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뒤처리 (1) >
종군 마법사와의 전투 후, 올리버는 이틀 동안 소도시 버러통에 머물렀다.
생각보다 일이 거칠어서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하루는 도시를 둘러봤는데, 도시는 보통 난리가 난 게 아니었다.
그리 멀지 않은 외곽에서 반군들이 날뛰었다는 소문이 이미 도시 전체에 퍼진 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전염병 같은 불안감에 감염되었다.
뭐, 꼭 그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퍼진 불안감을 따라 사람들은 곧잘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눠 자신의 불안함을 퍼트렸으니.
덕분에 사람과 어울리는 재주가 부족한 올리버도 손쉽게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반군 놈들이 사악한 흑마법사와 결탁했대. 아주아주 사악한!’
'듣기로는 검은손의 간부라 하던데? 손가락이라던가?’
‘주변을 순찰하던 왕국군이 수십 명은 족히 당했다 하더이다.’
'아냐! 수백 명이라던데?’
온갖 괴소문이 난무했다.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올리버로서는 허무맹랑할 뿐.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아주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흑마법사와 손을 잡은 것도 맞고, 왕국군이 죽은 것도 맞았으니.
묘한 부분에서 과장이 됐달까?
그렇지만 그중 가장 허무맹랑한 것은 산을 홀라당 태운 화재에 관한 것으로,
분명 올리버와 종군 마법사가 싸울 때 그리된 것일 텐데, 어느새 반군이 밀수한 위험한 무기로 그렇게 됐다고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바다 건너서 밀수한 대량살상무기래.’
‘흑마법사들이 팔았다던대?’
‘땅이 오염됐을 가능성도 있대. 으미, 무서워라.’
‘이번에 반군을 쓰러뜨린 게 그 대량살상무기를 막기 위해서라 하더이다.’
어느새 반군은 테러를 준비하다 왕국군에 제지된 것으로 되어있었다.
올리버는 이때 인위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란다 감옥이 습격당했을 때와 같은 인위적인 냄새.
왕국 쪽 사람들도 란다처럼 이틀 만에 수많은 거짓말을 양산해 진실을 입맛에 맞춰 바꾼 거 같았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생각이나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반군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건 올리버로서는 딱히 상관없었으니.
그럼에도, 굳이 하나 말해보라면 ‘사람들이 의외로 소문을 잘 믿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불안감으로 판단력은 저해되고, 그로 인해 스펀지처럼 모든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믿고 싶던가.’
여하튼, 그렇게 이틀을 보낸 후, 올리버는 아서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 씻고 온 건지 왕국군을 따돌리다 온 것치고는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에 관해 묻자, 켈 자유독립군 협력자들에게 의탁해 씻고 왔다고 했다.
그만큼 친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지만, 아서는 올리버 덕분이라고 했다.
올리버가 종군 마법사의 발목을 잡아준 덕분에 그쪽도 그만큼 도와준 거라고.
그저 할 수 있는 걸 한 올리버로서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서와 같이 돌아갈 수 있다는 거였으니.
그도 그럴 것이, 임무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른 채 혼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었다.
"뭐 하나 여쭤볼 수 있을까요?”
"말하게.”
"잔금은 받으셨나요?”
“잔금..... 받았네.”
"그럼, 저도 알 수 있을까요?”
"음..…. 여기서는 좀 그렇고, 가면서 이야기해줘도 되겠나?”
***
올리버와 아서 일행은 란다에서 버러통으로 왔을 때처럼, 운송 트럭을 타고 란다로 되돌아갔다.
트럭은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두 대.
타는 구성 역시 왔던 때와 똑같이 올리버와 아서가 같이 탔다.
부으응 거리는 차 소리와 짐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를 뒤로하며,
아서는 약속대로 윌레스에게 들은 잔금을 이야기해줬다.
"에드워드 10세.”
“예?”
"윌레스가 말한 악마 숭배자는 에드워드 10세라고 하더군.”
에드워드 10세라….. 올리버는 그 이름을 본 기억이 있었다. 언제였더라..…아!
"혹시 현재 왕세자인 에드워드 10세인가요?”
"오, 아는구만.”
에드워드 10세.
연합왕국의 왕세자이자, 왕가의 이슈 메이커.
