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뒤처리 (3) >
제인과 대화 도중 포레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한 이유는 당연히 일에 관한 것.
[데이브 나일세.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지. 시(市)와 대화는 잘 풀렸네. 혹시나 하는 사태는 없을 걸세..…. 정산도 끝나 보수도 지급하기로 했고, 다만, 자네와 만나 직접 전해주고 싶다더군….. 그래, 말로는 시를 위해 봉사해준 것에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는데 아마 이것저것 찔러보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거절하는 것도 힘드니 내가 말한 곳으로 가 줄 수 있겠나? ....그래, 고맙군.]
통신장치를 통해 대화하는 것이라 포레스트의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없지만, 아무래도 시와 대화는 정말 잘 풀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의 임무를 위해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이야기인데, 그것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니…..
뭐, 고민한다고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올리버는 잡생각을 뒤로 미루고 포레스트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호텔 근처에 있는 한 카페였다.
"이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그 앞에 안은 시(市) 공무원 폴 카버가 인사했다.
그는 차와 파이를 먹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 공무원님.”
"그냥, 카버라고 부르세요. 앉으시겠습니까?”
정중히 자리를 권하는 카버. 올리버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장소를 잡았습니다. 그게 편하실 것 같아서요.”
실제로 카버의 말에 따라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구역이 구역이다 보니, 노신사, 부인 등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테이블 위로 차나 커피, 케이크, 스콘 등을 가득 채워 먹고 있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주위에 몇몇, 일반인이 아닌 분들도 있네요.”
카버는 눈썹을 살짝 올려 감탄을 표했다.
"눈이 좋으시다 하더니 정말인가 보군요. 생각을 읽으신 겁니까?”
"아뇨,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분들이 눈에 띄어서요. 전부, 카버 씨를 주시하고 있네요.”
“….특수한 공무 중에는 규정상 따라붙는 분들이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길. 험한 도시이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전 별다른 보호 수단도 없는 일반인이고요.”
글쎄….. 올리버는 그 말에 의문을 가졌다.
카버가 무슨 힘을 숨기고 있다는 이야긴 아니었다.
물론, 그런 가능성도 있지만, 마력량이나 생명력은 일반인들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올리버가 의문을 가진 것은 그의 감정 상태였다.
이상한 말일 수 있으나, 그의 감정은 참으로 견고했다.
해결사나, 갱 등 뒷골목 인생을 사는 사람들조차 간혹 감정이 흔들릴 때가 있었건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했다. 성벽을 두른 듯.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마음이 강인한 사람 같았다.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포레스트 님은 하지 말라고 하셨긴 한데, 너무 궁금해서요.”
"말씀하시죠.”
"일을 맡긴 해결사를 해치우는 경우가 진짜로 있습니까?"
갑자기 얼굴에 주먹을 날리듯 훅 던진 질문.
올리버에게 악의는 없었으나, 주먹은 주먹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을 붉히고, ‘큼, 큼.’ 헛기침을 할 질문이었으나, 카버는 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경우라고는 못하겠군요. 손으로 셀 정도긴 합니다.”
진심.
올리버는 ‘아’하고 소리 냈다. 불쾌함이나 분노가 아닌 그저 질문을 들은 것에 대한 반사적인 감탄사였다.
"순수히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그러는 거죠?”
"음….. 동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기누설(天機源法)”
"무슨 뜻이죠?”
"하늘의 비밀이 새어나간다는 뜻인데, 보통 하늘은 이를 막기 위해 비밀을 아는 자를 죽인다 합니다."
"그건 또 왜 그런 거죠?”
"글쎄요. 전 개인적으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요?”
"예, 짧게 예를 들어볼까요? 이 가게를 둘러보십시오. 종업원들과 손님으로 구성되어 있죠? 손님들은 돈을 내고, 종업원은 서비스와 제품을 내놓죠.”
올리버는 가게를 둘러봤다. 카버의 말대로 손님들은 나갈 때 돈을 내고, 종업원은 차와 케이크를 날라줬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손님들이 돈을 안 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게는 엉망이 되고 말겠죠?”
“예.”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가 더 크고, 역할이 복잡해도 기본적인 시스템은 이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죠. 란다 시(市)는 란다 시(市)의 일을 하고, 왕가와 중앙의회 역시 각자의 역할을 하죠. 때때로 삐걱거릴 때도 있지만, 어찌 됐건 서로가 있기에 가게가 유지되는 겁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될 거 같았다.
