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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180화 (180/633)

< 180. 신자 (4) >

[어소리티(Authority)]

그 한마디와 함께 시험관이 요동치며 안에든 내용물이 공기 중에 흩뿌려졌다.

감정은 특수한 가공을 거친 것인지 공중에 흩날려도 사라지지 않고, 마리의 감정과 접촉, 호환돼 이윽고 고리에 걸린 듯 하나로 합쳐졌다.

마리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 감정은 분무기로 뿌린 물처럼 작은 입자가 돼 주변으로 가득 퍼졌다.

반경 수백 미터까지 말이다.

덕분에 세상은 그림 위에 흑연 가루를 뿌린 것처럼 희미한 검은색으로 물들어졌다.

"음......."

올리버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감정 입자를 손으로 휘저으며 관찰했다.

“..…이거 마리의 감정이 아니군요.”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저를 비롯한 순수한 신도들의 믿음입니다.”

"신도요?”

"주인님의 가르침을 받고, 진정으로 숭배하는 자들의 신앙을 적정량 씩 뽑아 모아둔 것입니다.”

흠..…. 분명 이 감정은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었다. 최소 여덟 사람의 감정이 뒤섞인 결합체.

그럼에도 감정은 서로 반발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그 매개체는…….

“-믿음이군요.”

"네."

"재밌네요. 한 대상을 향한 맹목적인 감정이면 여러 사람이 뒤섞인 감정도 하나의 감정처럼 섬세하게 쓸 수 있다니.…. 흥미롭고도 놀라운 발견입니다. 나름대로 책을 읽어봤지만, 이에 관한 이론이나 가설을 읽을 수 없었는데요. 대단해요. 마리."

"과찬이십니다. 여태까지 주인님 같은 분이 없었으니까요.”

마리는 자신의 발견조차 올리버에게 돌렸다.

아마, 죽어 달라면 기꺼이 죽어 줄 기세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올리버를 숭배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인생을 살라는 말은 따르지 못했다.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누굴 믿고 섬긴다는 게 자신의 목숨이나 이뤄놓은 성과보다 중요하다니.

올리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 허나, 그 진실성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올리버가 마리의 믿음을 막을 권리가 있는지.

어쩌면 자신이 한 제멋대로의 행동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걸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이건..... 어렵군.’

"주인님.”

마리가 말했다.

"예, 마리.”

"다시 한번 간청하옵니다. 이 어리석은 자를 위해 부디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전 주인님께 위해를 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은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놀랍게도 마리는 진심이었다.

올리버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마음 따위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공격하는 것은 그만큼 올리버를 데려가고 싶다는 방증.

"주인님을 위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전 이미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궁금하니 여쭤보죠. 무엇을 해줄 건가요?”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하며, 세상 그 누구보다 권세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돈은 제가 필요한 만큼 벌어 쓰면 충분하고, 전 권세를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지식을 모아 가져다 바치겠나이다. 과거 말씀하신 아름다운 빛도 반드시 그 정체를 밝혀 바치겠나이다.”

"지식 역시 제가 찾아도 됩니다. 그 과정도 그만한 가치와 기쁨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빛 역시 마찬가지고요. 뭐든지 당신께서 해준다면 전 도대체 뭘까요? 우리에 갇힌 가축이나 애완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겠죠. 당신은 제게 그것을 원하신 겁니까?”

마리는 그 말에 동요했다. 솔직히 이쯤에서 마리가 올리버를 이해해 주고 물러나 주길 바랐다.

그저 이대로 평화롭게 헤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만사 다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마리가 고개를 저었다.

“크윽..…. 그렇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하겠습니다.”

"전 이미 여러 번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관두고 자기 인생을 부디 사시라고요.”

"이미..…. 이미 이게 저의 삶입니다. 주인님.”

마리는 다시 전의를 다지며, 올리버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 상태 그대로 펼친 손을 꽉 쥐었다.

콱一!

어디서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올리버의 목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보통 힘이 아니었다. 블랙 슈트에서 기기긱- 소리가 날 정도로 상당한 압력이 들어왔다.

블랙 슈트가 없었으면 단숨에 숨통이 막힐 수준.

