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92화 (192/633)

< 192. 끝난 줄 알았던 일 (1) >

쾅! 쾅쾅!! 쾅一!!

쇠를 때리는 듯한 흉악한 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지며, 이윽고 끼익끼익 쓸쓸한 쇠사슬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조.

그는 잠시 쉬는가 싶더니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지하실 한쪽에 있는 금고로 갔다.

마치, 여기 돈이 있습니다. 하는 느낌.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혹시 모를 도둑에 대비해 약간의 돈을 넣어두긴 했으니. 딱, 이것만 훔치고 돌아가라는.

슈하하하하하.

조는 가공을 거치지 않은 감정을 추출한 다음 팔에 둘렀다.

블랙 슈트란 것은 아직 장갑 정도가 한계였지만, 블랙 아머는 이야기가 달랐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팔 전체에 조잡하게나마 두를 수 있어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조는 그 블랙 아머를 이용해 265킬로그램에 달하는 사무용 금고를 옆으로 밀어냈다.

치지지지직.……!

묵직한 쇳덩어리가 신음을 내며 천천히 움직였다.

"아, 젠장..…. 흔적이 남네.”

조가 바닥에 끌린 자국을 보며 금고 뒤 벽을 봤다.

그곳에는 공간이 있었다.

구멍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안에는 싸구려 연극에서 볼법한 돈 자루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진짜 돈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 다 합치면 2억 5천만 란다를 조금 넘겼다.

X구역에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거금이었지만, 사실 그리 이상한 액수도 아니었다.

블랙마켓 경비, 데이브와의 협업을 통한 켈 반군 사냥, 탈옥수 시즌 등 바짝 벌었고, 불법 격투기 시합에서도 꽤 활약했으니. 뭣보다 조는 먹는 거랑 술, 일, 상납금 외에는 소비도 잘 안 해 큰 문제만 없으며 쉽게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것 역시 꽤 대단한 거였다.

X구역에서 계집질과 도박으로 머리털부터 발톱까지 다 분해돼 팔리는 인간이 넘치는 걸 고려하면 말이다.

조는 이번 달 ‘상납금’이 든 돈주머니를 챙긴 다음 다시 금고를 제자리에 옮긴 후, 끌린 자국을 신발로 비비곤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저 흔적을 지울 방법이나, 숨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았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지하실과 다른 빛과 함께, 거리 의자에 앉아 총을 손질하는 샘과 오언 등이 보였다.

"왔어?”

"나오셨습니까?”

"어, 상납금은?”

"여기."

"저도 좀 챙겼습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샘과 오언은 돈이 든 주머니를 내놓았다.

조는 들고 가기 편하게 자신의 주머니에 모은 뒤, 움직이자고 말했다.

막내인 오언은 아직도 군기가 잡혀 있어 벌떡 일어났고, 샘은 느긋하게 총을 조립하며 솔래솔래 일어났다.

다 조립한 총은 근래 구매한 코트 안쪽에 집어넣었다.

방탄 기능이 달린 군용 물품으로, 블랙마켓에서 산 것이인데, 그 외에도 마법 폭탄과 개조한 소드 오프 샷건, 기관단총도 한 정씩 샀다.

얼핏 과한 듯했으나, 막판에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무력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오언은 안에 철을 덧댄 방어구만 샀을 뿐 무기는 여전히 쇠몽둥이만 들었다.

뭐, 어설픈 총기보다는 저게 더 위협적이라 문제는 아니었다. 힘 하나만 놓고 보면 조를 포함해 이 근방에서 당해낼 녀석이 없었으니.

‘음….. 오언 녀석이 나만큼 흑마법을 쓰면 엄청날 텐데. 그렇다고 내가 가르칠 수준은 아니고.....'

그 순간 조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흑마법 실력이나, 가르치는 실력도 수준급인.

‘아냐, 거기까진 좀 그래.’

"어디 가는 거야?”

상념에 빠진 조를 향해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웃에 사는 억척스러운 꼬맹이였다.

"일하러 간다. 꼬맹이들은?”

"낮잠 자고 있어. 늦게 와?”

"나도 모르지.”

조가 대답과 동시에 지갑에서 지폐를 몇 장 꺼냈다. 근래 수입이 좋아져 이 정도 씀씀이는 별거 아니었다. 역시, 돈은 많고 볼 일이었다. 버는 과정은 좆 같아도, 넉넉한 지갑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 이걸로 먹을 거 사.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 말해 같이 다니고.”

