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57화 (157/633)

< 157. 폴 카버 (2) >

경비원의 허락을 받자 차량은 성벽 같은 담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알은 능숙하게 운전해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끽 끽 걸리는 곳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차멀미는커녕 아늑하기까지 했다.

“란다 내에서 홍인(紅人)이 운전 가능한 법률이 통과된 후 바로 훈련시킨 덕분이네.”

알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린 포레스트가 말했다.

“운전 가능한 법률요…? 그전에는 안 됐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알,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예, 알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감사에 걸린 게 아니라 일 이야기로 찾아온 거니.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차 안에서 기다려.”

“예, 알겠습니 다.”

알이 존경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포레스트는 올리버와 함께 철통같은 내무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원래는 홍인이나, 흑인, 동방인은 법적으로 운전이 불가능했거든.”

“왜 불가능했죠?”

“이유가 복잡해. 차를 운전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이쪽 발달이 덜 된 열등한 인종이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거든.”

포레스트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기며 대답했다.

“진짜인가요?”

올리버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올리버가 보기엔 알은 영리했다.

그가 준 노트에는 식당일에 관한 세세한 정보가 잘 적혀 있었고, 재밌어 보이는 농담도 여럿 있었다.

“최소한 반대파들은 그렇다고 주장하네. 과학적인 명백한 이유라고.”

“포레스트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나? 글쎄.…. 나도 답답한 왕국 사람에 속하고, 속물적인 란다 사람이긴 하지만 그다지 동의하진 않아. 알의 운전 솜씨를 보며 쉬이 알 수 있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나름대로 택시를 많이 타 봤지만, 알의 운전실력은 그중에서도 상위권이라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도 많지.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 인종이 운전하는 것 자체가 싫은 걸 수도 있고, 또 경쟁자를 막기 위한 것도 있지.”

“경쟁자요?”

“란다에서는 운전만 해도 얼추 먹고 살 수 있거든. 택시 기사, 트럭 운전사 같은….. 그런, 그들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값싸게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운전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위협적이야. 그래서 그쪽 종사자들은 유색인의 운전을 막아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지.”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말을 곱씹어봤다. 뭐랄까..…. 아이러니했다.

과거 트럭 운전사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과 손을 잡고 크라임 펌에 맞서 싸웠는데.

그런 그들이 다른 이들을 핍박하다니. 작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근데, 왜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게 란다의 좋은 점이지. 이 도시는 효율성을 높게 쳐. 차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긴 왕국에서 그나마 융통성이 있는 편이거든. 그저 이게 시(市) 전체에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 통과시켰네. 저항은 없는 건 아니지만, 평소처럼 무마됐고……. 이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란다를 좋아하는 거야.”

포레스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심으로 란다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 도착했군.”

딱딱해 여유마저 느껴지지 않는 복도를 지나 포레스트가 한 문 앞에 멈췄다.

여느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문 앞에는 <폴 카버>라는 이름표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포레스트가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들어오세요.”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버와 포레스트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서류의 산이 보였다. 책상 위, 손수레 등에 말이다.

종이 위에는 얼핏 봐도 좁쌀만 한 크기의 글씨가 빽빽하니 적혀 있어 보는 것만으로 현기증을 유발했다.

그가 얼마나 바쁜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서류 더미에 가려져 있던 한 남자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아는 얼굴이었다.

오염구역 청소 전에 외골격 장갑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나타나 설명해주고,

이후, 퍼펫과 헤어지고 돌아가던 올리버를 체포해 몇 가지 심문을 했던 이였다.

그는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들이켰다.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음, 하……. 바쁘신 분들을 이리 불러서 죄송합니다.”

전에 보았던 다소 고압적인 자세는 사라진 채, 시(市) 공무원 폴 카버는 예의를 갖춰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도 이에 관해 정중히 예를 갖춰 대답했다.

“아닙니다. 시(市) 공무원들은 늘 란다의 번영을 위해 바쁘게 일하는 고마운 존재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편하게 이야기해주시죠.”

“배려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잠시,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폴 카버가 깨끗한 손님 접대용 테이블을 가리켰다.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앉자 카버는 유선 통신 장치를 이용해 어딘가로 연락했다.

“커피 3잔 부탁해….. 혹시, 커피 못 마시는 분 계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저도 마실 수 있습니다.”

카버가 고개를 끄덕이곤 커피를 주문했다.

“이리 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포레스트 씨 그리고 데이브 씨..…. 포레스트 씨도 그렇지만, 데이브 씨와도 초면은 아니군요.”

“예, 기억해주셨군요.”

“인상이 깊어서요. 보통 사람은 아닌 줄 알았지만, 단시간 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해결사가 되신 지 1년 정도 됐다고요?”

“이제 슬슬 그쯤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바닥도 보통은 아닐 텐데, 대단하군요….. 어디서 그렇게 배우셨죠?”

포레스트가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카버 씨. 괜찮으시다면 일 이야기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레스토랑 문을 열고 온 터라.….”

