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란다의 여성들 (3) >
블랙마켓 직원 사무실 옆에서 ‘특수 상품’의 구매를 도와주던 노신사.
그가 올리버를 향해 몸을 틀어 정중히 인사했다.
그에 맞춰 노인의 주변을 지키던 네 명의 덩치들은 정중히 두 손을 모아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들 모두 상당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사님.”
어색한 침묵이 자리 잡던 중 코코가 나섰다.
"날 아시오?”
"예, 저번 파티에서 만나 뵌 적 있습니다. 정보상인 코코라 합니다.”
"아..….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려. 만나서 반갑소.”
정중히 예를 지키며 인사하는 노인.
올리버가 코코에게 누군지 물었다.
"고든 굿하트. 란다 문화.예술협회의 이사이자, 크라임 펌의 이사예요. 겉으로는 은퇴했지만, 아직까지 활동하시고 계신 분이죠.”
흠….. 연륜이 있고, 일 처리도 깔끔해 보통 사람은 아닌 줄은 알았지만, 설마, 크라임 펌 이사일 줄이야.
올리버는 고던에게 사과했다.
"저번에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 이미 은퇴한 몸. 그냥 소일거리로 하던 겁니다. 어찌 됐건 이리 만나서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
올리버가 제인을 봤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원으로 고용됐습니다.”
"아하….."
고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제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가씨. 고든 굿하트라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될지요?”
"제인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인이요? 아….. 혹시, 아가씨께서도 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신 겁니까?”
"예, 방금 지우신 금액을 제가 썼거든요.”
고든은 그림을 뒤돌아보며 흥미를 보였다.
"이 그림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그냥 가장 눈에 띄어서요.”
"눈이 좋으시군요. 꽤 괜찮은 그림입니다. 그림이란 사람의 진심을 담아내는 물건이니.”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사님도 그림을 보러 오셨습니까?”
"오늘은 아닙니다. 경매에 관심 가는 물건이 있고, 또 귀한 손님이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혹시나 해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그림은 젊은 아가씨께 양보하도록 하지요. 이건 돈을 더 내야겠지만, 더 이상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고든이 그림 아래 자기가 적은 금액을 톡톡 두들겼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젊은 분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건 보기 좋죠. 특히, 아가씨 같은. 이 정도 물건이면 미란다 여사도 마음에 들어 할 겁니다.”
미란다. 제인이 경매장에서 선물을 사 바칠 사람이었다.
고든은 아무런 것도 듣지 않았음에도 경험과 관록으로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흠,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경매장에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회원제 경매장?”
"예?”
갑작스러운 제안에 제인이 당황했다. 그와 대비되게 고든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속셈은 있었지만, 그건 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관심 있으실 것 같아서요….. 제 일행으로 가신다면 별문제 없이 출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이 행사에 지분이 있어서 말이죠.”
***
회원제 경매장.
수부렙토르 대형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경매 중 특별심사를 거친 회원들만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경매였다.
회원은 음지 양지를 가리지 않고 란다에서 영향력을 쌓은 이들로, VIP경매와 더불어 경매행사의 메인 디시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제인은 그런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든 씨. 이 친절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입구에서 받은 가면을 쓴 제인이 긴장을 절묘하게 숨긴 채 말했다.
고든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고, 또 두려웠음에도 그녀는 용기와 연기력을 발휘했고, 덕분에 할아버지를 상대하는 손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별말씀을. 그래도 정 고마우시다면 나중에 출세하고 난 후 이 노인을 기억해주세요.”
고든은 블랙마켓에서 일할 때 특유의 딱딱함과 젠틀함을 갖춰 말했다.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든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갔고, 올리버는 주변을 경계하는 동시에 살펴봤다.
이런 장소는 올리버 혼자서 오기 힘드니 최대한 봐 두는 게 남는 게 아니겠는가?
회원제 경매장은 지하에 있었지만, 결코 화려함은 지상에 뒤지지 않았다.
적당한 어둠과 웅장한 빛깔의 커튼 탓에 우중충한 느낌이 들었음에도, 그건 그것 나름만의 운치가 있었다.
중압감, 신비로움과 같은.
주 상품은 장물, 불법 마법 아이템, 고도로 정제된 생명의 영약, 극소량만 제조되는 고급 드러그 등이라 하였지만, 놀랍게도 경매장엔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리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제인과의 대화 도중 고든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올리버에게 심어주듯.
"체면에 신경 써야 하는 분들은 대부분 대리인을 보냅니다. 그래서 직접 참가한 사람은 대부분 그 하수인이거나, 이런 곳 자체를 좋아하는 괴짜, 그도 아니면 이 바닥에 한쪽 발을 걸친 사람이죠. 바로, 저 친구처럼 말입니다.”
노인이 저 멀리 녹색머리 장발 사내를 가리켰다.
진녹색 양복을 그는 키가 켰으며, 얼굴에 담쟁이덩굴 같은 문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머리에 난 작은 사슴뿔이었다.
"드루이드군요.”
