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신자 (5) >
[탐화(貪火)]
영창과 함께 올리버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마주 붙였다.
마주 붙이자, 그와 함께 각 손에 있던 탐욕과 불이 하나가 되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마력과 생명력을 합치는 것과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았으니.
오히려 인공영혼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꺄아아아아아악!!”
마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감정도 표정도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탐욕의 감정과 뒤섞여 불타오르는 이 검은 불은 보통 불이 아니었으니.
마력과 화염, 폭발력을 장작 삼아 불타오르는 종군 마법사의 화염처럼 이 검은 불 ‘탐화(貪火)’는 주변의 감정 입자를 먹어치우며 그 크기와 화력을 계속해서 키워나갔다.
“이, 이 무슨..…!”
충격과 경악으로 커진 두 눈과 떨리는 목소리.
마리는 충격을 받았고, 그건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감정 입자와 연결고리를 가진 마리는 그 누구보다 저 검은 불의 흉폭함을 알 수 있었으니.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마법.
아마, 올리버도 종군 마법사와의 전투가 없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마법과 흑마법. 사람들은 이 둘을 계속 분리해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두 개는 따로 쓰는 게 아닌 같이 써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건, 그렇고..…."
올리버가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며 불타오르는 검은 화염을 둘러봤다.
감정을 추가해서 그런지 종군 마법사와 싸울 때 다뤘던 화염보다 통제하기 훨씬 까다로웠다.
미친 듯이 날뛰어 어떻게든 올리버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며, 동시에 몸집을 부풀려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워 자신의 양분으로 삼으려고 했다.
삼키고 확장하는 화염의 특성과 탐욕이란 감정이 만난 탓일까?
‘이것도 어쩌면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지도…..’
올리버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회오리처럼 요동치며 주변으로 멋대로 번지려고 하던 검은 화염은 그 기세가 수그러들며 천천히 그 몸집이 줄어들었다.
얼핏 봐서는 힘이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하게 목표물 덮치기 위해 몸을 웅크린 것에 더 가까웠다.
"가세요.”
올리버가 손가락으로 마리 쪽을 가리키자, 훈련받은 사냥개마냥 웅크렸던 화염이 마치 태풍처럼 마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 위협적이던 감정 입자를 모조리 삼켜버리며 탐욕스럽게 몸집을 부풀리고, 화력을 끌어올리는, 흡사 작은 물고기 떼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수.
콰화화화화화하하하하하항항————!!!!
검은 화염은 종군 마법사의 마법처럼 자연재해와 같은 형상으로 마리를 쫓아갔고, 마리는 태풍을 피하는 야생동물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아무래도 감정 입자 전체를 이동시키지는 못하는 듯했다.
덕분에 올리버의 검은 화염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감정 입자를 불태워 삼켰고, 화염의 탐욕과 의지, 힘은 더욱 거세졌다.
‘이 마법? 흑마법? 어찌 됐건 까다롭군.’
올리버가 고고하게 걸어가면서도 세밀하게 화염을 통제하며 생각했다.
화염을 통제한다고 화염에 면역이 아니듯, 이 강력한 화염은 올리버에게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자신을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위험이었다.
양날의 검과 같은 마법.
종군 마법사가 손을 계속 움직여 화염을 통제하고, 주변에 돌기둥을 두른 이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검은 화염은 감정을 머금은 탓에 계속해서 올리버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채워 넣으려 했다.
화염이라기보단, 감정이 그대로 구체화 된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화염이 자신을 해하지 못하게 조절하고, 화염이 과하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래서인지 마리의 감정 입자를 먹어 화염이 힘을 키울수록 올리버가 걷는 속도도 줄어들었다.
검은 화염도 화염. 주변을 불태우며 수많은 연기를 뿜어댔으며, 올리버는 그 냄새를 맡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우뚝 선 올리버 탓에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자 화염은 주인을 잡아당기는 개처럼 올리버를 끌고 가려고 했다.
실제로 거대한 화염 곳곳에 이형(異形)의 입과 눈 같은 게 나타나 불만을 보였다.
