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88화 (188/633)

< 188. 불법 격투기 시합 (1) >

올리버는 택시를 타고 X구역에 도착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돌산 위 대저택에서 지냈지만, 마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많아 바쁘다는 이유로 멀린이 올리버를 일방적으로 쫓아냈다.

도서관이 딸린 대저택을 떠나는 게 약간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낙심하진 않았다.

얼추 필요한 책은 다 읽었고, 나오는 길에 책도 몇 권 챙겼으니 말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데이브로서 그동안 밀린 일을 정리하기로 했다. 생활에 균형을 맞추는 건 중요했으니.

"이게 누구야? 성실하게 운동하다가 연락 뚝 끊은 해결사 나으리잖아?”

거칠면서도, 과장된 그러나 불쾌함보다는 유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러 거한들 사이에서 작지만, 누구보다 큰 태도로 서 있는 체육관 관장 딘클리지가 보였다.

그는 올리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다시 운동하러 나온 건가?”

딘클리지가 자신의 특제 건강보조 음료를 마시며 다가왔다.

보조 음료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근육은 한층 더 발달되어 있었다.

커진 것은 아니고, 더 단단해진 느낌. 실제로 생명력이 전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관장님. 건강하신 것 같군요.”

"고작 건강해진 것 같나?!”

딘클리지가 피부를 찢고 튀어나올 것 같은 근육을 과시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근육에 강한 자부심이 보였다.

"난 한층 더 강해졌지, 이 터질듯한 존재감이 그 증거..…. 다시 묻지. 운동하러 왔나?”

마탑 관련해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올리버는 며칠 동안 해결사 의뢰에 집중했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판단한 체육관에는 나오지 못했다.

딘클리지는 운동이 장난이냐며 크게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사정을 이야기하며, 회비도 계속 낼 거라고 말하자, 그는 결국 이해해 줬다.

‘하긴 일이 먼저긴 하지! 암!!’

오히려 그뿐 아니라 올리버가 다시 체육관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올리버를 보자 크게 반가워하는 감정이 그 증거.

하지만 아쉽게도 올리버는 그의 기대를 또 실망시켜야 했다.

"예, 오늘은 운동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규칙적으로 체육관에 나오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아, 빌어먹을. 왜? 해결사 일이 끗발 날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럴수록 몸 관리를 해야지.”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개인적인 사정? ..…뭐, 중요한 건가?”

딘클리지는 우악스러운 태도를 순간 벗어 던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이 사람의 특징이었다.

자신의 근육을 과시하며, 늘 소리치고,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깡패처럼 굴었지만, 필요한 타이밍에서는 남을 배려하고,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다.

실제로 조를 포함한 적잖은 회원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그와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그는 X구역의 불법 격투기 시합에 선수를 납품하는 일종의 사업가였으니.

"예,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겐 중요한 겁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할인은 안 돼. 나오는 횟수가 줄어든 건 회원 탓이니.”

"압니다. 그래서 몇 달 치 회비를 미리 드리려고 합니다.”

올리버가 품 안에서 얇은 돈다발을 꺼냈다. 손톱 두께에 불과했지만, 지폐가 고액이란 점을 고려하면 결코 푼돈은 아니었다.

X구역에서는 특히 더.

깨끗한 지폐 다발을 받자 딘클리지가 황홀하게 냄새를 맡더니 대뜸 말했다.

“….내가 자넬 사랑한다고 했던가?”

"어.…. 아뇨.”

"이제부터 기억하게. 난 자넬 사랑하네.”

딘클리지가 그리 말하며 품 안에 돈을 집어넣었다.

"자, 그럼 못 나오는 날까지 계산해 빡시게 운동 한 번 볼까? 일단, 등부터 조지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동할 수 있게 웃옷을 벗었다.

체육관에 난방은커녕, 방한 장비도 없어 추위가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관장님. 조는 어디 있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보통 여기 있던데, 안 보이네요.”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조? 오늘 경기가 있어서 안 나왔어. 격투기 시합..…. 왜? 혹시 관심 있나?”

딘클리지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

운동을 마치자 하늘은 어두워졌다.

올리버는 운동 후 물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운동이 끝난 직후라 근육통으로 다소 움직이기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올리버는 쉬는 대신 옷을 갈아입어 외출 준비를 마쳤다.

"준비 다 됐나?”

안감이 털로 된 롱코트를 입은 딘클리지가 물었다.