‘입자….. 공기 중의 감정 입자를 조종하는 거구나.’

사방 수백 미터를 감싼 감정 입자는 그저 시야를 어둡게 만든 것뿐 아니라 주변을 에워싸 물리적 영향을 끼쳤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마리의 손바닥 안에서 싸우는 것 얼추 비슷했다.

올리버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졌지만, 작지만 수많은 감정 입자는 날파리 떼처럼 잠시 흐트러지기만 할 뿐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꽤 위험하네요.”

순수한 믿음 여덟 개를 소비한 만큼 이 기술은 위험했다.

그리 판단한 올리버는 손으로 자신의 목 부분을 긁어내 마리의 장악력에서 한시나마 벗어난 다음 마리를 향해 증오의 탄환을 쐈다.

파파방——!!

짧지만 정확하게 발사된 증오의 탄환은 마리를 향해 날아가다 천천히 그 추진력을 잃으며 멈춰 섰다.

작은 감정 입자가 무수하게 뭉쳐 올리버가 쏜 탄환을 멈춰 세운 것.

물속에서 쏜 총알이 멈춰진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큰일이 날 것을 알아챘다.

[라스 붐]

올리버가 쿼터스태프 끝에 분노의 폭탄을 터트리며 땅을 내리찍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땅이 뒤집히며 주변이 작은 후폭풍과 흙먼지가 나부꼈다.

시야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올리버는 그대로 이 감정 입자가 없는 밖으로 도망쳤다.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는 모든 것이 마리의 통제 하. 사실상 흑마법이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용한 감정의 양을 봤을 때 다시 사용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고, 올리버는 영역 밖에서 마리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갑자기 나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뒤틀려 올리버를 후려치기 전까진 말이다.

우직! 우지지지지직一파각!!

나무의 수간(樹幹) 부분이 기괴한 소리를 내 움직이더니 촉수와 같이 구부러져 올리버를 후려쳤다.

블랙 슈트로 육체를 둘러싼 덕분에 직접적인 타격은 면했지만, 올리버는 뒤로 날아가 나자빠지고 말았다.

“……감정 뿐 아니라 사물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나요?”

“예!”

감정 입자를 이용해 날아오다시피 한 마리가 손톱을 내지르며 대답했다.

올리버는 가까스로 일어나 피했다.

감정 입자가 지속적으로 압박을 해오는 탓에 물속에서 싸우는 듯 움직임이 둔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큰일이네. 원거리도 근거리도 불리해.’

실제로 올리버의 행동에 제약이 생긴 데 반해 마리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방해도 없었다.

오히려 이동과 같은 직선적 움직임에선 감정 입자를 조류(潮流)처럼 이용해 도움을 받기까지 했다.

일어나 간신히 공격을 피한 올리버에게 다시 마리가 손톱을 휘둘렀다.

캬갸갸강——!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비스듬하게 휘둘러 공격을 막은 다음 근거리에서 해잇 불릿을 쏘려 했다.

"이런..…."

공기 중에 무수히 퍼진 공기 입자가 올리버가 만들고 있던 증오의 탄환에 스며들어 흑마법 완성을 방해했다.

만들고 있는 음식에 소금이나, 설탕, 흙을 끼얹는 것과 비슷.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흑마법 시전 속도가 늦춰줘 올리버의 연계 공격을 망쳤다.

촤라라랑!!

마리가 반대 손을 휘둘러 올리버를 손톱으로 베었다.

아슬아슬하게 뒤로 몸을 뺐지만, 스친 부위는 그대로 찢어발겨졌다.

한두 번은 버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저 손톱에 한 번만 제대로 맞아도 몸이 잘려나갈 기세였다.

"아프실 테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력 있는 흑마법사를 통해 다시 잘려 나간 부위는 다시 붙일 거고, 설사 안 된다 해도 가장 좋은 기계식 의수나, 골렘 의수를 부착해 드리겠습니다. 팔다리 하나 없다고 주인님의 가치가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아..….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제가 착각하는 거겠죠?”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기 중에 퍼진 감정을 재추출했다.

이길 수 없다면 빼앗아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니.

