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72화 (172/633)

< 172. 란다의 여성들 (1) >

"음.…. 꽤 잘하네요.”

천사의 집. 대기실 겸 휴게실. 코코 양이 말했다.

그녀는 활동하기 편한 면바지와 하얀 셔츠를 대충 입은 상태에서 올리버에게 화장술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기초 크림은 다 발랐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코코는 톤업 크림이란 글자가 새겨진 통을 내밀며 말했다.

올리버가 크림 통을 보며 물었다.

"그건 뭐죠?”

"피부를 좀 더 밝고 깨끗하게 해주는 거예요. 미세한 차이긴 하지만, 피부는 미세함에서 가치가 결정되거든요."

"방금 제가 바른 건요?”

"기초 작업에 들어가기 위한 밑 작업이죠.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르쳐주는데, 계속 말꼬리 붙잡고 늘어질 건가요? 아니면 손을 움직이며 배울 건가요?”

올리버는 그 말에 바로 사과하며, 코코가 시키는 대로 크림 통을 받아 눈앞의 여성에게 시키는 대로 발랐다.

눈앞의 여성은 이곳 천사의 집 직원으로, 화장기술을 배울 올리버의 연습 상대가 되어 줬다.

아까 전부터 뭔가 재밌는지 입꼬리를 계속 올렸다.

"부드럽게 바르세요. 부드럽게. 여성은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는 거 안 배웠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올리버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주변의 여성들은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다들 여기 구경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여기가 직원분들 휴게실 겸 대기실이라 갈 데가 없어서요? 또 신기하기도 하기 때문이겠죠.”

"뭐가요?”

"남성분이 여성 분에게 혼나면서 화장을 진지하게 배우고 있는 게요…. 제대로 바르라니까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호통치는 코코.

올리버는 호통 소리에 맞춰 톤업 크림이라는 것을 정성스레 발랐다.

그 모습을 보며 주변 여성들은 다시 한번 키득거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제인의 의뢰를 수락해 경호를 맡기로 한 것까지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경호 에티켓을 배우라 하지 않은가?

‘장소가 장소다 보니 그쪽 에티켓을 익힐 필요가 있어요. 경호원들도 고용인의 품격과 지위를 나타내는 존재라. 빠르게 속성으로 가르쳐드릴게요.’

솔직히 올리버는 거기까지는 하고 싶은 마음은 또 없었기에 거절할까 했다.

경매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방식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 그때, 코코가 다급히 제안했다.

'배워두면 나중에 유용할 거예요. 거래하죠. 거래….. 혹시 다른 거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하세요. 드릴 수 있는 거면 드릴 테니까.’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화장기술을 가르쳐달라고 그랬다. 정확히는 위장용 화장기술을.

인형사 글립의 일지에서 송장인형을 위장을 위해서 그게 필수라 했지만, 실기 없이 써진 글자로만 익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 말하였는데, 이거 웬걸 놀랍게도 코코는 이를 흔쾌히 수락해줬다. 특기라며 말이다.

"다 발랐습니다.”

톤업 크림을 다 바른 후 올리버가 말했다. 코코 양은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훌륭해요. 재능있네요. 이참에 이쪽으로 나가보는 건 어때요? 때마침 여기 메이크업 기술자가 필요한데요.”

"전 화장보다는 위장을 배우고 싶어서요.”

"화장이나 위장이나 거기서 거기랍니다. 상대방의 눈을 현혹해 속이는 거죠.”

"그럼, 더 배워보고 싶네요. 다음에는 뭐 하면 되죠?”

"커버를 발라줘야 해요. 거기 넓적한 통 열어보세요….. 예, 그거요. 톡톡 쳐서 한 번만 발라주세요. 이렇게요. 얇게 고르게요."

톡. 톡. 톡.

올리버는 코코가 시키는 대로 가루와 액체 사이의 화장품을 두들기듯 발랐다.

"아프신가요?”

"아뇨.”

연습 상대 역 여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 뽀얗게 예뻐졌죠?”

"음.…. 글쎄요?”

"제가 여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한다고 그랬죠?”

"예뻐요."

"훌륭해요. 웃지는 말고요. 고장 난 인형 같아 무서우니까.”

다시 키득키득 웃는 여성들.

그와 함께 코코 양은 나머지 작업도 알려줬다.

눈썹, 눈밑, 코, 이마 부분적으로 화장을 덧대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펜슬과 브러시.

그 위를 마감 처리.

또, 색이 강한 분을 이용해 얼굴에 음영을 줘 생기와 자연스러움을 더했으며, 아이라인으로 눈 주변의 선을 선명하게 잡았다.