"엔조이먼트의 셰이머스라 합니다. 3년 전 해결사 바닥에 등장해 1년 만에 최고 해결사 중 하나가 된 입지적인 친구죠. 현재는 은퇴했지만요.”
올리버는 셰이머스란 남자를 바라봤다.
제인을 지킬 때 상대했던, 스콧보다 더 강인한 녹색빛이 흘러나왔다. 자연의 힘이라고 했던가?
"은퇴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죠?”
"음, 제인 아가씨께서 한번 대답해 보시겠습니까?”
응? 하며 올리버가 제인을 봤다.
놀랍게도 그녀는 셰이머스란 드루이드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거 같았다.
"현재는 시스터후드와 크라임 펌에 소속되어 있죠.”
"그래도 되는 건가요?”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정령술, 자연교감, 수인화 모두 능숙하고, 세계수까지 다룰 수 있는 다재다능한 사람이거든요.”
"맞습니다. 란다에서는 능력만 뛰어나면 뭐든 가능하지요. 덕분에 젊은 나이임에도 시스터후드의 애인을 셋 거느린 채, 그녀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대부업도 하고 있습니다. 크라임 펌의 묵인하에서 말입니다. 요즘에는 자본력도 갖춰 자기와 같은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를 모아 조직도 만들고 있다 하지요.”
올리버는 다시 한번 그를 봤다. 큰 키와 몸을 뚫고 나오는 자신감.….
"대단한 분이군요."
"대단하죠. 동시에 저 같은 늙은이들은 두렵지만요.”
"예?”
올리버가 고든을 봤다. 고든의 말은 진심이었다.
"란다는 무모한 정치력과 자본력이 합쳐져 탄생한 도시입니다. 도시의 탄생 자체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하기에 우린 자유와 도전을 중요시하죠.”
"네.”
"덕분에 기존 체계에 억압받던 초인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마법사, 마력사용자, 전쟁 용병, 드루이드, 흑마법사 수많은 인재 가요. 그 덕분에 이 도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로 인해 변화도 일어났답니다. 초인 중에서도 부를 축적하는 신(新) 계급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요.”
올리버는 과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마법사들이 부를 축적하며, 그로 인해 기존의 란다 시(市)와 자본가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뒷골목이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더 심할지도.
올리버는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쁘지 않은 것 아닐까요?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고든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살짝 웃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은 뛰어난 인재를 모으는 데 집중하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역시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올리버가 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더 나아지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궁극적으로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런 거 싫지 않았다.
"전 란다에서 오랫동안 산 노인입니다. 그래서 그냥 친절은 베풀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 경매를 위해 데이브 씨에게 의뢰를 넣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의뢰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포레스트의 말이 불현듯 지나갔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니, 포레스트 님에게는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아뇨, 화를 내는 건 아닙니다. 내키는 대로 일 받는 게 해결사 특권이니. 그저 제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어줬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즉, 나중에 보답해달라는 이야기.
올리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그거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요. 그럼, 이쯤에서 헤어지도록 할까요? 들어만 오면 누구든 경매는 참가할 수 있으니, 전 더 이상필요 없을 겁니다. 저도 제 일이 있고요.”
"아, 누굴 만나러 오셨다고 하셨지요? 누군지 여쭤봐도 되나요?”
"기프트란 필거렛 아십니까?”
올리버가 움찔했다.
"예, 들어봤습니다.”
"그쪽 물건을 취급하는 브로커가 이번 경매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참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곧 블랙마켓도 재개될 텐데, 물건을 확보해보려고요.”
“기프트의 브로커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아닙니다….. 친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혹시, 상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우리 쪽을 찾아와 주십시오. 손님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고든은 떠났다.
“또 도움을 받았네요.”
고든이 떠난 후, 제인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예?"
"또, 도움받았다고요.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제가 아니라 당신 때문에 여기 안내해 준거였어요.”
제인의 말은 얼핏 듣기에 올리버는 탓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올리버에겐 고마움을 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품었다.
"뭔가..….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인은 올리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가끔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는 해요.”
"무엇이요?”
"이 모든 거요….. 원래는 에디스에게서 받은 재산으로 남은 평생을 편하게 살 계획이었거든요. 시스터후드에 떼어줄 거 떼어줘도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액수라서요. 근데, 이걸로 한번 제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졌어요.”
"대단하시군요.”
"과연 그럴까요?”
"예?”
"괜한 헛지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전 분명 부자지만, 란다에 저만큼 부자인 사람들은 의외로 널리고 널렸거든요. 원체 큰 도시다 보니. 그래서 부자가 되고 나서도 전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
"혹시, 저희 저번에 만났을 때 기억해요?”
"네. 호텔 식당에서 만났죠. 파티 때문에 오셨다고 하셨죠.”
"예, 맞아요. 그리고 피곤하다고 식당으로 대피해 왔었죠. 근데, 거짓말이었어요.”
"......."
"그쪽 세계에 합류해보려 했지만, 거기도 사람 살기 힘든 곳이더군요. 특히, 갑자기 벼락부자 된 사생아 출신에게는요. 그래서 식당으로 잠시 자릴 피했는데, 당신이 거기 있었죠. 얼마나 반갑던지.”
