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61화 (161/633)

< 161. 거래 (2) >

왕가 인사와 악마의 거래.

이는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아직까지 세상 물정에 그리 밝지 못한 올리버조차 아는 사실이었으며, 아서와 다른 이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의 감정은 충격, 경악, 공포 등으로 번개처럼 감정이 요동쳤다.

“..…무슨 개소리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봐.”

날 선 아서의 질문. 윌레스가 대답했다.

“왕실 인사가 어린 남자아이를 기괴한 재단에 바쳤어. 단검으로 심장을 찌르고, 피를 얼굴에 발랐지. 휴잇이 세계수를 통해 봤어."

“누구지?”

윌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선수금은 여기까지야. 더 자세한 정보는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알려주지.”

윌레스의 단호한 대답과 눈빛에 아서는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

대신, 올리버에게 눈빛으로 물어봤다. 저 말이 사실인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욱..…."

거친 숨을 뱉으며 생각한 아서. 그는 이윽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가 뭘 하면 되지?”

***

윌레스가 바란 것은 엄호였다.

다량의 마법장비를 보유한 맥보어가 주변을 탐색, 지원해주고,

고성능의 골렘 의수를 찬 아서와 저격수인 도나가 자신들을 엄호해주길 바랐다.

흑마법사인 올리버에겐 도주 시 예비 화력 역할을 요구했고.

아서 일행은 모두 이를 동의했다. 동의하는 것을 넘어 꽤 반기는 분위기였다

왕국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그저 보조 역할이라는 점이 그들의 심리적 저항감과 불편함을 다소 누그러트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걸 노린 걸 수도.

윌레스란 이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하실에서 만났을 때나, 직선적으로 보였으나 그 안에는 날카로운 판단을 머금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째 심각하신 것 같네.’

올리버가 말없이 후방에서 대기하는 아서와 다른 동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 가방에서 수많은 소형 골렘을 꺼낸 맥보어는 고글에서 투영하는 영상에 집중한 채 허공에 손가락을 까딱여 골렘을 조작했고, 도나는 저격총을 든 채 엄호 준비를 마쳤다.

단순 저격총부터 화학물질을 총알 대신 장전한 마법 총, 폭탄을 쏠 유탄기 등 다양하게 거치하며, 유사시 빠른 교체를 대비했다.

모두 크기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마법 가방에서 여유롭게 꺼냈다.

올리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감정을 추출해 몇 가지 흑마법을 먹인 미니언을 주변에 깔았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다수를 상대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 정도였지만.

".....데이브."

“예? 아서 씨?”

“다시 한번 물어보지. 진짜였나?”

여태껏 침묵하던 아서의 갑작스러운 질문.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이야기 자체의 진실 여부는 몰라도, 말하는 윌레스 씨는 최소한 진심이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심각한 감정을 빛내며 말끝을 흐리는 아서. 올리버가 질문했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질문해도 될까요?”

“뭘?”

“전 악마와 계약하는 건 흑마법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까?”

올리버가 반은 거짓 말했다.

마법사도 악마와 거래하는 걸 알았지만, 그건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

“글쎄….. 무식한 퇴역군인인 내가 뭘 알겠나?”

“아, 죄송합니다. 저보다 세상 물정에 밝으셔서 아시는 줄 알았거든요.”

아서는 그 말에 책임감을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도시 전설 식으로 있기는 하지.”

“도시 전설요?”

“그래.…. 젊음이나, 건강, 정력 등의 이유로 사람을 요리해 먹는 마귀할멈과 같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윌레스 씨는 진심으로 말씀하셨는데, 사실이 아닐까요?”

“말을 아껴.”

아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감정은 걱정과 우려, 불안 등으로 혼탁하게 빛났다.

“..…자칫 온 세상을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이 삐걱거릴 수 있는 사항이야. 입조심 해. 그냥, 거기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아, 죄송합니다.”

아서의 감정은 다시 심각해졌다.

황금을 마주한 듯 탐욕이 이글거리면서도, 동시에 초조하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번민했다. 아주 깊은 번민을.

왕가 인사가 악마와 엮인 게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아서의 번민이 깊어질수록 주변에는 어둠과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던 중 소형 골렘으로 윌레스 일행을 감시.보조 중이던 맥보어가 입을 열었다.

“시작이다.”

