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함정 (1) >
올리버가 가져온 송장인형을 확인한 후, 조나단과 그 팀원, 올리버는 Y구역 장벽으로 향했다.
시(市)의 허락을 받지 않은 민간인은 접근조차 하면 안 되는 곳이었지만, 란다에는 어디든 구멍이 있는 법.
조나단은 그동안 핑크맨이 축적한 커넥션을 이용해 시(市) 방위군을 설득. 그렇다 할 어려움 없이 내부로 들어갔다. "문제가 생기면?”
"우린 모르는 사이다.”
장벽 관리자와 조나단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일행은 다수의 군인과 중화기를 지나 Y구역 내부로 들어섰다.
Y구역 내부는 영상에서 본 것처럼 으스스했다.
시(市)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무법지대라는 게 절로 실감됐다.
"그럼, 다시 한번 작전을 짚고 넘어간다. 빠른 대화를 위해 짧게 말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올리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은 품 안에서 작은 지도를 꺼냈다.
핑크맨 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Y구역 지도로, 목표 지점인 신전에 붉은색 잉크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가 장벽, 여기가 경매품이 모인 곳. 보다시피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편이야.”
모두 집중해 지도를 봤다.
"그러니 작전도 단순하게 간다. 고화력으로 창고를 습격해 전투의 주도권을 빼앗은 다음, 내부로 빠르게 진입. 빼앗긴 물건을 챙겨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오는 거야. 제한 시간은 20분….. 다들 기억하고 있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이 사전에 말하길 20분이 넘으면 적의 지원군, 혹은, 먹이를 노리는 Y구역의 약탈자까지 몰려와 자칫 위험하다고 했다.
즉, 속도 싸움.
"근데, 경매품 전부가 여기 있는 게 아닐 텐데, 괜찮나? 어설프게 빼앗으면 다른 물건을 빨리 처분하거나, 더 깊숙이 숨길 텐데?”
근육질 거한 중년 사내 베어가 질문했다.
그는 덩치에 걸맞게 다른 핑크맨보다 훨씬 두껍고 질긴 방어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른 상태였다.
다른 방어복과 마찬가지로 마석을 장착해 실시간으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일단 되찾고 봐야 해. 어설프게 조심하다간 아무것도 못 찾을 거야. 오히려 저쪽이 당황해 실수할지도 모르고. 현재 란다 암시장과 인근 항구에 우리 눈을 박아뒀으니, 무슨 힌트를 찾을지도 몰라.”
베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긴 하지만 조나단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 바닥에서 일해 본 결과 어설프게 머리 쓰는 것보다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단순하게 밀어붙이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있었다.
조나단은 다시 작전을 설명했다.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귀에 부착한 통신장치에서 알려줄 거야. 혹시 모를 변수가 일어나도, 창고 반경 수백 미터를 감시하고 있는 아울이 알려줄 거고.”
아울은 안전가옥에서 올리버를 맞이해 준 여성.
조나단의 부하 중 홍일점으로, 소형 골렘과 마법 장비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주변을 감시, 팀원들에게 정보를 전파하는 보조 역할을 맡았다.
"거기다 브룩 녀석이 실시간으로 저격해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마. 틱틱거려도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니. 20분. 이 시간만 지키면 아무 문제 없어.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처음 설명해 준 것과 동일한 설명에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목표는 명확했으며, 작전도 단순했다.
조나단이 움직일 것을 명하자, 올리버는 곧바로 저격수와 새로운 송장인형인 시체대포에게 지정된 장소로 가라고 부탁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말이다.
"신호를 하면 도와주세요.”
"캬하하하..…."
"……꾸우우우.”
***
저벅. 저벅. 저벅.
조나단을 필두로 일행들은 모두 목표 지점을 향해 조심히 이동했다.
Y구역 밖에 있는 아울이 통신기기를 통해 안전한 길로 안내해준 덕분에 이동 중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마주치려고 하면 시의적절하게 다른 길을 안내해줬고, 그렇다고 빙 돌아가게 하지도 않아, 최단시간으로 안전하게 목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꽉-!
조나단이 한쪽 주먹을 들어 골목 앞에서 멈췄다.
올리버가 골목 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어 밖을 살펴보자 저 멀리 부서진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영상에서처럼 헐벗은 갱들과 쇠사슬에 묶인 돌연변이들이 있었다.
