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99화 (199/633)

< 199. 대화 (2) >

식사를 끝마친 후 올리버는 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알이 다가와 곧 포레스트가 온다며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올리버는 조와의 약속을 급히 처리하고 오겠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볼일을 마치고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알은 다시 권유하려고 했지만,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나설 것이 아님을 직감한 거였다.

순순히 보내주는 알에게 올리버는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하곤 조를 향해 돌아봤다. 그는 마치 외면하듯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든 잘 해낸다고 생각한 사람이지만, 죄책감을 숨기는 재주는 없는 거 같았다.

"이제 갈까요?”

***

올리버는 조를 따라 걸었다.

조는 초조한 감정 상태 때문인지 평소보다 빨리 걸었다.

덕분에 올리버는 조의 뒷모습과 감정 상태만 읽을 수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의 감정은 소리 없이 요동쳤다.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

그럼에도 멈추고픈 망설임,

물러설 곳이 없는 초조함과 공포 등등.

조의 감정은 폭풍처럼 요동치며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 입혔다.

어찌나 동요가 큰지 감정이 몸 밖으로 흘러넘칠 지경.

올리버는 간접적으로나마 조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 수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괴롭히는 걸까?

올리버는 묻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고 판단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갔다.

그렇게 말없이 걷기를 한참.

올리버는 이윽고 T구역 최외곽에 들어섰다.

여느 노동자 거주 구역과 같이 T구역 외곽은 인적이 드물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말이다.

올리버는 주변의 골목과 길목 등에 숨어있는 수십여 명의 감정을 살펴보며 물었다.

"여긴가요?”

“..…어.”

조가 멈춰 서며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올리버의 등 뒤로 샘이 총을 겨누며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 역시 조와 비슷한 감정 상태를 품었다.

올리버에 대한 죄책감, 망설임, 후회, 자기합리화, 두려움, 초조, 공포, 막막함 등등..…. 놀라웠다. 그는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흑마법사였으며, 다들 제각기 다른 감정 상태를 품고 있었다.

당혹, 어리둥절, 두려움, 초조, 혼란..….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가령, 얼굴에 X자 흉터가 있는 사람이라든가.

“하.…. 용케 데려왔네? 소문과 달리 감정을 자세하게 꿰뚫어 보는 수준까지는 아닌가 봐? 이렇게 순순히 따라온 거 보면 말이야.”

얼굴 흉터 남성이 촤라랑. 촤라랑. 클리버(Cleaver)를 연마봉으로 갈며 나타났다.

그의 등 뒤로 식칼로 무장한 인원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모두 칼날에 흑마법을 두른 상태.

올리버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누군지 알 거 같았다.

“..…파이터 크루 멤버들이시군요.”

올리버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체내에 축적해 둔 마력을 조작하며 물었다.

마력이 올리버의 손끝을 따라 땅으로 내려앉아 천천히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오..…. 눈치 빠른데? 아니지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소문이 퍼졌는데, 조를 따라왔으니.”

"소문요?”

올리버가 되묻자 여기저기서 크크크 웃는 소리가 들렸다.

승기를 잡았다는 확신과 우위에서 오는 여유.

때마침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조가 먼저 말해줬다.

“….정말 모르는 거야?”

"예, 알려주시겠습니까?”

조가 감정이 든 시험관을 꺼내며 말했다.

"너 지금 강탈당한 크라임 펌 경매품 회수하는 일 맡고 있지?”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문은 쉽게 퍼지기 마련이니까….. 너 혹시 Y구역 갱단과 손잡고 경매품을 빼앗은 게 누군지 알아?"

"검은손 인육 요리사 계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 우리 보스야. 파이터 크루의 보스.”

조가 겉으로는 담담히 말했으나, 속으로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자신도 지금 상황이 감당이 안 되듯.

"아..…. 그렇군요.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얼마 전에.”

“그렇군요. 근데-”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나?”

얼굴 흉터 남성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에게 엄청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제가 뭔가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태 파악이라뇨?”

"곧 우리 손에 죽을 텐데 너무 여유로워서 말이야. 요즘 해결사들은 이름 좀 알리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나? 아니면 우리가 빈민가 쓰레기라고 우습게 보는 거야?”