올리버가 그를 아는 것은 신문을 통해 관련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사랑받는’이란 수식어를 가진 그는 사랑을 너무 받아서인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그 덕분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신문에 등장했다.
노스인은 무식해 광산일이 딱이라던가, 드루이드가 사는 숲은 경제를 위해 밀어야 한다 등 수많은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근래에는 유부녀들과의 스캔들로 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됐다.
"애인의 남편 집에서 밀회를 가지다 알몸으로 도망친 일도 있었지. 그 에드워드 10세 맞아.”
"그분이 악마와 거래하고 있는 왕가 일원이라고요?”
"윌레스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군.”
"그렇군요..…. 이유가 뭔가요?”
"그건 못 들었어. 윌레스도 모르겠다더군. 휴잇은 그저 세계수에 접속해 왕실 주변을 엿볼 뿐, 자세한 내막까진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어."
딱히 할 말이 없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서 역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침묵했다. 감정이 영 복잡해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왕가 인사. 그것도 에드워드 10세란 사람이 악마와 관련되어 있다는 게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올리버는 그런 아서를 보며 질문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질문했다.
"그게 란다에 도움이 될까요?”
".....음?"
"란다에 도움이 될까요? 저희가 얻은 정보가요? 도시 관세를 낮출만한?”
아서는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자넨 참 특이하구만.”
"예?”
"엄청 대단한 거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애 같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그렇습니까?”
"그래..…. 만약, 윌레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고작 도시 관세 낮추는 용도로 쓰일 사항이 아니야. 비밀 무기로 챙겨 놔야 하는 수준이지.”
"비밀 무기요?”
"중앙 의회나 왕가가 란다를 위협할 때를 위한 비밀 무기 말일세.”
아서의 목소리는 막연한 불안이 아닌, 어떠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일어난다는.
아서가 갑자기 이야기 주제를 바꿨다.
"어쨌건,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무슨 말씀이시죠?”
"이번 일을 수락하고, 도와준 것에 관해서. 내가 아무리 얼굴 가죽이 두껍다지만 양심이 있는 이상 고맙다는 인사를 안 할 수 없지. 진심으로 고맙네. 자네 덕분에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칠 수 있었어.”
"아닙니다. 어차피 저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난 그 이상이야.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받을 수 있게 됐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거요? 아, 그러고 보니 시 프로젝트에 참여하신다고 했죠?”
임무의 참가하기 전 올리버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경찰국과 시(市) 방위군과 별도의 무력 집단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사실이라는 것과 거기에 아서가 참가했다는 걸.
포레스트에 말에 따르면 안정적인 수입과 장비 지원, 란다 내에서 나름대로의 정치적 힘이 생기는 것이니 지향점에 따라 거기 참여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 대가로 자유는 사라지고, 시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 했지만.
"자네 덕분에 프로젝트에서 내 위치가 보장됐네, 내 팀을 꾸릴 수 있을 정도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볼 생각 없나? 아, 오해는 말고. 내 밑에 들어오라는 이야기는 아니니.”
진심.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나, 올리버는 호기심에 물었다.
"저요? 왜 그러시죠?”
"난 반대로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묻고 싶군. 종군 마법사와 싸울 수준인데, 일개 해결사로 남는 게 더 이상하지. 능력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힘들어. 구조상으로.”
아서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농담도, 이빨 까는 것도 아니야. 이번 임무의 특성상 종군 마법사와 싸운 소문이 확 퍼지진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자네 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그 정도 실력이면 정식으로 계약해 조직에 몸담을 수 있어.”
"그런가요?”
“물론, 자넬 원하는 사람이 많을 거야. 크라임 펌, 시의원, 자본가..... 개중에 욕심이 과한 자는 자넬 압박하기도 할 거야. 그걸 고려하면 먼저 조직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그게 시의 새로운 무력 집단이고요?”
"하핫.…. 속이 너무 보였나 보군. 거짓말은 하지 않지. 자네 같은 유능한 친구랑 같이 일하고 싶은 내 욕심도 있지만, 자네에게도 나쁘지 않을 거야. 막 생긴 조직은 기존의 정치 같은 게 없어서 실력이 있는 쪽이 휘어잡기 유리하거든.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도 그거 때문이고.”
진심이었다.
꽤 놀라웠다. 아서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순전히 안정된 직장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 거 같았다.
아서는 아서 나름대로의 포부가 있었다.
