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시외(市外) 임무 (2) >
아서는 눈에 띄지 않게 통신장치를 통해 도나와 맥보어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도나. 넌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신호할 때, 웨스트 중심 도로 사거리. 밀리언 잡화점이란 곳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되는대로 알아봐. 잘하면 반군 협력 거점일 수 있어.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 거야.”
[오케이.]
“맥보어, 넌 이쪽으로 골렘 한 개 보내. 새..… 아니, 쥐새끼로. 그게 더 눈에 덜 띌 거야. 위치를 계속해 확인해 우리한테 이야기해줘. 그럼, 우리가 두 발짝 뒤로 쫓아갈게.”
[알았어.]
나쁜 명령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네 명이 우르르 뒤쫓아가면 들킬 염려도 높았고. 차라리, 역할을 나누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뭣보다 도나 씨와 맥보어 씨는 근접 전투가 특기도 아니니.’
올리버와 맥보어는 눈에 띄지 않게 잡화점 근처에서 대기했다.
통신장치에서 연락이 들렸다. 각각 도나와 맥보어의 것이었다.
[대장아, 나 근처 왔다.]
[쥐-골렘 근처에 대기했어. 문에 나오면 신호 줘. 내가 쫓아갈게.]
아서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잡화점에서 식료품 한 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남성이 보였다.
키가 크다는 점 외에는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성이었다.
“저 사람입니다.”
“맥보어. 방금 나간 사람 쫓아가.”
아서의 명령을 듣자 맥보어가 되물었다.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하는데 정말 저놈 맞아?]
“그래. 왜?”
“마력이 안 느껴지는데? 일반인처럼 함량 미달이야.”
아서가 의문 섞인 눈빛으로 올리버를 봤으나 올리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켈 자유….반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 보유량은 웬만한 마법사 못지않게 높습니다. 마력을 통제하고 있지만, 전 보입니다."
"......."
올리버의 말에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침묵하는 아서와 맥보어.
아서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쫓아.”
[알겠어.]
말을 나누는 사이 짐 한 바구니 든 남성은 길을 따라 이동했고, 그를 따라 작은 쥐새끼가 사사삭 쫓아갔다.
맥보어가 조종하는 골렘으로, 겉에 털 같은 것도 붙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보통 쥐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꽤 잘 만든 물건이었다.
“우린 1, 2분 후 쫓아간다. 그럼, 들킬 가능성이 확 줄어들 테니.”
“예, 알겠습니다.”
아서는 1, 2분 사이의 짬을 내 담배를 물었다. 올리버는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어떻게 안 거지?”
“예?”
“아니, 그러니까. 네가 희귀 케이스라는 건 알고, 마력을 볼 줄 아는 것도 아는데, 숨긴 마력도 볼 수 있나? 쉽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음..…. 훨씬 잘 숨긴 분을 만나봤거든요.”
“호, 그래? 그게 누-”
[-치직! 대장. 이제 쫓아와. 중앙 도로를 따라 쭉 걷다가 좌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빠졌어. 슬럼가 영역이야.]
갑자기 끊긴 대화. 그러나 일이 먼저였기에 아서와 올리버는 바로 움직였다.
뚜벅. 뚜벅. 뚜벅.
올리버가 아서에게 물었다.
“슬럼가라면 그쪽에 숨은 걸까요?”
“그게 정석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뒷골목도 토박이들 투성이라 저번에 왔을 때 뭐라도 건졌을 텐데, 이상하군.”
올리버와 아서가 우측으로 돌아 뒷골목 길에 들어섰다.
란다 만큼은 아니지만, 이 도시의 빈민가도 황량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쓰레기가 거리에 많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거대한 드럼통에서 부서진 나무판자나 쓰레기를 넣어 불태우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러다 불이라도 나면 볼 만하겠군.”
“그럼 큰일이겠네요.”
“꼭 그렇지도 않아. 불탄 뒤에 싹다 밀어버리고 새 걸 지으면 되니. 재개발업자들은 좋아하겠군.”
다시 통신장치가 울렸다.
[쭉 가다. 세 번째 골목에서 빠졌어. 지금.…. 응? 자…빠직!! 파치지직-!!……. 아. 아. 방금 골렘과의 통신이 끊겼어. 눈치챈 것 같아.]
“이런 개….!”
아서는 발끈하며 바로 뛰기 시작했다.
올리버도 뒤따라 뛰었지만, 맨몸으로는 아서를 쫓기 약간 버거웠다.
거구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꽤 빨랐다.