질문이 가로막힌 폴 카버는 불쾌해하긴커녕 오히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포레스트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이 잔악무도한 반군에게 습격당해 파괴당했지요.”

“부끄럽게도 사실입니다. 윌레스…마탑 교수까지 지낸 실력자라더니, 보통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망신은 망신. 무능한 저희 때문에 죄 없는 시민들만 밤잠을 설치고 있죠.”

올리버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저 말은 진심이었다.

오염구역 청소 당시 보였던 위압적인 태도나, 성기사들을 향한 적의를 보였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흥미로웠다. 그는 진심으로 시민들을 걱정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중개인 조합도 협력하고 있지요.”

“그 점은 시(市) 관계자라면 모두가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문이긴 합니다. 이런 바쁜 와중인데, 시(市)에서 따로 의뢰할 것이 있다고요? 감옥을 탈출한 탈옥범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맞는 말이긴 합니다. 집에 난 불을 끄는 것보다 더 급한 건 없죠. 하지만 때때로 딴짓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집에 불이 나도 출근을 해야 하듯이요.”

“무슨 일입니까?”

“그건-”

-끼익.

부드럽게 열린 문소리에 폴 카버가 말을 멈췄다.

한 20대 여성 직원이 쟁반에 커피를 타 왔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올리버와 포레스트, 카버에게 커피를 나눠줬다.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고마워.”

“웬걸요."

여성이 나가자 카버의 사무실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살짝 마시곤 말했다.

“마시지요. 꽤 맛있습니다. 일이 많아져서 나름 좋은 원두를 사 왔거든요.”

포레스트가 시키는 대로 커피를 마셨다.

“….정말 맛있군요. 어디서 산 거죠?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쓰고 싶을 지경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씨는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시죠? T구역에서….. 포레스트 레스토랑?”

“알아주시니 고맙군요.”

“별말씀을…. 그럼, 이 원두가 얼마 정도 할 것 같습니까? 소매가로. 뛰어난 레스토랑 주인은 음식 재룟값을 단번에 맞춘다고 하던데. 아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포레스트는 당황하지 않고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요? 소매가로 한 봉지에 5만 1천 란다 정도?”

“오, 꽤 정확합니다. 5만 2천 란다지만요.”

오….. 올리버가 감탄했다. 1천 란다 차이면 그냥 맞췄다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란다 밖에서는 4만 1천 란다이지요.”

“꽤 차이가 심하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고, 올리버는 질문했다.

“이유가 있나요?”

“….예, 란다는 자치도시라 도시로 들어오는 물건에 세율이 추가로 붙거든요. 도시 관세라는 명칭이 있지만, 실상은 자치권에 매겨지는 자치세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쪽 물가는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 더 높습니다.”

“매년 그 문제로 중앙 의회랑 씨름하고요.”

포레스트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연합 왕국에서 아무래도 란다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듯했다.

올리버야 세금을 안 내니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포레스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일과 상관있습니까?”

“아뇨.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다만, 간접적으로는 상관있죠. 지금 이 사달을 낸 윌레스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뇨. 모릅니다.”

“저희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란다 밖으로 도망친 게 확인됐습니다.”

“그렇습니까? 하긴 그게 자연스러운 선택이긴 하죠.”

“예,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이 난리를 쳤으니 란다에 계속 남는 게 건 위험할 테니까요. 실제로 남아 있다면 시(市) 방위군을 풀어서라도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올리버는 폴 카버의 분노를 읽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당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대놓고 시를 적대하는 경우요.”

'....??'

올리버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다행히 폴 카버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란다에는 수많은 도망자들이 숨어듭니다. 때때로 란다는 그런 자들을 잡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간의 묵시적인 합의는 있습니다.”

“시는 적당한 수위의 수색을 하고, 도망자들은 시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거지요.”

“맞습니다. 포레스트 씨. 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말이 안 되는 거지만, 란다에서는 가능하죠. 왜냐면 란다는 적정선 내에서 모두를 포용하는 자유 도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도망자는 뭐가 됐건 자신들이 몸을 숨길 도시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겹쳐진 이해관계가 만든 오래된 약속이죠 ”

“듣고 보니 이상하군요. 윌레스. 비록 반군이긴 하나 그들도 필요시에는 란다를 이용했는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감옥에 갇힌 동료를 구하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걸까요? 여차하면 숨을 수 있는 수풀을 불태울 정도로.”

카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두 손을 깍지 꼈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윌레스가 구해낸 동료들은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한 명 있더군요. 그는-”

“-마법 해커 휴잇입니까?”

저도 모르게 끼어든 올리버.

다시 카버와 포레스트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몰렸다.

특히, 시(市) 공무원 폴 카버는 단순 놀라움을 넘어 흥미를 보였다.

“예, 맞습니다.”

카버는 서랍에서 커피 봉투를 꺼내 책상 위로 툭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가 커피값을 낮춰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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