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63화 (163/633)

< 163. 종군 마법사 (2) >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올리버는 살면서 참으로 부당한 주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가령 고아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만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고, 늘 조용히 있어야 했으며, 맞을 때는 비명을 질러선 안 됐다.

고아원 원장님이 때릴 때나, 같은 고아원 동기에게 맞을 때도 마찬가지.

광산으로 넘어오고 나서도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음식은 최소량으로 먹어야 했고, 하루 12시간은 족히 일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더 일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올리버는 이게 부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애당초 다른 세상을 알지 못했기에 부당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

그런 올리버였건만, 세상살이를 한 덕분에 놀랍게도 이제는 약간이나마 부당한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종군 마법사의 주문이 부당한 거였다.

가급적 죽지 말라니..….

사방에서 화염을 몰아치며 공격하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이글이글 불타는 화염의 파도를 피하고 견디며 올리버가 물었다. 아주 정중하게.

"혹시, 그만 싸우면 안 될까요?”

"왜? 사과라도 하게?”

붉은 피부의 종군 마법사가 되물으며 양손을 살짝 움직였다.

별거 아닌 듯한 손짓처럼 보였지만, 손에 머금어진 마력은 돌기둥과 마력을 공유하며 주변의 화염을 광범위하게 조종했다.

돌기둥이 내뿜는 마력의 흐름에 따라 화염의 일부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합쳐져, 무자비하게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그 모습은 흡사 벼락..…. 아니, 정정하겠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것만 똑같지 전혀 벼락처럼 보이진 않았다.

벼락은 자연현상인데, 반해, 이건 재앙에 가까웠으니.

퐈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一!!

공기를 삼키며 내려오는 화염의 태풍.

주변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는데, 올리버는 옆으로 뛰어 이를 피했다.

온도가 뜨겁고, 공기도 부족해 좀만 움직여도 숨이 찼지만, 멈추지 않고 분노의 폭탄이 머금어진 블랙 다트 십수 발을 날렸다.

"혹시 사과하면 봐주실 건가요?”

"음..…. 진심이 안 느껴져.”

종군 마법사가 주변의 화염을 커튼처럼 몸에 둘러 블랙 다트를 모조리 막았다.

아니, 막았다기보다는 공격 자체를 불태워 없애버렸다.

블랙 다트는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분노의 폭탄이 터져 화염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거 웬걸.

폭발이 일어나자 종군 마법사는 화염 안의 마력을 조종해 폭발의 힘을 이용해 화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그리고선 다시 마력을 머금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바닥에 처박힌 화염의 태풍은 마력의 흐름에 맞춰 재정비해 올리버를 쫓아왔다.

화염으로 이뤄진 짐승과 같이.

"아, 끝이 없구나..…."

올리버가 마력을 추출한 후, 상대적으로 통제력이 약한 화염에 개입해 통제권을 빼앗아왔다.

“허….!”

마력량에 차이가 심해 쉽지는 않았지만, 제어능력은 올리버가 약간 위였는지 소량의 화염은 어찌어찌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올리버는 일부 화염을 가져와 응축시킨 후 폭발시키듯 위를 향해 화염의 흐름을 돌렸다.

놀랍게도 화염의 태풍은 올리버가 뚫어놓은 열기와 폭발에 맞춰 위로 뻗어갔다.

혹시나 한 방법이 통한 것.

그렇지만 올리버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블랙 슈트를 전신에 다섯 겹으로 둘렀다.

화염과 열기 때문에 블랙 슈트가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어 이 정도는 필요했다.

‘단기간 근접전으로……응?’

올리버가 코앞까지 다가온 돌-투창을 보며 생각했다.

화염과 바위, 흙, 마력이 뒤섞인 투창은 대포알처럼 날아와 올리버의 얼굴을 노렸다.

올리버는 처음 피할 때처럼 고개를 옆으로 틀어 피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대로 날아가 폭발한 것이 아닌, 돌기둥이 만든 마력 장벽에 튕겨 하늘 위로 팽그르르 회전하며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一

"一어설픈 흑마법사나 마법사와 달리 신체 능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나 보군. 대단해.”

순식간에 접근한 종군 마법사가 공중에서 투창을 낚아채 올리버를 공격했다.

있는 힘껏 내리찍은 투창

올리버가 피한 방향에 맞춰 화염을 머금은 폭발이 작열했고, 올리버는 별수 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섯 겹의 블랙 슈트 중 두 겹이 날아갔다.

