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90화 (190/633)

< 190. 첫 출근 (1) >

"날 찾으러 왔다고?”

불법 격투기 시합장 건물 안. 그곳에 마련된 바에서 조가 술을 두 잔 주문했다.

"정확히는 조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관장님이 여기 있다고 말씀해주셨죠. 그리고 관심 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하..…."

조는 공기 빠지는 소리를 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얼굴 한쪽에 칼자국이 난 바텐더가 정체 모를 술을 따르며 조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경기 화끈했다면서?”

"시끄러."

"알았어!”

조는 못마땅한 표정과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에게 술을 한 잔 내밀었다.

"네가 쌈박질에 관심 있는 줄 몰랐는데.”

"예?”

"싸움 구경하러 왔다면서? 아니야?”

"아..….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전 싸움보다는 이곳 자체를 보고 싶어 왔습니다."

올리버가 건물 내부를 빙 훑으며 대답했다.

"왜?”

"궁금하니까요?”

조는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을 보듯.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올리버의 행동 양식은 온갖 괴짜들과 악당들이 모인 뒷세계에서도 상당히 그 결이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경우가 없지만, 특유의 음습함은 없었고, 잔혹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도를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니면, 종잡을 의도가 없던가.

여하튼 그런 올리버의 태도는 마치 다른 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은 해소됐나?”

"어느 정도는요. 관장님이 공동체라던가 이것저것 알려주셨습니다. 좋은 공부를 한 셈이죠.”

"관장님? 어딨는데?”

"아, 맞다….. 말하자면 긴데, 저랑 안면이 있는 흑마법사와 대화할 게 있다며 어디로 가셨습니다.…. 찾아야 할까요?”

"음.…. 아니, 여긴 관장님 거래처라 별문제 없을 거야. 그 이전에 자기 몸뚱이는 알아서 잘 지킬 양반이고, 굳이 찾을 필요는 없어. 그보다 아까 전 내 싸움 어땠어?”

조는 아까 전 자신의 싸움에 관해 물어봤다.

그 싸움 자체를 썩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올리버의 평가는 듣고 싶어 했다.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예, 훌륭하셨습니다.”

올리버가 그때의 싸움을 떠올리며 솔직히 대답했다.

조는 현재 자신이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로 흑마법을 적용해 최고의 효율을 뽑아냈을 뿐 아니라, 특유의 근접전투 기술과 감각을 모두 살렸다.

첫 번째 돌격 때, 힘으로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음에도 조는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 특유의 스텝으로 피하고, 빈틈을 노려 다리를 공격 해 기동성을 제압한 뒤, 정확한 일격을 넣어 경기를 마무리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머리통을 으깨버린 것인데, 투약한 흑마법의 양을 볼 때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숨통을 끊어질 때까지 계속해 덤빌 지독한 양이었으니.

‘상대 선수는 어차피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고.….’

대답을 들은 조가 되물었다.

“그래?”

"예, 스스로 연구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방식을 쓴 것이 가장 훌륭하셨습니다. 대단합니다. 전 그런 식으로 쓸 줄 생각 못 했는데요. 올리버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는 말 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던 도중 한 덩치가 지나가며 조에게 말을 걸어왔다.

"조! 아까 전 경기 잘 봤어. 아주 끝내주던걸! 어디서 익힌 거야?!”

"꺼져.”

"응!"

조의 말대로 냉큼 꺼지는 덩치.

그가 꺼지기 무섭게 한 여성이 조에게 다가와 같이 술을 마시자 제안했으나, 조는 얼굴도 안 보고 또 꺼지라고 대답했다.

다들 조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조는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드는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올리버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

"경기에 참가하면 파이트머니라는 걸 받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받습니까?”

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왜 궁금한데?”

"궁금하니까요?”

조는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경기마다 달라. 보통 판돈의 퍼센티지로 받는데, 쥐꼬리만 하긴 하지만 판돈이 높아지면 제법 쏠쏠해. 특히, 여기서는.”

"그렇군요. 그럼, 조는 얼마나 받죠?”

