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달라진 위상 (1) >
란다 최외곽. 개발금지구역인 한 숲속.
지금 그곳에서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밀주 공장을 감추기 위해 펼친 결계 탓에 바깥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싸우고 있었다.
뭐, 그리 대단한 싸움은 아니었다.
란다에서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흔하디흔한 이권 싸움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다만, 문제라면 우리 쪽이 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쾅! 콰과광一!! 펑一! 퍼퍼펑一!!
밀주 공장의 주인이자, 전(前) 마탑 학생인 에이드리가 폭발로 날아가는 방어시설, 숙소, 마법주 생산 기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게 다 빚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이고 만 것인지.
분명, 모든 게 다 순조로웠다.
탈옥 건을 시작으로 시(市)에서 란다 뒷골목을 쥐잡듯이하고 있어, 대다수 갱들이 행동에 제약이 생겼고, 그 타이밍을 맞춰서 에이드리는 이곳에 조용히 밀주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사업 아이템도 좋았다. 최근 란다는 물론, 그 밖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마법주였으니.
아이템이 확실하니, 투자자는 금세 모였고. 돈이 모이니 부하들도 쉽게 생겼다.
돈 몇 푼에도 몸을 갈아 넣을 쓰레기들은 란다에 널렸으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 습격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탕! 타탕一! 두두두두두두두一! 텅一! 텅一!!
"크아아악! 내 눈!!”
"씨발, 누가 감시등 좀 켜! 어두워서 대응이一컥!”
"엄폐해! 엄폐!! 총 존나게 잘 쏴!”
정문 쪽을 방어하는 부하들이 단 한 명의 침입자를 제압하지 못해 이리저리 숨으며 소리쳤다.
병신이라고 욕하고 싶었지만, 확실히 침입자는 보통이 아니었다.
정문을 뚫고 들어와 사격만으로 이미 십수 명은 죽였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지, 혼자서 여러 개의 총을 난사해 십수 명분의 화력을 내면서도, 사격 하나하나가 정확했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쓰러지는 시체가 그 증거.
‘어두워서 제대로 안 보여..…. 돌연변이? 골렘 의수 사용자?’
부하들 몇몇이 감시등을 켜 주변을 밝히자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침입자는 팔이 여러 개 달린 돌연변이였다.
보는 것만으로 혐오감이 드는 기괴하고 뒤틀린 돌연변이.
그러나 생김새와 달리 지능은 높은 건지 곧장 전구를 맞춰 시야를 앗아가는 뛰어난 대응 능력을 보여줬다.
텅! 텅! 두두두두두一! 탕! 타다탕!
펑! 펑! 파칭! 퍼버버버벙!
주변을 밝히는 전구가 단 2초 만에 전부 깨지며 주변은 다시 어둠에 물들었다.
부하들이 랜턴을 들었지만, 오히려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때,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끄아아아아악! 내 다리!”
"불! 여기 불 꺼!!”
“앞이 안 보여! 앞이! 내 눈-!”
흑마법의 기운이 스며든 폭탄은 시설물뿐 아니라 지원을 가던 부하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처음 폭발도 그렇고, 두 번째 폭발까지..…. 정확히 노리고 터트린 거였다.
물론, 일부 무사히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괴력을 지닌 돌연변이나 기초적인 마력사용자가 있어 일순간 침입자를 몰아붙였지만, 그것도 잠시.
침입자가 마력이 깃든 폭탄을 던지자 거대한 화염이 일며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소름 끼치는 화염에 기초적인 진형마저 모두 어그러졌다.
침입자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양손에 소드 오프 샷건을 고쳐 잡은 뒤 불 속으로 돌진해 총을 쏘아댔다.
퇑—!! 퇑—!!
소드 오프 샷건은 불타오르는 화염마저 꺼트릴 힘으로 패닉에 빠진 에이드리의 부하들을 토마토처럼 으깨고 찢어버렸다.
총보다는 작은 대포에 가까운 위력.
침입자는 그 화력에 환희하는 듯 알 수 없는 웃음을 토했고, 가뜩이나 사기가 떨어진 갱들은 결국 도망치기 시작했다.
“히익..…!! 괴물!!”
"이런 이야긴 없었다고.…! 없었어!”
"엄마..... 엄마......"
끝이었다.
이런 식으로 공포가 퍼지면 도저히 수습할 수 없었다.
특히, 뒷골목 하류 인생들이면.
에이드리는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도망치는 것.
싸우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걸어야 할 판돈이 너무 컸다.
마탑 뒷거래를 하며 배운 지식에 의하면 지금은 빠질 때였다.
중앙 감시탑에서 사무실로 내려온 에이드리는 통신장치에 대고 말했다.
"적이 강하다! 내가 합류할 테니, 전부 이쪽으로 와!”
통신장치에서 칙지직! 소리가 울리며 제각기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겁에 질린 목소리, 용기를 얻은 목소리, 의심쩍어하는 목소리.
하지만 뭐든 상관없었다.