타다다닥————팍!

종군 마법사가 저 멀리 나가떨어진 올리버를 쫓아 돌-투창을 우에서 좌로 크게 휘둘렀다.

덕분에 올리버는 나뒹굴 틈도 없이 블랙 슈트를 조작해 억지로 몸을 움직여 피한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뚜둑- 뚜둑- 관절과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이제 확실해졌다. 운동 좀 해야겠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블랙 슈트를 두른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종군 마법사도 화답하며 돌-투창을 휘둘렀다.

"진심이 안 느껴진다니까.”

부딪히는 쿼터스태프와 돌-투창.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캉 소리와 함께 적잖은 크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돌-투창에 머금어진 화염 마법뿐 아니라, 올리버의 라스 붐이 같이 터졌기 때문으로,

마법과 흑마법이 뒤섞여 폭발한 것 때문인지 위력은 단순 두 배가 아닌 다섯 배는 증폭된 것 같았다.

덕분에 종군 마법사가 몸에 두르던 불길 역시 깔끔히 날아갔다. 그도 꽤 놀란 눈치였다.

"너 정말-”

"-미니언.”

올리버의 부름에 맞춰 옷 안에 숨어 있던 미니언이 튀어나와 마법사를 향해 증오의 탄환을 뱉었다.

퓻-! 퓻-! 퓻-! 퓻-!

화염의 갑옷을 잃어버렸음에도 종군 마법사는 동체 시력으로 전부 피했다.

몸에 두르던 방어 마법이 없어져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정말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그런, 말은, 공격을, 멈추고, 하는, 거다!”

고양이처럼 날렵한 움직임으로 올리버의 공격을 피한 종군 마법사는 한 손에 화염을 둘러 그대로 휘둘렀다.

쏴화화화하하하하!!

화염방사기처럼 광범위한 화염의 물결이 올리버를 덮쳤고, 올리버는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그나마 위력이 약해 피해는 적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인 수준.

마력이 머금어진 화염은 블랙 슈트 한 겹을 태울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열로 인해 올리버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큰일이네. 마력은 도망칠 때를 대비해 아껴야 하고, 감정도 이제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지금 눈앞에 있는 마법사의 감정이나 마력을 뽑자니 아차하며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출 시에는 빈틈이 생기니.

임프리전으로 몸을 구속한 후 추출할까도 싶었지만, 그 역시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았다.

종군 마법사가 다시 두른 화염 마법 탓에 구속하기도 전에 불탈 테니.

휙-

종군 마법사가 손가락을 까딱여 땅에서 흙과 돌을 꺼내 주변의 화염과 합쳐 여러 발의 탄을 만들었다.

척 봐도 보통이 아니었다.

[블랙 큐브]

올리버가 방어를 강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블랙 실드 여섯 개를 이용해 종군 마법사를 둘러쌌다.

처음 보는 흑마법에 종군 마법사가 멈칫 한 사이 추가로 흑마법을 하나 더 발동했다.

[라스 붐]

블랙 큐브 안에 생선 된 분노의 폭탄.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린 종군 마법사의 눈이 커졌지만, 올리버가 반 발짝 더 빨리 발동시켰다.

종군 마법사가 형상화한 운석탄과 올리버의 분노의 폭탄이 시너지를 일으켜 블랙 큐브가 깨질 정도의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블랙 큐브가 깨진 것뿐 아니라, 강한 후폭풍이 일며 올리버가 뒤로 날아갔다.

솔직히 이제 죽어주셨으면 고마울 것 같았다.

나름대로 고심해 의표를 찌른 공격인데다, 슬슬 감정도 한계를 보였기에.

이 이상 사용하면 감정이 바닥을 보일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필거렛을 사용하자니 그건 너무 아까웠고.

그러니 좀 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이면 시체는 멀쩡한 상태로.

정당히 망가졌으면 다른 시체로 보충해 재활용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올리버의 이런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증거로 주변에 마력을 공유하는 돌기둥이 꺼지지 않고 계속 작동되고 있는 게 아닌가?

올리버는 몰아붙인다는 생각으로 남아있는 소량의 감정을 털어 마력과 감정, 생명력이 뒤섞어 인공 영혼을 만든 다음 블랙 슈트에 섞어 몸에 둘렀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조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은 블랙 아머를 쿼터스태프 끝에 둥글게 둘러 철퇴처럼 만든 뒤, 그대로 돌진해 종군 마법사의 자리에 피어나던 폭발 연기를 통째로 강타했다.

