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대화 (1) >
휘익-!
Y구역 고층 빌딩 위. 한 남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약 1킬로미터 밖에서 벌어진 전투를 보고 감탄한 것이다.
"좀 의외인데? 볼루 녀석이 저렇게 허무하게 당할 녀석은 아닌데 말이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제자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조작계열만 판 놈이긴 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수십 구의 시체를 즉석에서 되살리고, 강화한 게 그 증거.
금단의 지식으로 제아무리 생명력과 감정을 확보한다 해도 그것을 다루는 건 순수 본인의 능력이었다.
심지어 볼루 녀석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힘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교활함도 겸비해 언제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조건만 맞으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 다 무의미한 이야기였다.
저 멀리서 날아온 마력 포격으로 애써 모은 수십 개의 목숨이 한 번에 날아갔으니 말이다.
"실전이라는 게 아무리 허무하다지만, 이건 좀 의외네. 설마 마법사를 고용했을 줄이야. 우리에게 고화력 공격이 가장 효과적인 걸 눈치챈 걸까?”
"마법사 아니야.”
남자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요리사라고 불리고 있었다.
"뭐라고?"
"마법사가 아니라고, 마법사를 이용해 만든 송장인형이야. 저길 봐.”
요리사가 손가락 끝으로 포격이 날아온 방향을 가리켰다.
좀 멀었지만, 눈을 가늘게 뜨며 집중하니 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 위에 있는 송장인형 두 구가.
하나는 벌레와 대포를 합친 기괴한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여덟 개의 팔이 달려 있었다.
벌레대포가 포격을 날리고, 문어 송장인형이 조준 등을 도와줬다.
“호오..…. 흉측하긴 해도 꽤 괜찮은 물건들인데? 저 정도 물건은 퍼펫 계파에서만 봤는데. 설마….?”
"맞아. 저 해결사 물건인 것 같아.”
"이름이 데이브라고?”
"어, 내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거절한 녀석이지. 건방지게도 말이야.”
"음..…. 설마, 퍼펫 쪽 인간은 아니겠지?”
"글쎄, 1년 전이던가? 퍼펫과 한번 만났다고 하긴 하던데 딱 그 정도야.”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뭐… 상관있나? 퍼펫 제자든 아니든, 방해되면 죽이면 되는 거지.”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허세나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퍼펫, 인육 요리사 모두 같은 검은손의 손가락이었지만,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하는 일에 방해가 되면 기꺼이 서로 죽일 의사가 있었다.
실제로 우두머리인 당사자들만 싸우지 않을 뿐, 그 밑의 제자들은 매해 산발적으로 싸워댔다. 개인적인 감정이든, 공적인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남자와 요리사는 다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계획이 많이 어그러졌잖아?”
그랬다. 원래 요리사와 남자의 진짜 목적은 훔친 경매품을 미끼로 Y구역과 크라임 펌의 싸움을 부추기고 그 틈을 타 다른 경매품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경매장 습격이 실패하고 경계심이 바짝 오른 크라임 펌이 경매품을 꼭꼭 숨겨 놓은 터라, 이런 번거로운 일까지 벌여 주의를 분산시켜야 했다.
그래서 Y구역 갱단들을 끌어들여 혼란을 키우려고 한 거였고.
그런데 이거 웬걸? 지금 다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름대로 고심해 Y구역에서 꽤나 힘쓰는 갱단을 투입시키고, 자기들 인원까지 합세시켰건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제압당했다.
이제 와 나선다 해도 흐름이 저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새로운 플랜이 필요했다. 새로운 플랜.
"이제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고민하던 요리사가 결정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면돌파?”
"그래. 원래는 Y구역 갱단들을 미끼로 시선을 돌릴 생각이었지만, 이미 망했잖아? 이제 Y구역 놈들이 내게 책임을 전가하겠지.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동업자 탓이니. 크라임 펌에 Y구역까지..…. 시간이 길어지면 불리해지는 건 우리야.”
맞는 말. 더 이상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뭔데?”
"내가 배후라는 걸 일부러 흘릴게. Y구역과 합심해 크라임 펌 물건을 턴 게 파이터 크루의 우두머리인 나라고 말이야.”
