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사전 조율 (2) >
올리버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저 예의상 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조나단은 올리버가 임무를 수락하자마자 올리버를 고용한 가장 큰 이유를 말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송장인형이었다.
‘인력을 알아보던 중 하역장 탈취와 불법 장부 회수 때 데이브 씨께서 질 높은 송장인형을 사용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몰래 알아본 점은 죄송합니다.’
임무를 위해서 허용되는 통상적인 범위이긴 했어도, 조나단은 올리버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올리버도 딱히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뭐라 말하지 않았다.
애당초 올리버 역시 포레스트를 통해 조나단의 일을 먼저 알아보지 않았는가?
애당초 이런 바닥이었다.
어쨌건 조나단은 올리버의 송장인형을 이번 임무에 동원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활용할 수 있는 송장인형이 몇 구이며, 어떤 타입이 있는지 물었다.
물론, 이쪽 바닥에서 전력을 묻는 건 딱히 좋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미 한번 배려받은 게 있어, 올리버는 전투용만 간략하게 설명했다.
근접전투 전문인 송장인형-던칸.
공격과 보조인 흑마법사.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화력 담당인 저격수 그리고 현재 만들고 있는 새로운 타입의 송장인형까지.
조나단은 전직 핑크맨이었던 던칸의 송장인형 신세에 작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러고 보니 약간 실례되는 행동 같기도…….
그러나 지금은 일이 먼저였기에 이러한 사소한 일은 뒤로 미루고 올리버의 송장인형을 작전에 동원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만약, 추가 보수를 원하신다면 최대한 맞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산이 철저했다.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저 망가질 경우 새 송장인형을 달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올리버의 송장인형까지 동원할 수 있게 된 조나단은 현재 자신이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실행하게 될 기초 작전을 설명해줬고, 작전이 확실히 정해지면 그때 다시 호출하겠다고 했다.
‘이거 챙겨가시죠.’
조나단이 귀에 끼울 수 있는 통신기기를 줬다.
호출기이자 근거리 통신기기라 설명했다. 핑크맨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해 사용하는.
그렇게 올리버는 조나단과 대화를 한 후 헤어졌고, 며칠 후 작전 실행일에 다시 만나러 갔다.
[작전에 대해서 들은 건 있나?]
올리버가 Y구역 외곽 장벽 근처를 걸으며 포레스트와 통화했다.
Y구역 인근이라 그런지 기척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올리버는 케빈의 흉내를 내 주변에 방음 마법을 걸어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게 통제했다.
덕분에 마음 놓고 통화할 수 있었다.
"아뇨, 자세한 것은 안전가옥에서 듣기로 했습니다.”
[나쁘지 않아. 작전이라는 게 이상하게도 미리 이야기하면 누설되거든. 그래서 바로 직전에 전파하는 경우가 많아.]
"뭐, 딱히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가 제대로 따라갈지 의문이네요.”
[걱정하지 마. 조나단은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을 선호하는 자야. 쓸데없이 복잡한 작전은 싫어하지. 따르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네요.”
[자네 전력을 충분히 알려줬다면, 그때부터는 조나단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자넨 하던 대로만 하게. 자네 실력은 이미 모두 인정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보다 보상은 어떻게 정했나?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해결사는 자기 몫도 챙길 줄 알아야 하는데. 자칫 남 좋은 일만 해줄 수 있어.]
포레스트가 경매품으로 무엇을 받을지 재차 물어보았다.
조나단과 헤어지고 마저 준비를 하느라, 정작 보수에 관해서는 신경을 못 썼다.
아니, 신경을 못 썼다기보다는 악마의 서적을 받는 것에 만족해 관심에서 밀려난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누가 본다면 상당히 배부른 소리였지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올리버의 천성이었으니.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할까? ..…아냐, 바보 같은 생각이야.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어도 여기 있는 물품은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악마의 서적이 더 있다면 그걸 달라고 해볼 테지만, 그건 또 아니라 올리버는 뭘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데이브?]
"포레스트 님.”
[오, 다행이군. 자네가 드디어 날 무시하는 줄 알고 겁먹었거든.]
"죄송합니다. 아까 하던 이야기마저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너무 늦게 선택하면 손해 볼 수 있거든.]
"제가 이런 쪽에 조예가 없어 그러는데, 제가 말한 조건에 부합한 마법 아이템을 얻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슷한 거라도?”
[마법 아이템이라..…. 나쁘지 않아. 어떤 것이 좋겠나?]
올리버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마법 아이템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물건이었지만, 놀랍게도 포레스트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으며 한번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음, 재밌군. 노력해보겠네..…. 그럼, 몸조심하게.]
"예,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인사를 마무리로 통신을 끊었다. 그와 함께 약속 장소인 Y구역 인근 핑크맨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조나단이 알려준 주소와 정확히 일치.
문을 두들기자, 누군가 다가오며 눈구멍을 찰칵 열었다.
갈색빛 눈이 올리버를 확인하곤 곧바로 문을 열었다.
저번 안전가옥에서 만난 30대 여성이 또 문을 열어줬다.
전과 차이가 있다면 셔츠에 바지, 방탄용 조끼를 입고, 총으로 무장했다는 것으로, 이쪽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나단과 그 팀원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번거롭게 돌아가는 거야? X구역으로 직진해 바로 가면 좋잖아? 어차피 강 한번 가로질러야 하는데.”
“X구역 역시 정상적인 구역과 거리가 있으니까. 몇 명만 우르르 몰려가도 덤벼드는 놈들이 있어. 번거로워도 돌아가는 게 훨씬 안전해."