마지막으로 뷰러와 마스카라로 눈썹을 정리, 입술 위로 립스틱을 발랐다.

흡사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기분.

"음,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빈말 아니에요. 짧게 가르쳐줬는데, 벌써 배울 줄이야. 대단하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경호업무를 배우고 짧게 배운 화장술이었지만, 올리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습득했다.

이 정도면 시체 같은 송장인형의 얼굴도 얼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약속대로 나중에 테이핑 기술이랑, 고무 가면 만드는 법 가르쳐드릴게요.”

테이핑이란, 얼굴 가죽을 테이프로 당겨 인상에 변화를 주는 기술이며, 고무 가면은 특수 고무를 이용해 맞춤형 가면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실제로 시스터후드에서 교섭인, 스파이 일을 하는 멤버들이 익히는 특수 화장기술로, 낳아준 엄마도 못 알아본다고 그랬다.

‘여기 여자들은 대부분 낳아준 엄마를 모르지만요.’

자조 섞인 블랙 유머.

어쨌건 올리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배우러 오겠습니다. 훌륭한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아뇨, 생각보다 잘 배우셔서 저도 재밌었어요. 그런데, 화장술을 배운다고 경호에 대해 잊은 건 아닌가 싶네요. 제가 가르쳐 준 말 말씀해 보시겠어요?”

"경호원이란, 경호뿐 아니라, 고용인 품위를 높여주는 장신구 역할도 하는 존재입니다.”

올리버가 가장 먼저 배운 사실을 이야기했다.

올리버가 아는 것과 달리 사교모임에서의 경호원은 경호 못지않게 고용주의 품위를 높여 줘야 하는 장신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복장은 정갈해야 하며, 어디서든 빈틈없이 대상을 지켜야 하고, 고용주보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뒤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이 거친 도시에서 고용인의 무력을 대변하는 존재이기에 누구에게도 얕보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렇기에 종종 경호원들끼리 싸움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죠.”

"다행히 그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니에요. 정말 유치한 감정싸움까지 가지 않는 이상은요.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이상한 데서 쪼잔하고, 유치해 없다고도 할 수 없죠.”

"그러니 조심하라고 하셨죠.”

"전부 기억하시는군요. 훌륭해요.…. 그럼, 연습했던 대로 한번 다시 해볼까요? 저를 경호 대상이라 생각하시고."

코코 양의 제안대로 올리버는 코코 양 우측 뒤편에 섰다.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코코 양이 걸었고, 올리버는 교육받은 대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 걸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을 때는 경호 대상이 압박을 받지 않게 적당히 따라 걸어주세요.”

"이해했습니다.”

"먼저 입을 열지 마세요. 경호 대상의 요청이 있을 때만 입을 열어주세요.”

"이해했습니다.”

"경호 대상에게 말을 할 때는 귓속말로 해주시고요. 어떻게 하는지 기억나나요?”

올리버는 교육받은 대로 한 손을 허리 뒤에 댄 채 다른 속으로 입을 가려 짧고, 간결, 정확하게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제인은 만족스러운지 웃었다.

"훌륭해요. 그럼, 옷 갈아입고 갈 준비할까요? 아직 시간은 좀 남았지만, 일찍 준비해서 나쁠 건 없겠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작업복을 벗고, 새로 맞춘 정장을 입으려고 했다.

저번에 코코가 말한 <포 더 젠틀맨>이란 옷가게에서 구입한 맞춤형 정장으로, 코코가 말했던 대로 꽤 비싼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게 특수재질로 안감을 맞춰 방탄과 같은 효과를 냈기 때문으로, 도시의 상류층을 상대하는 부유한 해결사 혹은 용병대 간부들이 주 고객이라 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 올리버도 그 정도 수준까지는 왔다는 걸 의미했다.

"저기요.”

코코가 대뜸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다소 어이없는 거 같았다.

"왜 그러시죠? 코코 양?”

"왜 그러기는요. 여기서 갈아입지 말고, 저기서 갈아입으세요. 운동한 거 자랑하고 싶어도 이러는 건 아니죠.”

빤히 바라보는 여성들 사이, 코코가 탈의실을 가리켰다.

올리버는 그곳을 보다가 ‘아….’하고 탄식을 낸 뒤 들어갔다.

잠시 후, 올리버가 나왔다.

<포 더 젠틀맨>에서 맞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상태로, 민무늬라 눈에 띄지 않지만, 색감과 광택, 옷의 질감에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내 경호복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실제로 근처에 있던 가게 점원들이 ‘호오..…소리를 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짝- 짝-

"다들 그만 가서 일해. 일. 쉬는 거 이제 끝났으니까. 데이브 씨도 이제 저랑 같이 움직이죠.”