키가 작은 그가 롱코트를 입으니 남은 부분이 망토처럼 바닥에 끌렸지만, 당당한 태도와 근육이 합치니 하나의 패션처럼 보였다.

"예. 준비 끝났습니다."

"꽤나 굴렸는데도 잘 버티는군. 역시 잘 나가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빈말 아니야. 난 입에 발린 말 따위 할 줄 모르거든..…. 나 나간다. 너희가 뒷정리 좀 해라.”

딘클리지는 체육관 직원들에게 소리친 후 올리버를 데리고 X구역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이곳 격투기 시합에 대해 좀 아는 건 있나?”

"조에게 들은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X구역에서 그나마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요.”

딘클리지가 하! 하!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맞아, 이 지랄 맞은 동네에서 그나마 돈 좀 되는 사업이지. 물론, 이 도시에서 불법 격투기라는 게 그리 대단한건 아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J구역 외곽만 해도 작은 규모의 불법 격투기장이 여럿 있었고, 다른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X구역이 가장 큰 편이지.”

허세가 아닌 자신감. 올리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이유? 별거 없어. 가장 재밌기 때문이지. 이 도시가 아무리 막장처럼 보여도 최소한의 선은 있거든. 경찰력이 어느 정도 장악한 다른 구역들은 불법 격투기라도 일정 선을 넘지 못해.”

"..…그 말은 X구역은 아니라는 건가요?”

"직접 보는 게 빠르지. 자 여길세.”

X구역 중심부라는 라는 거리 간판을 지나 거대한 건물이 모인 사거리가 보였다.

매우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일부는 지어지다 만 상태였다.

과거 쌍권총 샘에게서 들은 일화가 떠올랐다.

구역 개발 도중 시의원의 부정이 드러나 실각하고, 이후 테러와 사고가 연달아 발생해 자연스럽게 개발이 멈춰 낙후되고만 X구역의 뒷사정이..….

원래는 나름 괜찮은 공업구역을 만들려고 했다던데, 구역 중심부에 세워진 큰 건물을 봤을 때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허나, 반수 이상의 건물이 건설 도중 멈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자아냈다.

"여기서 경기가 벌어지지. 이쪽으로.”

딘클리지가 갑자기 뒷골목으로 빠졌다.

좁지만 관리가 된 듯 깨끗한 뒷골목에 들어서고 얼마 있지 않아 철장을 마주했다. 철장 안쪽에는 뒷문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딘클리지는 벽 구석을 뒤져 버저(buzzer)를 눌렀다.

부부- 작게 울리는 신호음.

뒷문에서 한 대머리 뚱보 사내가 나왔다.

"도대체 어떤 놈이! ……딘클리지 씨?”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던 뚱보는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아니, 오히려 예의 바르게 인사하기까지 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격투기 시합장에 왜 찾아왔겠나? 싸움 구경하러 왔지.”

"아니, 그러면 정문으로 오셔야지. 왜 직원 전용 통로로 오십니까?”

"사람이 북적거려서 코트가 계속 밟힌단 말이야.”

딘클리지가 자기 코트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확실히 사람 많은 데서는 밟혀서 걷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아, 참..…. 그래도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뚱보 사내는 난감해하며 투덜거렸지만, 총총총 걸어와 철창문을 열어줬다.

딘클리지는 그런 그를 달랬다.

"미안. 미안. 원래 올 예정은 없었는데, 갑자기 구경하고 싶다는 손님이 와서.”

딘클리지가 엄지로 등 뒤 올리버를 가리켰다.

뚱보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버를 바라보다가 다시 딘클리지에게 말했다.

"어쨌건 이번만입니다. 아무리 선수들 가져다주셔도 직원 통로를 이렇게 남용하면 안 된다구요.”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체육관오면 운동시켜 줄 테니 그만해."

"전 운동 싫어합니다.”

뚱보 사내는 뒷문으로 딘클리지를 안내했다.

직원 대기실인지 그곳에는 적잖은 갱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렌치 클럽에 도끼뿐 아니라, 가난한 X구역에서 상대적으로 보기 드문 총도 가지고 있었다.

보안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

딘클리지는 그런 그들에게 태연하게 인사하며 올리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적잖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복도가 눈에 들어왔으며, 어디선가 계속해 고함소리가 뒤섞인 환호성이 들렸다.