"그래도 되겠어?”
"안 될 게 뭐야? 어차피 필요할 때 써먹으려고 만든 건데. 파이터 크루는 제법 규모가 되고, 흑마법 흉내나 내는 놈들이지만, 모두 실전 경험이 꽤나 있으니 크라임 펌도 쉽사리 못 다가올 거야. 그만큼 시선이 이쪽에 고정되겠지.”
"네 부하들이 순순히 협조할까?”
"살고 싶으면 하겠지. 내가 경매품을 훔친 게 알려지면 어차피 내 부하들도 같은 취급을 받을 텐데. 좋든 싫든 협력할 거야. 그러다 적당한 타이밍에 검은손에 넣어준다고 고기를 흔들어주면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지. 밑바닥 인생들 팔자가 변할 텐데 안 하고 배길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런 의미에서 묻는데 목표물은 찾았어?”
"범위를 다섯 곳으로 줄였어. 바로 습격하고 싶지만, 경비가 만만치 않아 좀 더 알아봐야 해. 자칫 잘못 짚으면 분명 더 깊숙하게 숨겨 버릴 테니까.”
"내가 시간을 최대한 벌어볼 테니, 빨리 알아내. 주인님이 말씀하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잘못하면 너나 나나 고기행이야."
"알았어…. 그보다 너야말로 괜찮겠어? 위험할 수 있는데?”
"내가 저런 놈들에게 당한다는 거야?”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요리사가 발끈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인육 요리사의 제자라 할 수 있었다.
"볼루가 저리 허무하게 당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요리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볼루를 본 뒤, Y구역 장벽으로 이동하는 올리버를 봤다.
"흠..…. 저 해결사 놈만 먼저 치우면 수월하긴 하겠지.”
"어떻게?”
"때마침 내 부하 중 저놈이랑 친한 녀석이 있거든, 병력 좀 붙여주면 해치울지도? 실패해도 뭐 상관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포크 좀 빌려줘.”
요리사의 요구에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덩치의 뚱보가 우드득! 우드득!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포크.
말없이 돌아보는 포크. 뼈와 살, 내장을 함께 씹고 있었다.
"너 일 좀 하나 해야겠다.”
***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작전은 무사히 성공했다.
Y구역 신전에 숨겨져 있던 경매품을 모두 회수한 것으로, 그곳에 도난당한 경매품 중 상당수가 있었다.
나머지 경매품도 찾아야 하긴 했지만, 첫 번째 임무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은 것은 사실.
참으로 좋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는 이 일에서 데이브 씨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죠. 핑크맨 사무소 내부에서도 데이브 씨의 이름이 퍼질 겁니다.”
주문한 생선 요리를 가져온 알이 올리버 앞에 음식을 놓으며 말했다.
그는 능숙하고 절도 있는 태도로 화이트와인을 따 올리버에게 따랐다.
"술은 주문 안 했는데요?”
"사장님께서 자기 없을 때 챙겨 드리라고 하신 것이니 부담 없이 드셔도 됩니다.”
그랬다. 올리버가 지금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한 건 배고파서만이 아니었다.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포레스트를 기다리기 위한 것도 있었다.
알이 말하길 근래 늘어난 일거리 때문에 새로운 거래처를 뚫고, 다른 중개인들과 만나 업무를 조율하는 등 일이 바빠 자리를 자주 비운다고 했다.
"물론, 한시적이니 이러한 불편함은 곧 사라질 겁니다. 다시 한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생선 요리를 한입 먹고 화이트와인으로 입가심하며 물었다.
알은 여느 때와 같이 친절히 정중히 대답했다.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최대한 성실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진심.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가게에 손님이 눈에 띄게 많아진 건 일이 늘어난 것과 상관있나요?”
올리버가 가게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올리버의 질문대로 가게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창백한 피부의 양복 신사, 근육질 남성,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 독특한 안경을 쓴 남성까지…. 모두 일반인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중 적잖은 사람들이 올리버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귓속말을 나눴다.
“그 친구가?”