다행히 공기 중의 감정 입자 역시 감정. 올리버의 손에 몰려들며 통제력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걸로一

———촤앙 텅!!!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올리버의 손에 모이던 감정이 터지듯 허공에 힘없이 흩어졌다.

추출 실패가 아니었다. 마리가 원거리에서 간섭해 방해한 것이다.

설마 마리의 조절 능력이 올리버를 뛰어넘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전까지의 싸움을 밀어볼 땐 마리의 실력보다는 올리버의 실력이 더 높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감정의 특성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 감정은 믿음으로 묶인 특별한 감정. 제아무리 주인님이라도 제게서 주도권을 빼앗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오만도, 맹신도 아닌 엄연한 사실.

마리는 이 방대하면서도 강력한 감정과 확실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흑마법이라는 기교를 넘어선 좀 더 근본에 접근하는.

같은 대상을 같은 감정으로 숭배하는 똑같은 감정.

이 강력한 연결고리 때문에 올리버가 빼 오기 쉽지 않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숭배받는 것은 여전히 좀 그랬지만, 덕분에 실로 아이러니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올리버를 숭배하는 감정을 올리버가 다루기 쉽지 않다니.

어쩌면 믿음, 숭배란 감정은 그 대상이 중요하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믿고 숭배하는 그 감정 자체일지도.

“..…그러니, 참 세상은 알면 알수록, 살면 살수록 재밌는 것 같습니다.”

마리가 희망을 품으며 물었다.

“아….. 그럼 저희의 믿음을 인정해주시는 겁니까?”

"글쎄요. 제가 마리나 마리 주변 사람들을 평가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건 뭐라 말하기 쉽지 않네요. 솔직히 지금이라도 화해 하고 헤어져 각자 자기 인생 살아줬으면 합니다.”

마리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어째 올리버는 마리와 자신이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마리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그렇다면-”

-[토드 하우스(Toad House)]

마리가 말을 끝내기 전에 올리버는 마력을 추출해 땅에 주입했다.

마력을 부여받은 땅은 솟구쳐올라 반구형 방어체가 돼 올리버를 감싸 사방으로 보호했다.

당황한 마리는 주변의 감정 입자를 작은 칼날로 만들어 토드 하우스를 분쇄하려 했다.

거대한 믹서기와 같이.

위이이이이이이잉一!!!

절반 정도 토드 하우스가 갈려 나갈 때쯤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과 화염이 일었다.

감정 입자도 무적은 아닌지 강력한 화력에 피해를 입고, 열량에 뒤로 밀려났다.

".....!!"

눈앞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과 화염에 놀란 마리.

그러나 화염 속에서 멀쩡히 튀어나온 올리버를 보고 다시 한번 더 놀랐다.

감정, 마력, 생명력을 뒤섞은 인공영혼을 가미한 블랙 슈트를 입은 올리버가 엄청난 속도를 내 감정 입자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큭!"

눈에 띄게 당황한 마리는 감정 입자를 다시 조종해 올리버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직 콩 크기밖에 만들 수 없었지만, 인공영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공기 중에 작지만 무수히 퍼진 감정의 방해를 무시했다.

감정 입자를 블랙 슈트 내부로 쑤셔 망가트리려고도 시도했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마리는 당황했다. 이 영역을 벗어나면 올리버를 잡기 힘들 테니.

그래서 마리는 자신이 직접 올리버를 쫓아왔다.

인공영혼을 뒤섞은 블랙 슈트는 자연스럽게 출력이 높아져 엄청난 속도를 냈고, 마리 역시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해 따라붙었다.

나무 위를 타고 다니다가 아예 감정 입자로 발판을 만들어 하늘을 뛰어다녀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올리버를 추격했다.

지형의 특성상 마리가 약간 더 빨랐다. 최소한 마리는 그렇게 느꼈다.

감정 입자가 더 이상 닿지 않는 외곽쯤에 들어섰을 때 마리가 흥분하며 올리버를 덮쳤다.

"놓치지 않습니다!!”

코앞의 먹잇감에 매몰된 마리. 그 탓일까?

마리는 올리버의 손에 쥐어진 탐욕과 화염을 보지 못했다.

[탐화(貪火)]

올리버가 화염과 감정을 뒤섞으며 영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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