그 말과 동시에 저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윌레스의 공격 목표로 다름 아닌 지원을 위한 왕국군 예비대였다.

원래는 이들이 아닌 각 길목을 지키고 있는 소규모 병력을 공격해 유인할 생각이었지만, 아서 일행이 추가되자 계획을 바꿔 바로 예비대를 습격했다.

위험성은 커지겠지만 그만큼 시선을 더 끌 수 있을 테니.

‘그간 그렇고 설마 숨어 있는 왕국군 위치를 파악할 줄이야. 켈 자유독립군이 생각보다 많이 숨어 있고 유능한가 보네. 위치를 전부 파악할 줄이야.'

그때, 다시 한번 화염이 요동쳤다.

포격이라도 맞은 듯 거대한 불기둥이 다방면에서 요동치며, 주변의 숲에 불이 옮겼다.

거대한 화염은 공기를 태우며 괴물과 같은 울음소리를 냈고,

그와 함께 왕국군 대다수는 혼돈과 충격, 공포, 공황에 빠졌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숲에 살고 있던 짐승들도 때아닌 재앙에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도망쳤고,

예비대 근처에 있는 다른 병력 역시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윌레스와 그 일행들이 주변에 번진 불을 이용해 더 화염을 일으켜 예비대를 압살하는 동안 저 멀리 있던 다른 예비대가 윌레스 쪽으로 달려왔다.

빠른 판단으로 빠르게 움직인 덕분.

원래라면 여기서 후퇴해야 했으나, 윌레스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주의를 더 끌 요량으로 왕국군이 바로 앞까지 올 때까지 마력과 주변의 화염을 끌어모아 힘을 아꼈다.

파바바바밧——!!

지원을 오던 왕국군의 길목에서 새하얀 섬광이 터짐과 동시에 지뢰가 발동해 왕국군에게 타격을 가했다.

이건 마법 장비 전문가 맥보어의 작품으로 그는 주변을 감시하며, 그에 맞춰 골렘들을 재배치했다.

맥보어의 적절한 기습에 지원을 오던 왕국군은 물을 맞은 개미 떼처럼 흐트러지며 맥을 못 췄고, 그 타이밍에 맞춰 고밀도의 마력을 지닌 마법사가 빠르게 접근해 마력을 한꺼번에 분출했다.

열 십자로 광범위하게 번지는 불기둥.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왕국군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감정과 생명력이 일제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맥보어가 통신장치에 대고 말했다.

“유인 성공. 후퇴. 후퇴.”

통신 대상은 윌레스 쪽.

통신장치 너머로 알겠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윌레스가 후퇴하기 시작하자 우왕좌왕하던 왕국군은 재빨리 전열을 정비해 뒤쫓았지만,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윌레스 일행에 비해 느려 계속해 거리가 벌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거기다.-

“지원한다.”

도나가 저격총을 들고 윌레스 쪽을 지원했다.

퉁-! 퉁-!

둔탁한 총성에 맞춰 윌레스를 쫓아오던 왕국군 병사들은 다리에 총알을 맞고 쓰러지며, 왕국군은 다친 동료를 데리고 저격수를 피해 은폐 엄폐했다.

발목이 붙잡힌 거였는데, 이대로 도망치면 될 듯했다.

"응?"

갑자기 요란한 기계 소리가 들렸다.

기이이이이이잉———!!!

비탈길 아래에서 올라오는 고출력 마력 에너지.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뛰어 올라왔다.

바로, 외골격 장갑을 두른 왕국군 병사로, 올리버가 란다에서 보던 기종보다 1.5배는 더 큰 물건이었다.

거기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이 아니었다.

몸체에는 복잡한 마력이 흐르며, 정면 가슴받이와 양어깨에 달린 기계장치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을 뿜어져 나와 세 방향으로 실드를 전개했다.

정육각형의 푸른빛 마력 실드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의 아군까지 보호할 정도로 방어 범위가 넓고, 단단했다.

얼마나 단단하냐면 도나가 마법총으로 바꿔 고출력 마력탄을 쏴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였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외골격 장갑의 마력 실드를 자세히 살펴봤다.

마력의 양도 양이었지만, 공격을 받을 때 마력이 타격 부위에 순간 마력이 몰려 기존 실드의 세, 네 배의 방어력을 올렸다.

