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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169화 (169/633)

< 169. 이별 (2) >

"꼭..…. 꼭 다시 만나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뵐게요.”

멀린의 대저택 지하실.

로스번이 올리버에게 소리치며 보조장치로 발동된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내 부탁 들어줘서 고맙네.”

그 포털 옆 멀린은 한 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머물 원소학파 지부의 관계자인 것 같았다.

나이가 제법 되고, 마력도 상당해 다소 지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으나, 그는 시종일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멀린의 말에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감정은 존경, 두려움, 어려움, 동경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빛났다.

“..…아닙니다. 이리 불러주신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맡기신 일은 기쁜 마음으로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는 아이들을 배웅해주는 중간중간 멀린과 마법사의 대화를 지켜봤다.

꽤 신선했다.

올리버가 만나본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심이 강해 늘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했는데, 저리 숙이는 걸 보니 낯설기까지 했다.

마법사들 간의 서열이 엄격한 것일까?

흑마법사와 비슷한 데가 없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랜-”

“-지금은 은퇴한 늙은이일 뿐이네. 그냥 멀린이라고 부르게.”

"예? ..…제가 어찌 감히.”

"음, 그런 어르신이라고 부르던가. 그 단어도 듣기 좋더군.”

"어르신. 생명학파와 근래 무슨 문제가 있다 하던데-”

“-요점만 간단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포털 유지비가 장난이 아닌지라. 난 가난한 노인이라고.”

"아, 죄송합니다. 그럼, 복귀는 언제..…."

"그건 좀 더 있다가 내가 이야기하도록 하지.”

"아, 예. 죄송합니다. 그럼….”

알 수 없는 대화를 마친 마법사는 정중히 고개 숙이며 올리버를 슥 보고는 포털로 들어가 버렸다.

올리버를 볼 때의 감정은 의아함, 의심, 질투, 언짢음이 뒤섞여 썩 좋다고 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혹시, 이걸로 애들한테 피해가 갈까 싶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올리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알아서 해야 했다. 좋든 싫든 말이다.

우우웅 거리던 보랏빛 포털로 마법사가 들어가자 포털의 입구는 점점 작아져 작은 마력덩어리가 되더니 이윽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팍- 하고 꺼지는 게 흡사 전구와 같았다.

"아이들이 걱정되나?”

포털이 사라진 자리를 빤히 바라보는 올리버에게 멀린이 물었다.

"아뇨.”

"그래?”

"예, 어차피 제가 걱정한다고 도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기회가 주어졌으니, 여기서부터는 저분들의 몫이죠."

"냉정하군.”

"그런가요?”

"하지만 좋은 태도야.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니까….. 그건 그렇고 뭘 그리 보나?”

"아.… 포털 보조 장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역시 편리해 보이는군요.”

"편리하지. 공간학파가 규모나 역사가 다른 학파에 비해 모자람에도 현재 가장 유망한 학파인 것은 괜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지.”

"그런가요?”

올리버가 놀라며 물었다.

해결사 일을 오래 했음에도 아직 마법사들 쪽으로 아는 게 없었다.

아직까지 이쪽 바닥에서 마법사는 귀한 인력이기에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한데 뭉쳐 취급했다.

"물론이지.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시간, 공간, 거리와 싸움을 벌이고 있거든. 그런데, 공간학파는 그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마법이야. 물론, 개선점이 많긴 하지만.”

"개선점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죠?”

멀린이 양손을 들며 말했다.

"술식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진정한 마법이란, 저런 보조도구 없이 마법사 본연의 마력과 능력으로 발동시켜야 하는 법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멀린이 저택 지하실 포털 보조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머피의 마법주 공장을 지킬 때도 공간학파 마법사가 있었다. 아마 화살 따위의 보조도구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조도구 없이 포털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공간학파 내에서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야. 10명 중 3명 정도? 거기서 거리와 이동 시킬 수 있는 양을 고려하면 더 줄어들지.”