"네.”

올리버가 대답하며 코코 양의 안내를 받아 떠났다, 떠나는 도중 다시 작업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가게 여성들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 또 봐요.”

"화장하는 거 잘 봤어요. 재능 있으신 거 같아요.”

"이쪽으로 취직할 거면 여기로 와요. 마마한테 잘 말해줄 테니까요.”

올리버는 그런 그녀들의 말에 일일이 받아주며 나왔다.

같이 가는 코코가 말했다.

"우리 애들 다들 친절하죠?”

"음..…. 예.”

"쿡쿡. 거짓말도 해주시고 친절하네요.”

코코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분들 모두 올리버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했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타산적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싫어하지 말고요. 여자 혼자서 돈도, 배경도 없이 이 거친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 외모를 바탕으로 웃음을 팔고, 잔머리를 굴려야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어요.”

코코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치, 자신도 거기 포함되어 있듯이.

올리버가 코코와 같은 차량에 타고나서 질문했다.

"혹시 이것도 같은 이치입니까?”

“예? 뭐가요?”

"제인을 이렇게 도와주는 이유요.”

코코가 잠시 침묵했다. 고민하는 척이 아닌 진짜 고민하고 있었다.

"음..…. 예. 뭐, 그렇죠. 그 애가 잘하면 저희도 잘 되거든요.”

코코가 말하길 시스터후드는 힘없는 여성들이 모여 생존을 도모하는 단체라 했지만, 규모가 커지고, 자본력도 생기자 초창기 때와 그 성향이 달라졌다고 했다.

"물론, 그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

"시스터후드가 커짐에 따라 저희의 목소리와 힘, 혜택도 늘어났지만, 초창기 뭐랄까 끈끈한 정이 많이 약해졌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해도 선물이 필요하죠.”

그랬다. 제인이 무리해가며 경매장 입장권을 사 참가한 것은 결코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시스터후드의 큰 손 중 하나와 연줄을 맺기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 큰손은 자신과 같은 여성 자산가로 이뤄진 그룹을 이끌어 란다의 자본 시장 중 한 축을 이끈다고 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그룹에 소속된 여성들 역시 이익과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신이 도우신 건지 때마침 그 그룹 내에서 결번이 생겼거든요. 제인이 만약 들어간다면 이는 큰 힘이 될 거예요."

"흠..…. 그럼 비싼 물건을 사야겠네요.”

"꼭 비쌀 필요는 없어요.”

“그래요?”

"예, 이미 부자이거든요. 그분이 선물을 받는 이유는 상대방의 안목이나 수완을 보기 위해서예요. 저평가당하는 물건을 알아볼 줄 아는가? 혹은, 잠재 가능성이 높은 물건을 볼 줄 아는가? 것도 아니면 자기 능력 이상의 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가? 같은요.”

헤..….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굳이 절 고용하실 필요가 있나요? 차라리 절 고용하는 비용을 아껴 물건을 더 사는 게 더 이익일 거 같은데요.”

코코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란다는 세계 최고의 도시인 동시에 폭력에 지배를 받는 야만적인 도시인 건 알죠?”

"잘 몰랐는데, 이제 알았네요.”

“흐흥..…. 어쨌건 상류층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상류층은 자신들의 재산, 영향력뿐 아니라 경호원이라는 명목의 사병들을 통해 힘을 과시하려고 하죠. 대놓고 위협하진 않지만, 더 음험하게 사람을 협박한답니다.”

"경매장에서도 그렇고요?”

"비일비재하진 않지만, 일어는 나요. 그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데이브 씨를 고용한 거예요. 저희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강하고, 믿음직스러워서요."

놀랍게도 코코는 진심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런 태도는 고치는 게 좋을 거예요.”

"네?”

"선심으로 우릴 도와주는 거 아니까 조언해 드리는 거예요. 란다에서는 겸손은 미덕이 아니거든요.”

"겸손해 보이려고 한 건 아니지만, 조언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코코가 요상한 사람이라도 본 표정을 지으며 주제를 바꿨다.

"어쨌건, 제인이 그쪽과 연이 닿으면 제인과 친한 우리에게도 빵부스러기가 떨어질 테니, 이렇게 팔 걷어붙이고 돕는 거예요."

"정말 그거뿐인가요?”

가볍게 툭 던진 질문에 코코의 표정이 잠깐 동요했다. 아주 잠깐.

"어머, 싫다. 란다에서 그런 감성적인 이야기는 열여섯 살까지만 할 수 있어요..…. 아, 이제 도착이네요."

제인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이 한 저택 앞에 차를 댔다.

저택 앞에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제인이 보였다.

"아,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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