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불법 격투기 시합 (2) >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습니다! ..…란다가 넓다 해도 좁다더니, 뭔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올리버와 통통한 흑마법사가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가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는 안 본 사이 조금 살이 빠졌는데, 다소 쇠약해진 생명력으로 볼 때 운동으로 뺀 것이 아니라 고생으로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를 보고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여기서 아는 얼굴을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진심. 올리버도 대답했다.
"예, 저도 반갑습니다. 얼마 전에 그레이마켓이 열려 다시 찾아뵈러 갔는데, 안 보이셔서 안타까웠습니다.”
그 말에 통통한 사내가 기억났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올리버를 향해 약간의 분노와 의아함, 궁금증, 호기심 등 여러 감정을 빛냈다.
"아! 맞다….. 당신..…아니지. 욕한 건 아닌, 아닙니다. 잠깐….. 크흠, 큼!”
통통한 사내는 처음 올리버를 상대했을 때보다 더욱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때는 장사를 잘하려는 명백한 목적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무서워 못하는. 올리버가 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통통한 사내는 올리버의 안색을 한번 살피더니, ‘후….’ 하고 한숨을 토했다.
마음을 다지기 위한 작업. 이윽고 그는 용기 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름이 데이브 맞소? T구역의 떠오르는 강력한 해결사.”
"음.....강력한 해결사인 것은 모르겠지만, T구역에서 활동하는 해결사 데이브인 건 맞습니다.”
"하아……. 내가 거물과 거래했구만.”
통통한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올리버가 이에 관해 묻자 곧 그 이유를 이야기해줬다.
올리버와 거래를 마치고, 여느 날처럼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손님이 하나둘 늘어났다고 하였다.
"혹시, 저 때문인가요?”
“T구역 해결사가 사용하는 거대한 먹보 주머니를 보고 왔다고 하니 그런 것 아니겠소? .…짚이는 데가 있소?”
"어..…. 블랙마켓에서 몇 번 사용한 적이 있긴 한데, 그것 때문일까요?”
올리버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남들이 자신을 그리 유심히 볼 줄 몰랐기에.
빅마우스가 물건을 삼킬 때 흥미롭게 보는 사람들이 좀 있긴 했지만….. 포레스트의 경고가 허언이 아닌 것 같았다. 큰 먹보 주머니가 올리버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딘클리지가 끼어들어 물었다.
"잘나가는 해결사의 장비를 흉내 내는 게 보통이긴 하지. 근데, 이해가 안 되는데? .…아니, 시비 거는 게 아니라, 그렇잖아? 덕분에 손님들이 몰려왔으면 좋은 거 아닌가?”
딘클리지가 통통한 남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거친 X구역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남자답게 질문하는 방식도 다소 공격적이었다.
그런 태도가 부담스러운지 통통한 남자는 겁을 먹으면서도 용기를 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겁은 많았지만,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다웠다.
"큼.… 따지는 건 아닙니다. 소문이 이상하게 퍼져 그렇지. 내가 말 잘 듣는 먹보 주머니를 탕탕 만들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말이요.”
"아..…. 저한테 했던 것처럼 경고하시면 되지 않나요?”
"그 이상으로 했지! ….먹보 주머니는 마법 가방처럼 들고 다니기 편한 그런 물건이 아니다, 자아가 있는 인공 생명체다, 작아서 말을 잘 듣는 거지 커지면 어찌 될지 모른다, 주인을 살해하고 잡아먹은 먹보 주머니도 꽤 된다..…. 근데, 아무도 듣지를 않았소! 당신이 잘 사용하는 걸 봤다며 괜찮다고 했지.”
"그럼, 이 친구 잘못이라는 거야!”
딘클리지 버럭 호통쳤다. 키는 작았지만, 목소리는 누구보다 컸다.
격투기 시합으로 주변이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모두가 쳐다볼 정도.
왜 이러나 싶었는데, 딘클리지가 곧 그 이유를 입 밖으로 내줬다.
"이 친구는 내 체육관에서 몇 배나 되는 회원비를 내는 호구, 아니, 회원인데! 감히, 시비를 걸려는 거야? 아, 끼어들지 말게. 나만 믿어. 트집을 잡아 돈 좀 뜯으려는 것 같은데, 이런 건 내 전문이야. 암!! 암!!!”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회원비를 몇 배나 냈다고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난장판 같은 대화. 통통한 남자는 양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니오. 나도 손님에게 덤터기 씌울 정도로 양심 없는 장사꾼은 아니오. 내가 그저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지.”
진심. 올리버가 물었다.
"뭐가 궁금하신 거죠?”
"먹보 주머니는 별 말썽 없이 잘 쓰고 있소?”
올리버는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끔씩 일하기 싫다고 하지만 조금 달래 주면 열심히 일했습니다.”
실제로 빅마우스는 지폐 한 장만 주면 뭐든지 먹어치워 줘 올리버의 일에 엄청난 도움을 줬다.
엄청난 양의 사체와 물건을 꿀꺽꿀꺽 삼켜 간편하게 보관해주니 말이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몇몇 고객한테 그 물건을 만들어 팔았는데, 반은 다루지도 못했고, 나머지 반은 방심하다 먹보 주머니에게 공격받아 다치거나, 살해 당하기도 했소.”
"아..…. 진짜요?”
통통한 사내의 감정을 보고 진실이라는 걸 알았지만, 올리버는 그럼에도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최소한 올리버의 경험에 따르면 이 통통한 남자가 만든 먹보 주머니는 성능과 편리성 모두 우수했다.
"진짜요. 그게 아니면 내가 여기 안 있지.”