공간학파인데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정도라니. 꽤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힘들다는 거야. 마력을 다루는 조절 능력뿐 아니라 엄청난 마력량도 요구하거든. 섬세한 이미지와 반대지.”

"마력량은 어째서죠?”

"포털이 열렸다고 그냥 이동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포털 사이를 지나가는 무게, 질량, 에너지 등등이 늘어날수록 포털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마력을 요구해. 그쪽 업계에서는 ‘이용료’라고 부르지.”

이용료라.… 자세한 이치는 알 수 없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가 됐다.

포털이란 크기만 키우면 뭐든지 편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만능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통로의 크기를 키우는 것과 별개로, 이동량, 거리 등 신경 써야 하는 요소가 많았고, 거기에 맞춰 조절 능력과 마력량 등 요구하는 것도 많았다.

"그런 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대단하군요."

"꼭 마치 써본 사람처럼 이야기하는군.”

"......."

“……써 봤나?”

"어.…. 예,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

올리버는 만들어 놓은 여분의 종이를 꺼냈다.

하나는 오른손, 하나는 왼손에 들어 그대로 발동시켰다.

우우우……촹!….웅웅웅.

종이 위에 형성된 두 개의 포털.

멀린은 말없이 포털을 관찰했다.

멀린의 감정은 마력의 벽에 가로막혀 읽을 수 없었지만, 표정을 봤을 때 제법 진지해 보였다.

"......흠."

한참을 관찰하는 도중 멀린은 손끝에 마력을 구슬처럼 모아 톡 하고 던졌다.

그저 마력이 뭉친 구슬로, 위험하진 않았다.

천천히 날아온 마력 구슬은 올리버의 포털에 들어가 반대쪽으로 나왔다.

우우우웅一팍.

포털의 마력이 다하며 작게 수축한 후 사려졌다.

"어떻게 만들게 된 거라고?”

올리버는 사용한 종이를 접어 품 안에 넣은 후 다시 말했다.

공간마법의 유용성을 보고 자신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몇 번 시도한 끝에 이렇게 만든 거라고.

멀린의 말대로 보조기구 없이 먼 거리까지 포털을 만드는 건 어려워 종이를 매개로 사용하는 방법을 쓰게 됐다고 했다.

"날 흉내 냈다고?”

"예, 종이를 이용하시는 방법이 아주 인상 깊었거든요. 혹시, 불쾌하십니까?”

멀린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불쾌한 건 아니야. 그냥 신기해서. 흉내 내겠다는 거랑 실제로 흉내 내는 건 엄연히 다른 거거든?”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멀린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좌우로 흔들며 다시 대화를 이었다.

“..…그보다 사용해봤다고 했지.”

"예, 켈 자유독립군. 제압 당시 송장인형 1구를 이동시켰고, 이후, 사람 두 명과 좀비 3구, 저. 이렇게 4회 사용하였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아까 전에 말씀하신 이용료가 부족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운이 좋구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이용료가 부족하면 어떻게 되지요?”

"포털이 폭발하거나,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사라질 수 있어.”

"알 수 없는 공간요?”

"그래, 앞서 말했다시피 공간마법은 역사가 짧은 편이거든. 연구해야 할 범위가 넓어."

“아….. 그렇군요.”

"앞으로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구만.”

"예? 어째서인지요?”

"왜, 아쉽나?”

"예, 많이 편하거든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작정 중 도주나, 이동이 훨씬 유리했으니.

그뿐 아니라 전투에서도 상당한 의외성을 발휘했다.

던칸을 소환해 근접전이 서툰 적을 제압할 수 있었고, 종군 마법사의 경우 좀비로 발목을 붙잡았으니.

"아쉽겠군. 그래도 자제하길 권하지. 마텔.… 아니, 생명학파와 어찌어찌 조용히 마무리했지만, 거기 늙은이가 집착이 좀 강하거든. 자네 재주가 많다는 걸 알면 귀찮게 굴 거야. 명령하는 건 아니지만, 날 봐서 일단 사용을 자제하게.”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제가 사용하는 걸 보거나 아는데 그건 괜찮나요?”