‘삼십여 명.…. 그중 몇몇은 생명력이 남다르고.…. 확실히 다른 구역하고 좀 다르네.’
올리버는 생각과 동시에 양손을 이용해 감정을 추출, 2개의 흑마법을 동시에 준비했다.
하나는 명중률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주는 타겟팅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스 붐을 먹힌 블랙 다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수를 기습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는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친 올리버는 2개의 흑마법 중 타겟팅을 먼저 사용해 상대들에게 뿌렸다.
흑마법으로 가공된 감정은 특유의 검은빛 연기와 같은 형상으로 빠르게 이동해 상대에게 접근, 검은빛 다트판으로 변했다.
"응? 이게 뭐야?”
“?! 적습이다! 씨발놈들아 전부 일어나!!”
상대측 중 개와 비슷한 코를 가진 자가 소리쳤다. 다른 구역의 갱들보다 상황판단이 두 박자 더 빨랐다.
그뿐 아니라 코를 쿵쿵대며 단숨에 올리버 쪽을 가리켰다….. 뭐, 그래 봤자 늦었지만.
"저쪽이야. 저쪽에..…. 응?”
개코 사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 라스 붐을 먹인 블랙 다트가 날아왔다.
한 개도 아닌 스무 개가 말벌 떼처럼.
확실히 이곳 갱들은 다른 구역과 그 수준이 다른 것 같았지만,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그 차이는 미미했다.
퍼버버버벙——!!
경매품이 망가지면 안 되기에 화력을 조절했다지만, 사람에겐 위협적인 폭발이 신전 주변을 휩쓸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삑-!
"이제부터 20분이야.”
전투복에 부착된 시계를 작동시키며 조나단이 돌격했다.
뒤이어 다른 핑크맨들도 쫓아갔다.
다들 마력사용자라 그런지 신체능력이 뛰어나 어느새 창고 근처까지 다다랐다.
그때였다.
"약골 외부인이냐?!”
"겁대가리 없이 여길 와?!”
포격을 견딘 Y구역 갱 다수가 흙먼지를 뚫고 튀어나왔다.
"네놈들 시체를 요 앞 사거리에0”
-퉁!!
흙먼지를 튀어나온 Y구역 갱 중 하나가 허공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고 쓰러졌다.
정확히는 허공에 맺어진 보랏빛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총알에.
아울과 같이 있는 눈 문신 핑크맨 브룩의 지원으로, 그는 연달아 세 발을 쐈다.
퉁-!! 퉁-!! 퉁-!!
덕분에 포격에서 살아남은 Y구역 갱이 세 명 더 쓰러졌고, 그들은 주춤했다.
“으랏차-!!!!”
전신을 방어복으로 두른 베어가 이름에 걸맞은 괴력을 내며 도끼를 휘둘렀다.
한쪽 어깨에 거대한 마법 가방을 들었기에 주특기인 쌍도끼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위력은 충분히 살인적이었다.
성인 남자 넷을 한 번에 찢어 죽였으니까.
말 그대로 곰.
기세등등하던 Y구역 갱단들은 본능적으로 움찔거렸고,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조나단을 필두로 파고들어 밀어붙였다.
"다 쓸어버려.”
톼앙-!!
조나단이 리볼버를 쏴 다수를 살해한 다음 쌍칼을 빼 들어 단숨에 적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틈새 사이로 베어를 비롯한 다른 핑크맨이 파고들어 적 전열을 붕괴시켰다.
이윽고 싸움의 주도권을 빼앗긴 Y구역 갱들이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데이브. 난 베어와 함께 물건을 챙길 테니, 다른 핑크맨들과 함께 대비해줘.]
신전 내부로 들어간 조나단이 명령했다. 올리버는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제부터 조나단이 나올 때까지 고화력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견제하면 됐다.
근거리 무기를 넣고 기관단총을 든 핑크맨 둘이 합류함과 동시에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주변을 살펴봤다.
역시나 근처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여기 싸움과 상관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일부는 뭔가 주워 먹을 게 없나 기회를 엿보았고, 또 일부는 흥분, 분노, 반가움을 빛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이쪽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고.
‘……흥미? 호기심?'
올리버가 해당 감정이 있는 방향을 향해 넓게 퍼트린 흑마법사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대략 1킬로미터 밖 누군가 있었다. 흑마법사인 것 같았다. 그것도 보통 실력이 아닌. 그 수가-
[-치직! 폐신전 근처로 다수의 적들이 접근하고 있어요. 신전 좌우측을 포위해서. 아무래도 창고 근처에 있는 놈들은 미끼인 것 같습니다.]