"다들 바쁘다는데?”

"나한테 처맞기 싫으면 뻘짓거리 하지말고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라고 그래. 요새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한번 알아볼게.”

이웃집 꼬맹이.…. 아니, 죽은 동료 니코의 여동생이 대답하며 지폐를 받았다.

조는 그런 소녀의 머리를 힘껏 쓰다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조의 거주지를 벗어나자 그나마 살만하던 동네는 어느새 전형적인 X구역으로 변했다.

당장 골목에서 미친 광인이나, 광신도, 인신매매범, 돌연변이, 무장강도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황량하고 위험한 곳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이뤘다 해도, X구역 역시 시(市)에서 포기한 구역 중 하나.

공동체 생활권을 벗어나면 온갖 습격자들이 만만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도 몇 번 당한 적 있었다. 보스에게서 흑마법을 배워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면서부터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말이다.

"여, 챔피언 아니야?”

조가 X구역 중심부를 넘어 셈 강과 인접한 하역장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노아 영감으로, 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수업자였다.

간간이 부업 삼아 X구역과 Y구역에 사람을 날라다 주는 수상 택시기사 노릇도 했다.

"저번 경기 너한테 전부 걸어서 재미 좀 봤는데, 언제쯤 다시 나가나?”

"안 나가. 영감.”

"아, 왜! ….너 정도면 한 경기만 뛰어도 괘 벌잖아?”

"그걸 안 해도 꽤 벌 거든.”

조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제법 큰 돈을 노아 영감에게 던졌다.

배 이용료와 입 닥치라는 비용으로, 눈치 빠른 영감은 바로 입을 다문 채 조 일행을 태워 배를 몰았다.

거대한 도시에 흐르는 거대한 강답게 셈 강은 그 폭이 아주 컸으며, 그로 인해 고역이 따로 없었다.

동물과 오물을 섞은 듯한 이 더러운 갈색 강을 지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

강 인근에서 살면 자식들이 돌연변이로 태어난다는 이유가 뭔지 알 거 같았다.

굳이 비싼 돈 주고 노아 영감 배를 타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배가 한 번이라도 뒤집히면 치명적이기 그지없었으니까. 비싼 값을 지르더라도 안전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었다.

돈 몇 푼 아끼자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몸을 망치긴 싫었다.

"자, 도착.…. 언제쯤 다시 올까?”

어느새 맞은편 Y구역에 도착한 영감이 물었다.

기다린다는 선택지를 주지도 않았는데, 조도 딱히 따지지 않았다.

그나마 안전한 교통수단인 밀수선을 습격하는 비율이 적긴 해도, 이곳 Y구역에서 아주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주변에 널린 쓰레기 더미와 쓰레기더미만도 못한 움막에서 돌연변이와 가난한 강도가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조는 샘과 몇 번 상의하곤 말했다.

"일단, 저녁 여섯 시에 한 번 와. 그때 안 나타나면 이따 밤 열 시쯤 한 번 다시 오고. 밤에 옮겨주면 추가 비용도 더 낼 게.”

노아 영감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X구역도 란다에 소속된 구역이라 그런지 조건만 맞으면 웬만한 건 다 됐다.

노아 영감이 건너편 X구역으로 무사히 떠나는 것을 확인한 조와 샘, 오언은 Y구역 안쪽에 있는 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익숙해질 때가 된 거 같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진짜 무법지나 다름없는 Y에 레스토랑을 차리는 미친 인간이 있다니. 하지만 더 무서운 점은 장사가 생각보다 잘 된다는 점이었다.

“야.…. 저기 봐. Y구역 총기 공방 주인이랑, 좀비 병기 판매상, 돌연변이 조련사도 있네?

샘이 속삭이며 말했다. 모두 크라임 펌과 거래하는 우량 거래처.

사제(私製) 총기부터, 좀비, 심지어 살아있는 돌연변이를 조련.개조해 란다는 물론, 란다 밖에도 판매하는 놈들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얼굴에 X자로 흉터가 새겨진 레스토랑 직원이 조 앞에 서며 말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형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저번에 보스가 시키신 스카우트 건으로 온 거야?"

”그것도 있고. 상납금도 내려고 왔지.“

조가 두둑한 돈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반드시는 아니었지만, 파이터 크루에 발을 붙이고, 흑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돈을 상납해야 했다. 아니면 시킨 일을 잘하거나, 명성을 올려 파이터 크루의 이름값을 올리거나.

