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82화 (182/633)

< 182. 변화 (1) >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마리.”

올리버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

통제권을 빼앗긴 감정 입자는 이미 진즉에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지만, 마리를 비롯한 그 누구도 그를 잡지 못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굴복하고 만 것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마리의 부하들이 하나둘 일어나 쓰러진 마리 곁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흑마법사라면 이때 주인을 해치울 테지만, 이들도 보통의 흑마법사가 아닌지 마리를 부축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줬다.

마리에게 얻어맞은 자이든, 아니든.

"다행이다. 몸은 회복 중이셔..…. 차! 차 안에 포션이랑 포션 중화제, 구급상자 있어! 당장 가져와!”

"내가 가져올게!”

흡사, 다친 부모를 걱정하는 자식들처럼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흑마법사치곤 기이한 광경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파고들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 대다수 고아, 인신매매범의 상품 혹은 소규모 흑마법사 패밀리의 하급제자-노예, 인체 실험용 쥐새끼들이었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인생.

그런 암흑 속에서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마리였다. 심지어 재능까지 인정해주어 직접 거두어들이기까지 했고.

그런 그들에게 있어 마리는 험악한 세상으로 자신들을 구해준 어머니요, 구원자였다.

정작 그 어머니는 그들이 아닌 다른 이를 보고 있었지만.

"들으셨나요?”

마리는 진정이 된 것인지 감정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아요. ..…그분은 떠나셨네요.”

울컥.

제자들은 그 말에 한순간 강렬한 증오와 질투, 살의를 느꼈다.

죽기 직전까지 공격 당했음에도 마리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1년 전부터 말한 ‘그분’, ‘주인님’이란 존재를 맹목적으로 바라봤으며, 거부당한 지금조차 변함이 없었다. 아니, 더 심해졌다.

도대체 그가 뭐길래?

물론, 그의 힘과 존재감을 봤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 불공평했다.

끈적끈적 들끓는 감정. 마리가 그 감정을 읽었다.

"제가 경고하건대, 감히 그분께 불경한 감정을 품지 마세요.”

마리는 넝마가 된 몸임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 제자들에게 경고했다.

허세나 과정이 아닌 순수한 진심.

마리의 제자들은 화가 난 부모를 마주한 아이들처럼 고개 숙이며 의사와 상관없이 굴복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마리가 거친 숨을 고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전 여러분이 주인님을 공격한 것을 전 잊지 않았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살아 숨쉬는 건 오직 그분의 말씀 때문이에요. 즉, 그분의 자비 덕분에 살아있는 거니. 감히, 그따위 불경한 감정 품지 마세요. 경고입니다.”

마리의 부하들은 분한 마음이 듦에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시 후, 포션과 중화제, 구급상자를 한 제자가 가져왔다.

"이, 일단, 치료하셔야 합니다. 상태가 위중하십니다.”

제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올리버의 공격에 마리의 몸은 구멍이 숭숭 뚫리고, 터지고, 부러지며, 으스러졌다.

마리의 고유 흑마법이 아니었다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느리지만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다는 거였다.

"기다리세요.”

마리의 말대로 기다리자, 마리의 몸을 검게 물들인 검은빛 흑마법이 실처럼 상처 사이를 연결해 천천히 마리의 몸을 수복했다.

수복은 모두 자동으로 이뤄졌다.

마리의 의지와 별개로 말이다.

덕분에 마리는 회복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싸움에만 임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자신보다 한두 단계 높은 적도 어찌어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흑마법이었다.

어떻게 마리가 사용할 수 있게 됐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리 본인조차.

그저 주인님이 남겨준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도중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옷을 입혀준 것처럼.

그래서인지, 때때로 마리는 자신의 힘이 아닌 남의 힘을 빌려 쓰는 느낌마저 들었다.

‘뭐든 상관없어..…. 그분 곁에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마리는 하찮은 사실 따원 뒤로 미루며 회복을 마친 흑마법을 천천히 풀었다.

마리의 몸을 물들인 검은빛이 몸 중심부로 후퇴하자, 마리 특유의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다.

올리버에게 당한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나은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마리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가득 있었다.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이런 식으로 피해가 남았다.

마리의 부하들이 익숙한 듯 마리의 상처를 치유했다.

교세를 확장할 때 몇 번인가 이와 비슷한 상태가 된 적이 있었기에.

"으흠…."