아..…. 올리버는 그제야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성함이?”

"내 이름은 왜?”

"대화를 하려면 성함을 알아야 하니까요.”

“……빅터.”

"예, 빅터 씨. 우선 죄송하다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여러분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애당초 전 X구역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요. 저도 고아 출신이거든요.”

"하….. 아부하면 살아나갈 수 있을 거 같나?”

"아뇨, 아부가 아닌 진심입니다. X구역에도 대단하신 분이 많이 있으시거든요. 운동 열심히 가르쳐주는 분도 있고, 겁이 나도 동생들을 위해 싸우는 분도 있고, 죽은 친구 동생을 대신 보살피는 분도 있죠.”

올리버가 조를 슬며시 봤다. 조는 움찔거렸다.

“..…전 여러분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뭐가?”

"여러분 보스가 인육 요리사 쪽 사람인 걸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왜 절 죽이려고 하는 거죠?"

너무나도 어이없는 질문. 그러나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몰랐다.

오십여 명도 넘는 흑마법사들이 웅성이자, 빅터가 고함을 질러 진정시킨 후 올리버에게 소리쳤다.

“넌 보스의 적이니까! 즉, 우리의 적이지….. 혹시, 미친놈이야?”

"제가 아는 것과 다르네요."

“뭐?”

올리버가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여러분들이 파이터 크루에 있는 건 흑마법을 배우기 위해, 더 나아가 먹고 살기 위해서인 걸로 압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전투광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충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올리버가 과거 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블랙 슈트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그때를 말이다.

“..…그런데 어찌해 지금 위험한 일에 가담하려는 겁니까? 그 정도로까지 할 이유가 있습니까?”

올리버의 말에 회의적이던 일부 사람들이 동요했다. 빅터가 그 동요를 느끼며 조를 재촉했다.

"야, 조. 뭐 하는 거야? 계속 떠들게 내버려 둘 거야?!”

조가 뭐라 말하려는 찰나 올리버가 부탁했다.

"원하신다면 절 공격하셔도 됩니다.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각오해야 하는 것. 그러니 죄책감 느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제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이게 레스토랑에서 일정을 바꾸고, 아무 말 없이 따라온 제 두 번째 조건입니다.”

조의 눈이 흔들렸다.

“……계속 말해봐.”

"야!”

올리버는 빅터의 말을 무시하고 조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파이터 크루는 여러분이 살기 위해 들어간 곳, 그런데 어찌해 보스가 멋대로 저지른 일에 엮여 위험을 감수하려는 겁니까? 자칫 잘못하면 크라임 펌과도 싸울 수 있는데 말이죠.”

빅터가 소리쳤다.

"이미, 크라임 펌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놈들 늘 우릴 노렸으니,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그 부분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크라임 펌에 아는 분이 한두 분 계신 데,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스가 멋대로 저지른 짓이고, 여러분은 상관없다고 말이죠.”

몇몇 이들이 웅성댔다. 아무래도 전부 크라임 펌과 싸우고 싶은 건 아닌 거 같았다.

빅터가 소리쳤다.

"미친 새끼들아 뭘 동요하고 있어! 새빨간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전 진심입니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건 아니지만, 시도는 가능합니다.”

다시 한번 파이터 크루 멤버들이 웅성였다.

"새끼들아! 정신 차려! 보스가 우릴 검은손 멤버로 받아준다고 그랬어. 그게 무슨 뜻인지 올라기 여태까지 쓰레기 같은 인생과 결별이라고!!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이 지랄이야?!”

"혹시, 빅터 씨는 인육 요리사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뭐?!”

"전 인육 요리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봤습니다. 크라임 펌을 통해, 중개인을 통해, 핑크맨을 통해 말이죠.”

올리버는 머피와 포레스트, 조나단에게서 얻은 정보를 읊었다.

"인육 요리사. 갈로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고위험등급 범죄자로, 영생의 퍼펫, 영원한 아이 팬, 유괴범 피리 부는 사나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검은손의 손가락 중 하나로,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특히 위험한 존재라 합니다. 퍼펫 다음으로 방대한 조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높은 조직력을 보유, 그로 인해 정부조차 감당하기 힘든 세력이라 하죠.”