얼굴 흉터가 말했다.

”돈은 나한테 주고, 임무도 나한테 보고해. 내가 보스께 말해둘게.“

”뭐, 개소리야. 네가 언제부터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았는데?"

조와 얼굴 흉터가 신경을 세우며 말을 주고 받았다.

그도 그럴 게 파이터 크루는 비교적 수평적이었고, 조직원들도 성질이 더러워 서로 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라는 양반도 이걸 그리 신경 안 썼고….. 어쩔 땐 부추기기까지 했다.

어쨌건 조와 얼굴 흉터는 서로 말없이 바라봤고, 그러던 중 얼굴 흉터가 한숨을 내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지금 보스가 누구랑 만나고 있어서 그래.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하는 모습을 봤을 때 거짓은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길래?“

”글쎄, 곁눈질로 외국인인 것만 봤어.“

”외국인?“

"그래, 외국인. 갈로스 놈들인 거 같더라.“

***

오늘도 어김없이 올리버는 마탑 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솔직히 퇴근이라고 해봐야 대단한 것도 없었다.

그저 자리를 지키며 책이나 읽다가 시간이 되면 떠나면 되니 말이다. 케빈이 말한 괴롭힘도 없었다.

이러고 마탑-원소학파 도서관을 이용하고, 급료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어째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나마 일했다는 생각이 든 건 출근 첫날 직원실을 청소하거나, 한 여학생의 수업 일정에 관해 설명해준 것뿐이었다.

설명이라고 해봐야, 아직 자세한 것을 통보받은 게 없어 교수님에게 여쭤본다고 한 게 전부였긴 했지만.

참고로, 케빈에게 그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떨떠름한 감정만을 보였다.

”뭐, 이유가 있으시겠지.“

올리버는 혼자 말하며,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머리 한쪽에서 완전히 밀어버렸다.

양지에서 처음 가진 일이고, 마탑에 들여보내 준 것도 고마워 열심히 할 생각이긴 했지만, 역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올리버 본인의 일이 가장 중요했다.

어차피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했으니, 올리버는 답도 없는 문제로 시간을 잡아먹는 대신 자기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령, 악마의 서적과 같은.

올리버는 눈과 머리의 통증을 감수하며 틈틈이 책을 읽어 어느새 정독한 상태였다.

책의 구성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됐다.

악마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이 적힌 개요 부분.

그 악마들을 세분화해 설명하는 본론.(그래 봤자 한두 페이지.)

그리고 알 수 없는 단어가 줄도 규격도 없이 쓰여 있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안 보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솔직히 이 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악마의 군주가 72명이라는 것과 마왕, 말을 탄 노인 외에는 말이다.

그러다 문득 멀린이 에이드리의 일지에서 숨겨진 비밀을 찾은 것처럼 이 책에도 비밀이 숨겨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블랙마켓에서 구입한 감정을 부여해보거나, 마력을 부여해보기도 했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말이다.

일이 끝나고 이 책에는 아무런 비밀 장치도 없다는 생각에 빠졌는데, 그러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어 지금 시험해보려고 했다.

올리버는 지하실에 앉아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일반적인 시야를 약화시키고,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의 시야를 말이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올리버는 포기하지 않고 눈에 더더욱 집중하며 책을 팔랑팔랑 넘겼다.

눈이 아프고, 두통이 일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헛수고일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실컷 해보고 포기하고 싶었으니까.

팔랑. 팔랑. 팔랑.

올리버는 어느새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시야로 바뀐 채 눈앞의 책만 바라봤다.

이렇게 눈에 집중해보길 오랜만이라 꽤 어색하면서도 힘이 들었다.

책을 넘길 때마다 그 부담은 증폭했고.

어째 흑마법의 시야로 보니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욱신욱신. 작은 바늘로 찌르는 듯 올리버의 눈이 아파질 때쯤 올리버는 무엇인가 작은 변화를 느꼈다. 그 작은 변화는..….

-삐! 삐! 삐! 삐!

귓가를 쑤시고 들어오는 통신장치의 신호음.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눈에 집중을 풀며 포레스트 전용통신 장치를 바라봤다.

뭔가 맥이 탁하고 풀렸다.

”..…포레스트 님? ....예, 접니다. 지금요? ..…아뇨, 아뇨. 바쁘긴 하지만, 이제는 뭐 괜찮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곧 가 보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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