놈들이 믿든 안 믿든, 모이든 말든 에이드리는 도망칠 생각이었으니까.
도망쳐도 괜찮았고, 여기 와도 괜찮았다.
뭐든 적의 주의를 끌어줄 테니.
"그래, 이건 잠시 넘어진 거야. 그렇고말고. 내겐 늘 계획이 있어.”
에이드리는 가문에서 파양 당했을 때처럼 중얼거리며 마탑에서 훔쳐온 마법 가방에 마법주 레시피와 포션 제작법, 약초 재배법, 스크롤 제작개론, 순수마력 학파 서적, 연구일지, 돈 등을 쑤셔 넣었다.
비록 공장을 날려 먹어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상관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자신에겐 계획이 있었으니까.
투자자 중 가장 돈 많고, 힘이 센 자에게 피신하면 됐다.
그의 밑에서 몇 년 일한다는 식으로 피해를 보상해주면 분명 그는 보호해줄 터였다.
드루이드 주제에 돈과 여자를 밝히는 탐욕스러운 자이니.
‘뭣보다 인재를 중요시하니까…. 그럼, 날 무시할 수 없지!’
에이드리가 확신을 가지며 문을 열었다.
콰직!!!
문을 열자마자 위기를 느끼고 순간적으로 실드를 전개한 에이드리.
몸에 마력 갑옷이 장착됨과 동시에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정통으로 때렸다.
“커억..…!!”
에이드리는 코앞에서 대포라도 맞은 듯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앞을 보자 양손에 톤파를 든 대머리가 보였다. 엄청난 생명력과 마력을 뿜으며 말이다.
‘마력비대증??!! 복도의 경호원은? 싹 다 죽은 건가? 언제?’
추측해 봤을 때 상당한 실력자. 그러나 에이드리 역시 마탑 출신이었다. 그것도 순수마력 학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마력으로 이뤄진 고밀도의 마력 사슬을 만들어 휘둘렀다.
단순해 보여도 공격과 제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에이드리의 특기.
쇠사슬이 대머리 침입자의 팔을 붙잡는 순간, 대머리 침입자는 반대쪽 톤파에 마력을 날카롭게 집중해 에이드리가 만든 마력 사슬을 찢어버렸다.
".....!!!"
평범한 톤파가 아니었다.
탁!!
침입자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에이드리를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에이드리는 미리 몸에 장착한 마력 갑옷으로 방어를 시도했지만, 대머리의 공격이 너무 강해 충격이 실드를 뚫고 들어왔다.
반격해보려 해도 적의 공격이 너무나도 현란하고, 예상할 수 없어 저항하기도 쉽지 않았다.
주먹을 내지르는가 하면 톤파로 후려치고, 팔꿈치로 찍는가 하면 무릎으로 걷어차고, 톤파를 휘두르는가 하면 발차기를 날렸다.
떵-! 떵-! 떵-!!
하나하나가 무쇠 망치와 같아 치명적이기 그지없었다.
학파에서 배운 근접 전투술로 상대하려고 했지만, 전혀 상대가 안 됐다.
“크윽!”
결국, 에이드리는 품 안에 숨겨둔 마법 아이템을 사용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아껴둔 아이템.
몇 개월에 걸쳐 축적해온 마법 실드가 허공에 3차원 마법술식을 그리며 발동됐다. 큐브 형태의 보호막이 에이드리를 감쌌다.
눈부신 마력에 밀려나는 침입자. 그는 톤파를 휘둘러 실드를 후려쳤다.
텅-!
텅-!
'하, 내 마력을 몇 개월에 걸쳐 욱여넣은 실드야. 그렇게 때린다고 깨질 것 같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에이드리는 마력을 끌어모아 응축했다.
조용히 떠나려고 했지만, 이렇게 압박하니 어쩔 수 없었다. 고작 이런 위기에서 쓸려고 한 대규모 폭발 마법은 아니지만-.
"응?”
에이드리의 눈에 대머리가 한쪽 손과 톤파에 마력을 있는 대로 집중시키는 것이 들어왔다.
‘박살 낼 생각인가? ……괜찮아, 버틸 수 있어!’
계산을 마친 에이드리가 소리쳤다.
"고작 그따위로 이 실드를 박살 낼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놈이 어색하고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치, 인형의 얼굴을 억지로 잡아당기듯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더니 어둠 속에서 팔이 네 개 달린 또 다른 침입자가 나타나 대머리 침입자의 팔에 흑마법을 부여했다.
“……어?"
그 얼빠진 소리가 에이드리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잠깐이라고 외치기도 전에 대머리가 흑마법을 두른 주먹을 휘둘러 실드를 가격했다.
퐉!!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듯 실드가 가로로 쪼개지며 에이드리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됐다.
뜨거운 장기가 차가운 공기에 닿는 그 느낌은 뭐라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몇 초 동안 숨이 붙은 에이드리는 그 감촉을 맛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침입자를 바라봤다.