"이 짜릿한 함성이 들리나? 여기가 X구역에서 그나마 돈이 되는 격투기 사업장이야. 이 근방의 여러 공동체가 합심해서 운영 중인데, 여기 상식이니 기억해 두게.”

"공동체요?”

특이한 단어라 올리버가 되물어봤다. 갱이 운영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공동체라니.

"음…. 오는 길에 경찰 본 적 있나?”

"아뇨.”

"그럴 수밖에. 이 동네는 시(市)에서 반쯤 버려졌으니 말이야. 그래서 여길 벗어날 수 없는 가난뱅이들은 스스로 지킬 필요성을 느꼈어. 도둑, 강도, 살인마들로부터…... 그래서 근처에 사는 이웃끼리 뭉쳤고. 우린 그걸 공동체라고 불러.”

"아..…."

"이제는 반은 갱이나 다름없지만 말이야. X구역에 사는 자들은 다들 직간접적으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

음……. 확실히 납득되는 이야기였다.

치안이 없는 동네에서 살려면 스스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을 테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복도를 지나 계단을 타고 한 공간에 도착했다.

백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들며 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장 위에는 얼굴 전체에 누더기 가면을 쓴 근육질 사내와 수염이 난 덩치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단, 그냥 싸우는 게 아닌 손에 뭔가를 두르고 있었다.

"쇠사슬이랑..…. 접착제?”

올리버가 고개를 가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주먹에 접착제를 두른 다음 그 위에 깨진 유리 파편을 박은 거지. X구역이 다른 격투기 시합보다 인기가 많은 이유지. 피를 보면 사람들이 돈을 더 걸거든.”

실제로 경기장 한쪽, 도박을 주최하는 도박판에는 수많은 돈이 오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이들은 흑마법 아이템 ‘감시자의 눈’으로 경기를 어딘가로 중계하고 있었다.

"몇몇 갱단과 제휴를 맺어 경기 내용을 X구역 밖과 공유하기도 하지. 제법 벌이가 쏠쏠해.”

"그럼, 왜 여기 사는 거죠?”

뜬금없는 질문에 딘클리지가 되물었다.

"응? 뭐 라고?”

"그 공동체라는 거요. 저 정도 돈이면 X구역 밖에서도 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올리버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돈 때문에 X구역에서 사는 것도 이해되고, 그것 때문에 공동체를 만든 것도 이해됐다.

그러나 저 돈을 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저 정도 돈이면 X구역을 벗어나,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모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사는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아아, 나눠 먹어야 할 입이 많거든. 돈이 많아 보여도, 쪼개면 얼마 안 되지.”

"하지만 크게 이득 보는 사람이 있을 거고, 개중에는 상당한 재산을 모은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그동안 뒷골목에서 쌓은 경험에 미뤄봐 물었다. 사업이 성공하면 크게 돈 버는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딘클리지가 반박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여기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돈과 재산을 모았으니까. 아이러니한 경우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만?”

"오면서 봤듯이 이 경기장 운영하는 양반들은 나름대로 이 동네에서 목에 힘주고 다니거든. 돈도 힘도 있으니, 더 이상 떠날 이유가 사라진 거야. 반대로 묻지. 기껏 여기서 어깨 좀 펼 수 있게 됐는데, 떠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공장 노동자? 잡화점 주인?”

올리버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여길 떠나면 삶이 더 고단한데, 구태여 떠날 이유가 뭐겠어? 자네가 해결사 일 계속하는 것도 그런 거 아닌가?"

“저요?”

"그래. 해결사로 이름께나 알렸으면 꽤 돈 좀 만졌을 텐데, 계속 위험하게 해결사 일에 종사하나? 사람이란 게 원래 살던 방식을 바꾸기 어려운 법이야. 특히, 그걸로 잘 먹고 잘 살 때는.”

호..….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얼추 맞는 말 같았다.

물론, 올리버가 해결사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아니지. 단언할 수 있나? 굳이 이 방법을 고집할 이유가 있나?’

올리버는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머릿속에 빠졌다. 그때,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이런! 죄송합니다.”

부딪힌 듯한 사내가 티켓을 떨어뜨리며 사과했고, 올리버 역시 사과하며 티켓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다.

그 과정에서 올리버와 부딪힌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동시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그는 바로 먹보주머니-빅마우스를 만들어줬던 그레이마켓의 흑마법사 통통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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