블랙 슈트를 몸에 걸친 후에야 얼추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이렇게 다급히 쫓아도 되나요?”
“어차피 자기를 쫓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조심하는 건 의미 없어.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야 해.”
팍-!
아서가 골목 모퉁이 벽을 잡으며 방향을 틀었다.
뒷골목의 뒷골목이라 할 만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쓰레기를 불태우는 드럼통만 몇 개와 가는 도중 부서진 쥐-골렘의 잔해만 보일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지나간 흔적도, 샛길로 빠진 구멍도 말이다.
“젠장…. 담벼락이라도 넘은 건가?”
초조해하는 아서. 통신장치가 다시 울렸다.
[대장아. 잡화점 주인과 몇 마디 나눴어. 주인 양반이 꽤나 잘 숨겼지만, 말할 때 노스랜드 특유의 어감이 있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반군 놈 협력자일 가능성이 있어.]
“그럼, 그쪽으로 돌아가서 협력을 구해야겠군.”
다른 목표물을 포착하자 아서는 처음 느긋한 태도를 버리고 굶주린 개처럼 이를 갈았다.
광산에서 아이들을 감시하던 개를 연상케 했다.
올리버가 아서의 심상치 않은 감정을 보며 물었다.
“협력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죠?”
“반군 놈이 하필 노스랜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샀다. 이 정도면 충분해. 협력자 맞아.”
“그쪽 협력자면 저희를 도우려고 할까요?”
“안 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설득하면 되니까.”
“설득요?”
“쇠집게로 이빨을 뽑으면 대개 협력하게 되거든. 혹시 사람 이빨 개수가 몇 개인지 아나?”
“스물여덟 개 아닌가요”
“맞아. 그중 반이 뽑힐 때까지 버틴 인간은 난 못 봤어.”
“말투를 보아하니 왕국군 출신인가 보군.”
갑자기 끼어든 제3의 목소리. 그러나 반응했을 때는 한 발짝 늦고 말았다.
쓰레기 더미를 불태우던 드럼통 화염에서 누군가 칼을 들고 튀어나와 아서를 찌른 것이다.
“..…큭!”
힘이 어찌나 좋은지 커다란 덩치의 아서를 순식간에 벽으로 밀어붙였다.
만약, 아서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으면 골렘 의수로 막지 못하고 허무하게 몸이 꿰뚫릴 뻔했다.
이 남자 보통이 아니었다.
아서가 반대쪽 손을 들어 내리찍으려고 했다. 그때, 남자의 강철검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고출력의 에너지를 뿜으며 검을 좌에서 우로 쳐냈다.
그러자 아서의 신형 골렘 의수가 부서지며 돌조각이 한쪽으로 힘없이 날아갔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흥!”
아서가 콧방귀를 뀌며 부서진 의수에 정신을 집중했다.
부서져 흩어진 골렘 의수 파편 사이로 마력이 발동돼 서로 연결되더니 그대로 파편이 허공에 멈췄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허공이 멈출 뿐 아니라 마력에 의해 허공에서 골렘 의수가 합쳐져 적에게 공격을 가했다.
쾅-! 쾅-!!
적은 뒤로 물러나 재빠르게 피했고, 두 개의 의수는 마치 쇳덩어리처럼 땅과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데이브!”
아서의 외침에 맞춰 올리버는 살짝 뛰어 적 남성에게 달려들었다.
블랙 슈트로 엮은 쿼터스태프를 휘두른 것인데, 피한 타이밍에 맞춰 공격했음에도 남자는 재빨리 착지 후 자세를 바꿔 올리버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챙——!!
블랙 슈트의 출력을 결코 약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남자는 밀리지 않았다.
마력으로 신체를 보조적으로 강화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신체능력이 발군인 듯했는데, 오히려 붉게 달아오른 칼날로 인해 쿼터스태프에 두른 블랙 슈트가 불타고 있었다.
근접전으로 오래 싸우면 불리했다.
“읏차!”
아서가 옆에서 골렘 의수를 내질렀다.
적 남성은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를 흘린 다음 아서의 주먹도 흘린 후,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전투에 아주 능숙했다.
아서의 머리를 향하는 붉은 칼날. 그 타이밍에 맞춰 올리버는 증오의 탄환을 쐈다.
남자는 아서의 머리를 향하던 칼날을 회수해 막은 다음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자기가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역시, 화력을 조절하며 싸우는 건 불편하군. 그렇다고 그냥 보내줄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지..…."