중화제로 포션의 독성을 낮췄음에도 마리는 아픈 듯 이를 꽉 깨물었다.

상처가 부글부글 기포를 뿜으며 치유됐고, 구급상자에서 꺼낸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습포와 붕대를 둘렀다.

상처를 치료할수록 제자들의 속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긴,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인이, 그런 놈에게 비굴하게 매달리니.

결국, 마리의 제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누가 봐도 잘생긴 외모를 하고 있었다.

"교주님.”

"말하지 마세요.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제자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발언을 허가해주십시오. 꼭 드려야 할 말입니다.”

마리가 날카로운 눈으로 제자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손톱으로 목을 벨 기세였다.

그러나 제자는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분’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마리는 광신적이고, 잔혹했지만, 그 외 평상시에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할을 분담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줄 알며,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부하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공평히 대하는 등 험난한 세상에서 처음 보는 유능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흑마법사임에도 모두 그녀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였다. 남자도 당연히 그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좋아요. 말해보세요.”

마리가 자신의 제자에게 한발 물러나 줬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분과 만나셨잖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거부했습니다.”

"오, 어리석네요. 태양이 미물을 거부한다고 미물이 태양을 거부할 수 있나요? 감히, 그분과 우릴 동일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오만이요. 불경이니.”

"하지만 교주님-”

“-다시 말하지만, 그분을 부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었기에 여러분이 있고, 그분이 있었기에 제가 있으니.…. 우리의 존재는 그분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요.”

마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마, 올리버가 필요해 의해 죽으라고 부당하게 명령할지라도 그녀는 진심으로 따를 터였다.

그걸 마리 본인도, 제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더더욱 분노했다.

얼굴도 모르던 한 남자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조직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토록 휘두르다니.

치료가 끝난 마리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마리의 제자가 체력을 보충할 생명력을 응축시킨 물약을 내밀었다.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마리가 물약을 들이켠 뒤 중얼거렸다.

"그분이 함께하시진 않지만, 어찌 됐건 승배의 허락을 정식으로 허락받았어요. 역시, 우린 선택받은 존재였어요. 진정한 구원자 우편에 설 수 있는…..”

마리는 환희했다.

"우리가 진정한 그분의 신도예요. 우린 진정으로 선택받은 거라고요..…. 그저 그분이 거처하시기에 아직 그 세가 작을 뿐.”

논리적이지 않은 엉망진창인 화법. 그러나 문제없었다. 애당초 신앙에서 논리를 구하는 행동부터가 어리석음의 극치였으니.

신앙이란 그저 믿고 따를 뿐.

그때, 마리와 말을 주고받던 제자가 초를 쳤다.

"하지만 그분께서 감히 자기 일상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마리는 뚝 하고 멈췄다.

".…맞아요. 그랬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태양은 뜨는 법. 우린 그에 맞춰 우리 일을 하면 돼요. 신자를 늘리고, 교세를 확장하며, 그분의 종복을 더 만드는. 그분이 언제든 와도 부끄럽지 않을.”

심상치 않은 마리의 눈빛과 단호한 말투를 보고 더 이상 제자들도 뭐라 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주변의 의견도 듣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지만, 신앙에 관해서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마리가 명했다.

"다들 이만 돌아가죠. 오늘은 뜻깊은 날. 곧장 돌아가 그분을 위한 계획을 세우도록 하죠.”

제자들은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며 그 명에 따른다고 답했다.

잠시 후, 각각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제자들이 차에 올라타 움직이기 시작했다.

F-시리즈 두 차량은 숲에서 빠져나와 란다 밖으로 가는 외곽 도로에 올라타 와인햄으로 향했다.

마리는 돌아가는 동안 피로 탓에 눈을 감았다.

그와 함께 올리버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한 말을 되뇌고 되뇌었다.

'......예뻐지셨네요.’

***

삐- 삐- 삐- 삐- 삐- 달칵!

포레스트와의 직통 통신장치가 다섯 번 정도 울렸을 때 올리버가 받았다.

올리버는 작업복에 작업화, 작업 장갑 거기에 특수재질로 만든 앞치마를 두른 상태였기에 움직이기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통신장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데이브?]

"예, 포레스트 님. 접니다.”

[그렇군. 통신장치를 안 받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작업 중이었습니다.]