마력 실드를 강타한 느낌과 함께 종군 마법사가 날아가 돌기둥에 처박혔다.

쾅!!

놀랍게도 그는 폭발에 휩쓸리고, 커다란 공격에 맞았음에도 멀쩡해 보였다.

기껏 입은 피하라고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그을림이 묻은 것밖에 없었다.

아니지, 저것도 대단한 건가? 온몸에 화염을 둘러도 그을림조차 없었던 사람이니.

그는 큰 공격을 연이어 두 번이나 당했음에도 여유로이 땅 위에 내려왔다.

그것도 모자라 양팔을 펼쳐 돌기둥에 분산시켜놨던 마력을 자신의 몸에 돌려받아 체력과 마력을 순식간에 회복했다.

참으로 경악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올리버는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저 돌기둥 저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니.

종군 마법사가 몸의 먼지를 털며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와 질문했다. 분노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차분함을 바탕으로 한 약간의 감탄만이 보였다. 약간의 인정도.

“....이름이 뭐지?”

"예?”

"너 이름이 뭐지? ….참고로 내 이름은 케빈 던바다. 마탑 원소학파 소속이지.”

예상치 못한 자기소개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 제 이름은..…."

말을 하는 도중 목구멍에서 막혔다.

지금은 시(市)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중. 이름을 밝힐 수가 없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다음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사정이 있어서요.”

다행히 종군 마법사..…. 아니, 케빈 던바는 화를 내는 대신 이해해 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켈 자유독입군 소속은 아닌가 보군. 하긴, 이 정도 실력자면….. 아, 란다 소속인가?”

호..…. 올리버가 겉으로 내색지 않으면서도 살짝 놀랐다.

마법사가 머리가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뭐, 상관 안 해. 누구나 사정은 있는 법이니. 특히, 너 정도 실력자라면.”

종군 마법사가 올리버의 블랙 슈트를 꿰뚫어 봤다.

블랙 슈트에 덧씌운 인공 영혼에 대해 하는 눈치였다.

“….널 인정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흑마법사. 그러니 나도 더 이상 적당히 상대하지 않지.”

그 말과 함께 마력이 요동쳤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어가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번에 올리버가 반 발짝 늦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불들은 기름이라도 끼얹은 듯 쏟아지는 마력에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듯 거대하게 요동치며 올리버를 사방에서 덮쳤다.

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건 마력을 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력을 양분 삼아 폭발하듯 커진 화염은 어느새 돌기둥이 에워싼 부분을 전부 집어삼켰다.

점이나, 선이 아닌 도화지 전체를 뒤덮었다.

말 그대로 불바다.

심지어 케빈이 온몸에서 뿜어대는 마력에 맞춰 불바다는 인공적인 조류가 형성돼 태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화염은 거센 흐름과 함께 블랙 슈트를 태웠으며, 올리버는 이를 감내하고 케빈에게 다가갔다.

화염의 열기와 압력으로 앞으로 나가기조차 쉽지 않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화기계열 흑마법으로 반격하고 싶어도 화염에 전부 불타버릴 테니.

"봐준 건 아닌데… 대단한걸?”

마력으로 보호한 붉은 태풍의 중심 안에 고고하게 서 있는 케빈이 말했다.

그는 여유로이 손가락을 움직여 딛고 있는 땅에서 돌과 흙을 끄집어내 불과 섞어 그대로 압축시켰다.

그 상태로 올리버를 가리켰다.

쉬이이이이이!!

올리버에게 달려드는 운석탄.

올리버가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화염에 뒤섞인 마력이 거센 물살처럼 올리버의 행동을 제한했기에.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올리버는 쿼터스태프에 두른 블랙 아머를 조작해 라스 붐으로 바꾼 다음 그대로 날아오는 운석탄을 터트렸다.

흑마법과 마법이 뒤섞인 폭발은 화염의 태풍도 멈출 만큼 큰 폭발을 일으켰고, 그 덕분에 올리버는 날아가 반대편 돌기둥에 처박힐 수 있었다.

아주아주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너 설마..…."

불안이 섞인 종군 마법사의 한 마디.

올리버는 그의 예상대로 돌기둥에 손을 얹어 마력을 추출했다.

"좋은 마력이네요.”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