"이제는 핑크맨이랑 일한다는?”
"Y구역에 폭탄을 터트렸다던데?”
"영감님 말년에 대박이 터졌네.”
"그러게, 별 볼일 없이 은퇴할 줄 알았는데.”
알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흘겨보고는 대답했다.
"예, 새로운 해결사나, 정보상, 브로커, 경비업체, 돈 세탁업자 등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중개인은 일이 많아질수록 발도 넓어져야 하거든요.”
이해됐다. 중개인이라는 게 그저 일을 알선해 주는 게 전부가 아니었으니. 그 과정에는 상당한 노력과 인력이 필요했다.
임무의 배경을 살펴봐 의뢰인이 거짓말하는 게 없는지, 위험에 비해 보수가 모자란 게 아닌지, 임무에 들어가면 주의할 게 뭔지, 그외 기타 등등 신경써야 할 게 아주 많았다.
그런 일을 중개인 혼자서 다 하긴 힘든 게 현실. 그렇기에 여러 협력자가 필요했다.
"참 바쁘시겠습니다.”
"오히려 기쁠 따름입니다. 일은 신께서 주신 축복이니까요.”
올리버는 그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경전 내용이 떠올랐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이다.
“..…데이브 씨?”
“예?”
"괜찮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요?”
"아뇨, 실수는 아닙니다….. 많이 피곤하신가 보군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를 꺼냈다.
"혹시, 조나단 씨에게선 뭐 새로운 소식 이야기 안 하셨나요?”
"죄송합니다. 데이브 씨. 그건 사장님 일인지라 감히 제가 말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알은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닙니다. 혹시나 싶어 여쭤본 거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올리버의 예의 바른 모습을 보고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알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소문을 듣긴 했습니다.”
"소문요?”
"예, 느닷없이 퍼진 소문이라, 헛소문 같기도 한데-”
“-다행이군. 여기 있어서.”
알이 이야기하는 도중 갑작스레 끼어든 목소리. 꽤 귀에 익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리자 심상치 않은 감정 상태의 조를 볼 수 있었다.
"안녕.”
***
갑작스러운 조의 등장에 올리버는 약간 놀랐지만, 이내 진정을 되찾았다.
뭐가 됐건, 해결사 데이브의 이름은 이제 꽤 알려진 편이고, T구역 27번 거리의 포레스트와 거래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전부 알만 한이야기였으니.
그러니 조가 올리버를 찾아 이곳으로 온 것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한 거라면 조의 감정 상태였다.
분노, 초조, 두려움, 죄책감, 자기합리화, 혼란, 공포, 망설임 등등.
조의 감정 상태는 온갖 물질을 넣고, 가열하듯 혼란스럽고 끈적하게 들끓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곤 늘 침착하며 간단명료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조치고는 꽤나 특이한 상태.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알이 올리버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여차하면 도와줄 의사가 있었다.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거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은 믿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이거랑 같은 거 하나 더 주문할까요?”
올리버가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조는 그 모습에 손을 들어 거절했다.
"난 됐어…. 배 안 고프거든.”
거짓. 올리버가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드시면 안 될까요? 식당에 왔는데, 주문을 안 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해서요."
조는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책감과 망설임이 더욱 빛났다.
주문을 받은 알은 최대한 빨리 가져오겠다고 말하곤 물러났다.
올리버는 먼저 식사를 하며 물었다.
"조금 의외네요.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어..…."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게 개인적으로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할 이야기요?”
"어,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따로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간이 되면?”
조의 감정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 한마디 한마디 말할 때마다 망설임, 죄책감, 자기합리화, 두려움, 초조가 빛나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감정의 동요가 육체로도 드러날 정도.
그도 그 점을 의식하고 있었으나, 올리버는 그 이유를 묻진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상태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조가 초조함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올리버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
“-알겠습니다.”
"뭐?”
"알겠다고요. 포레스트 님을 만날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와도 되겠죠. 대신, 조건이 두 개 있습니다."
"조건..…? 뭔데?”
"우선, 식사하고 움직이죠. 때마침 저기 음식이 나오네요.”
올리버가 음식을 가져오는 알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