"자네 같은 친구를 데려가면 내 입지는 더 좋아질 거고, 자네와의 친분을 이용해 조직을 장악하기도 편하겠지. 물론, 덕만 보겠다는 건 아니야. 자네가 최고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야. 자넨 그만한 실력을 갖췄으니. 그럼, 단순한 돈을 넘는 혜택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법을 피해 갈 수도 있는…..”
아서가 마지막 부분을 조심히 말꼬리를 흐렸다.
허나, 그와 별개로 말한 것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는 분명 올리버를 이용할 생각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에 걸맞게 도와줄 생각이기도 했다.
일종의 동맹 제안.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했지만, 올리버는 정중히 사양했다.
"절 높이 평가해 주시고, 말씀도 감사하지만, 그래도 거절하겠습니다.”
아서는 아쉬운 감정을 빛냈다. 그렇다고 분노하거나 집착하진 않았다.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괜찮다면 이유 정도는 말해줄 수 있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어디 소속되는 게 영 내키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가? 이상하군. 어디서 데이기라도 했나?”
올리버는 순간 마리와 피터 등 조셉 패밀리 구성원이 떠올랐다.
"아뇨.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저….."
“그저….?”
"제가 조직에 소속되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전 그게 별로더라고요.”
아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올리버를 보며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란다로 도착한 후 올리버와 아서 일행은 헤어졌다.
시에 임무 보고를 하는 건 아서가 맡겠다고 하기에,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레스트에게 갔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여느 때와 같이 알이 반겨줬으며, 바로 포레스트에게 안내해줬다.
포레스트는 지하 사무실에서 여러 대의 통신장치와 연락을 주고받는 등 분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올리버를 보자 통신을 중단하고 맞이해 줬다.
"어서 오게. 슬슬 돌아올 때라고 생각했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바쁘시면 나중에 다시 올까요?”
포레스트는 사람 머리통만 한 통신기기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바쁘네. 그냥 알아볼 게 있어서. 잠시만.”
포레스트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양해를 구한 후 크리스털 잔 두 개와 양주가 든 병을 가져왔다.
"처음 보는 양주네요.”
"그리고 비싼 양주지. 아주 비싼.”
"얼마죠?”
포레스트가 잠시 고민하다 올리버의 귀에 귓속말해줬다.
속닥속닥.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아닐 걸세.”
"술 한 병이 집 한 채 값을 한다고요?”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고, 그들을 위한 사치품을 만들 사람도 많거든. 마셔보게.”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권한 양주를 한 모금 마셨다.
꽤 맛있었다.
"좀 더 칭찬해도 괜찮지 않겠나? 대다수 사람은 맛은커녕 존재조차 모르고 죽는 술인데."
"이렇게 맛있는데 모른다고요?”
"그렇네.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술이 있는지도 몰라. 아는 자라고는 권력자나 부호 그리고 그들과 거래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뿐이지. 양지에서 유통되는 물건이 아니라, 음지에서만 유통되는 신비의 술이지.”
오..…. 올리버는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가?
머피의 마법주도 비슷했으니.
"그런데, 왜 그런 귀한 물건을 주시는 겁니까. 감사하지만, 과분합니다.”
"자네 것이기도 하거든. 중개인 조합의 감사 선물이야. 자네가 시(市)의 은밀한 부탁을 들어줘서 올해 세금이 면제됐으니….. 그리고 이건 내 감사 선물.”
포레스트가 포장된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뭐죠?”
"망토일세. 자세한 설명서는 그 안에 같이 있으니 나중에 확인하게. 일할 때 입어도 되고, 어디 중요한 자리 나갈 때 입어도 문제없을 물건이야. 디자인이 현대적이거든.”
“아….. 감사합니다.”
"받은 것에 비하면 얼마 안 되니 걱정 말게. 그보다 임무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성공인 건 알겠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듣고 싶거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임무에 관해 보고했다.
윌레스를 만난 것부터, 윌레스와의 협상, 왕국군 습격, 종군 마법사와의 조우, 그리고 마지막 잔금까지.
이야기가 길어 핵심만 요약해 말했음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는데, 포레스트는 진지한 얼굴이 되더니 종이에 뭔가를 적어 내밀었다. 주소지였다.
"일단, 오늘은…. 아니, 지금부터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 호텔에 묵게. 돈은 내가 낼 테니. 내가 나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