그러나 올리버는 화염의 뜻을 따르는 대신 통제권을 쥔 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화염을 억누를 뿐이었다.
화염은 괴로운 듯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명을 지르며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올리버의 시야를 가득 메우던 검은 화염의 여파 또한 줄어들며 주변의 모습이 들어왔다.
종군 마법사 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폐허가 된 숲.
시커먼 재밖에 남지 않았고, 그 양마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재조차도 남기지 않고 불태운 느낌이었다.
그나마 올리버가 통제해서 이 정도. 만약, 중간에 화염의 통제력을 놓쳤으면 이 탐욕스러운 불이 얼마나 집어삼켰을지 의문이었다.
숲 일부분이 아닌 숲 전체? 어쩌면 숲도 모자라 란다 외곽, 또 어쩌면 란다 중심부까지 번졌을지도 올랐다.
올리버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과장이 심한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거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다.’
올리버가 마음속으로 결론 내리며 주먹을 다시 한번 꽉 쥐자, 화염은 수십 개의 입으로 신음을 뱉으며 그 크기를 조금씩 줄여갔다.
"이, 이 무슨 도대체…..”
검은 화염에 쫓기던 마리는 지친 듯 흐트러진 자세임에도 올리버를 보며 경악, 공포, 경외와 같은 감정을 빛냈다.
마리의 부하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때, 올리버는 화염을 뒤에 놔둔 채 뚜벅 뚜벅 뚜벅 앞으로 걸어왔다.
화염과 거리가 벌어져 지금이 공격할 적기였으나, 앞선 화염 공격이 두려운 탓인지, 아니면 올리버의 위세에 눌린 것인지 마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올리버를 바라볼 뿐이었다.
슈하아아아——
올리버는 말리의 감정 입자 일부를 재추출해 가져가 손안에 머금었다.
마리를 비롯한 모두 얼어붙은 것마냥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뚜벅. 뚜벅. 뚜벅.
올리버가 다시 뒤로 되돌아갔다.
"마리.”
"네? 네! 주인님.”
"이 감정이 마리를 비롯한 신도들의 순수한 믿음이라고요?”
“....예, 주인님.”
올리버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손안에 머금은 감정을 압축시킨 다음, 손안에서 마력을 추출해 작은 불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검은 화염을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 손바닥을 마주했다.
차이가 있다면 불과 감정을 합친 게 아닌, 함께 연소 되었다는 것.
감정이 불에 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흡사, 원초적인 필거렛과 같았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두 손을 웅크려 그릇을 만들고, 손안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셨다.
필거렛과 형태는 달랐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았기에 연기를 타고 감정이 올리버의 폐 속으로 전달돼 이윽고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그 순간 올리버는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뒤섞인 감정이, 그들의 삶의 파편이.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정보량이 많아 전부를 살펴 볼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에게 있어 이 신앙이, 이 믿음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다.
"후우……."
올리버가 한숨을 내쉬며, 검은 화염을 봤다.
감정을 더 이상 삼키지 못하고 있던 검은 화염은 그 기세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삼켜 불태워야지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
올리버는 그 화염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휙 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와 함께 집 여러 채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화염이 수십 개의 입으로 비명을 지르며 꺼져갔다.
퐈롸롸롸롸롸롸롸롸롸롸!!!
비명을 질러가며 사라지는 검은 화염은 이윽고 성냥불처럼 작아지더니 이윽고 한줄기 검은 연기로 사라졌다.
모두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마리.”
"에, 주인님..…."
"일단 사과할게요.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어째 저는 마리가 하는 일을 함부로 평가한 것 같네요.”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주인님.”
"그동안 마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아요. 아주 약간이지만요. 제 한 몸만 챙기는 저보다 훨씬 많은 걸 하고 계셨군요.”
“…과,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저보다도 더요..…. 그래도 당신을 따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올리버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들어 마리가 흩뿌린 감정 입자를 조종했다.
화염에 다 타긴 했지만, 아직 조금 남아있었는데, 마리는 당연히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아까 전처럼 저지하듯이.
“어.…?”
마리가 놀라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불과 몇 분 전과 달리 올리버의 개입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마리를 이해한 것 같거든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가 통제권을 빼앗은 감정 입자를 조종했다.