“….좀 받는 편이지. 다른 일 할 때만큼. 근데, 그건 왜? 너도 참가하게?”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조는 여기서 나름 대접받는 것 같고, 보수도 괜찮은데, 여길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그게 왜 궁금하냐고. 궁금해서 궁금하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조가 경계심을 빛내며 물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이 경계심을 누그릴 필요성이 있었다.

올리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궁금한 것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던가?

하지만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얼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놔야 했다. 좋은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자발성이 필요했으니.

올리버는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어……. 전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뭐?”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게 첫 기억이네요.”

"......."

"그리고 광산에 취직했습니다.”

"취직?"

"예, 고아원 원장님은 그리 말씀하시더군요. 더 이상 애가 아니니 제 손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고요."

"......."

"이후, 광산에서 일했습니다. 꽤 오래요.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지만, 덕분에 주인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게 흑마법을 가르쳐주신….. 흑마법이라는 건 아주 재밌더군요.”

"......."

"아마 그때 처음으로 재밌다는 걸 느낀 것 같습니다. 흑마법이요. 그래서 흑마법을 배우는데 필요한 글과 숫자도 배웠죠. 잘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겪었고 나중에는 세상에 대해 배우고 싶어 여기 란다로 오게 됐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예? 아….. 제가 왜 궁금하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궁금증은 제 가장 큰 원동력이며, 기쁨이거든요…..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모르는 걸 알아가는 건 큰 즐거움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리 궁금한 건데?”

"처음에는 흑마법과 감정만 궁금했지만, 다른 것도 궁금해지더군요. 란다 앞 구역과 뒷 구역은 왜 이토록 차이가 날까? 부자와 빈자가 탄생하는 이유는 뭘까? 마법과 흑마법의 본질적인 차이는? 믿음은 무엇일까? 악마의 정체는 뭘까? 신이란 무엇일까? 그냥 모든 게 궁금합니다. 그중에는 X구역에 관한 것도 있고요.”

“..…넌 참 이상하군.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은 원래 서로 이해하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 대화를 나누죠. 지금처럼요.”

그렇다 할 설득력도 없는 장광설에 불과했지만, 이상하게 올리버의 말은 막연하게 사람을 설득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을 곱씹고 생각에 빠진 조가 그 증거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야.”

“네?”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구경거리 취급받는 거. 먹고살려고 싸우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거기서도 최소한의 존엄성이란 게 있는 법이야.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로 싸우는 거, 개인적으론 안 좋아해. 관장님하고 약속이 있어서 지금 참가하는 거지만, 곧 손 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체육관 지하실을 빌리기 위해 딘클리지와 그런 약속을 했던 게 떠올랐다.

극도의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방금의 말처럼 조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자 의문이 생겼다. 조의 부정적인 발언치고는 선수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나마 확실한 돈벌이가 되니까. 뭐, 억지로 끌려오는 인간도 많고.”

"아까 전 조랑 싸운 분처럼요?”

"맞아, 여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크다 보니. 몇몇 놈들은 약이나 흑마법 따위로 세뇌한 노예 선수를 이용해 경기에 참여하거든. 경기장 관리자들도 흥행만 되면 상관없는 눈치고.….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자발적으로 싸우겠다는 놈 패는 건 괜찮아도, 아닌 놈 패는 건 조금 찝찝하거든.”

올리버는 조가 이곳을 진짜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싸우는 것이나 살인 자체에는 별다른 저항감이 없는 조였으나, 그와 별개로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거였다.

흥미로웠다.

올리버는 호기심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곳을 벗어날 생각은 없나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요. 조도 꽤 돈을 벌었을 것 같아서요. 저랑 같이 켈 자유독립군을 잡고, 탈옥 때도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조 실력이면 이곳을 벗어나 해결사로 들어가도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이곳을 안 떠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 순간 조는 극도의 경계심을 빛내다가 다시 누그러뜨렸다.

그러더니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여기에 책임져야 할 입들이 있거든.”

"입이요?”

"니코, 큰 턱 가족들..…."

오래됐지만 모두 올리버가 아는 이름이었다.

“니코 씨랑 큰 턱 씨라면 조랑 같이 저랑 싸우신 분들 아닌가요?”

"맞아, 그리고 죽었지.”

그랬다. 머피의 의뢰를 받아 마탑 전(前) 부교수 허버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올리버는 조, 니코, 큰 턱과 싸웠고, 그 과정에도 그 둘을 살해했다.

