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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194화 (194/633)

< 194. 사전 조율 (1) 〉

의뢰를 잠정 승인하자마자 올리버는 케빈에게 휴가를 신청했다.

자세한 것은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케빈은 굳이 캐묻지 않고 올리버의 요청을 바로 승낙해 줬다.

심지어 번거롭게 정식 휴가 신청서를 내지 말고, 그냥 시간 날 때 알아서 출근하라고까지 말해주었다.

‘휴가 신청은 오히려 눈에 띄거든. 어차피 직원이 출근하든 말든 마탑에서 신경을 안 써. 그건 고용 교수 소관이니까. 그러니 그냥 시간 날 때 다시 나와. 어차피 이 문제에 관해서는 스승님과 합의했으니.’

케빈의 말처럼 이 문제에 관해선 멀린과 함께 사전에 합의가 된 거였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게 엄청난 호의인 걸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케빈은 귀찮은 듯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정 고마우면 나중에 자신의 연구나 도와달라고 했다.

올리버는 흔쾌히 수락하며,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걱정을 씻어버리고 마음 편히 해결사 데이브로서의 일에 집중했다.

올리버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다름 아닌 포레스트가 준 자료를 읽어보는 것으로, 그가 준 자료는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습격이 일어난 날짜와 상황 등이 깔끔히 정리되어있을 뿐 아니라,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에는 크라임 펌의 비밀 창고였던 폐허와 그 주변으로 널브러진 시체들이 찍혀 있었다.

참고로, 사진 속 시체들의 상태는 하나 같이 영 좋지 못했다.

거대한 칼로 썬 듯 토막 난 시체가 있는가 하면, 뭉개져 페이스트가 된 시체도 있었고, 건어물처럼 비쩍 말라빠진 시체마저 있었다.

마치 여봐라는 듯 과시하는 분위기가 풍겼는데,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온몸이 썩은 채소처럼 부패한 시체였다.

‘질병계열 그것도 약화계열이네.…. 보통 실력이 아니겠어.’

올리버가 그동안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했다.

질병계열 흑마법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생명력과 육체를 좀먹어 일시적으로 강해지는 강화계열이었고,

다른 하나는 육체를 약화시키거나, 인위적인 병에 걸리게 하는 약화계열이었다.

얼핏 전자가 더 강해 보였으나 실상은 정반대.

질병-강화계열 흑마법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흑마법의 수준으로만 놓고 비교해 봤을 때, 진정한 질병계열 흑마법은 약화 계열이라 할 수 있었다.

질병-강화계열 흑마법보다 익히기 어렵고 난해하지만, 실력을 쌓기에 따라서는 그 위력이 비교할 수 없었으니.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질병-강화계열은 물론 하기, 조작, 창조 등 그 어떠한 계열보다도 위험할 수 있었다.

이론상이지만 거대한 전염병을 만들어 작게는 마을, 크게는 도시마저 몰살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수준까지 가는 게 몹시도 어렵지만.’

올리버가 단언했다. 그도 그럴 게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사용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올리버가 1년 넘게 해결사 생활을 하며,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사용하는 이를 만나지 못한 게 그 증거.

그래서 올리버가 이에 대해 알고만 있고, 대비하지 않은 것인데,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적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쁘지 않을지도. 슬슬 배움의 범위를 넓힐 필요성이 있었으니.

"하지만 걱정해야 할 게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네.”

올리버가 다음 자료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포레스트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경매품을 훔친 이들에는 검은손 소속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끼어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무법지대인 Y구역의 갱들로, 이는 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Y구역부터는 시(市)조차도 공식적으로 포기한 무법지대. 셈 강과 장벽을 설치해 외부와 격리시킬 정도였으며, 음지의 큰손들마저 그들과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해결사 바닥에 있으며 들은 것만 해도 이 정도.

그러자 문득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수로 외부 세력인 검은손이 저들과 손을 잡았는지 말이다..…. 특성상 외부인과 쉽사리 손을 잡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연결해주는 연결책이라도 있는 건가?’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생각을 한쪽으로 미뤘다.

어차피 올리버가 생각한다고 뭔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오히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경매품을 찾기 위해 어쩌면 Y구역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훔친 경매품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을 테니까.

"흐음…."

포레스트가 준 자료를 다 확인한 올리버는 이번 일이 생각보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어째 느낌도 안 좋고. 뭐라고 할까, 일이 지저분하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크라임 펌, Y구역, 검은손과 같은 고래 틈 사이에 끼일지도.

경우에 따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그러나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얻을 수 있는 게 꽤 컸으니. 뭣보다 이미 케빈에게 쉬겠다고 이야기한 상태라 이제 와 말을 물리고 정상 출근하긴 조금 그랬다.

지금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 하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그에 걸맞게 대응하는 거였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개장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으로 향했다.

***

정확히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안정적인 실험실이 생기기 전에 구매하지 않으려고 했던, 흑마법 실험 세트를 사 질병계열에 대한 방비책을 짰으며, 그와 함께 뒤를 보조해줄 새로운 송장인형도 급하게 제작에 들어갔다.

그 외에도 나름의 준비를 더 하였는데, 그러던 중 포레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데이브?]

"예, 포레스트 님. 접니다.”

[잘 지냈나?]

"예, 준비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거 참 믿음직스럽군.]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며칠 전에 말한 대로 조나단에게 일을 수락하겠다고 말을 전했네. 조나단은 기쁘게 수락했고, 계약이 정식으로 성사됐네. 임무에 관해서 할 말이 있다고 오늘 자네를 보고 싶다는군. 혹시 시간 되나?]