원거리에서 보조를 하는 아울의 목소리가 올리버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조나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장 수준은?]
[대부분 Y구역 사제 총기로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문제는 돌연변이가 다수 있다는 겁니다. 하운드 여섯 마리, 오거맨 한 마리요.]
오거맨.
작전에 들어가기 직전 조나단에게 속성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Y구역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로, 키가 3-4미터 되는 돌연변이 중 하나였다.
살아있는 탱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이들은, 맨손으로 건물을 부수고, 방어력은 군용 중화기를 들고 와야 비벼볼 수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장비로는 못 잡는 존재. 그러나 조나단은 당황하지 않고, 올리버를 불렀다.
[데이브?]
버틸 수 있냐는 물음. 올리버가 대답했다.
[나오실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아울의 말대로 양방향에서 적들이 다가왔다. 그중 왼쪽 방향에서 일반인의 스무 배도 넘는 거대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올리버는 우선 오른쪽으로 가 이쪽으로 오는 길목 중간 지점에 흑마법을 걸었다.
증오, 원한, 분노의 감정을 재료로 한 ‘그러지 트랩(Grudge Trap)’, 라스 붐을 먹인 다수의 미니언, 증오의 탄환을 가득 먹인 미니언 등등.
준비 중인 올리버를 보며 한 핑크맨이 물었다.
"그것보다 준비하신 ‘그걸’ 사용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아껴 둘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비장의 무기는 최대한 아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쓰면 가장 좋고요.”
올리버가 그동안 자신이 쌓은 전투 경험을 미루며 대답했다.
다행히, 핑크맨들은 그 이상 따지지 않았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전 반대편을 맡을 테니, 두 분은 여길 맡아주십시오.”
핑크맨들이 총을 고쳐 잡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는 반대편 길목으로 갔다.
앞서 그런 것처럼 왼쪽 길목에도 그러지 트랩을 설치했으며, 자신을 도와줄 미니언을 다수 만들었다.
막 준비를 마쳤을 때쯤 귀에 꽂은 통신장치에서 소리가 들렸다.
[왔습니다!]
"저기다!!”
Y구역 갱단이 신전 양방향에서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온 이들은 돌연변이는 적었지만, 머릿수가 많았다.
아울의 말대로 모두 Y구역의 특산품인 사제(私製) 총기와 폭탄 창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산품이라고, 꼭 뛰어나다는 건 아니니.
간혹 괜찮은 물건이 나오긴 하지만, Y구역 사제(私製) 총기는 쓰레기가 더 많았다.
"쏴 죽-”
-두두두두두두두두!!
핑크맨 단 두 명이서 Y구역 갱들을 견제하는 게 증거.
연사 속도도 정확성도 핑크맨의 총이 더 뛰어났다.
덕분에 숫자가 많아도 화력에서 밀리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쓸데없이 숫자만 많아 피해가 늘어났으니.
"씨발!! 그냥 달라붙어서 토막 쳐!!”
갱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와 함께 Y구역 갱단들은 일제히 눈이 돌아가 제각기 정글도, 낫,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오히려 저게 더 위협적이었다.
모두 달리기가 빨라 총에 맞고 쓰러지면서도 거리를 좁혔는데, 그 과정에서 갱들이 올리버가 설치한 그러지 트랩 위로 올라섰다.
위장색으로 보호되어 있던 그러지 트랩은 검은빛을 드러내며 용암처럼 들끓더니 이내 폭발했다.
쿠아아아앙!!
활화산 같은 폭발과 함께 선두에서 달려오던 갱들의 하체가 산산조각 났다.
뒤따라오던 갱들은 주춤.
올리버가 미리 배치한 미니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황한 적들 사이로 접근해 그대로 자폭했다.
연이어 증오의 탄환을 머금은 미니언이 그대로 해잇 불릿을 토해 적들을 난사했고.
상황판단이 빠른 핑크맨들은 미니언의 행동에 동참해 그대로 화력을 집중 갱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나갔다.
"이쪽은 무난합니다! 흑마법사님. 그쪽은 어떻습니까!?”
올리버가 라스 붐에 당하고도, 해잇 불릿에 맞고도 멀쩡한 오거맨을 보며 대답했다.
"어……. 잘 안 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