란다 시(市)가 왕가와 중앙의회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뜻 같았다.
"임무 중 알아낸 이야기를 제가 떠벌리면 그 시스템이 위험할 수 있고요?”
“위험이라….. 그보다는 조금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는 거로 정정하죠. 란다에 사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진실은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걸. 힘 있는 존재가 말해야 좀 먹힙니다."
"그럼, 애당초 절 신경 쓸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요?”
"높으신 분들은 작은 위험도 원치 않으시거든요. 대담하지만, 동시에 소심하죠.”
그때, 가게 종업원이 쟁반을 가져와 올리버 앞에 있는 잔에 커피를 따라주고, 바노피 파이를 주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제가 주문한 겁니다. 드셔보시죠. 파이가 유명한 가게거든요.”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파이를 한입 먹었다.
“…맛있군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전 파이가 좋거든요…. 어쨌건 제가 하고픈 말은 저희 시(市)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한 적이 몇 번 있지만, 데이브 씨에겐 해악을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저희도 신용이란 게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지 않거든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하는 극약처방입니다.”
어느 정도 진심.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카버는 의아한 감정을 빛내며 말했다.
"예, 다소 위험할 수 있었으나, 잘 이야기해 별문제 없이 끝났다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그럼 됐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말씀해주신 천기누설과 시스템 이야기도 재밌었고요….. 이왕 가르침을 받았으니 질문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죠?”
"그럼, 커피값은 낮춰지는 겁니까?"
올리버가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가리켰다.
“..…재밌는 분이군요.”
"그런가요?”
“예….. 커피값은 그대로 일 겁니다. 바로 쓰지 않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아껴놓을 생각이거든요.”
"그렇군요. 아서 씨가 그럴 거라 하기는 했죠.”
카버가 잠시 올리버를 보다 입을 열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커버는 그 말과 함께 품 안에서 새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안을 열어보자 통장과 인장이 있었다.
에디스 때와 같은 골드 스미스 은행의 무기명 통장으로, 그때와 마찬가지로 통장에는 예상을 초과한 액수가 찍혀 있었다.
“카버 씨. 이거 액수가 이상한데요?”
"안 이상합니다. 시(市)는 돈 계산이 철저하거든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제가 받을 게 이 정도는 안 될 텐데요? 너무 많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번 시외(市外) 임무의 성공보수는 10억 란다.
그 외에 더 받을 것은 폐소각장 습격 때 덜 정산받은 현상금이었다.
올리버도 근래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일이 끝날 때마다 돈 계산을 해뒀다.
당연히 받을 보상금도 계산해 봤고. 하지만 통장에 찍힌 액수는 그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이에 관해 묻자 카버는 담담히 말했다.
"아서 씨에게 데이브 씨가 얼마나 활약했는지 들었습니다. 수색에서 협상, 마지막 몸을 바쳐 모두를 지켜준 것까지.…. 데이브 씨가 없었으면 일 자체가 성공할 수 없었을 거라 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아뇨, 아서 씨가 그리 말했으니, 과찬이라 하기 힘들죠. 그 사람은 그런 문제에 관해서 칼 같거든요. 일에 기여도와 가져온 성과를 고려한 보너스입니다. 그걸 빌미 삼아 뭘 요구할 건 아니니 그냥 안심하고 받으셔도 됩니다.”
그쯤 말하자 올리버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이사를 계획하고 있어 돈은 많을수록 좋았다. 굳이 챙겨주는 것까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걸로 확실히 중산층 거주지로 옮길 수 있을 듯했다.
"아, 정정하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아.…. 무엇이죠?”
"임무 중 들은 이야기를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 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헛소문으로 치부 당할 수 있지만, 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거든요. 비밀 값이라고 해두죠.”
"예,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어려운 건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입 다물도록 하겠습니다.”
얼추 이야기가 끝나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커피도 파이도 다 먹었으니. 카버의 말대로 맛이 좋았다.
양해를 구하고 나가려는 찰나 카버가 불러 세웠다.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데이브 씨는 왜 해결사 일을 하는 거죠?”
숨은 속셈이 있는 질문. 그러나 악의는 없었다. 그저 타산적인 계산만 있을 뿐.
올리버는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아 솔직히 대답했다.
"세상을 알고 싶거든요.”
***
외근을 마친 후 카버는 자가용을 타고 일터로 복귀했다.