올리버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직 이사는 못 했지만, 올리버는 임시로나마 지하실에 장비를 그때그때 배치해 연구 겸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송장인형 수리.제작와 같은 짧게 할 수 있는 작업 한정이었지만.

[무슨 작업?]

"경매장에서 산 흑마법 서적을 참고해 오염생명체를 산 채로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아하..…. 괜히 물어봤군.]

올리버가 자신이 작업 중이던 작업대 위를 살펴봤다.

켈 자유독입군 앨리스터가 다루던 거대 거미 파커는 머리와 집게 손, 실을 뿜는 기관, 가시가 달린 꼬리를 제외하고 철저하게 해체되어 있었다.

덕분에 사방에 피가 낭자했지만, 도우미1이 능숙히 청소하고 있어 문제 될 건 없었다.

"다음 송장인형에 부착할까 생각 중입니다.”

[전투용으로?]

"아뇨, 전투용으로 쓰기 애매해 그냥 도우미2에 부착할 생각입니다. 거미실이 작업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뭔지 알고 싶지 않지만, 전투용이 아니라니 다행이군. 거미 대가리가 달린 송장인형이 돌아다니면 신앙심이 바닥을 치는 이 도시도 성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테니.]

"예, 그렇게 말씀하셨죠.”

과거 포레스트의 조언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송장인형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된 후, 포레스트는 거기에 관해 뭐라 말하진 않았으나, 가급적 겉모습은 멀쩡한 것을 쓰라고 조언했다.

외모가 흉측할수록 적대감은 높아진다고.

그래서 올리버는 송장인형-넝마2를 바로 만들지 않고, 원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외관은 멀쩡해 보일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최소한 평상시 모습과 전투 모습이 다르게 말이다.

"그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이번 중개인 모임은 어땠습니까? 책은 알 씨를 통해 받았지만, 못 만나서 아쉬웠는데요.”

[오, 방금 그거 좋았네. 딱 적당한 아부야. 코코 양에게서 화장 말고도 말재주도 배웠나 보군.]

"진심입니다.”

[뭐, 여느 때처럼 좋았어. 조합비로 최고급 호텔에 묵으며 공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특히, 이번에는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고. 자네 덕분이네.]

"과찬이십니다.”

[진심이야. 세상만사 알 수 없다고, 상대적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던 경매장 경호가 이리 호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올리버가 얼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에게서 들은 것인데, 올리버가 경매장의 침입자를 해치운 광경은 당시 손님으로 참석한 이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줬다고 했다.

경매장 참가자 대부분이 란다에서 저마다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아주 훌륭한 홍보가 됐다고 말이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없다고 하고 싶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더군. 시(市) 프로젝트 보안국 이야기가 파다해. 이미 실력과 신용이 있는 해결사들 몇몇 데려갔다더군.]

"이런, 다들 불만이 많으시겠네요?”

[보통은 그렇지. 자기와 일하고 있던 뛰어난 해결사를 채간 것이니. 근데, 거기에 합당한 중개료를 또 시(市)에서 제공해 그리 심각한 건 아니야. 잠시 꽁할 정도지.]

"아, 그렇군요.”

[시(市)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또 가끔씩은 일 처리가 날카롭지. 어쨌건, 시(市) 보안국의 탄생이 란다 힘의 균형과 우리 중개인 조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른 중개인들과 토론했네. 그럴듯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오염구역 청소 시즌도 다시 돌아왔고.]

"벌써 돌아왔나요?”

[그래, 다행히 이번은 다른 구역 차례라 참가할 필요 없어. 왜, 참가하고 싶나?]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흑마법 서적이 없으면 모를까 지금은 꽤 있는 상태였다. 일단, 있는 책부터 읽는 게 순서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자네가 그 일을 자청해 맡았으면 몸값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렇습니까?”

[반드시는 아니지만, 비싼 일만 맡아야지 비싼 일이 들어오거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언제쯤 일할 수 있겠나? 바로 일하라 할 생각은 없지만, 일이 몰려들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맡았으면 좋겠는데.]

감정을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로 볼 때 진심인 것 같았다.

올리버가 언제가 좋을지 고민하던 중 지하실 입구 앞에 웬 사람이 와 문을 두들겼다.

감정이 꽤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올리버는 앞치마를 벗어 걸어놓은 후 현관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당겼다.

문이 열리자 멀린이 빛나는 윗머리로 고개를 까딱였다.

"혹시, 제가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올리버가 통신장치에 대고 말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