올리버는 그때를 기억했다.
"음..…. 혹시 그때 제가 실수했나요?”
"예, 그때 절 스테이크랑 같이 무시하고 떠났죠. 눈길 한번 안 주고요.”
"아..…."
"근데, 또 이렇게 도움을 받았네요. 역시 전 에디스에게 받은 재산 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지치네요. 쓸데없는 짓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진심. 올리버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아니하고, 잠시 앞을 바라봤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예.”
"아가씨는 초라하거나 부끄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위로 고마워요.”
"아뇨, 진심입니다. 아가씨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걱정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코코 양이나 천사의 집 사람들요.”
"..…제가 이익을 보면 그쪽도 빵가루가 떨어질 테니까요.”
"거짓말을 하고 계시네요?”
올리버의 말에 제인이 움찔했다.
"물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순수한 감정은 아니나, 그렇다고 타산적인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복잡하게 얽혔죠. 아가씨도 그걸 알고 있고요. 전 그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부대껴서 미운 정이라도 들었거든요.”
"전 그렇지 않았습니다."
".....?"
"고아원이나, 광산. 충분히 어렸던 거 같았는데, 다들 미운 정도 안 들고 절 밀어냈거든요. 재수 없다고요….. 그러니까. 아가씨는 그 부분에선 저보다 나은 거죠.”
제인은 그 말에 위로를 얻었는지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이상하네요.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인데,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게. 어디서 책이라도 읽고 왔어요?”
“아뇨, 그런 책은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더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아가씨께서 원래 계획대로 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요. 물론, 아가씨가 무슨 선택을 하든 제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더 예쁘신 거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랑 같거든요.”
"제가 아버지에게 잘 보여 유산 뜯어내려는 거요?”
"아뇨.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요. 계속 웃으려고 노력하고, 친절해지려고 노력하는…예뻤습니다.”
진심을 담은 올리버의 말에 제인의 감정이 살짝 요동쳤다.
기쁨, 슬픔, 감사, 원망, 만족, 불만족 서로 상반되는 감정이 말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가끔씩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올리버는 마저 자신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리고 저번 호텔에서는 죄송합니다.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거 어째 핑계 같아서 마음에 안 드네요.”
"아..…. 그것도 죄송합니다.”
제인이 살짝 웃었다.
"용서해 드릴게요….. 사실, 저도 올리버에게 사과할 게 있거든요.”
“뭐죠?”
"처음 만났을 때 당신에게 마법을 걸려고 했어요. 마법 아이템으로요.”
올리버가 기억을 더듬었다. 곧 기억났다.
"아, 장신구요? 하수도에 들어가기 전에 버린?”
"예. 상대방과 접촉시켜 호감을 높일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거든요. 그때 개수작 부린 거 죄송해요.”
또다시 걸쭉해진 말투. 그러나 어색하진 않았다.
가난한 형제들에 신세 질 때 제인이 얼마나 욕을 잘하는지 들어봤으니.
"아닙니다.”
"하긴, 데이브에겐 이상하게 효과가 없었죠. 지금이라도 다시 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없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믿어보도록 할게요.”
제인의 복잡한 감정은 깔끔하게 사라지면, 그녀의 감정은 만족으로 빛났다.
그와 함께 실내 불빛이 어두워지며 곧 경매가 진행될 단상 위에 불빛이 모여들었다.
웅성이는 사람들. 모두 자기 자리에 앉거나, 뒤쪽에 물러 섰다.
"아쉽네요. 코코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회원제 경매장에 오기 전, 코코는 올리버가 주문한 책을 사기 위해 헤어졌다.
"첫날에 제 책을 사주기로 한 건 약속이었으니까요.”
“째째해라. 알다가도 모를 남자네요.”
잠시 후, 한 경매 사회자로 보이는 사내가 카트에 물건을 싣고 나타났다.
카트 위 물건은 이국적인 골동품.
경매장의 손님들은 안경을 고치거나, 작은 망원경을 들어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올리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손님들은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데 반해, 올리버는 물건을 가져온 사람에 관심을 가졌다는 거였다.
‘....뭔가 이상한데? 저분. 꼭 하수도 뱀 같은..... 크라임 펌에서 주최해서 그런가?’
경매의 시작함에 따라 점차 흥분하는 사람들. 이윽고 무대 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방문해 주신 고객님들 안녕하십니까? 저희 경매장을 찾아와 감사할 따름입니다. 번잡한 허례허식은 생략하고, 바로, 경.…. 경매..…. 경매를?]
고장난 인형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경매 사회자.
모두가 이상함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릴 때쯤 그의 한쪽 머리가 불룩! 하고 크게 부풀어 올랐다. 갑자기 분 풍선과 같이.
그러자 어깨, 가슴, 옆구리 등이 불룩! 불룩! 부풀어 오르며, 이윽고 온몸이 터질 듯 팽창했다.
몸이 폭발하려는 거였다.
당황하는 손님들과 이를 지키려는 경호원.
그 사이에서 올리버가 감정을 추출했다.
[블랙 큐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