남자는 말끝을 흐리더니 붉게 달아오른 칼날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복잡한 마법의 흐름이 올리버의 눈에 스쳐 지나가며 그와 동시에 골목 곳곳에 있던 드럼통의 불길이 칼날에 모여 응축됐다.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울 것 같은 흉악스러운 붉은빛은 흡사, 쇳물을 연상케 했고, 불 특유의 따뜻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흉흉함만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고화력의 화염마법으로 올리버와 아서를 단번에 끝장내려는 것 같았다.
‘블랙 슈트 몇 겹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응?’
적 남성이 모여든 불길을 한 번에 터트려 휘두르려는 찰나 올리버가 손을 들어 외쳤다.
“잠시만요. 혹시, 근처에 동료 있나요?”
뜬금없는 소리에 옆에 있던 아서가 인상을 찌푸렸고, 적 남성 역시 멈칫했다.
그냥 무시하고 공격할 수도 있지만, 올리버의 태도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공격을 중단하고 대답했다.
“..…아니.”
“우리 쪽도 아니고 그쪽도 아니면 종군 마법사겠네요.”
“뭐라고?”
“지금 이쪽으로 마법사 하나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쪽 켈 자유독립군인 거 같은데, 저희는 란다에서 온 해결사입니다. 우리 모두 왕국군에게 들키면 곤란한 입장인데. 일단, 싸움을 멈추고 나중에 다시 만나 대화하는 거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미친 헛소리. 그러나 적 남성은 마력을 퍼트려 주변을 확인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서의 호출을 받아 숙소로 돌아온 도나와 맥보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서가 골렘 의수를 임시 수리하며 대답했다.
“나도 당혹스러우니까. 진정하고 문 닫고 앉아봐. 이 친구가 이야기해 줄 테니까.”
아서의 말에 도나와 맥보다가 올리버를 바라보다가 근처 적당한 데 앉았다.
도나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설명해줄래? 분명 방금 전까지 적을 추격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숙소로 모이라고 한 거야. 아니, 그전에 도대체 어떻게 여기 온 거야? 시간상 올 만한 거리가 아닌데.”
올리버가 대답으로 종이를 두 개 들어 보여줬다.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로 올리버가 마력을 발동시키자 작은 포털이 형성됐다.
“!! 공간 마법.…?”
“믿기지 않는군.….”
도나와 맥보어가 충격과 감탄을 빛내며 말했다.
공간학파 마법의 수준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거 같았다.
“혹시 몰라 인원수에 맞춰 이곳 숙소에 종이를 설치했는데, 발동시켜서 이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도망쳐? 적이 그만큼 강했다는 이야기야?”
아서가 대답했다.
“적을 쫓은 것도 맞고, 싸운 것도 맞고, 강한 것도 맞지만, 그것 때문에 도망친 건 아니야. 좀 복잡한데..... . 데이브?”
올리버가 바톤을 넘겨 받아 대답했다.
“싸우는 도중 다른 마법사가 접근해서 싸움을 멈추고 헤어졌습니다.”
“왕국 종군 마법사 같다더군.”
“종군 마법사?”
“예, 근거는 없지만, 우리 쪽도 켈 반군 쪽도 아니면 남은 건 왕국군 밖에 없으니까요.”
그럴듯한 논리였는지 맥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우리 쪽에도 귀가 있듯이 저쪽에도 귀가 있을 테니. 이쪽으로 수색 인원을 돌려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아.”
“그렇다고 바로 앞에 있는 걸 놓쳤다고?!”
화를 내는 도나에게 아서가 진정시키듯 말했다.
“진정해. 아가씨….. 놀랍게도 이 친구가 약속을 잡았으니까.”
“대장. 지금 농담하는 거지?”
“나도 같은 심정인데, 농담은 아니야.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진 모르겠지만, 싸우다 말고, 멈추자고 설득하더니, 약속까지 잡았어. 오늘 밤 아홉 시, 웨스트 중심 도로 밀리언 잡화점에서….."
아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요술이라도 부린 도깨비를 바라보듯 어이없어하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올리버는 그 눈빛을 감상하다 대답했다.
“그쪽도 그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 다 넘어가서. 그놈이 나올 근거는?”
“약속할 때 감정은 진심이었고, 무엇보다 동료분을 아끼시는 거 같으니,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잡화점 주인 분 말이에요.”
"......."
"......."
"......."
아서, 도나, 맥보어 모두 동의하는 감정을 빛내며 뭐라 말하지 못했다. 얼추 상황을 받아들인 듯했다.
올리버가 마무리로 말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그 잡화점 주인분을 설득해 다시 수색해도 되지 않나요. 이빨을 뽑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