당시로서는 도저히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1년 정도 지난 과거 일이었지만, 올리버는 그들을 기억했다.

"어..…. 죄송합니다?”

"됐어. 어차피 이 바닥에 들어온 놈들 다들 목숨 걸고 일하는 건데. 서로 원망하면 끝이 없지. 네가 말한 대로 서로 일한 것뿐이야.”

올리버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해한 당사자가 이러는 게 다소 뻔뻔할 수 있었지만, 올리버가 무슨 특별한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올리버는 자기 일을 했을 뿐이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한 와중 올리버가 먼저 죽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족이라니, 왜? 혹시 형제..... 아! 공동체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들이랑 나랑 같은 공동체라서 내가 어느 정도 돌봐줘야 하거든.”

"그렇군요.”

확실히 식구가 많으면 구역을 벗어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조가 그동안 돈을 모았다 해도 아슬아슬할 게 뻔했다.

올리버 역시 과거에 비해 명성이나 수입이 상당히 늘었지만, 더 살기 좋은 구역으로 넘어가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돈도 돈이고, 사기당하지 않게 조심도 해야 했기에.

하지만, 그와 별개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란 게 뭔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끝까지 지키려고 하다니. 이에 관해 조에게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엔 내가 질문해도 될까?”

"예? 아….. 예. 말씀하십시오.”

"얼마 전까지 해결사 일 엄청나게 몰아서 했다고 하던데, 뭔 큰 건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 거로 아는데.”

"큰 건은 아니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몰아서 처리한 것뿐입니다.”

"그래?”

"예, 자세한 건 사정이 있어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편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조는 사양치 않고 말했다.

"혹시, 우리 파이터 크루에 들어올 생각 없어?”

"예?”

"우리 보스가 너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거든.”

***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정중히 거절했다.

늘 그렇듯 조직에 소속되는 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조도 심각한 건 아니었는지, 한번 물어보고는 그 이상 권유하지 않았고, 올리버와 조는 몇 마디 더 나누고 헤어졌다.

이후, 올리버는 코코나 천사의 집, 포레스트에게 물어 괜찮은 부동산 회사나 중개인을 찾아가 이사할 집에 관해 알아봤으며,

틈틈이 지금 머무는 거처 지하실에서 저번에 얻은 재료를 손질해 송장인형-넝마2를 만들 준비도 했다.

넝마2는 기존의 성능을 유지하되 평시에는 일반인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바로 제작에 들어가는 대신 설계 도면부터 작성했다.

이 역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경매장 임무에서 얻은 서적에 이에 관한 해법이 있었기에.

송장인형의 몸 자체를 조립식으로 가공해, 안과 밖을 바꿀 수 있는 기계장치를 다는 것으로, 손이 꽤 가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 외에도 반으로 찢어 죽은 순수 마력 학파 마법사 시체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야 했다.

손상 강도가 심해 송장인형으로 온전히 활용하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부터 어디로 가야 하지?”

멀린이 준 신분증과 노획한 마법 가방을 챙긴 뒤 마탑에 도착한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마탑. 마탑. 마탑….. 사람들이 이야기해 그 규모가 남다를 것을 예상했지만, 예상한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나 다른 바 없는 높은 담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니 또 하나의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것은 도시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기계장치에 가까웠다.

각 구역에 있는 타워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건물이 부품처럼 기하학적으로 세워져 있었으며, 그 건물 사이는 톱니바퀴의 체인처럼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체적인 마력 발전소와 거대한 톱니바퀴 건물이 계속해 움직여 마탑 전체에 동력을 제공했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올리버는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소학파 타워가 어딘지 구체적으로 물어볼걸.

길을 물어보려고 해도 여기 사람들은 다들 바쁜지 말을 걸어도 쉬이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포기할 수 없는 노릇.

올리버는 길을 묻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경계, 무시를 받았다.

"길이 궁금하시다고요?”

물어보는 사람이 두 자릿수를 넘으려고 할 때쯤, 누군가 올리버의 말에 대답해줬다.

은빛 곱슬머리를 뒤로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여성이었다.

"예, 원소학파 타워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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