변에서 바리케이드를 만들던 남자가 조에게 말을 걸었다.
조는 대답 대신 질문했다.
“보스는?”
"보스? 저기, 저쪽에서….. 근데, 빅터는?”
"죽었어.”
조가 짤막하게 대답하곤 올리버를 데리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대답해준 남자가 놀라 되물었지만, 조는 대답하지 않고 저벅저벅 안으로 걸어갔다.
웅성웅성 소리를 내며 방어 준비를 하던 사람들과 무기, 탄약, 감정이 든 시험관을 옮기던 이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조의 등장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듯, 하던 일을 멈추며 말없이 조를 바라봤다.
“보스….”
조가 한 남자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그 남자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탄탄한 몸매, 풍성한 머리카락, 짧은 수염 등 상당히 뛰어난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외형에 어울리는 자신감까지 내뿜어 자연스럽게 주변의 사람들을 자기 통제하에 넣었다.
몸 밖으로 뿜어져 주변 이들을 감염시키는 저 자신감이 그 증거였다.
"오……. 조. 왔어?”
"예."
"일은 잘 끝내고 왔나?”
"그게 일이 좀 꼬였습니다.”
"일이 꼬여.…? 그러고 보니 빅터는?”
"죽었습니다.”
“어쩌다?”
"주먹에 머리가 박살나 죽었습니다."
"누가 주먹을 날렸지?”
"제가요.”
조의 말에 주변에 있던 파이터 크루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사람들의 반응으로 볼 때, 어떤 형태로든 조는 이곳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네가 죽였다고? 왜?”
"도저히 뜻이 맞지 않아서요.”
“뜻이 안 맞아?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다 같이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자기 욕심을 위해 죽을 길로 가자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여줬습니다.”
조의 대답을 들은 요리사는 허리에 찬 여러 개의 칼 중 날이 작지만, 단단한 스테이크 나이프(Steak Knife)를 뽑았다.
"너답지 않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지껄이네. 좀 알아듣게 말해봐.”
팽팽해진 긴장감. 요리사라는 남자는 여차하면 조를 죽일 생각이었다.
모두가 침을 삼키는 와중 분위기와 맞지 않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 저기 거기에 관해 제가 말씀 좀 드릴 수 있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음원지를 향해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올리버. 그는 사람들 틈에서 손을 들며 천천히 나왔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지나치곤 쿼터스태프로 땅을 디디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발걸음에 맞춰 딱. 딱. 딱.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 요리사가 입을 열었다.
"이야..…. 내가 지금 유령을 보는 건가?”
"제가 알기로 전 아직 죽지 않았으니, 유령은 아닐 겁니다.”
"말투가 참 특이하군.”
"그런가요? 어찌 됐건,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요리사님. T구역의 해결사로 있는 데이브라고 합니다. 저번에 Y구역에서 저희를 보셨지요?”
“호…..”
올리버의 물음에 요리사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맞았다.
흥미와 경계심을 보이며 올리버를 바라보는 요리사.
그에 반해 주변에 어느새 모인 파이터 크루 사람들은 모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했다.
어색하고 기묘한 침묵이 감도는 와중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설명하면 말이 길어지기는 한데, 조를 시키셔서 절 죽이시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혹시, 너 미친놈이냐?”
"예? .…아뇨, 아까 전에도 그런 질문 받긴 했지만, 전 미치진 않았습니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여기 혼자 온 거지? 주변에 지원 같은 것도 안 보이는데.”
흑마법사의 시야로 주변을 훑어보며 묻는 요리사.
참으로 훌륭한 질문이었다.
사실 올리버가 여기 온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자길 죽이려는 인간의 소굴 한가운데니 말이다. 그야말로 미친 짓.
그러나 올리버는 담담히 말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좀 복잡하긴 한데, 조가 도와달라고 했거든요.”
"......."
"......."
"......."
"......."
모두가 침묵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왜?”
"예?”
"조가 도와달라 해서 왜 왔냐고? 넌 도와달라면 다 도와주나?”
"다 도와주지는 않고, 제가 도울 여건이 되면요? ….뭐, 개인적으로 X구역과 크라임 펌이 싸우지 않았으면서도 해서요. 여기 체육관에 몇 개월 치 회원권도 끊었거든요.”
요리사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한참을 웃은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조….. 실망이다. 이런 미친놈을 믿고 나한테 이빨을 드러낸 거야? 차라리 목숨 걸고 싸웠으면 최소한 네 식구들은 내가 보살펴줬을 텐데 말이야.”
"죄송하지만, 제 식구를 인질로 잡으신 분 말씀이 영 신용 가지 않아서요. 그 이전에 사람 고기 먹는 놈의 말을 믿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사람 고기. 그 단어에 주변의 파이터 크루 멤버들이 웅성댔다.
아무래도 인육 요리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올리버도 자세한 정보는 비교적 최근에 알았으니.
"호오.… 재주도 좋네? 거기까지 알아냈어?”
"데이브에게 들었습니다.”
사실임을 인정하는 요리사의 발언에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렸다.
하긴, 제아무리 시(市)에서 버린 무법지대라 해도 최소한의 선은 있을 테니.
그러나 요리사는 오히려 뻔뻔하게 나왔다.
"뭐야? 다들 왜 그래? 인육 요리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얼추 예상했을 거 아니야? 아닌 말로, 인생을 바꿀 힘을 거저 얻을 줄 알았어? 응?!”
요리사가 눈을 부릅뜨며 호통쳤다. 요리사의 영향력이 엄청난지 모두 움찔거렸다.
올리버만 빼고. 올리버는 또 한쪽 손을 들며 말했다.
"사람마다 선이라는 게 있으니, 불쾌해하실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올리버를 요리사가 도끼눈을 뜨며 바라봤다.
"개소리하는군. 사람 죽여서 먹고사는 놈들이 그따위 걸 가지다니. 무슨 차이가 있지?”
"글쎄요?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부분이요? 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인간미 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