란다의 공무원들은 꽤 괜찮은 연봉과 복지를 받지만, 그 대가로 조기 퇴근과 휴가는 꿈도 못 꿨다.
그래서 가끔씩은 이런 외근이 즐겁기도 했다.
위험할 수 있지만, 근무 시간 중 바깥에서 먹는 차와 파이의 맛은 각별했기에.
도착하자마자 카버는 자기 사무실이 아닌 내무부 총책임자가 있는 꼭대기 시(市) 장관실로 갔다.
건물 꼭대기 중앙에 위치한 장관실은 흡사 체스판의 왕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똑- 똑-
카버가 문을 두들겼다.
잠시 후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렸다. 반응만큼이나 목소리도 맥아리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문을 열고 들어간 카버는 무기력해 보이는 중년 사내에게 인사했다.
그는 놀랍게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의 장관이었다.
최대 목표라고는 별일 없이 자리나 지키는 게 전부인 늙은이인데..….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왔어?”
"예."
"일은?"
"잘 마무리했습니다.”
장관은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안하지 않아?”
"......."
"혹마법사잖아? 굳이 위험한 걸 알고 있는데….. 응? 필요 있나?”
그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은 채 카버를 압박했다. 혹시나 귀찮은 일이 발생해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말이다.
카버는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일단 지켜보는 게 나을 거라 판단됩니다.”
"지난 며칠 동안 데이브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위험인물로 판단되는 행보는 없었습니다.”
사실 반은 거짓이었다.
오염 구역 건도 그렇고, 송장인형을 다루는 등 위험하지는 않을지언정 수상쩍은 데는 있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내치기 아까운 사람인 것도 맞았다.
임무 성공률 100퍼센트에, 이 바닥 군상들처럼 잔대가리를 굴리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다행히 장관은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모든 일은 실무진에게 맡기고 파악조차 안 하니 당연한 거였다.
"그렇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장관님. 흑마법사긴 하지만, 그 외에 눈에 보이는 위험 요소는 없습니다. 특히, 이번 건에서는 종군 마법사와 싸워 시간을 끌었다고 합니다.”
"종군 마법사?”
"예…..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아서의 보고에 따르면 종군 마법사의 발목을 잡고, 자력으로 탈출까지 했답니다. 그것만으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시의원님들도 그걸 원할 거고요.”
시의원. 그 마법의 단어를 이야기하자 장관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자기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이들이었으니.
"그렇단 말이지….. 그럼, 아예 프로젝트에 넣는 건 어때?”
"이미, 운을 띄워 봤지만 거절했답니다.”
"그래? 건방지군. 길바닥 인생인 주제.”
"너무 노여워 마시지요. 아쉽긴 하지만, 흑마법사를 공공기관에 넣는 것도 그렇고, 이번 프로젝트의 성향과도 맞지 않으니 아까워할 것은 없습니다.”
"......."
"프로젝트의 핵심은 뛰어난 개인을 모으는 게 아닌 강력한 조직을 만드는 것. 차라리 해결사 조합에 맡겨둔 채 필요할 때 요청하는 게 더 싸게 먹힐 겁니다.”
"음….. 그래?”
"네. 장관님.”
"뭐,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군. 자네가 그렇게 보증한다면 말이지..... 수고했어. 나가 봐.”
카버는 정중히 인사를 하곤 장관실 밖으로 나갔다.
전체적으로 무능한 인간이었지만, 자기 보신만큼은 잘 챙겼다. 그 와중에 카버가 올리버를 보증한 것으로 몰아가다니.
아마, 그쪽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다 뒤집어씌울 터였다.
뭐, 별수 있나.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기 조심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아, 신이시여..….
카버는 사무실에 돌아와 널브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일할 때는 너무 바빠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진짜 뭐 하는 양반인지…..”
카버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떠보기 위해 올리버에게 왜 해결사를 하는지 물어봤는데, 그는 뻔뻔하게도 세상을 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식민지는 왜 생기는 건지, 빈자는 왜 생기는지와 같은 학자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했다.
돈만 주면 사람을 죽이는 그 바닥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대답. 그렇지만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
"..…뭐, 계속 이 도시에 있으면 알 수 있겠지.”
카버는 복잡한 머리를 한쪽으로 밀며 서류를 마저 정리했다.
탁탁, 종이들을 모아 오와 열을 맞추며 카버는 다시 한번 맨 앞 장을 읽어봤다.
<시 프로젝트 : 란다 특수 보안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