"누가 봤나?”

올리버는 아서와 종군 마법사를 이야기했다. 임무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종군 마법사?”

"예. 검은 머리에 붉은 피부를 가지신 분입니다. 원소학파라고 하시던데, 혹시, 아시나요? 이름은 케빈 던바입니다.”

"그 친구가 이름도 가르쳐줬나?”

"아시는 사이신가요?”

"그래, 재능이 특출나 홍인(紅人)임에도 불구하고 원소학파에 들어온 녀석이지….. 자존심이 보통 강한 게 아니라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경우가 없는데, 어지간히 자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뭣 때문에 싸운 거라고?”

"음, 죄송하지만, 그건 임무 특성상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애당초 이야길 하지 말았어야지.”

"어르신한테 거짓말하긴 싫거든요. 어찌 됐건, 제 임시 스승님이지 않습니까?”

"임시 스승이라니, 퍽 감동스러운 단어군.”

"다행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분은 너무 파고들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칭찬한 거 아니야….. 싸움이 어땠는지 말해주면 그 부탁 들어주지.”

멀린이 노트에 뭔가를 적으며 말했다.

꽤 진지해 보여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종군 마법사 케빈과의 전투를 서술했다.

올리버에게도 나름대로 인상 깊은 싸움이었기에 제대로 서술했고, 멀린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받아 적었다.

"케빈의 마력을 흡수했다고?”

“예…... 정확히는 추출만 하려 했는데, 케빈 씨께서 억지로 몸 안에 넣었습니다. 과부하에 걸리게 한다고.”

"정석적인 방법이지. 근데, 멀쩡했고?”

"예….."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목덜미가 당기거나, 현기증, 체온상승 아무것도?"

"일일이 체크는 안 했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멀린은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웃옷 좀 벗고 잠시 뒤돌아 앉아보게. 확인할 것이 있으니.”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웃옷을 가지런히 벗어 옆에 걸어놓은 뒤 뒤돌아 앉았다.

멀린은 손끝에 마력을 모으더니 올리버의 몸에 댔다.

마력이 올리버의 몸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마력을 실처럼 퍼트려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특수한 술식을 부여해 올리버의 몸 안에 들어왔다. 이내 서서히 사라졌지만.

"........"

"......."

“..…어르신?”

"이런.”

"왜 그러십니까?”

"내가 많이 피곤한가 보군. 나중에 다시 알아보지."

"예?"

"왜 나라고 실패하지 말라는 법 있나? 늙은이에게 가차 없군."

"아뇨, 그런 뜻이-”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말대답하지 말게. 예의 없으니.”

"......."

"어허, 어른을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아니야….. 어쨌건 오늘 많이 피곤하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갑자기 이야기를 끝내는 멀린. 그러나 올리버는 의아해하면서도 멀린의 감정을 읽을 수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피곤하다는 말과 별개로 포털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보조도구의 힘도 없이 순수히 자신의 마법으로.

공간학파 내에서도 쉽지 않은 것인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멀린의 마법은 그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학파의 경계가 없었다.

얼음, 번개, 공간 모든 학파의 마법을 마치 제 마법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뤘다.

"왜 그러나?”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실례네. 늙은이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가게,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이란…….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마치 마당에 있는 새를 내쫓듯 멀린은 올리버의 등을 밀어 포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올리버는 이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고.

올리버가 떠난 후 포털이 사라지자, 멀린은 피곤하다는 말과 달리 몸을 우두득 풀곤 올리버와 대화하던 사이 작성한 노트를 마저 작성했다.

작성을 마치자 멀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노트를 빤히 바라보더니 책상 위에 놔두고 찻장에서 술을 한 병 꺼내 따랐다.

노트에는 두 문구가 눈에 띄게 쓰여있었다.

[법칙을 벗어난 마법 사용]

[끝이 보이지 않는 마력 탱크]

후-

술을 한 모금 마시곤 멀린이 중얼거렸다.

“무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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