실로 대단한 기술.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아서가 중얼거렸다.

“갈로스에서 수입한 외골격 장갑이군. 아주 작정했구만.”

“저것에 대해 아시나요?”

“싸워봤지. 풀옵션이면 마법사도 애먹는 물건이야. 지금 떨구지 못하면 곤란해.”

대답과 동시에 골렘 아서는 의수를 쭉 뻗어 달려오는 외골격 장갑을 겨눴다.

마력과 돌이 움직이며 의수 손바닥 가운데 구멍이 생겼다.

푸쉭. 츠즈즈즈즈즈-

구멍 사이로 모이는 마력.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뭔가?”

“제가 하겠습니다. 일단, 힘을 아끼시죠.”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해 그대로 흑마법으로 가공했다.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

감정을 변환시킨 검은색 연기가 윌레스를 지나 외골격 장갑으로 무장한 병사 앞에서 발동됐다.

[아웃크라이(Outcry)]

검은 연기는 한대 엉겨 붙으며 수많은 얼굴로 변했다.

몹시도 화가 난 얼굴로 말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악————!!!!

분노의 외침은 소음과 함께 충격파를 발사해 전방의 외골격 장갑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병사가 감이 좋았는지 순간 실드를 한데 뭉쳐 방어력을 높였다.

덕분에 실드는 깨지지 않고 흔들리기만 흔들렸다.

흡사, 고음에 맞춰 진동하는 유리잔처럼.

그거면 충분했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하며, 손끝에 감정을 모아 응축시킨 후 마력 입자가 흔들리는 실드에 박자에 맞춰 증오의 탄환을 쏴 날렸다.

분노의 외침으로 진동하며 흔들리는 실드는 방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타이밍에 맞춰 탄환이 약한 부위에 명중하자 실드가 관통됐다.

깔끔하게 뚫린 구멍 사이로 일어나는 작은 균열.

마력 실드는 그 균열을 따라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이 부서졌다.

“미니언.”

올리버의 부름에 맞춰 아까 전 심어놓은 미니언이 지면에서 솟아오르며 물풍선처럼 터졌다.

미니언 안에 머금어져 있던 블리스터(Blister) 역시 그에 맞춰 사방으로 퍼져 외골격 장갑 안과 그 뒤에서 따라붙고 있던 왕국군 병사들에게 생화학 공격을 가했다.

뒤따라오던 왕국군 병사들은 직격으로 맞아 얼굴에 탁한 보랏빛 수포가 얼룩덜룩 솟아올랐고,

외골격 장갑 안에 있던 병사 역시 갑옷 틈새 사이로 맞았는지 괴로워하며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작전대로 이동하지.”

멈춘 추격을 바라보며 아서가 말했다. 모두 동의하는지 그의 말에 바로 따랐다.

충분한 타격과 시선을 끌었으니, 근방의 병력은 물론 이 지역의 병력들 역시 움직일 터.

그렇게 된다면 휴잇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후부터는 시간 싸움.

이제 추격을 뿌리치고 윌레스에게 마저 잔금을 받아 제각기 흩어져 탈출하기만 하면 됐다.

'응..…?’

도망치던 중 올리버는 이질감을 느끼며 발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행동에 모두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야?”

아서의 물음에 올리버는 대답 대신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그것도 아주 빨리.

[타겟팅]

목표는 올리버 자신을 비롯한 아서 일행과 윌레스 일행.

각 사람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주변의 바위와 나무 따위에 새겨진 다트판을 향해 날아갔다.

발동 속도가 아주 빨라, 움찔한 윌레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반응하지 못했고, 다행히 이것은 행운으로 작용했다.

왜냐면 그 덕택에 지면의 폭발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으니.

푸왕——! 펑! 퍼펑병!! 펑!! 텅!!

활화산처럼 터진 폭발 덕분에 나무가 뿌리째 뽑혀 박살 나 날아가고, 흙은 비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윌레스가 왕국군을 습격한 것처럼 불이 주변으로 옮겨붙어 주변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와중 한 남자가 땅속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피부를 가진 남성.

올리버는 오늘 그를 처음 봤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올리버가 윌레스를 처음 만나 싸웠을 때 그를 멀리서나마 느낄 수 있었으니.

“종군 마법사시군요.”

차가운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는 붉은 피부 마법사를 향해 올리버가 물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