너무나 믿기지 않는 현실에 분노나 증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을 뿐.
……어?
에이드리는 숨이 바로 끊어지기 직전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자신을 죽인 두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뛰어난 화장술에 가려져 처음에는 몰랐지만, 텅 빈 두 눈동자를 보는 순간 자기가 상대한 게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는 다 의미 없는 이야기였지만.
전(前) 마탑 학생이자, 마법주를 시작으로 뒷세계의 거물이 되고자 했던 에이드리는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영원히.
***
미니언을 통해 밀주 공장의 상황을 지켜보던 올리버가 한쪽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끝나셨네.”
올리버는 전투 상황을 체크한 노트를 마저 작성한 후, 머피에게서 받은 밀주 공장의 도면을 챙겼다.
방비가 두꺼워 꽤 번거로울 뻔했으나, 다행히 일에 들어가기 전 머피가 도면을 챙겨줘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도면을 바탕으로 올리버와 눈이 연결된 미니언을 배치해 적들의 수와 동태를 파악.
그에 맞춰 라스 붐을 먹인 미니언을 배치하고, 송장인형을 투입시켜 공장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강자가 없다고 해도 백 명 가까이 되는 적들을 상대한 것치곤 아주 훌륭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송장인형이 보조를 넘어 주체로서 싸울 수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송장인형-저격수가.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낮은 송장인형이었음에도, 이번 전투로 저격수 역시 뛰어난 전력이란 걸 배울 수 있었다.
장기인 사격술을 보조해줄 총과 보조 무기만 있으면 상당한 전투력은 물론, 범용성까지 자랑했다.
혼자서 정문으로 침입해 갱 수십 명을 압살하는 것이 그 증거.
‘다만, 화력을 과시하려는 세컨드의 성향은 주의를 시켜야겠어. 저번에도 말을 안 들었으니까. 나쁜 건 아니지만, 일에 지장이 생길지도 몰라.’
저격수 외에도 송장인형-흑마법사와 던칸의 활약도 흥미로웠다.
던칸에 들어간 폴스의 싱크로율은 아주 높아져 살아생전 던칸의 움직임을 거의 재현해 놀라운 전투력을 보였다.
단신으로 마탑 출신 학생까지 압도할 정도였으니.
‘흑마법사에 들어간 퍼스트와 합도 잘 맞췄고.’
뒤로 몰래 들어가 소리소문없이 적들을 살해한 것이 그 증거.
여하튼 종합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싸우느라 생명력과 감정, 마력 등 에너지 소비량이 높긴 했지만, 여차할 경우 올리버는 저들을 데리고 팀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일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 범위가 늘어난 거였다.
"끼기기……."
차일드-써드가 시험관 내에서 작게 울었다.
혼자서 아무 활약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 같았다.
올리버는 품 안에서 써드가 든 시험관을 꺼내 너무 아쉬워 하지 말라고 말했다.
곧 송장인형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이다.
때마침 재료도 많이 생겼고.
부서진 바리케이드와 방어시설을 지나 중심부 밀주 공장에 도착하자 재료-시체를 모으는 저격수가 올리버를 맞이해줬다.
"총! 세다! 재료! 많다!”
올리버는 저격수를 진정시키며 내려오는 던칸과 흑마법사를 반겨줬다.
그들은 위아래로 분리된 시체를 제각기 들고 왔다.
“선물…..”
"캬햐햐햐….. 선물!”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떨군 시체.
올리버는 흑백사진을 꺼내 얼굴을 대조해봤다.
머피의 마법주 사업을 위협하던 전(前) 마탑 학생 출신 에이드리가 맞았다.
마탑을 나왔지만, 고등교육까지 받은 인재.
올리버는 허리 뒤쪽에 찬 가죽 케이스에서 빅마우스를 꺼냈다.
“꾸륵?”
“빅마우스. 이걸 포함해 멀쩡한 시체 좀 챙겨주세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빅마우스는 따지려고 하다 올리버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자 이내 실망하며 일했다.
“꾸르르르르륵……."
"캬흐흐흐흐."
풀이 죽은 빅마우스와 그런 빅마우스를 위로하는 송장인형-저격수.
허나, 이미 올리버의 관심은 송장인형-흑마법사가 챙겨 온 마법 가방에 쏠렸다.
마법 가방 하나만으로 큰 수확이었건만, 안에는 더 괜찮은 물건들이 있었다.
일단, 고액화폐로 묶인 수십 개의 돈다발, 순수마력 학파 마법책, 마법주 레시피, 포션제조법, 약초 재배법 등등. 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으로 직접 작성한 듯한 연구 일지였다.
전격 마법사도 그렇고, 에이드리도 그렇고. 마법사는 글로 남기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것 같았다.
아주 바람직했다.
“흐음….”
올리버가 일지를 살펴보며 소리 냈다. 생각보다 더 괜찮은 내용이 있었다.
"역시, 맡길 잘했네.”
올리버가 수확물을 확인한 후 임무에 관해 평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