"그래, 빈민가 쓰레기 인생이 드디어 변하는 거지.”

"그리고 사람을 먹습니다.”

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가위로 무엇인가를 자르듯 모두 멈칫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고, 추측성이긴 하지만, 인육 요리사 계파는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을 먹음으로써 강력한 힘을 얻는다고 말이죠."

"......."

"개인적으로 전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엄청난 재생 능력과 기형적으로 많은 생명력, 마력, 감정이 설명되거든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러분은 사람을 먹을 수 있습니까?”

“..…지금 사람 시체로 인형을 만드는 새끼가 설교하는 거야? 송장인형 다룬다는 거 이미 소문 다 퍼졌어.”

"아뇨, 아뇨. 전혀 아닙니다. 오해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인육 요리사도, 사람을 먹는 행위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제가 누굴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때때로 주제넘을 때가 있지만,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마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직도 마리가 하는 일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마저 부정할 순 없었다.

"전 그저 여러분이 사람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제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다들 어느 정도 선이 있다고 배웠거든요. 가령, 싸우기 싫은 상대와는 싸우지 않는다던가요.”

올리버가 다시 조를 바라봤다.

"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만약, 일이 잘 풀린다 해도 요리사를 따라가야 할 텐데, 그럼, 대신 돌보고 있는 니코 씨랑 큰턱 씨 가족도 같이 데려갈 생각입니까?”

조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기까지 생각 안 했는지 그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야, 조! 정신 차려! 어차피 늦었어. 내가 딴 수작질 부리면 네 꼬맹이들이 무사할 거 같아! 망설일 틈 없어! 힘없는 새끼는 힘 있는 놈 말 듣는 수밖에 없다고. 알잖아?!”

"힘 있는 사람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요?”

"그래! 그게 이 바닥 룰이니까!”

"아..…. 그래요?”

올리버는 대답과 동시에 은밀하게 퍼트린 마력을 발동, 응집시켰다.

올리버의 의지에 따라 수십 갈래로 나눠진 마력 사슬이 빛나며 주변의 흑마법사를 순식간에 포박했다.

흡사, 철로 만들어진 뱀.

너무나도 순식간이라 조 말고는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이, 이거 뭐야?!!”

"마력 사슬입니다. 순수마력 학파의 기초 마법으로, 범용성이 뛰어나고, 마력량에 따라 위력도 천차만별 변한다더군요.”

그 말을 증명하듯 빅터가 빠져나가려고 저항했지만, 마력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케빈의 조언을 들어 평소 몸에 마력을 넣어 놓고 다니는 게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감정처럼 흩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갑자기 붙잡은 점은 죄송합니다. 아까 전부터 뭔가 준비하시는 거 같던데, 겁이 나서 먼저 움직였습니다.”

올리버의 말대로 빅터의 부하들 품에서 마법 스크롤과 흑마법을 담은 시험관이 툭툭 떨어졌다. 올리버를 견제하고 공격할 수단.

그러나 사용하기도 전에 그들은 붙잡히고 말았다. 단 하나의 기초 마법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올리버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조밖에 남지 않았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 그만큼 상대와 올리버의 격차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 지금 공격해! 이만한 인원수를 잡아뒀으니, 행동에 제약이 따를 거야. 이미 늦었어!!"

빅터가 소리쳤고, 올리버는 말없이 한쪽 팔로 쿼터스태프를 쥐었다.

조는 감정을 추출해 몸에 흑마법을 두르며 질문했다.

"만약, 내가 덤비면 어떻게 할 거지?”

"싸워야죠.”

"죽일 건가?”

"죽일 생각은 없지만,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답을 들은 조가 낮게 웃더니 다시 질문했다.

“……만약에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조는 결심한 듯 감정을 가다듬고 빅터에게 물었다.

"야, 난 저 사람한테 도움받을 거야. 남의 일에 목숨 걸기 싫거든. 넌?”

"뭔 개소리야! 이러고 무사할 성싶어!! 당장 저 개一”

-퍽!!

빅터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가 달려들어 포박된 빅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날려버렸다.

쇳덩어리와 부딪힌 듯 붉은색 파편이 여기저기 흩뿌려지며, 빅터의 부하들이 기겁했다.

조가 다시 물었다.

"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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