"난 핑크맨 되면 다 때려 부수는 줄 알고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까 엄청 구리네.”
“웰컴 투 리얼 월드다. 계약했으니까 익숙해져.”
"이거 사기다.”
짝. 짝.
문을 열어준 여성이 손뼉을 쳐 동료들의 주의를 끌었다.
"터프 가이들. 마지막 손님까지 왔으니. 이제 일 이야기하지요?”
그 말에 모두 올리버를 봤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좀 늦었나요?”
올리버가 혹시나 싶어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해결사들끼리 이럴 경우 혹시 딴생각이 있나 의심할 수 있었지만, 조나단의 감정 상태를 살펴봤을 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준비라면.…?”
"이거요.”
주황빛 눈의 여성이 너트와 철사, 톱니, 철판, 마석으로 구성된 기계 장갑을 끼며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구석에 배치되어 있던 직사각형 형태의 기계에서 마력이 흐르더니 허공에 영상을 띄웠다.
대부분 건물이 허물어진 지저분한 거리로, 곳곳에 흉흉한 낙서와 함께 시체가 거리에 매달려 있었다.
흡사, 재앙이라도 퍼진 도시 같았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저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Y구역인가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전투복을 입은 조나단이 올리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양다리에 검, 허리에 도끼와 샷건에 버금가는 크기의 리볼버를 차고 있었다.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이 아닌 공방에서 맞춘 물건 같았다.
특별한 마력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구도 하나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보시는 대로 Y구역의 전경은 이와 같고, 화면 가운데의 저곳이 도둑맞은 경매품을 숨긴 창고입니다.”
조나단이 말한 화면에는 지붕이 없는 신전이 있었다.
신전 주변으로 헐벗은 갱들과 쇠사슬에 묶인 돌연변이, 거대한 무기를 든 사내들이 몇몇 보였다.
"신전에다 장물을 숨기다니 천벌 받을 친구들이죠.”
"..…흐음. 그렇네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아주 안쪽에 있는 게 아닌 외곽 쪽에 있다는 겁니다. 잘만 하면 순식간에 치고 빠져 큰 피해 없이 물건을 가져올 수 있죠.”
"경매품이 적잖을 텐데, 가능한가요?”
"그래서 도와줄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이봐.”
조나단의 부름에 근육질 중년 사내가 사람 두 명은 넉넉히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마법 가방을 가져왔다.
일반적인 마법 가방과 달리 두터운 가죽 케이스로 되어 있었으며, 겉면에 주먹만 한 마석이 세 개나 박혀 있었다.
"이건.....?"
"군용 마법 가방입니다. 뭐 말이 군용이지 효율이 좋지 않아 사장된 물건이지만요. 이 물건이면 어지간한 경매품은 다 챙겨 올 수 있을 겁니다.”
흐르고 있는 마력의 양으로 볼 때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그만한 출력을 얻기 위해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해 오래 쓸 물건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짧고 치고 빠지는 정도면..….'
"이것도 챙기시죠.”
조나단이 은으로 도색한 물병을 꺼냈다. 박힌 십자가 문양으로 봤을 때 파테르교의 물건인 듯했다.
"질병계열 흑마법을 중화시켜줄 성수입니다.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치명적인 수준에서는 구해줄 겁니다.”
올리버는 그 물병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그냥 아이러니해서요. 흑마법사인 제가 성수를 챙긴다는 게.”
"사는 게 아이러니니까요….. 제 쪽에서 지급하는 물건은 이 정도입니다. 그럼, 데이브 씨께선 약속한 물건을 챙겨 오셨는지요?”
조나단의 물음에 올리버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허리춤에 찬 가죽 케이스에서 접혀 있는 먹보주머니-빅마우스를 꺼냈다.
살덩어리 빅마우스는 자고 있는 듯 군데군데 달린 눈이 감겨있었지만, 올리버의 의지에 반응해 하나둘 눈꺼풀을 뜨며,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바라봐 주변을 확인하곤,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 이게 그 먹보주머니인가?”
눈 문신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조나단은 전에 한번 본 적 있던가?
이윽고 완전히 커진 빅마우스는 몸체에 사람의 것과 비슷한 팔다리를 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꺼비와 같은 꾸르륵 울음소리를 내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빅마우스. 부탁 좀 드려요.”
올리버의 요청에 빅마우스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특히, 조나단을 포함한 핑크맨 일행을.
"꾸르륵..…."
주변을 다 살핀 빅마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듯 몸을 반으로 접었다 펴며, 이빨로 이뤄진 지퍼를 열었다.
그리곤 송장인형을 두 구를 토했다.
꾸에에에엑一!
첫 번째 토해낸 것은 저격수. 몸에 여덟 개의 팔과 그 이상의 총기, 소형 폭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혼자서 전쟁도 하겠구만.”
꾸에에에엑一!
두 번째 송장인형은 이번에 올리버가 새로 만든 송장인형이었다.
여섯 개의 다리와 여섯 개의 팔, 세 개의 몸통, 커다란 포신으로 이뤄진 살덩어리. 흡사, 포구가 달린 바퀴벌레와 같았다.
핑크맨들도 이런 건 못 봤는지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조나단만 빼고. 그는 올리버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게 말씀하신 고화력 원거리 지원용 송장인형이라고요?”
"예, 저격수와 같이 움직여야 하지만, 위력은 확실할 겁니다. 순수 마력 학파 마법사를 주재료로 마력사용자 시체를 이어 붙인 거거든요..….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