소량만 남은 감정 입자는 하나의 기류를 형성하며, 마리를 조여들었다.
당황한 마리.
그런 마리를 향해 올리버가 물었다.
"아까 전 부상도 회복한 걸 보아하니 마리는 잘 안 죽죠?”
"......."
"그럼, 잘 버티세요.”
올리버가 허공을 쥐어짜듯 낚아챘다.
그와 함께 기류를 형성하던 감정 입자는 여러 개의 방향으로 엇갈리며, 태풍처럼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은 그 기류의 엇갈림에 맞춰 비틀리고, 찢겨 지며, 꺾였다.
나무 조각, 낙엽, 마리조차 말이다.
“끄그그극!”
마리는 태풍에 휘말린 사람처럼 공중에 띄워져 각 방향이 기괴하게 비틀리고 꺾이기 시작했다.
저항하려고 했지만, 올리버가 통제하는 감정 입자는 마리가 통제할 때마다 훨씬 높은 출력을 냈기에 저항하기 쉽지가 않았다.
거기에 마리의 움직임에 맞춰 올리버가 기류의 방향을 변화시켜 마리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마리가 할 수 있는 건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헛되이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휘익————쾅!!
올리버가 손을 빠르게 내리자 마리는 그대로 땅에 꽂혔다.
기류의 소용돌이와 추락으로 사지가 처참히 꺾인 마리.
그러나 몸에 부여한 흑마법의 힘으로 곧 회복됐다.
"아아아악!”
마리는 회복을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서 올리버를 향해 손톱을 휘두르려 했다.
꽉!!
손톱을 휘두르려는 찰나 감정 입자에 먼저 마리를 붙잡았지만.
멈춰선 마리.
행동에 제약을 주던 것을 넘어 아예 통제하고 있었다.
[네일(Nail)]
올리버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톡 건드렸다.
그와 함께 감정 입자가 뭉쳐 마리의 몸에 팔뚝만 한 못이 박혔다.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
엄청난 격통을 유발하는 못에 마리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쓰는 게 더 효율적이죠. 아니면 이렇게요.”
-짝!
올리버가 손뼉을 부딪치자 감정 입자가 손과 같은 형태로 뭉쳐 마리의 온몸을 모기처럼 짜부라뜨렸다.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살점이 터진 형상을 하며 쓰러지는 마리.
그럼에도 마리는 죽지 않고, 육체를 회복했다. 마치 죽음을 허락지 않는 것처럼.
꼭 마리가 흑마법을 조종하는 게 아닌 흑마법이 마리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그만해! 이 개一!”
-[쏜(Thorn)]
마리의 부하들이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도 용기를 내 올리버를 막기 위해 나섰지만, 올리버의 손짓 한 번에 그들의 몸은 가시덩쿨에 둘러싸여 행동할 자유를 빼앗겼다.
일방적인 농락.
올리버는 쓰러진 마리와 그녀의 부하들을 내려다봤다.
올리버가 손가락을 움직여 쓰러진 마리를 일으켜 세웠다.
분명,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이 찌그러졌건만 그녀의 육체는 차근차근 회복하고 있었다.
"제 말 들리나요?”
“…예, 주인님.”
"전 사실 마리가 그 주인님 소리를 안 해주길 바랐습니다."
"......."
"근데, 지금은 생각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주인님이라고 부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원하면 계속 그렇게 부르세요.”
"주, 주인님….”
"그리고 절 구원자라 믿건 말건 그것도 이제 마음대로 하시고요.”
마리는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솔직히 지금도 내키지 않지만,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 같더군요. 마리가 해온 걸 보면 말이죠."
올리버가 감정 입자를 흡입했을 때 봤던 감정의 파편과 기억의 파편을 떠올렸다.
"그러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단, 제 이름을 쓸지언정 절 끌어들이진 마세요. 전 아직 세상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부탁드리죠. 함부로 제 일상에 들어오지 마세요. 만약 그러면..…. 그때는 진심으로 싫어할 겁니다.”
마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감정 입자는 하인처럼 허공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