시간은 충분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준비도 얼추 끝난 상태였으니.

올리버가 자신이 제작 중이던 새로운 송장인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물론, 시간은 충분합니다..…. 혹시, 보상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됐는지요?”

[물론이네. 생각보다 잘 풀렸어. 다만, 거기에 관해서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구만.]

일이 잘 풀렸다라…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는 늘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해내주었으니.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

만날 장소는 T구역에 있는 핑크맨 사무소 소유 안전가옥이었다.

포레스트가 말하길 핑크맨은 임무의 수행을 위해 각 구역에 이러한 안전가옥을 다수 보유 중이라 했다.

란다의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똑- 똑-

올리버가 평범한 주택 건물 문을 두들겼다.

끼익하고 문이 열리자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살짝 열어 얼굴을 내밀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주부였으나,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의 눈과 그동안 쌓은 해결사의 안목이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었다.

"누구시죠?”

차분히 묻는 여성. 올리버는 대답했다.

"데이브라고 합니다. 포레스트 씨의 소개를 받아 왔습니다.”

주부로 보이는 여성은 올리버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세요.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여성이 문을 활짝 열어 올리버를 반겨줬다.

집 안은 평범한 가정집이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1층에 한해서.

여성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전혀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효율적으로 배치된 의자와 탁자, 거대한 란다 지도와 인물사진, 실로 연결된 도표 따위가 벽에 걸려 있었다.

"데이브 씨. 오셨습니까?”

한창 회의를 진행 중이던 조나단이 2층으로 올라온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그와 함께 조나단과 같이 회의를 하던 동료들도 올리버를 바라봤다.

핑크맨이라고 해서 조나단과 던칸 같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동료들은 제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그나마 공통점이라며 모두 핑크빛 양복을 정장을 입었다는 것뿐.

짧지만 올리버와 조나단의 동료들은 서로를 관찰했고, 그때, 한쪽 눈에 문신을 한 십 대 후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저게 요즘 그 유명한 흑마법사라고? 그렇게 안 보이는데?”

올리버는 대답 대신 눈 문신 청년을 살펴봤다. 몸에 담긴 마력의 양과 흐름을 볼 때, 단순 마력사용자가 아닌 마법사인 듯했다.

‘공간학파인가?’

"초면에 뭔 말이야? 신입 주제에 건방지게 굴지 마.”

고참으로 보이는 근육질 거한이 두꺼운 팔로 눈 문신 청년의 등을 때렸다.

강하게 때리려는 악의는 없었지만, 타고난 힘이 좋아서인지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아파라….. 영감탱이가 힘만 무식하게 세서는….!”

"자자, 다들 콩트 그만하고, 잠시 좀 내려가. 손님 앞에 두고 점점 창피해지거든.”

조나단의 그 말에 동료들은 1층으로 내려갔고, 올리버와 조나단 단둘만 남게 되었다.

"임무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도 원해서 수락한 거라 안 그러셔도 됩니다.”

"예, 얼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악마의 서적을 원하신다고요?”

흑마법사가 악마의 서적을 찾는 건 음지나 양지나 꽤 찝찝한 일이었으나, 조나단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말 그대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제스처.

"우선,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씀드립니다. 저와 핑크맨은 데이브 씨가 무엇을 원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게 이 바닥 룰이기도 하고요.”

진심.

"또, 다행히도 저희도 그쪽 서적은 원치 않으며, 크라임 펌도 아직 거래하지 않은 물건이라, 넘겨드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다행이네요."

"다만, 그와 별개로 이 일이 소문이 퍼져 예상치 못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바닥이 삼엄한 것 같아도 소문은 잘 퍼지니까요.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닌, 진심으로 걱정돼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역시 진심.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포레스트 님께서 말하시길 거기에 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시던데요.”

"예, 데이브 씨만 괜찮으시다면, 그쪽 서적을 저희가 대신 넘겨받아, 나중에 넘겨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예?”

“저희가 대신 넘겨받아 데이브 씨에게 드리면 어떻겠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러면 이상한 소문이 퍼져 데이브 씨께서 곤란한 일을 겪는 일을 없을 텐데요.”

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악마의 서적을 대신 받아주고, 올리버에게 넘겨주다니.

"하지만 그럼 조나단 씨가 곤란하지 않나요?”

"아뇨,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 흑마법사가 아니니, 비싸게 팔려는 장물이나, 부유층 손님을 위한 선물이라고 둘러댈 수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핑크맨은 원체 다양한 손님을 상대하기 때문에 그런 물품도 가끔씩 취급합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죠.”

진심.

"그럼…. 전 조나단 씨께서 원하는 물건을 대신 수령해 넘겨드리면 되나요?”

"아뇨, 안 그러셔도 됩니다. 조건은 동일합니다. 데이브 씨께서 받고 싶은 두 개를 요구하시면 됩니다.”

"예? 하지만, 그러면 조나단 씨는 손해지 않습니까?”

조나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이제부터가 본론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데이브 씨에게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번 의뢰에서 상대하게 될 검은손 멤버를 산채로 포획하게 도와주십시오.”

"검은손 멤버를 산채로 포획요?”

"예,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죠?”

"이유는 묻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역시 데이브 씨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이 없듯이요.”

아……. 그렇게 말하니 호기심 많은 올리버도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지금 조나단은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핑크맨이 검은손 멤버를 포획하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당장은 안전하게 악마의 서적을 얻는 게 더 중요했기에.

"예,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 쪽에서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이브 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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