통통한 남자는 이후 자기가 어쩌다 여기 왔는지 이야기했다.
손님들의 항의와 경쟁자인 주변 흑마법사들의 신고로 매대가 빠지고, 그레이마켓 책임자가 거액의 손해비용을 청구했다고 말이다.
"손해비용이요?”
"그렇소. 나 때문에 사업장 평판이 떨어졌다고. 또, 화가 난 손님들 뒷수습을 자기들 돈으로 했다고 말이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난 따질 수 없었지.”
"어째서죠?”
"총을 들었고, 난 싸움을 할 줄 모르거든.”
"아..…."
이후, 통통한 남자는 크라임 펌에서 관리하는 흑마법 공방으로 취직했다고 말했다.
돈이 없었기에 몸으로 때우라는 것.
그들은 소문이 퍼졌음에도 통통한 남자가 먹보 주머니를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만들 것을 강요했고,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자, 노동착취 수준의 업무에 투입시켰다고 말했다.
"거긴 나만큼 불쌍하고 선량한 흑마법사들이 많이 있었소.”
"아아..…. 어떻게 탈출하신 거죠?”
“공방 물건을 빼돌려 흑마법의 기운이 가득 담긴 폭죽을 대낮에 쏘아 올렸지. 성기사들이 몰려왔고, 공방이 난장판이 된 사이 나만 탈출했소.”
어째 머피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다행이군요.”
"다행은 무슨. 크라임 펌에서 이 사실을 알면 산채로 포를 떠 죽이려고 텐데. 몸집을 보아하니 하루 종일 걸리겠구만.”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죠.”
"혹시, 도망자를 도와주는 갱들에게 도움받고 있습니까?”
올리버가 과거 배웠던 지식에 근거해 물었다.
"그렇소..…."
통통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이 있는지 목소리와 감정이 흔들렸다.
딘클리지도 눈치를 챘는지 통통한 사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내가 몹시도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은근슬쩍 붙잡는 팔. 통통한 사내가 당황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딘클리지는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잡은 포식자와 같았다.
딘클리지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으면 여기서 기다려 줄 수 있나? 경기는 곧 시작할 텐데, 난 사업 이야기 좀 해야겠어.”
"사업요?”
"그래, 사업.”
통통한 사내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된 말에 심히 당황하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딘클리지는 놓아주지 않고 그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통통한 남자는 올리버에게 도와달라는 감정을 빛냈지만, 딘클리지의 감정에는 탐욕과 기회를 포착한 번뜩임만 있을 뿐, 살의나 악의는 없었기에 올리버는 못 본척했다.
"자자, 갑시다. 가.”
“아니, 잠깐…왜 이리 힘이....."
그렇게 어두운 복도로 사라지는 딘클리지와 통통한 남자.
올리버는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봤다.
딘클리지의 말대로 경기장에는 어느새 싸움이 끝나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굴 한쪽이 뭉개진 덩치가 실려 나가며, 내기에서 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걸었던 티켓을 허공에 던졌다.
기쁜, 분노, 환희, 슬픔 등 엄청난 감정의 물결이 요동쳤고, 그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선수가 입장했다.
바지만 입고 위쪽은 완전히 벗어던진 조.
그의 다부진 근육과 몸에 적잖게 난 흉터가 눈에 띄었다.
관객들. 특히, 여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조를 반겼다. 전에 선수 출신이란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인기가 상당한 듯했다.
‘그런 것 치고 조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지만.’
평소보다 더 내려간 감정 상태를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잠시 후, 다음 선수가 나왔다.
험악한 남자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상대 선수는 말라깽이 남자로, 도저히 이런 시합에 어울릴 외관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침대에 눕혀야 할 상태였다.
그럼에도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관객들은 의아해하거나,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선수의 몸뚱이 그냥 쇠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남아있는 흑마법의 잔재가 이를 이야기해줬다.
축 늘어진 근육, 초점이 안 맞는 두 눈, 빠진 머리털, 너덜너덜한 이빨과 손톱.
모두 흑마법으로 한계치까지 남용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부작용.
"약 투입해!”
선수의 동료로 보이는 사내들이 흑마법의 기운이 감도는 약을 억지로 먹이고, 주사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선수는 온몸이 검붉은색으로 물들며, 키와 근육이 몰라보게 커졌다.
흡사, 무에서 유가 생긴 수준.
육체는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듯 요동쳤으며, 주변에서 구경하던 관객들은 변신하는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섰다.
유일하게 저기서 차분한 건 상대편인 조뿐이었다.
조는 이런 일을 많이 봤는지, 지겨운 감정을 빛내며 허리춤의 시험관을 꺼내 감정을 추출했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감정을.
그와 함께 부담이 크지 않은 선에서 버닝 라이프(Burning Life)를 사용해 육체 전반을 강화한 다음 팔과 다리와 같은 공격 부위에 소량의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둘렀다.
"호……. 대단하시네.”
올리버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신체 능력과 근접 전투 능력은 올리버를 훨씬 상회하는 반면, 흑마법을 다루는 슴씨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건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습에 연구를 거듭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사용법을 찾은 것 같았다.
꽤나 위협적인 모습.
그 모습에서 승리의 조짐을 느꼈는지, 겁먹었던 관객들은 조의 이름은 연호하며, 허공에 티켓을 흔들었다.
“너클 조!”
“너클 조!”
“너클 조!”
그 함성 가운데 서로 마주 보는 조와 상대측 선수.
경기 신호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며, 두 선수가 격돌했다.
***
"여긴 어쩐 일이야.”
15초 만에 경기를 마무리하고 내려온 조가 올리버를 우연히 발견하곤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